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13. 또 한 명의 히어로
서울시 소속 계약직 헌터가 A급 난이도의 던전에서 큰 공헌을 세웠다는 소식은 발 빠르게 외부에 알려졌다.
그것도 계약직 헌터가 아이템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으로 말이다.
“설마, 이걸 노린 걸까요?”
“던전이 사람 마음대로 생성되는 건 아니니까. 운이 좋았던 거겠지.”
그래, 운이 좋지 않고서야 이렇게 상황들이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순 없었을 거다. 한 마디로 대운을 탔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홀리볼이라뇨. 진짜 아이템 운도 좋지.”
“서강민도 얼떨떨해하더라고요. 본인이 가진 아이템과 상극 몬스터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하더랍니다.”
“그야 그렇겠지. 빅뱃은 우리나라보단 동남아 쪽에 많이 나타나는 편이니까.”
“그나저나 윗선에서 좋아 죽는 거 아닙니까? 시내 한복판을 달리는 덤프트럭을 막아 시민을 구한 타이틀에 아이템을 지닌 헌터가 국가 소속이라는데, 이보다 더 선전될 순 없잖아요.”
“그렇지.”
“…막 정규직으로 돌린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죠?”
지금껏 침묵하던 김 주무관이 입을 연다.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법 그럴싸했다. 그간 헌터부에 인원이 충원되지 못했던 건 전부 윗선에서 사람을 내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니까.
이렇게 대대적으로 국가 소속 계약직 헌터가 유명세를 타는 중인데, 내가 윗선이라 해도 바로 정규직으로 돌려 사람들의 관심을 끌 듯했다. 이번 일로 인해 헌터부에만 적용되는 특별채용으로 그를 들인다면 바닥을 치고 있던 민심이 아주 조금은 돌아올지도 몰랐으니까.
“그 또한 열어 둬야겠지.”
“와, 저희 그러면 인원 확충, 이 되면 좋겠지만! 서강민이 확충되면 기분이 좀 그럴 거 같네요.”
“왜. 박 주무관도 특별채용으로 들어오지 않았어?”
“그야, 그렇지만요.”
박 주무관이 특별채용으로 들어왔다니.
헌터부 특별채용은 타 부서완 다르게 필기시험이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까다롭기에 특별채용으로 들어온 이들은 거의 전무하다 들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특별채용이 된 사람이 있을 줄이야. 나는 신기함에 뚫어져라 박 주무관을 바라보았다.
“하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 주무관이 윗선의 눈에 들어 채용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뭐야, 갑자기 내 눈을 무시해?”
갑작스럽게 팀장이 버럭 소리쳤다.
“푸핫!”
…내가 알기론 팀장이라고 한들 마음대로 사람을 채용할 힘은 없었다. 의아함에 옆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아, 어떻게 팀장님이 박 주무관 꽂았냐 묻고 싶은 거지?”
마치 내 질문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물어온다. 그런 김 주무관을 보며 고개를 주억였다.
“지난번에 봤지? 김한용 의원. 그분 덕이지.”
“아.”
“헌터부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 지원해주는 분이시거든. 덕분에 이렇게 부서가 꾸려질 수 있었고.”
“그렇군요.”
이제야 이해가 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여기 있는 사람 중 제대로 된 공시 치르고 들어온 사람은 팀장님과 부팀장님, 그리고 막내밖에 없네요?”
“뭐어, 그렇지.”
“…특별채용으로 들어오신 분이 많네요.”
하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특별채용이 되지 않으면 또 누가 될까 싶다. 뿌듯한 눈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런 눈이야?”
“자랑스러워서요.”
“…….”
“공시야 아무나 볼 수 있지만, 아. 물론 부팀장님과 팀장님은 아무나가 아니고요!”
황급히 팀장과 부팀장을 제외하곤 뒷말을 마저 이었다.
“팀장님과 부팀장님이 아무나 특별채용으로 헌터부에 사람을 들이진 않았을 테고. 여기 계신 분들 모두 능력이 되고 또 좋은 사람이라 특별채용되신 거잖아요. 이곳에 온 게 더 자랑스러워지는 거 같아요.”
