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60)화 (60/246)

57화

11. 시작되는

“이거 무슨 상천데요!”

“…세현 씨?”

역시 김세현이 맞았다.

머리 위로 거친 숨이 쏟아진다. 고개를 들자, 이를 악문 그가 보였다. 손바닥을 유심히 살피는 모습을 보다 재차 쏟아진 거친 소리에 흠칫했다.

“어디서 다쳤어요!”

“…길, 에서요?”

“길? 길, 어디?”

어서 답하라는 듯 바라보는 시선에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그, 큰길에서 집으로 가는 골목길 접어드는 쪽에서요.”

“왜 거기 있는데! 평소 출퇴근 같이하는 사람 있잖아!”

“…….”

잔뜩 성이 난 목소리로 말을 쏟아 내는 김세현이다. 그를 보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흉 지는 거 아냐?”

혹 착각인가 싶었는데, 말하는 걸 다시 들으니 착각이 아니었다. 나는 자세를 바꿀까 하다 그게 우선이 아님에 바로 입을 열었다.

“근데 세현 씨.”

“뭐요!”

이번에도 말이 짧으면 어쩌나 했다. 태도는 무척 불량했지만 말이다. 힐끔 옆을 보자 에드워드 왕자가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김세현을 보았다.

화가 가득한 얼굴을 보니 기가 눌렸지만, 그렇다고 할 말을 하지 않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나는 짧게 심호흡하곤 입을 열었다.

“…왜 말이 짧아요?”

“크헙!”

“큽!”

“크흑!”

이젠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모두가 허리 숙여 웃고 있음을 말이다.

“…형?”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날이 서 있던 김세현의 얼굴이 서서히 허물어진다. 이윽고 평소의 얼굴로 날 내려다보는 모습에 붙잡힌 손을 떼어 냈다.

그리고 바로 의자를 돌려 김세현을 보자 의자의 움직임 때문인지 그가 조금 물러섰다.

“내가 네 살이나 많은데.”

“아.”

“좀 그래요.”

“…화났어요?”

화가 난 건 아니었지만,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답 대신 침묵을 택하곤 이리저리 부산스레 움직이는 김세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니, 형이 다쳤다고 하니까. …마음이 급했어요.”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말이 짧아졌다는 건 핑계에 불과했다. 나는 계속해서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어제 퇴근 시간이 넘었는데도 집에 도착을 안 해서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집에 가는 길이라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더니 이렇게 다쳤잖아요! 내가 놀라지, 안 놀라겠어요?”

이미 메시지로 한 번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렇게 그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 그것도 마치 내 탓인 양 말이다. 입을 꾹 다문 채 그렇게 김세현을 볼 때였다.

“…잘못했어요.”

끝까지 다른 말만 하나 싶었는데, 드디어 사과한다. 눈꼬리가 축 늘어진 김세현을 보며 슬그머니 입가를 끌어 올렸다.

“허.”

“크흡!”

“저, 진짜 죽을 거 같아요!”

한 번 더 팀원들 자리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아예 책상이 되어 버린 듯한 김 주무관을 비롯해 재차 바닥을 바라볼 뿐인 이들이 보였다. 그것도 어깨를 들썩이며 말이다.

“…화 푼 거 맞죠?”

조심스럽게 김세현이 묻는다. 나는 김세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손 치료는 했어요? 완전 크게 다쳤던데!”

“크게 다치진 않았어요. 소독했으니 며칠 있으면 나을 거예요.”

“며칠씩이나요?”

당연히 생채기가 나면 며칠 가는데, 왜 이런 반응인지 모르겠다. 충격으로 가득 찬 그를 볼 때였다.

“왜 이렇게 약해요?”

“…….”

“몇 분이면 낫는 게 아니고? 요?”

몇 분이란 말에 침묵하던 것도 잠시였다. 그가 S급 헌터임을 상기하곤 피식 웃었다.

“대개는 이래요.”

“…….”

“차 사고 날 뻔한 거 생각하면 이건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요.”

그래, 큰 사고가 날 뻔 했던 걸 생각해 보면 운이 좋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세현을 보았다.

“차 사고 났습니까, 연하늘?”

“어디서요? 누가 운전했는데요? 가만히 뒀어요?”

김세현이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건 앞선 행동으로 예상할 수 있었지만, 에드워드 왕자까지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두 쌍의 눈동자가 이쪽을 향한다. 어서 답하라는 듯한 표정에 차례대로 답했다.

“그냥 좀 사고가 있었어요.”

“손 말고 다친 곳은 없어요?”

“ 놀라서 근육이 좀 뭉치긴 했는데, 이것도 며칠이면 나을 거예요.”

“…….”

근육이 뭉쳤단 말에 이리저리 몸을 둘러본 김세현이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속상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큰 충격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하는 듯한 그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다가 뒤늦게 떠오른 생각에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세현 씨, 다친 건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사진 보냈습니다.”

“…아.”

갑자기 사진을 찍기에 뭘 하나 했는데, 김세현에게 그 사진을 보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에드워드 왕자를 보자, 별안간 그가 김세현을 부르며 손짓했다. 무슨 대화를 나눌까 싶어 조용히 둘을 지켜보았다.

“김세현.”

“뭐.”

“연하늘이 영국으로 가기로 했는데, 김세현 너도 가나?”

“형, 진짜 가기로 했어요?”

“어.”

난 간다고 한 적 없었다. 김세현이 그 어느 때보다 놀란 눈을 한 채 이쪽을 바라본다. 그에 에드워드 왕자가 거짓말을 한 거라 답하려는데 한 박자 빠르게 끼어든 이가 있었다.

