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13. 또 한 명의 히어로
팀장과 부팀장의 차는 타 봤지만, 한 주무관이 운전하는 차를 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 빨리빨리들 안 가네.”
“바퀴에 껌이라도 붙었나? 왜 이렇게 기어가?”
“…….”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부팀장이나 팀장에게 손을 내밀 걸 그랬나 싶다. 거친 소리를 쉴 새 없이 내뱉는 한 주무관을 곁눈질하곤 조심스럽게 조수석 보조 손잡이를 붙잡았다.
“길이 이렇게 뻥 뚫렸는데, 기어가? 속도 제한이 있으면 제한 속도를 지켜야지!”
어째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한 주무관의 반응이 격해진다. 혹여 이쪽으로 불똥이 튈까 싶어 더더욱 숨죽이던 참이었다.
지이잉-
“…….”
하필 이 타이밍에 누가 연락한 건지 모르겠다. 정면만 보던 한 주무관의 시선이 잠시 이쪽으로 왔다가 다시 앞을 향한다. 찰나일 게 분명했지만, 그 찰나가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건 또 처음이었다.
지이잉- 지잉-
“확인 안 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톤이었지만, 조금 전까지의 상황을 봐서인지 목소리 속에 화가 묻어 있는 기분이다. 나는 황급히 품으로 손을 넣으며 답했다.
“바로 하겠습니다!”
“…어, 그래.”
반 박자 늦게 대답이 돌아왔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핸드폰을 꺼내 도착한 메시지 함을 열자 낯익은 이름이 떠 있다. 곧바로 김세현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형! ((“Q(´▽`。)]
[너무 바빠서 이제야 확인했어요. (*ꈍ꒳ꈍ*) 부재중 전화도 와 있던데, ♥(〃´૩`〃)♥ 급한 일이었어요? ]
[시간 괜찮으면 목소리 들려줘요 ๐·°(৹˃ᗝ˂৹)°·๐]
역시 일이 바빴던 모양이다. 오래간만에 보는 듯한 메시지 이모티콘을 뚫어져라 바라볼 때였다.
“사무실이야?”
이쪽을 바라보는 한 주무관을 보고 밖을 확인하자, 신호대기 정차 중임이 보였다. 나는 안도하며 답했다.
“세현 씨 연락이요.”
“그래?”
“일정 때문에 많이 바빴던 모양이에요. 이제야 연락이 되네요.”
만약 그 전에 연락이 되었다면 아니, 일정이 없었다면 빅뱃 던전은 손쉽게 클리어되었을 것이 자명했다. 물론, 생각지도 못한 서강민의 아이템 덕분에 큰 피해 없이 잘 마무리되긴 했지만 말이다.
“잉여가 무슨 일로 이렇게 일정이 많지.”
“하하.”
사무실에서 들을 때와는 달리 단둘이 있을 때 듣는 잉여란 말은 어딘지 기분이 좀 묘했다.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확인했던 메시지를 재차 바라보았다.
“좀 있으면 도착이니까 눈치 보지 말고 계속 대화 나눠.”
“…그래도 될까요?”
운전하는 사람 옆에서 잠을 자거나 딴짓을 하는 건 좋지 않다 들었기에 조심하던 참이었다.
“당연하지. 그냥 할 일 해. 나도 내 할 일 하는 중이니까.”
정면을 가리키며 한 주무관이 씩 웃곤 이어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그리고 잠시 뒤, 차가 출발하자 그의 입에 다시금 거친 소리가 매달렸다.
설마, 운전하며 거친 말을 쏟아내는 게 할 일이라는 건가?
“…….”
지이잉-
한 주무관이 꺼낸 말은 시간이 좀 흐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그래, 메시지를 주고받아도 된다고 했으니 더는 눈치 보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다시 메시지를 확인했다.
[형?(•ิ_•ิ)?]
[(°o°)?(°o。)?(。o。)?(。o°)?]
[아, 통화하려고 이동 중이에요?。゚+.ღ(ゝ◡ ⚈ღ)??]
역시, 바로 답장을 하지 않으니 그 잠깐 사이에 메시지가 여럿 쌓였다. 나는 작게 심호흡 후 바로 내용을 입력했다.
[일은 잘 해결되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일정이 있어서 통화는 안 될 것 같아요.]
[어제 생성되었던 그 던전 때문에요?]
[겸사겸사요.]
마음 같아선 경찰서에 가고 있단 말을 하고 싶었지만, 같이 가자던 말을 했던 그인지라 쉬이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
그래, 차라리 이렇게 지나가고 나중에 그가 물어보면 다녀왔다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혹여 다녀왔단 말에 김세현이 불퉁한 표정을 지어도 일정이 있을 때 다녀왔다고 하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었다.
[하, 얼른 가고 싶다. (,Ծ_Ծ,)]
[그렇다고 박차고 오진 말고요.]
[(。☉︵ ಠ)!!! 어떻게 알았어요? 막 가려던 참이었는데!]