“…와.”
“저 좀 잉여 마음 알 거 같아요.”
“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녀석이 온 거지?”
말없이 날 보던 세 주무관이 다가오더니 거칠게 머리를 헤집는다. 볼도 꼬집고 말이다. 그대로 얼굴 전체를 내어 줄 수밖에 없었지만,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자, 다들 그만하고 자리로 돌아가. 병아리도 손 너무 타면 죽어.”
“와, 우리 병아리 왜 죽이십니까!”
“팀장님, 잔인하십니다!”
누가 들어도 농담인데, 오늘따라 반응이 격했다. 어느새 내 머리를 끌어안은 김 주무관과 박 주무관이다. 나는 민망함에 그들을 밀어냈다.
“자, 농담은 그만하고. 다들 어제 던전 관련 작업 마무리하도록 하지! 그리고 막내는 경찰에서 연락 왔어?”
팀장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안 왔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어제 던전이 생성되었으니 한동안 잠잠하다는 건가.”
“요즘 던전 생성되는 거 보면 썩 마음이 놓이진 않죠.”
“그건 그래.”
“…그래서 제가! 인터넷을 또 찾아봤다는 거죠!”
때를 놓치지 않고 바로 말을 꺼내는 박 주무관이다. 초롱초롱 눈이 빛나는 걸 보면 예의 그 음모론을 꺼내려는 모양이었다.
“어디 한번 말해 봐.”
다른 날과는 달리 관심이 생겼는지 팀장이 팔짱을 끼며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다. 나는 이미 궁금했던 터라 따로 집중할 필욘 없었다.
“던전 생성의 법칙 있잖습니까.”
쓱 사무실을 둘러본 박 주무관이 상체를 살짝 앞으로 숙이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무척이나 진중한 모습에 덩달아 몸을 박 주무관 쪽으로 기울였다.
“그 법칙은 처음부터 틀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뭐?”
“그런 허무맹랑한 말이 돌아?”
“에이, 허무맹랑하다뇨! 더 들어보시면 제법 그럴싸하다고요!”
“계속해 봐.”
“사실 우리가 아는 법칙은 축제로 치면 준비 기간 정도로 보는 거죠. 준비 기간이 끝나면 뭘까요?”
“전야제?”
“전야제도 그에 속하죠. 바로 축제가 시작되는 겁니다. 한 마디로 던전 생성의 법칙이 통하던 시대가 지나고, 이제 정말 본격적인 던전의 시대가 열렸다, 뭐 이런 겁니다.”
“흠.”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뒷말을 들으니 정말 그럴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던전 생성의 법칙이 깨지는 일이 빈번했으니 말이다. 한 마디로 법칙의 공신력이 많이 깨진 상황이라고 봐야 했다.
“뭐, 그럴싸한 가설이긴 하네.”
“그렇죠?”
팀장의 인정을 받은 박 주무관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점차 박 주무관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모습에 눈을 끔벅였다.
“음모론 인정했는데, 표정이 왜 그래?”
“인정받은 건 좋지만, 상황이 암울하잖습니까.”
“하.”
“…….”
박 주무관의 마음이 참으로 복잡해 보였다. 나는 바로 자리서 일어나 모두가 마실 차를 준비해 팀원들에게 돌렸다.
“우리 막내밖에 없어. 어디 우리 막내 같은 사람 또 없으려나.”
“잉여 오면 말조심해.”
“저도 눈치란 게 있죠. 조심할 건 합니다.”
갑자기 김세현을 거론하는 한 주무관이다. 그에 자리에 앉다 말고 한 주무관을 보았다.
“왜?”
“아뇨, 그냥요.”
어째서 김세현을 거론한 건지 궁금했지만, 매번 묻는 것도 그랬다. 혼자 생각하다 보면 바로바로 답이 나올지도 몰랐고 말이다.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 앉곤 커피를 홀짝였다.
“어제 김세현 끝까지 연락 없었어?”
“네.”
“또 어디 외국 일정 나간 거 아닐까요?”
