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11. 시작되는
부팀장과 출근 후 어제 있었던 일을 전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진 분위기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어제 큰일 날 뻔한 거 알고는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그렇게 웃음이 나와?”
“그게, 너무 멀쩡해서 그런 거 같아요.”
사고 직후부터 지금껏 큰 사고가 날 뻔했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손바닥에 난 생채기와 근육통이 없었다면 어쩌면 꿈으로 치부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하자 안쓰러움이 가득한 시선을 보내오는 팀원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계속해서 웃어 보였다.
“정말 괜찮습니다. 아직까지는요.”
언젠간 실감이 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뒷머리를 긁적이던 때였다.
“이거 상황이 심각한 거 아닙니까?”
“김 주무관의 말이 맞습니다! 이건 분명 조작된 겁니다!”
“이번엔 정말 우리 헌터부를 향해 도전장을 내민 겁니다, 팀장님!”
어째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말이다. 왜 이리 기시감이 드나 싶어 기억을 되짚을 때였다. 나는 순간 뇌리를 스친 꽃바구니와 시청 홈페이지 다운 건을 기억해 냈다.
“…….”
그때야 그런 의심을 할 만도 했지만, 이번 일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팀원들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다가 손을 들었다.
“저기.”
“응, 막내야.”
“어느 부분이 도전이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
멍하니 이쪽을 보던 팀원들이 작은 탄성을 뱉는다. 손을 든 채 가만히 팀원들을 보다가 헛기침 소리가 나자 그쪽을 바라보았다.
“막내는 아직 모르겠구나.”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김 주무관의 말을 들으니 더 궁금해졌다. 나는 빤히 그를 응시했다.
“서강민, 그놈 말이야.”
“그놈이요?”
생각지도 못한 호칭이다. 나는 절로 눈이 커졌다.
“등급이 잉여보다 낮아서 그렇지, 이거 밝히기론 잉여 못지않거든.”
“…….”
이거라 말하며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다. 검지와 엄지를 둥글게 말아 원 모양을 만든 그를 보곤 자연스럽게 김세현의 다른 별명을 떠올렸다.
“잉여는 보면 아, 얘가 그냥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거구나. 이런 게 보이는데, 서강민은 그런 게 없어. 오로지 돈만 보고 움직이는 것으로 유명하거든. 그런 놈이 선뜻 사람을 도왔다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누군가 서강민에게 돈을 찔러 넣었고, 움직인 게 아닐까 하는 의심 중이야.”
“그, 렇군요.”
사람이 참 좋아 보였는데 이런 비하인드가 있을 줄은 몰랐다.
마지막까지 바래다주겠다던 서강민이 떠오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
만약 날 구해 준 것이 김세현이었다면 팀원들이 하는 말을 절대로 믿지 않았을 거다. 그래, 김세현은 바라는 것 없이 던전을 클리어했던 적도 있기에 믿지 않았겠지만, 서강민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서강민이 언제 협회에서 나라 소속으로 옮겼죠?”
“반년 전입니다.”
“진짜 서강민처럼 왔다 갔다 잘하는 헌터도 없을 겁니다.”
“어느 정도 등급이 되니 그게 가능한 거지.”
“하긴, A급 헌터니 협회도 그렇고 나라에서도 그렇고 잘 받아주는 거겠죠.”
김세현보다 등급이 낮다고 하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A급 헌터일 줄은 몰랐다.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놀라던 것도 잠시였다. 출입문이 열리며 안으로 들어선 익숙한 인물을 보곤 몸을 바로 했다.
“오늘은 모두 있군요.”
평소완 달리 한껏 멋을 낸 에드워드 왕자가 웃으며 인사를 건네온다. 그의 뒤를 따르는 수행원들이 들어와 서는 모습을 보다 자연스럽게 옆자리로 와 앉는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인사 안 합니까?”
의자를 뒤로 쭉 빼 앉은 왕자가 다리를 꼬며 내게 묻는다. 마치 내가 시선을 주길 기다린 것처럼 타이밍이 참 기가 막힌 물음이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왕자님.”
“좋지 못합니다.”
“…네?”
인사하란 말에 인사했건만, 이런 말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당황해 빤히 그를 보았다.
“연하늘이 내 제안을 받아야만 좋은 날이 될 것 같군요.”
“하, 하.”
이젠 아예 대놓고 말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뚫어져라 날 바라보는 시선에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눈을 돌리곤 괜히 부산스럽게 일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 오늘 작업할 리스트를 선정하지 못한 터라 무슨 일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멍하니 있다간 에드워드 왕자가 다시 말을 걸 게 분명했다. 괜히 한 번 클릭해도 될 것을 서너 번 클릭하고, 또 타자를 입력하지도 않으면서 타이핑하는 척하며 머릿속으로 할 일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어제 김세현 만났습니다.”