[영국에서도 한 번 오려고 했었잖아요.]
간단한 일정도 아닌 일정을 박차며 말이다.
“막내야, 도착했다.”
“네, 바로 준비할게요!”
곧 도착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도착할 줄은 몰랐다. 곧바로 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자 뒤따라 한 주무관이 내린다. 나는 빠르게 김세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 한동안 핸드폰 못 봐요. 일정 잘 소화하고 오세요.]
지이잉- 지이잉-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바로 답장이 날아온 듯 연속해서 진동이 울린다. 품에 핸드폰을 넣기 전, 팀장이 했던 말을 떠올리곤 녹음 버튼을 눌렀다. 상의 안 주머니에 그것을 넣으려 할 때였다.
“바깥 주머니에 넣어. 그래야 소리가 좀 더 잘 들어가지.”
“네.”
한 주무관의 지적에 핸드폰을 바깥 주머니로 옮기곤 경찰서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안내 프론트에 앉아 있던 경찰이 자리서 일어나며 묻는다.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덤프트럭 사건 관련 피해자입니다. 김한식 형사님을 만나러 왔습니다만.”
“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바로 연락 넣겠습니다.”
“네.”
김한식 형사를 만나러 왔단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가 바로 내선 전화를 든다. 잠시 뒤, 전화가 연결되었는지 곧바로 김한식 형사가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모습을 보던 참이었다.
“어? 이게 누구야!”
“…….”
무척이나 반갑게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중년의 남성이 한 주무관 쪽으로 다가와 어깨를 두드린다.
“…오래간만입니다, 팀장님.”
“신수가 훤해졌어!”
“감사합니다.”
“하하! 역시 자넨 잘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
거듭 한 주무관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던 남자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잠시였지만 안쪽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 내가 누군지 가늠하는 듯 보였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한 주무관을 바라보았다.
“이쪽은 제 동료입니다. 본의 아니게 사건에 휘말려 잠시 들렀습니다.”
무척이나 정중한 말투였지만, 이상하게도 딱딱함이 느껴졌다. 아니, 뭔가 꺼리는 듯한 기색이 느껴지는 듯도 했다.
“아, 그래? 반갑습니다. 난 이 친구가 경찰 생활을 할 때 파출소장이었어요.”
“안녕하세요, 연하늘이라고 합니다.”
“혹시 도움 필요하면 이 친구에게 말해요. 도와줄 테니까.”
조금 전 김한식 형사에게 연락을 취하던 이를 가리킨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꼭 연락하고. 술 한잔해야지.”
“예, 팀장님.”
재차 한 주무관의 어깨를 토닥인 이가 웃으며 자리를 뜬다. 계단을 올라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였다. 올라가는 이에게 인사를 건네며 1층으로 내려오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연하늘 씨!”
김한식 형사가 1층에 도착하자마자 이름을 부르며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한 번 얼굴을 본 것뿐인데, 이렇게 환대하니 괜히 나까지 그가 반가워질 지경이었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셨어요.”
“던전 때문에 바쁘실 텐데, 이렇게 호출해 죄송합니다. 아, 곁의 분은….”
묘하게 조금 전 상황과 겹쳤다. 한 주무관을 바라보던 형사가 다시 이쪽을 바라본다.
“동행인입니다.”
바로 말하려 했건만, 한 주무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이 답할 줄은 몰랐기 때문일까, 눈을 몇 차례 끔벅이던 김한식 형사가 뒤늦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았다.
“가시죠.”
옆으로 비켜선 이가 계단 쪽으로 손을 내민다. 고개를 까딱이며 형사와 함께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듣자 하니 당시 상황만 한 번 더 진술하면 된다 들었습니다.”
“예. 원래대로라면 처음 진술로 끝났겠습니다만,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해서요. 상황 크로스 체크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바로 부서로 돌아가 뒤처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
“물론입니다!”
“…….”
형사와 함께 이동하는 동안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한 주무관이다. 특별한 것 없는 대화였지만,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진술하러 온 사람이 한 주무관처럼 보였다.
“여깁니다. 먼저 들어가 계시면 얼른 커피라도 내어 오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2층에 자리한 진술실 문을 연 김한식 형사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들어가 있으라 말한다. 커피를 준비한다는데, 거절하고 밖에서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형사가 없다면 진술실 내부를 편히 구경할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차오르는 호기심을 안고 한 주무관과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
지난번엔 형사들이 있는 곳에서 간단히 진술서만 작성한 터라 기분이 색달랐다. 텅 빈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보다가 이내 한쪽 벽에 설치된 검은색의 유리를 발견했다.
“꼭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들어온 거 같아요.”
살면서 이곳에 또 올 일이 있을까 싶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진술실을 살피던 때였다.
“앉아서 구경해도 돼.”
“네.”
먼저 자리를 잡은 한 주무관이 옆자리를 가리킨다. 나는 곧바로 착석해 형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