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64)화 (64/246)

61화

12. 다가오는

통장의 잔고를 보여줬음에도 좀처럼 기뻐 보이질 않았다. 도리어 고개를 뒤로 꺾고 이마를 짚은 채 기댈 말아야 한다는 말을 반복하기 바빴다.

“…….”

아무래도 내 잔고가 마음에 들지 않은 걸까.

괜한 불길함이 몸을 엄습해 올 때였다. 김세현이 별안간 자세를 바꿔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나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형.”

“네, 세현 씨.”

“왜 잔고가 그 모, 최태하 정보 달라고 했죠?”

잔고 이야기를 하다 말고 말을 돌린다. 앞의 말은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듯했다. 하지만 굳이 그가 뭐라 말하려고 했던 건지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세요.”

“그 전에 확답 받아야겠네요.”

“확답이요?”

“마음 같아선 형만 알고 있으라고 하고 싶은데, 상황을 보아하니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알아야만 할 거 같아서 말이에요.”

“그건 걱정하지 마. 다들 입 하나만큼은 무거우니까.”

“여기서 한 말은 결코 외부로 나가지 않을 겁니다.”

“나도 입 무겁거든?”

“그 정보는 우리 막내와 관련된 일에서만 사용할 예정이야. 이후 기억에서 완전히 지우면 되지?”

김세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팀장부터 시작해 부팀장, 한 주무관 그리고 김 주무관이 입을 모은다. 나는 자연스럽게 박 주무관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

뭐라고 할 법도 한데, 좀처럼 말이 없다. 이상함을 느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대답이 없자 모두의 시선이 박 주무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침묵하던 박 주무관이 이쪽을 바라본다. 무척이나 결연한 얼굴로 말이다.

“내가, 음모론을 좋아하긴 하지만! 지금 이 이야기를 들으면 흔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 막내의 신변과 관련된 일인데, 절대 발설하지 않지!”

“박 주무관님.”

다른 팀원들이 꺼내는 말도 감동이었지만, 박 주무관이 저렇게 말해 주니 이보다 고마울 수가 없었다. 대답을 들을 사람에겐 전부 들었으니 이젠 김세현의 설명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다시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한 말, 머리에 잘 새겨 두고 있어야 할 거야. 밖에서 지금 이야기가 들려오면 여기서 유출된 거라 판단할 거니까.”

“전부 내가 책임지도록 하지.”

“…….”

팀장의 단호한 말에도 불구하고 김세현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혹여 부담감이 차올라 쉬이 말을 꺼내지 못하는 걸까.

기왕이면 최태하의 능력을 전해 듣고 싶었지만, 부담을 주면서까지 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열심히 알아보면 언젠가는 알게 될….

“형.”

그때였다, 김세현이 침묵을 깬 것은.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최태하의 다른 능력은 정신계통이에요. 그런데 등급이 높진 않아요. 격한 감정을 완화해줄 수 있는 정도?”

“조종은 하지 못해?”

내가 궁금했던 게 바로 그 부분이었다. 팀장의 말에 동조하며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가능했다면 S급이 아니라 SS급 헌터로 지정되었겠지. 정신 조종은 A급 이상이나 되어야 가능하니까.”

“흠.”

“그럼 그 가설은 바로 폐깁니까?”

“아니, 최태하만 용의선상에서 배제해야겠지.”

조금은 당연히 최태하를 용의자로 생각했기 때문일까, 다른 사람이 개입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이보다 더 심란할 수가 없다.

“협회 소속 정신계통 헌터 명단 알려 줄까요?”

협회 명단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김세현이 불편해질 수도 있었다. 뚫어져라 날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가 뜻 모를 빛을 발산한다. 나는 손사래 쳤다.

“아니에요. 최태하 정보만으로도 이미 충분해요.”

“…뭐, 형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반 박자 늦게 답하며 김세현이 느리게 눈을 끔벅인다. 그와 함께 예의 그 빛이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였다.

“이젠 서강민 쪽을 의심해야 할까요?”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겠지.”

“협회 측도 놓치면 안 됩니다. 막내를 두고 김세현을 겁박하려 했었으니까요.”