“가기로 했지.”

가겠다고 하지도 않았건만, 왜 저렇게 거짓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한마디 하려는데, 왕자가 날 보며 작게 고개를 젓는다.

“…하, 영국은 싫은데.”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나와 왕자를 번갈아 보던 김세현이 이윽고 무언갈 다짐한 듯 표정이 단단해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불안했다. 다급히 하지 못한 말을 뱉었다.

“하늘 형이 가면 가야지!”

“에드워드 왕자가 거짓말한 거예요!”

“…뭐라고요?”

말이 겹치긴 했지만, 제대로 들은 듯했다.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날 보던 김세현이 이윽고 에드워드 왕자를 노려본다. 나 또한 그를 바라보았다.

말없이 웃던 에드워드 왕자가 편히 앉아 있던 자세를 바꾼다. 그뿐이랴, 표정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나는 순간 찾아든 긴장감에 주먹을 말아 쥐었다.

“역시 내가 옳아요.”

“뭐가 옳아!”

그래, 거짓말을 해서 김세현을 데리고 가려 해 놓곤 뭐가 옳다는 건지 모르겠다.

김세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에드워드 왕자가 입을 연다.

“연하늘이 간다고 하면 정말 김세현은 갑니다.”

“…아.”

어째서 거짓말을 한 건지 저 말 하나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에드워드 왕자도 왕자였지만, 어째서 김세현이 내가 간다는 말에 자기도 가겠다고 한 건지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돌려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너, 얼른 너희 나라로 돌아가.”

“연하늘이 가겠다고 하면 갈 예정이야.”

“…하, 거짓말을 했다?”

그의 비뚜름한 미소가 입가에 걸리는 것도 잠시였다. 김세현이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연락을 취한다. 이윽고 통화 연결이 된 듯, 입을 뗀다. 나는 쫑긋 귀 기울였다.

“알렉스, 왜 한국에 너희 왕자가 와 있어! 와서 치, 데리고 가!”

김세현이 말을 하다 말고 잠시 날 보더니 조심스럽게 뒷말을 잇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옆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에드워드 왕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이던 왕자였건만, 지금은 아니었다. 몹시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리며 김세현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자니 저 통화 상대가 왕자에게 영향력이 높은 이인 듯 보였다.

“전용기 뒀다 뭐해! 지금부터 딱 12시간이야! 그 안에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앞으로 영국 협조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고 있겠어!”

다소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은 김세현이 이내 원탁으로 가더니 의자를 끌고 온다. 에드워드 왕자와 내 사이에 그것을 내려놓은 이가 자리에 앉는다. 몸을 틀어 이쪽을 바라보는 자세로 말이다. 나는 김세현의 부름에 답했다.

“하늘 형.”

“네, 세현 씨.”

“나 커피 두 잔만 부탁해요.”

“…그럴게요.”

“막내야, 나도.”

“나도 한 잔 부탁해!”

“저도 부탁합니다.”

“여기도.”

마치 김세현이 커피를 부탁할 때를 기다린 사람들처럼 너도나도 손을 든다. 피식 웃으며 자리서 일어났다.

“바로 준비할게요.”

어제 오전에도 커피를 마시긴 했지만, 에드워드 왕자가 있음에도 커피를 타는 건 처음인 듯했다. 정수기로 가다 말고 아무런 말이 없는 왕자를 불렀다.

“왕자님.”

“…듣고 있어요.”

“왕자님도 한잔하시겠어요?”

과연 믹스커피를 마실까 싶었지만, 다른 이들 몫을 준비하는 상황서 묻지 않는 건 좀 이상했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는지 이쪽을 바라보는 에드워드 왕자의 시선이 묘하다. 나는 조용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뭐, 한번 마셔 보죠.”

당연히 거절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정말 마시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한국에서 마시는 마지막 커피일 테니까 아껴서 마셔.”

“마지막일진 아무도 모르지.”

“그렇게 계속 모른 채 영국에서 살아.”

“…….”

등 뒤에서 연신 티격태격하는 김세현과 에드워드 왕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세현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왕자의 눈치를 살피기 급급했는데, 김세현이 합류했단 사실 하나만으로 이렇게 편해질 줄은 몰랐다.

김세현이 주문한 건 두 잔이었지만, 한 잔 더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먼저 만든 커피를 팀원들에게 전달 후 쟁반의 커피를 왕자에게 하나 건넸다.

“맛있게 드세요.”

“그래요.”

내민 컵을 건네받은 왕자의 표정이 묘했다. 입에 맞을진 모르겠지만, 본인이 달라고 했으니 잠깐이라도 입을 댈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자리로 돌아와 쟁반을 책상에 내려놓은 뒤 김세현 앞에 커피 석 잔을 놓았다.

“…나 생각해서 한 잔 더 탄 거예요?”

“네.”

앞에 놓인 커피를 이리저리 살피던 그가 종이컵을 들어 향을 맡더니 단번에 잔을 비운다. 다음 잔 역시 향을 맡고 단숨에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남은 한 잔도 단번에 마실 듯했다.

“후우.”

“…….”

하지만 그건 그저 내 예상에 불과했다.

후후 커피를 불며 천천히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형도 얼른 마셔요.”

이번에도 역시나 후후 커피를 불던 김세현이 어서 커피를 마시라 말한다. 나는 쟁반 위의 커피를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후후 불어서 마셔요. 뜨거우니까.”

“…그럴게요.”

말하지 않아도 그러려 했다. 후후 불며 뜨거움을 날려 보낸 뒤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커피를 마시며 오래간만의 평안을 만끽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