“김세현이라면 여기저기서 초청하려고 혈안이긴 하지.”
“그래서 말인데요!”
“…….”
조금 전까지 울상을 지을 땐 언제고 박 주무관의 눈동자에 생기가 가득 찬다. 사람이 이렇게 감정의 폭이 클 수 있나 싶다. 놀란 눈으로 그를 볼 때였다.
“그만하자.”
“…네에.”
이번엔 들을 생각이 없는 듯 팀장이 단호하게 말한다. 그에 박 주무관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데, 정말 안쓰럽게 보였다.
“막내야. 박 주무관한테 그만 관심 보여. 관심을 주니까 더 저러잖아.”
“칫, 들켰네요.”
“아.”
김 주무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혀를 찬 박 주무관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다.
…조금 전까지 어딘가 과장되어 보이던 행동이 나 때문이었다니.
빤히 박 주무관을 보자 힐끔 이쪽을 본 그가 웃으며 한쪽 눈을 찡긋거린다. 그에 결국 웃음이 터졌다.
“하하.”
“일 안 하지.”
“바로 하겠습니다!”
웃음소리를 들은 팀장이 단박에 엄한 목소리를 낸다. 이 이상 떠들면 안 될 듯했다. 나는 웃음을 애써 갈무리하며 협조금 관련 금액을 기입해 나갔다.
드르륵- 드르륵-
“무슨 소리야?”
“아, 죄송합니다.”
책상 위, 그것도 가장 소란스러운 소리를 낼 모니터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둔 걸 깜박했다. 사과하며 황급히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확인했다.
“음?”
“누군데 그래?”
“02 번호네요.”
서울에 살지만, 워낙 보이스피싱이 많아 02 번호는 받지 않은 지 제법 되었다. 하필 이 타이밍에 전화가 올 게 뭘까. 전화를 끊으려 액정으로 손을 움직일 때였다.
“경찰선가?”
…경찰서도 서울이니 02 번호로 걸려오는 건 당연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양해를 구한 뒤 자리에서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 연하늘 씨 되십니까?
“그렇습니다만. 어디시죠?”
- 이전에 한 번 뵀었지요? 지난번 덤프트럭 사건 때 오셨던 경찰서입니다.
“네, 그러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답하며 주변을 살피니 모두가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입을 벙긋이며 누구냐 묻는 부팀장이다. 나는 따라 입 모양으로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음을 전달했다.
- 다름이 아니라 지난번 일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재조사가 들어간 상황인지라 한 번 경찰서에 들러 주시겠습니까?
“네, 가능합니다. 언제 가면 될까요?”
- 되도록 빠르면 좋지만, 어제 일로 많이 바쁘실 텐데 좀 정리되고 오셔도 됩니다.
다녀와, 다녀와.
마치 전화 내용을 들은 것처럼 팀장 역시 다녀오라 입을 벙긋인다. 고개를 끄덕이며 통화를 이어갔다.
“가기 전에 이 번호로 연락드리면 될까요?”
- 예. 김한식 형사가 있는지 확인하시면 됩니다. 아, 제 이름이 김한식입니다.
“네, 그럼 최대한 빨리 시간 조율해서 방문하겠습니다.”
이미 허락이 떨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짧게 통화를 마친 뒤 다시 팀장을 바라보았다.
“점심 먹고 저번에 말한 대로 한 주무관이랑 다녀와.”
“네.”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뭐로 하지?”
말하고 싶은 음식이 있었지만, 계속 그걸 입에 담는 것도 그랬다. 나는 침묵하며 다른 이들이 말하길 기다렸다.
“막내 좋아하는 걸로 하죠!”
“저도 딱 오늘 중식이 당깁니다.”
“좋아, 오늘 점심은 중식으로 가지!”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중식으로 결정되었다. 나는 슬그머니 올라가는 입가를 막지 못했다.
“막내랑 한 주무관은 많이 먹고 다녀오고.”
“예, 병아리 산책 잘 시키고 오겠습니다.”
“푸핫! 좋지! 아, 그리고 가면 녹음 꼭 하고.”
“네.”
말하지 않아도 하려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