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12. 다가오는
“…….”
“…….”
너무도 삽시간에 벌어진 터라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히 보였다.
가까이서 본 김세현의 눈동자는 푸른색과 은색이 절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사람의 눈동자가 한 가지 색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줄은 몰랐다. 검은 동공을 중심으로 은색과 푸른빛이 가득한, 마치 눈의 나라의 얼음성이 이런 색이 아닐까 싶다. 한 번 더 눈꺼풀 사이로 사라지고 잠시 뒤, 다시 모습을 드러낸 눈에 멈칫했다.
“…….”
조금 전과는 다른 느낌이 가득한 눈이다. 마치 곤란함을 감추려는 듯, 잘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괜히 마음이 쓰였다. 나는 거리를 넓히며 그의 얼굴 전체를 살피려 했다.
“후우.”
“아.”
하지만 그 움직임은 아주 잠깐 가능했을 뿐이었다. 뒤늦게 얼굴 위로 쏟아진 뜨거운 숨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평소 김세현이 숨이 쏟아내던 건 거친 숨을 몰아쉴 때를 제외하곤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아주 가끔은 선풍기 미풍을 틀어 놓은 게 아닐까 싶을 만큼의 바람이 쏟아 낸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이렇게 간지러운 바람은 처음이었다.
숨이 닿을 때마다 피부 온도가 올라가는 것만 같다. 그뿐이랴, 그 뜨거움은 서서히 몸 전체로 옮아가다 못해 간지럼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 마치 가벼운 화상을 입고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처럼 말이다.
“형.”
“네.”
“나 지금 떠오른 게 있는데.”
“뭔데요?”
“형이랑 한번 섞어 보고 싶어요.”
“…….”
“완전 기분 좋을 텐데.”
“…아뇨. 안 섞을래요.”
기분이 좋아질 거란 말을 들으니 괜히 기대되었지만, 이 이상 기분이 좋아질 순 없을 듯했다. 고개를 저으며 몸을 뒤로 물리자, 김세현의 얼굴 전체가 보였다.
“…….”
눈동자는 참 예뻤는데, 표정은 아니었다.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이를 보다가 작게 한숨을 뱉었다.
“하여간 한 번도 여질 안 주지!”
여기서 갑자기 왜 여지를 찾는지 모르겠다. 여지를 줄 만한 상황은 없었는데 말이다.
내 심장은 강철로 되어 있을 거라는 둥, 철벽도 이런 철벽이 없다는 둥, 도통 이해하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기 바쁘다.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는 김세현을 보다가 그 모습 속에 담긴 묘한 이질감에 입을 열었다.
“세현 씨, 아까 한 질문 답변하기 힘드시면 안 해도 돼요.”
그래, 평소에도 쉬이 볼 수 있던 반응이었지만, 오늘은 유독 과장이 심해 보였다. 아니, 평소와 비슷한 듯했지만 다르다고 해야 맞을 듯했다.
“…….”
투덜대던 김세현이 순간 입을 닫는다. 그리곤 나를 바라본다. 놀람과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난 모습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최태하 헌터의 능력이 두 가지라 들어서요. 어떤 능력인지 궁금해서 여쭤보려 했던 거였어요.”
“…그거밖에 없어요?”
그거 말곤 최태하와 관련된 궁금함은 없었다.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빨리 말해야죠!”
난데없이 성을 낸다. 그것도 안도하며 말이다. 어이가 없던 것도 잠시, 이어진 말에 어째서 김세현이 이상해 보였는지 알 수 있었다.
“난 또! 뭔가 했네! 형이 나 말고 최태하한테 관심 생긴 줄 알았잖아요!”
“허, 참.”
“어이가 없네, 정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기에 저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헛웃음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능력만 궁금했어요.”
“근데 형.”
“네.”
“최태하 능력은 갑자기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음.”
이미 교통사고가 날뻔했던 상황을 김세현도 알고 있기에 이 정돈 말해도 될 것이었다. 그래, 물어보면 바로 답해 줄 거 같았지만 적어도 그의 의문도 풀어 주는 게 맞았다. 나는 팀원들과 나눈 이야기를 그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누가 정신계 공격을 한 것 같다, 이거군요.”
이야기를 들은 김세현이 턱을 만지작거린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 보이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누가 봐도 상황이 이상해서 말이야. 서강민도 의심해 봤는데, 그놈은 물리적 타격만 가능하다 수치가 잡힌 터라 일단 배제했어.”
조용히 대화를 경청하던 팀장이 말을 얹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팀장의 말에 동조하며 생각에 잠긴 그를 바라보았다.
“형.”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그가 한참 만에 입을 열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보는 완전 고급정보인데, 내가 이거 알려 주면 형은 뭘 줄 거예요?”
“…….”
“난 형에게 아주 소중한 거 받고 싶은데.”
“야! 그냥 안 듣고 만다! 우리끼리 찾고 말지!”
“막내야, 들을 필요도 없어!”
김세현의 말에 팀원들이 대번에 거절한다. 하지만 김세현은 그저 나만 바라볼 뿐이었다.
