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71)화 (71/246)

68화

13. 또 한 명의 히어로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파일철을 쟁반 삼아 커피를 챙겨 온 김한식 형사가 안으로 들어온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중간에 좀 일이 있어서요.”

“아닙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았어요.”

만약 일이 있었다면 이렇게 빨리 오지 못했을 것이었다.

“여기 커피부터 드시죠.”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종이컵을 건네받은 뒤 익숙한 믹스커피의 향을 맡자 마음이 한결 진정된다. 몇 번이고 그렇게 향을 맡곤 그것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사실, 굳이 이곳을 빌려 나눌 사안은 아닌데 보는 눈들이 많아서요. 불편하실까 싶어 이쪽으로 안내했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쩐지 지난번과 다르다 했다. 꾸벅 인사하며 김한식 형사를 보자, 그가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뭘요. 매번 큰 도움을 받고 있는데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희도 매번 큰 도움 받고 있습니다.”

형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주무관이 말을 얹으며 입가를 끌어 올린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말을 얹었다.

“경찰이 없었다면 매번 던전이 생성될 때마다 큰 피해가 생겼을 거예요. 항상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뭐, 저야 범죄 사건 위주로 움직이는 터라…. 좀 민망하긴 하네요. 하하. 그럼 시간이 부족하실 테니 바로 크로스 체크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적어주신 진술서를 보면 퇴근 후 집으로 가던 중 큰 엔진 소리가 크게 났다고 기입하셨고요. 아, 여기 스키드 마크를 남기는 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렸다고 적으셨는데, 몇 번 정도 들렸는지 기억하십니까?”

“정확하진 않지만, 다섯 번 이상은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법 가까운 곳에서부터 들려왔고요.”

“그러다 사거리에서 덤프트럭이 모습을 드러냈고요?”

이전에 적었던 진술서를 보는 중인 듯 파일철을 열어 내용을 확인하던 형사가 그 자세 그대로 눈동자를 움직여 시선을 마주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혹 덤프트럭의 움직임이 어땠는지도 확실하게 기억하십니까? 진술서에는 이 부분이 간단하게 기술이 되어서요.”

사거리에서 나타난 덤프트럭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내 쪽으로 달려왔다 적었는데, 좀 더 자세한 내용이 필요한 건가 싶다. 나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최대한 상세하게 기억을 풀어냈다.

“그렇군요. 이 부분에서 하나 더 체크하겠습니다. 서 있던 위치가 큰 도로와 작은 도로가 이어지는 곳 맞으시고요?”

“네. 혹시나 해 근처 카페 건물 쪽으로 대피 중이었습니다.”

“카페 건물이요? 그냥 가던 길을 가시던 게 아니었습니까?”

다시 파일철을 보던 형사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한다. 마치 처음 말을 듣는 듯한 표정이다. 나는 파일철을 한 번 보곤 눈을 들어 김한식 형사와 눈을 마주하곤 입을 열었다.

“제가 그 부분 기입을 하지 않았나요?”

“예. 이 부분 체크하도록 하겠습니다.”

피하던 도중 길에서 사고를 당할 뻔했던지라 그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힐끔 옆자리를 보자 눈이 마주친 한 주무관이 고개를 끄덕인다. 따라 고개를 까딱이곤 다시 형사를 바라보았다.

“이후 덤프트럭이 연하늘 씨를 덮치던 중 서강민 헌터가 나타나 덤프트럭을 막았다는 거군요.”

“네.”

“진술서 체크 감사합니다. 그리고….”

목이 탔는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형사가 파일철의 다음 장을 펴더니 내용을 살핀다. 그 모습을 보다가 눈에 들어온 종이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

어느새 제법 식은 커피가 목을 타고 내려가는 게 느껴진다. 몇 모금 더 홀짝이며 형사가 말을 꺼낼 때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따로 조사할 게 있으면 뜸 들이지 말고 바로 말씀 주십시오.”