“그리고 이영진 의원 쪽도 생각해 봐야겠고요. 아, 에드워드 왕자 쪽도 좀 의심스럽기는 한데.”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 둬.”

“예!”

최태하가 용의선상에서 삭제됨과 동시에 일을 벌일 만한 이들을 차례대로 거론하기 바쁘다.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점차 몽글몽글해진다. 나는 가슴께를 만지작거리며 감정을 다스리려 애썼다.

“…….”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 안 그래도 일이 많은데 사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되었다. 그들이 하지 말라고 한 것처럼 몸을 사리고, 혼자 다니지 않고, 그리고….

나는 김세현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뭐 할 말 있어요?”

“…아뇨. 그냥 봤어요.”

김세현을 집에 들이는 게 무슨 대수라고 다들 하지 말라고 했는진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팀원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거라면 하지 않으며 걱정거리를 늘려 줄 이윤 없다고 말이다. 나는 김세현을 집에 들이지 않겠다 다시 한번 속으로 생각하며 계속해서 그를 보았다.

***

- 사흘 전 N-12 구역에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덤프트럭이 인도로 돌진해 사람을 칠 뻔했는데요, 당시 현장에는 트럭을 뒤쫓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 지금 제가 나온 곳은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현장입니다. N 구역 중에서도 주거 지역으로 분류되는 N-12 구역의 한 버스 정류장과 거리가 가까운 이 장소는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큰 도로와 작은 도로가 이어지는 이 지점은 당시 퇴근 시간과 가까워질 무렵으로 사람들이 오가던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저 소식을 듣기 위해 뉴스를 켰는데,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올 줄은 몰랐다. 나는 작업하다 말고 TV를 보았다.

- 덤프트럭은 버스 정류장 너머에 보이는 사거리, 그러니까 북동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서부터 이상한 움직임을 보였다고 합니다. 한 시민이 덤프트럭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걸 인지하곤 그 뒤를 쫓았고, 그 덕분에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상황이 종료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덤프트럭을 뒤쫓던 이는 시청 소속의 한 헌터였습니다.

“혹시 이걸 노린 걸까요?”

“그것 또한 염두에 둬야겠지.”

“확실히 TV를 타면 윗선에서 좋게 볼 수밖에 없겠네요.”

“어쩌면 정규직을 노리고 일을 벌인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너무 넘겨짚진 마. 생각이 한쪽으로 쏠릴 수 있어.”

팀장의 말마따나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하는 건 옳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느꼈던 이상함에 대해선 그 어떤 것도 밝혀진 적 없었으니까.

대화를 나누던 와중 자연스럽게 아나운서에게 마이크가 넘어간다. 혹 다른 내용이 나오진 않을까 싶어 귀를 기울였다.

- 한 헌터의 기지로 인해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되었는데요, 하지만 이 여파는 오래 지속될 듯합니다. 구치소로 이감되었던 덤프트럭 운전사가 어제 새벽, 살해된 채 발견되어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경찰의 발표 내용을 보시겠습니다.

“이거 경찰도 골머리깨나 썩겠네요.”

“아무래도 그러겠지. 연하늘.”

“네, 팀장님.”

오래간만에 팀장님이 이름을 불렀다. 즉각 답하며 그를 보았다.

“아마 경찰 쪽에서 연락이 올 거야. 오면 바로 말해. 함께 가지.”

팀장이 함께 간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하단 말을 전하려 할 때였다.

“팀장님이 가시면 이목이 더 쏠릴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제가 가도록 하죠.”

“한 주무관이? 나야 좋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주무관이 동행하겠다고 하다니. 하지만 놀랄 일은 하나 더 있었다.

“오, 전직 경찰의 힘을 보여 주시는 겁니까?”

“경, 찰이요?”

“뭐, 썩 좋지 않은 매듭이 지어지긴 했지만. 잠깐 몸을 담은 적 있긴 해.”

“에이, 3년이면 잠깐도 아니죠!”