“내게 소중한 거요?”
“네. 완전히 소중한 거요.”
소중하단 말과 함께 시선을 내린 김세현이 몸 곳곳을 훑는다. 발끝까지 살핀 그가 씩 웃으며 다시 시선을 마주하는데, 그 모습에 알 수 없는 소름이 솟았다.
“바로 답하기 힘드니 조금 시간 줄게요. 5분?”
“이 양아치가!”
팀원들의 원성이 들려왔지만, 지금은 온전히 그 공이 나에게 돌아온 상황이었다.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는 김세현이다. 묘하게 반질거리는 눈동자를 보며 조금씩 몸을 뒤로 물리며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게 중요한 건 부모님과의 추억이 깃든 집과 그것밖에 없었다. 그중에서 무엇이 중요하냐 물으면 역시 전자였다.
“…….”
김세현이 소중한 걸 내놓아야만 말해 주겠다는 걸 보면 그 또한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는 정보임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려 주는 것일 터였다.
한참을 고민하다 슬쩍 김세현에게 물었다.
“조금만 DC해 주시면 안 돼요?”
“…뭘요?”
반 박자 늦게 반응하는 김세현의 표정이 이상하다. 마치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삽시간에 부정적으로 변하는 표정에 황급히 뒷말을 이었다.
“소중한 게 두 가지가 있는데, 조금 덜 소중한 건 가능할 거 같아서요.”
“그게 뭔데요.”
팔짱까지 낀 김세현의 상체가 어느새 의자 등받이와 가까워진 상태였다. 누가 봐도 부정적인 모습이다. 나는 크게 심호흡하며 그에게 말했다.
“…잠시만요. 저도 크게 마음을 먹어야 해서요.”
“마음을, 먹어?”
“네.”
집과 비교하자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열심히 모은 만큼 마음을 굳게 다져야만 했다.
“후우.”
“…….”
“하아.”
“뭐어.”
“후우.”
“좋아요. 그것도 나쁘진 않지.”
입을 모아 한숨을 뱉는 모습을 보던 김세현의 눈동자가 어느새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두 번째도 나쁘지 않겠단 말에 몇 번 더 크게 심호흡 후 손을 움직였다. 핸드폰을 손에 쥔 채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형, 은근히 적극적이네요.”
마른침을 삼킨 김세현의 양 볼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다. 얼마나 기대했으면 저렇게 얼굴까지 빨개질 수 있나 싶다. 나는 침통한 마음을 감추며 답했다.
“정보는 얻어야 하니까요.”
“좋아요. 내가 선심 썼다! 확실하게 DC해 줄게요!”
“정말요?”
“그러니까 얼른 해요.”
다시 상체를 쭉 내밀어 가까이 다가온 김세현이 은근하게 웃더니 눈을 감는다. 갑자기 눈은 왜 감나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김세현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정돈 알 수 있었다. 작고 소중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보는 것보단 한 번에 보는 편이 좋으리라.
나는 곧바로 인터넷뱅킹에 접속해 전 재산을 한 화면에 띄운 뒤 김세현 앞으로 내밀었다.
“형, 멀었어요?”
목소리가 평소보다 몇 단계는 붕붕 뜬 것 같다. 그뿐이랴, 목소리 끝이 떨리는 게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는 마른침을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이제 눈 뜨면 돼요.”
“아직 안 했잖아요.”
“준비 끝났어요.”
“큭!”
“푸흡!”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웃음 참는 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치 않았다. 이 작고 소중한 잔고를 이제 그에게 건네야만 했으니까.
“세현 씨, 얼른요.”
“하. 진짜 형은 너무 적극적이어도 좋…. 이게 뭐예요?”
슬며시 눈을 뜨던 김세현의 표정이 쩍 굳는다. 이어 핸드폰과 날 번갈아 보며 묻는다.
열심히 모았는데, 이게 뭐냔 말을 들으니 왜 이리 씁쓸한지 모르겠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 관리를 하며 말했다.
“열심히 모았어요.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집인데, 그건 부모님과의 추억이 있어서요. …이걸로 봐주셔서 감, 사해요.”
“아니! 왜 울려 그래요!”
“…안 울어요.”
작고 소중했지만, 열심히 모으긴 했지만! 또 열심히 모으면 될 일이었다. 그래, 정규직으로 일하니 지금의 잔고 만큼은 빠르게 모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하.”
나와 핸드폰을 번갈아 보던 김세현이 이마를 짚으며 그대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하늘을 보듯 고개를 젖힌 그가 연신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이 모습은 얼마 전에도 봤던 적 있었다.
“하. 내가, 내가. 기댈 말아야지.”
“푸핫!”
“진짜 미치겠다! 나 미쳐요!”
김세현이 말을 꺼내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진다. 그것도 무척이나 격하게 말이다. 주변을 살피자 모두가 통곡 중이었다. 핸드폰을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세현 씨.”
“…….”
“전 진짜 괜찮으니까, 정보 주세요.”
그래, 지금은 최태하에 관한 정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통장 잔고가 단번에 0으로 변하겠지만 말이다. 그래, 0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