잠자코 대화를 듣고만 있던 한 주무관이 입을 연다.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사건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 중이니 뭐든 말씀해 주세요.”

“…하아. 알겠습니다. 말을 어떻게 꺼내야 싶어 잠시 고민했는데, 직접적으로 묻겠습니다.”

바라던 바였다. 말을 빙빙 돌리다 보면 시간만 많이 잡아먹을 뿐이었다.

“두 분도 아마 알고 계실 겁니다. 구치소에서 덤프트럭 운전사가 살해당했다는 걸 말입니다.”

“예,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모르나 뉴스에 탄 내용은 헌터부 전원이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기가 좀 그렇습니다만, 현재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상황을 설명하는 형사의 목소리에 짙은 피곤함이 묻어나왔다.

“…구치소라면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까?”

“사건이 발생한 곳이 사각지대여서 말이죠. 추정 시각으로 용의자를 특정하면 되겠지만, 그 시각엔 덤프트럭 운전사 말곤 그 누구도 그곳으로 간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아.”

저 말을 들으니 왜 날 부른 건지 조금은 알 듯했다. 나는 곧바로 형사에게 물었다.

“혹시 사고 현장에서 뭔가 이상한 걸 본 게 있는지 물어보시려는 거죠?”

“눈치가 참 빠르시네요. 예, 그렇습니다.”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니 좀 그랬지만, 상대에게 눈치가 빠르단 말을 들으니 왠지 기분이 좋다. 나는 괜스레 종이컵을 다른 손으로 옮기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런 거라면 정신이 없었을 우리 막내보다는 서강민 헌터에게 물어보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미 서강민 헌터도 확인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어서 말이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하늘 주무관님께 연락했습니다.”

서강민의 진술로도 부족했다니.

나는 남은 커피를 단번에 비우곤 입을 열었다.

“일단, 두서없이 말씀드리게 돼서 죄송합니다. 뭐든 생각나는 게 있다면 말씀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물론입니다. 아주 사소한 것도 좋으니 뭐든 말씀하시면 됩니다.”

“서강민 헌터가 앞을 막은 후 생각나는 부분 말씀드릴게요.”

당시 내 앞을 막은 서강민 헌터가 덤프트럭을 어떻게 세웠는지부터 시작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다 손바닥에 생채기가 났고, 주변 사람들이 도와줘 일어날 수 있었던 내용까지 설명한 뒤 마른침을 삼키곤 다시 말을 이었다.

“이후 덤프트럭이 멈추자 행인들이 트럭 운전사를 운전석에서 끌어냈어요. 끌어낸 사람들은 중년 남성도 있었고, 교복을 입은 학생도 잠시지만 보였고요.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모두 운전사에게 손가락질하고 거친 소리를 뱉었는데, 이상하게도 반응이 없더라고요. 이미 형사님도 보셨겠지만요.”

“혹시 그 운전사가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도 그 상태가 유지되었습니까?”

이야기를 경청하던 한 주무관이 물었다. 나는 형사를 보며 나올 대답을 기다렸다.

“예.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도 목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구치소 안에서도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고요.”

“아, 그러고 보니….”

형사의 설명을 듣다보니 아직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개인적인 느낌이긴 했지만, 이 또한 전달한다면 뭔가 도움이 될지 모를 일이었다.

“사실, 제가 당시 죽을 뻔했는데도 정신적인 충격이 전혀 없어서요.”

“…그 말은 즉 실감 나지 않는다는 부분이 연결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말씀인가요?”

“네. 그리고….”

“그리고요?”

이 말을 하는 게 좋을까 싶었지만, 이미 뭐든 말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이 말을 한다고 해서 헌터부에 폐를 끼치거나 하진 않을 거란 결론을 내리곤 뒷말을 이었다.

“이번 일만 겪었다면 말씀드리지 않았겠지만, 예전에도 교통사고 관련해 큰 사건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큰 사건?”