잠깐 몸을 담았다기에 그런가 싶었는데, 3년이라니. 그것도 헌터부로 오기 전까지 말이다. 나는 입을 쩍 벌린 채 한 주무관을 바라보았다.

“병아리가 그런 시선 보내면 좀 부담스러운데.”

한 주무관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민망해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어쩐지 색다르게 느껴지는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막내한테 연락이 오면 한 주무관이 대동하는 것으로 하고. 물론, 던전이 생성될 시엔 던전이 우선이야.”

“당연하죠!”

“혹여 던전이 생성되었을 때 경찰 측에서 연락이 오면 막내는 모든 대화 내용 녹음해서 와.”

“네!”

그 정돈 누워서 떡 먹기였다. 이미 통화 내용은 자동 녹음이 되고 있으니 경찰서에 갔을 때만 잘 녹음하면 될 것이었다.

“…소외감 느끼네.”

그때였다, 옆자리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아차 싶어 다급히 옆을 바라보자, 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김세현의 모습이 보였다.

“나도 같이 갈 수 있는데.”

“음.”

같이 갈 의향을 보이는 건 좋았지만, 그렇다고 김세현과 경찰서로 가는 건 좀 그랬다.

“그 반응 뭔데요. 지금 다 잡은 물고기라고 거리 두는 거예요?”

갑자기 물고기 이야기는 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거리를 두는 건 또 뭐고 말이다.

“거리 둔 적 없어요.”

“근데 왜 같이 간다고 말 안 해요?”

“아서라. 네가 가면 일 더 커져.”

“나 완전 보호자로 제격이에요, 형.”

“야!”

“불편한 상황도 없을 거고. 심지어 한 번만 다녀오면 앞으로 형 찾을 일도 없을 텐데.”

오늘도 역시나 팀장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열심히 스스로를 어필하는데, 그 모습이 묘하게 귀여웠다. 그래, 뚱한 표정과 달리 적극적인 입놀림을 보이는 이중적인 모습이 귀엽지 않을 순 없었다.

마음 같아선 동행하고 싶지만, 김세현과 경찰서에 간다면 팀장의 말마따나 일이 커질 게 분명했다. 그뿐이랴, 함께 경찰서에 갔다가 괜히 입방아에라도 오르게 된다면 그간 김세현이 쌓아온 명성에 흠집이 갈 수도 있었다.

“한 주무관님과 갈게요.”

“…….”

목소리에 힘이 많이 실렸던 걸까, 몇 번 눈을 끔벅이던 이가 이내 입을 삐죽인다. 얼굴이 잘나서일까, 저 모습 또한 멋있고 또 귀엽다.

“나도 갈게요.”

“세현 씨랑 가면 혹여 명성에 누가 갈까 그래요.”

“난 형과 관계된 거라면 뭐든 좋아요.”

“…….”

뭐든 좋다니.

심장이 몸에서 분리되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아마 내 심장은 바닥에서 갓 잡은 생선마냥 펄떡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같이 가요, 네?”

얼굴에 가득했던 불퉁함이 사라지고 울망울망한 눈동자가 자리한다. 저 얼굴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지만, 아닌 건 아니었다. 애써 마음을 다독이곤 더욱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칫.”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번엔 잔뜩 토라진 채 날 바라본다. 토라진 모습이 신경이 쓰였지만, 이제 와서 같이 가자고 말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확인할 뉴스도 봤으니 이제 다들 일하자고. 할 일이 태산이야!”

김세현과 얼마나 시선을 교환했을까, 팀장의 지시가 들려왔다. 나는 곧바로 켜둔 TV를 끄며 답했다.

“네!”

“예!”

“알겠습니다!”

“형.”

“…….”

여전히 옆에서는 김세현이 표정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조금, 아주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연하늘.”

“네!”

딴짓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팀장이 단호하게 이름을 부른다. 그에 김세현에게서 눈을 떼곤 자세를 바로 했다.

이번엔 또 김세현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일에 집중하는 게 옳았다. 서강민의 연락이 왔던 어제부터 쭈욱 뉴스를 살피느라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어떤 내용이 전파를 타는지 확인했으니 이젠 일에 집중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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