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13. 또 한 명의 히어로
이제 슬슬 연락이 올 때도 된 거 같은데.
심각한 얼굴로 핸드폰을 보았지만, 좀처럼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조용한 핸드폰을 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뱉었다.
“하아.”
“연락 올 곳이라도 있어?”
소리가 컸는지 한 주무관이 말을 걸어온다.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덤프트럭 상황 관련해서 경찰에서 연락을 주기로 했는데, 여태 오질 않네요.”
서강민에게는 메시지도 가고 했다는데, 왜 나에겐 연락이 오지 않는지 모르겠다. 조만간 내게도 연락이 올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말이다.
“서강민은 연락받았다면서.”
“네.”
“어쩌면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의 진술만 얻으면 된다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럴 수도 있습니까?”
궁금했는지 문서 작업 중이던 김 주무관이 대화에 합류한다.
“물론, 그래선 안 되지만. 간혹 그렇게 일 처리를 할 때가 있긴 하거든.”
“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3년간 경찰직에 있었던 한 주무관이 저리 말하니 조금은 납득되는 듯했다.
“어쩌면 간단하게 통화만 할 수도 있으니까. 경찰서에 갈 때 함께 가는 거 잊지 않았지?”
“네, 당연하죠.”
“그래. 그쪽에서 연락하면 언제가 되었건 간에 바로 알려.”
“그럴게요.”
“근데 오늘도 잉여 안 와?”
“네. 일정이 좀 길어지는 거 같아요.”
그저께 통화를 마지막으로 메시지만 몇 번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그것도 조금은 일방적인, 그런 메시지를 말이다.
“무슨 일 있었어?”
“아뇨.”
“얼굴이 퉁퉁 부었어.”
“…….”
그 잠깐 사이에 감정이 드러난 모양이다. 나는 표정을 갈무리하곤 이쪽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한 번 더 말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뭐, 네가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지.”
“거기, 그만 떠들고 하던 일이나 계속해.”
많이 시끄러웠는지 팀장이 바로 일갈한다. 자세를 바로 하곤 다시 작업에 몰두할 때였다.
Rrrr- Rrrr-
정말 평생 저 전화가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적어도 몇 달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적어도 그땐 이렇게까지 무지막지하게 긴급 전화가 울리진 않았으니 말이다.
벨이 울리기 무섭게 김 주무관이 일어나더니 전화를 받으러 간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교통센터에 접속했다.
“서울시 헌터부입니다. 예. 지역은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받은 그가 신속하면서도 능숙히 대응한다. 그렇게 대화 내용을 들으며 서울시 전체 지도를 살피던 중이었다.
“Q-6 구역에 던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규모와 난이도는?”
“규모 B급, 난이도 또한 동일합니다!”
“뭐라고?”
난이도 A급 던전이 생성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난이도가 높은 던전이 터진 건지 모르겠다. 황급히 자리서 일어난 팀장이 창가로 가더니 문을 열고 그대로 모습을 감춘다.
언제나 지시를 내리고 자리를 떴건만, 아무런 말 없이 가니 조금은 당혹스럽다. 하지만 그 당혹감은 이어진 부팀장의 말에 자취를 감추었다.
“세 사람은 함께 움직이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하늘 씨, 확인해요.”
“네!”
팀장에게 잠시 시선을 빼앗기긴 했지만, 위치를 들었으니 규모를 다시 체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던전의 위치와 규모를 빠르게 전달하자 전달된 내용을 토대로 박 주무관이 재난 문자를 보내더니 자리서 일어났다. 그뿐이랴, 어느새 자리로 돌아온 김 주무관이 협조문 작성을 마쳤는지 거의 동시에 상체를 일으켰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들 조심해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예!”
“다녀올게, 막내야.”
세 사람이 짧게 인사를 남기고는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문 너머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자리서 일어나 중계기 쪽으로 이동했다. 빠르게 중계기를 열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 뒤, CCTV를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
지금 필요한 건 던전 안에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잘 대피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빠르게, 그렇지만 최대한 상세하게 카메라를 둘러보던 중이었다.
“음?”
“뭐 발견되었습니까?”
“좀 더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특별한 발견이 아니었기에 지금 말하는 건 좀 아닌 듯했다. 부팀장에게 답하며 다시 보던 화면에 집중했다.
“…….”
대피하는 사람들 사이로 빠르게 움직이는 인영이 보인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던전 쪽으로 향하던 이가 이윽고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아니, 땅을 박차고 올랐다고 하는 표현이 어울릴 듯했다.
가로수와 건물 벽을 디딤돌 삼아 계속해서 던전으로 향하는 누군가다. 나는 빠르게 CCTV 화면을 옮기며 그 뒤를 쫓았다.
도대체 누구기에 저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거지?
하지만 그 의문은 얼마 가지 못했다.
이번엔 CCTV가 설치된 기둥과 가까운 건물에 발을 디딘 이의 얼굴이 화면에 잡히자 부팀장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부팀장님, 서강민 헌터입니다!”
“서강민이요?”
“던전 가까이에 있었던 모양인 듯합니다. 곧바로 던전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상황을 전달받은 부팀장이 무언가를 만진다. 잠시 뒤, 낯선 목소리가 부팀장의 자리에서 들려온다. 나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 연결되었습니다.