한 주무관이 되묻는다. 나는 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예전에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아.”

생각지도 못한 듯한 주무관이 아차 싶은 얼굴로 날 바라본다. 나는 느리게 눈을 끔벅이며 괜찮다는 걸 어필했다.

“사고가 난 지도 시간이 제법 흘러서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래.”

복잡한 기색이 역력한 그를 보다가 다시 김한식 형사와 눈을 마주하고 마저 말을 이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낸 건 과거에도 교통사고와 관련해 큰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저 놀란 거 말고는 아무렇지도 않아서요. 혹 이게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일단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묘한 시선을 보내던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내용 또한 받아적는다. 이후에도 떠오르는 사소한 내용을 전부 이야기하곤 김한식 형사를 지켜보았다.

“…….”

헌터부에선 용의자로 정신계 능력을 지닌 헌터를 의심하고 있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 단서라도 잡으려 연락을 취한 터라 이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지 모르겠다.

나는 옆자리의 한 주무관을 바라보았다.

도리도리.

마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단 걸 알기라도 한 듯,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고개를 젓는다. 저 뜻이 정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신호를 주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한 주무관이 침묵하는 걸 보면 우선은 비밀에 부쳐야 할 듯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네요. 너무 오래 붙잡아 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정리를 마친 듯 파일철을 닫은 김한식 형사가 이내 씩 웃어 보인다. 나는 따라 웃으며 답했다.

“아니에요. 기왕이면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시답지 않은 이야기만 늘어놓고 가는 거 같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정말 큰 도움 되었어요. 연하늘 주무관님이 말한 내용을 참고하여 계속 조사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정문까지 배웅하겠습니다.”

김한식 형사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주무관도 일어나자 뒤따라 일어나곤 형사의 뒤를 쫓았다.

“아, 그리고 용의자가 특정되거나 하면 헌터부로 언질 주시겠습니까?”

이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한 주무관을 보았다가 김한식 형사 쪽을 보았다가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안심했다.

“물론입니다. 바로 연하늘 주무관님께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럼 들어가 보십시오.”

“들어가세요.”

“조심히 가십시오.”

인사를 마친 형사가 다시 경찰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한 주무관과 함께 주차된 차로 이동했다.

차에 올라 벨트를 맬 때였다.

“연하늘.”

“네, 한 주무관님.”

“적극적으로 수사에 응하는 건 좋지만, 항상 조심해.”

“…네?”

“경찰이라고 다 믿을 만한 건 아니거든.”

“…….”

씁쓸함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가 마음이 쓰인다. 나는 뚫어져라 한 주무관을 바라보았다.

“하여튼 팀원들만 믿어. 뭐, 아주 조금은 잉여도 믿어도 될 듯하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었다. 복잡한 한 주관의 얼굴만 봐도 그랬다. 김세현은 아주 조금 믿어도 된다는 말이 조금 그랬지만, 바로 고개를 주억였다.

“그럴게요.”

“그렇다고 잉여가 어디 다녀오자고 했다고 냉큼 따라가지 말고!”

“네.”

“조금은 믿어도 경계는 늦추지 마!”

“그럴게요.”

“단둘이 있지도 말고! 있게 될 거 같으면 바로 사람들 있는 곳으로 가고!”

“…네.”

“그리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한 주무관의 주의사항을 듣고 있자니 머리가 다 혼미했다. 어느새 출발한 차가 속도를 점차 올린다. 그뿐이랴, 속도만큼이나 한 주무관이 쏟아내는 속도는 이래도 될까 싶어질 지경이었다.

혹시, 운전하며 계속해서 혼잣말하던 게 내게 잔소리하는 것으로 바뀐 걸까?

“…….”

그건 아니길 바라야겠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니 말이다.

“사람 항상 경계하고! 믿지 말고!”

아니, 그 생각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계속되는 한 주무관의 연설을 들으며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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