갑자기 김세현을 거론할 줄은 몰랐다. 나는 반문하며 왕자를 바라보았다.
“세현 씨를요?”
“연하늘이 말한 것처럼 직접 스카우트 제안을 했는데, 가차 없이 거절하더군요.”
“그, 렇군요.”
역시, 김세현은 돈보단 나라가 우선이었다.
“그런데 어제 김세현이 참 이상했습니다.”
“네?”
“대화 중에 뭔갈 계속 보던데.”
손에 핸드폰을 쥔 것처럼 모은 왕자가 그것을 보는 척 반복한다. 아, 왕자와 함께 있을 때 메시지를 본 모양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귀빈과 함께 있을 때 메시지를 보내다니.
나는 괜스레 부끄러워져 입을 우물거렸다.
“아마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게 아닐까요?”
“CCTV 같던데.”
“…CCTV요?”
당연히 메시지일 줄 알았다. 난데없는 소리에 눈을 끔벅였다.
“모르는 일인가 보군요.”
“네.”
그가 뭔갈 봤다니 무얼 본 건지 궁금했지만, 그걸 물어볼 상대는 왕자가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지만, 고민하는 건 나중에 해도 되었다. 나는 모니터를 가리켰다.
“저, 이제 오전 일을 봐야 해서요. 집중해도 될까요?”
“…그러도록 해요.”
“혹 질문할 게 있으면 언제든 말 걸어 주세요. 음, 사적인 것만 빼고요.”
그래, 사적인 질문은 처음부터 받지 않겠다 말하는 편이 여러모로 편할 듯했다. 단호하게 말하자 잠시 눈을 크게 뜬 왕자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따라 고개를 끄덕인 뒤 모니터로 시선을 주었다.
“…….”
언제 질문이 들어올진 모르겠지만, 일단 사적인 질문은 받지 않겠다 했으니 그로 인해 일을 방해받진 않을 것이었다. 금요일인 만큼 열심히 이번 주 일과를 마무리하자 마음먹곤 서류를 하나씩 마무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반쯤 서류 작업을 마쳤을 때였다. 갑자기 찾아온 찌뿌드드한 느낌에 크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했다.
“연하늘은 입이 조그맣군요.”
“헙!”
아차.
일에 몰두하다 보니 곁에 누가 있었는지도 깜박했다. 하품하던 자세 그대로 옆을 보자 왕자뿐만이 아닌, 왕자 보좌관들 역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천천히 손을 내리며 눈치를 살폈다.
“…….”
이럴 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민망함에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뚫어져라 나를 보던 왕자의 부름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연하늘.”
“네, 왕자님.”
“입이 작다고 했는데, 아무 말도 안 합니까?”
“네? 네.”
입이 작은 편인 건 나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티가 날 만큼 조그만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에드워드 왕자가 묘한 시선을 보내오자 볼을 긁적였다.
“음?”
빤히 나를 보던 그가 눈썹을 올리며 무언가를 발견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곧바로 그에게 물었다.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손은 왜 그렇죠?”
“아, 이거요?”
어제 넘어지면서 난 생채기를 가리키는 왕자의 손을 보곤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제 좀 넘어질 일이 있어서요.”
“아입니까?”
“하하.”
아이는 아니었지만, 굳이 그 상황을 에드워드 왕자에게 설명할 필욘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 발언에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상대는 한국말이 능숙한 듯하면서 서툰 왕자였다.
멋쩍은 미소를 흘리며 다시 자세를 바로 했지만, 재차 왕자가 날 부른다. 결국 다시 몸을 틀어 앉았다.
“손 내밀어 봐요.”
“…네.”
갑자기 왜 손을 내밀라는 거지?
의아했지만, 일단은 내미는 게 나을 듯했다. 손등이 보이게 양손을 내밀자, 그 손을 붙잡은 왕자가 손바닥이 보이게끔 방향을 수정한다.
이어 손을 살피던 그가 고개를 끄덕이곤 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도대체 뭘 하려고 핸드폰을 꺼내는 건….
찰칵!
“…….”
설마 했건만, 정말 사진을 찍을 줄은 몰랐다. 생각지도 못한 왕자의 돌발 행동에 말문을 잃은 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왕자를 바라보았다.
“하던 거 해요.”
“…네.”
뭘 한 건진 모르겠지만, 하라니 하긴 해야 했다. 다시금 일에 집중키 위해 자세를 바로 한 뒤 다시 서류 정리를 시작했다. 아니, 하려 했다.
“형!”
벌컥 출입문이 열리나 싶더니 검은 형체가 안으로 들어온다. 그것도 큰 소리를 내며 말이다. 너무도 빠른 움직임이기에 눈으로 좇기 어려웠지만, 이 목소리의 주인만큼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뒤늦게 움직임을 따라 눈을 움직일 때였다. 나는 등 뒤서 양손을 붙잡아 끌어 올리는 힘에 그대로 손이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