“현재 시청에 바로 출동 가능한 계약직 헌터가 몇 있습니까.”
아, 뭔가 했는데 시청 쪽으로 연락을 취한 모양이다. 나는 다시 CCTV로 시선을 주었다.
- 현재 헌터들 모두 외부에 나간 상태입니다.
“알겠습니다. 현재 Q-6 구역에 던전이 생성되었으니 혹 바로 이동할 수 있는 헌터가 있다면 합류시키도록 해요.”
- 알겠습니다.
계약직 헌터가 이렇게 모두 자리를 비운 건 처음인 듯했다. 통화를 마친 부팀장이 재차 부르자,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서강민 헌터 위치는요?”
“현재 던전과 100m가량 떨어진 상태입니다.”
- 그래? 그럼 먼저 던전에 들어가 내부 좀 살펴보라고 해! 절대 무리하진 말고!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었던 듯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시가 내려지자 곧바로 부팀장이 전화를 드는 모습을 보았다.
“네트워크로 연락하지 않으시고요?”
“아쉽게도 계약직들은 네트워크 사용이 불가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네트워크는 항상 팀원들만 이용했지. 기본적인 사항이건만, 이걸 깜박할 줄은 몰랐다.
“서강민 헌터, 서울시 헌터부입니다. 던전과 서강민 헌터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 먼저 내부를 살펴보란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그래요. 무리는 말고, 확인 후 이 번호로 다시 연락하십시오.”
빠르게 상황을 전달한 부팀장이 이내 전화를 끄곤 작게 한숨을 뱉는다. 나는 잠시 그를 보다 다시 모니터를 보았다.
“…….”
어디 갔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화면에 서강민 헌터의 모습이 잡혔건만,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다. 빠르게 던전 방향의 CCTV를 살피다 누군가가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
서강민 헌터가 어떤 옷차림이었는지 보지 못했다면 누군가 했을 거다. 나는 곧바로 그가 던전 안으로 들어갔음을 알렸다.
“하늘 씨는 던전 주변 상황 계속 체크하도록 해요. 내부는 서강민 헌터가 보면 되니까.”
“네.”
다른 때라면 또 모를까, 던전 근처에 A급 헌터가 있으니 이보다 다행일 순 없었다. 중간중간 던전 규모를 체크하며 대피하는 사람들을 살피다가 네트워크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반색했다.
- 던전 도착! 바로 서강민과 합류하도록 하지!
- 저희는 10분 뒤 도착합니다!
- 좋아, 언제나처럼 후방 맡고!
- 예!
- 협회 측에서도 헌터가 오고 있습니다.
- 등급은?
- A급 셋, B급 다섯입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예비도 추가로 말해 두었습니다.
- 좋아! 그럼 나중에 보지!
세 사람과 대화를 나눈 팀장 쪽의 소리가 잠잠해진다. 아무래도 던전 안 상황에 집중하기 위해 잠시 네트워크를 끈 모양인 듯했다.
“사람들 대피는 잘 되고 있습니까?”
“네. 던전 규모 변경이 없어 현재까진 별 탈 없이 진행 중입니다.”
“특이 사항이 있다면 언제나처럼 알려요.”
“네, 부팀장님.”
그건 당연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CCTV로 상황 체크를 계속 이어 나가던 참이었다.
- 부팀장!
잠잠하던 팀장의 네트워크 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전달된다.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예, 팀장님.”
- 바로 협회에 지원 요청해!
“무슨 일이십니까.”
- 되도록 A급 헌터로 아니, S급 헌터 있으면 S급으로 보내 달라고 해!
도대체 뭐가 있기에 이런 반응인지 모르겠다. 던전 주변을 둘러보다 말고 서울시 전체 지도를 화면 최상단에 띄웠다.
- 빅뱃이야! 개체가 좀 많아!
“헉.”
빅뱃은 한 개체만 있을 땐 쉬이 처리할 수 있었지만, 항상 떼지어 다니기에 처리가 곤란했다. 그뿐이랴, 빗뱃은 살아 있는 생명체의 혈액을 섭취할 시 그 파괴력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 단일 개체의 능력이 A급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은 다 했다.
- 현재 시민들 대피 상황은 어떻지?
“아직 대피 중인 시민이 많습니다!”
- 제길!
거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현장 경력이 높은 팀장이 많다고 한 만큼 그 수는 상당할 터였다. 하지만 현장엔 지금 서강민과 팀장밖에 없었다.
- 서강민과 연락이 닿나?
“바로 연락해 보겠습니다!”
팀장의 물음에 바로 전화기를 든 부팀장이 그에게 전화를 건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을 보고 있어서일까, 불안감이 점차 엄습해 왔다. 연신 마른침을 삼키며 눈으론 부팀장을, 귀론 네트워크의 대화 내용에 집중했다.
- 셋은 도착하는 즉시 사람들 대피하는 거 돕도록 해! 막내는 계속 던전 규모 체크하고! 혹시 CCTV로 뭔가 다른 게 잡히면 바로 알려!
“네, 알겠습니다!”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모니터 화면을 분할해 왼쪽 상단에 전체 지도를 띄운 뒤, 나머지 공간엔 던전 근처의 살아 있는 카메라 화면으로 가득 채웠다. 준비도 다 되었으니 다시 한층 더 경계심을 올려 주변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