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57)화 (57/246)

54화

11. 시작되는

퍼엉!

“…….”

아, 이게 내가 부딪히는 소리인가 보다.

너무 큰 충격에 아픔까지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찾아올 고통에 이를 악문 채 버텼지만, 이상하게도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뿐이랴, 주변 소리 역시 잘 들렸다. 나는 실눈을 떴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괜찮습니까?”

대답하고 싶지만, 말할 기운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 눈에 보이는 광경은 믿기 힘든 것이었다. 괜찮냐 묻는 안경 낀 남자 너머로 거친 소리를 내며 공회전 중인 트럭 바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간혹 TV에서 보긴 했지만, 이렇게 괴력을 지닌 사람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니, 예전에 김세현이 단숨에 던전을 클리어하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실감이 나진 않았다.

덤프트럭을 한 손으로 든 남자를 멍하니 보다가 다시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바퀴를 바라보았다.

부아앙!

“흡!”

공사장을 오가는 커다란 트럭인지라 이보다 더 위압적일 수가 없다. 금방이라도 짓누를 것 같은 공포스러운 움직임과 더불어 귀를 가득 채운 엔진 소리가 무섭다. 숨을 들이키기 무섭게 남자가 트럭 쪽으로 돌아선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퍼억! 퍽!

“…….”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가볍게 트럭을 들었다 놨다 하며 트럭 밑으로 들어간 남자가 갑자기 차로 손을 넣자, 무언가가 안에서 터지는 소리와 함께 차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와 함께 주변을 집어삼키던 굉음이 잦아들었다. 바퀴 또한 힘을 잃은 듯 점차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고.

“이젠 괜찮아요?”

“…네, 그런 거 같네요.”

트럭이 점차 조용해지니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다. 남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서 일어나려 했다.

“읏.”

너무 놀랐기 때문일까, 다리가 좀처럼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몸 전체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이 옳을 듯했다.

“괜찮습니까?”

“다들 괜찮아요?”

차가 진정되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다가와 상황을 묻는다. 주저앉은 내 몸을 일으켜 주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후들거리는 다리로 서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많은 사람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게다가….

어느새 트럭 바퀴의 움직임이 완전히 멎은 상태다. 멍하니 트럭을 보고 있을 때였다. 남자가 그것을 책 던지듯 내려놓는 모습에 흠칫했다.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혹시, 헌터세요?”

“예, 시청 소속입니다.”

시청 소속, 헌터라고?

그저 막연하게 헌터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시청 소속 헌터일 줄은 몰랐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놀라 주변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에 친절히 답하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오! 그럼 헌터부 소속이겠네요?”

“직속은 아니고 계약직이지만요.”

아, 어쩐지 한 번도 본 적 없다 했다.

몰린 사람들이 격한 반응을 보이자 남자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기 바쁘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실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저기.”

“네.”

다가오는 날 발견한 듯 남자가 이쪽을 빤히 바라본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완 달리 많은 감정이 실린 듯한 눈동자다. 나는 그가 웃으며 답하는 모습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

저리 사람이 좋아 보이는데, 왜 이런 이상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알 수 없는 꺼끌꺼끌함에 목을 매만지다가 남자가 다가오자 꾸벅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정말 이 사람이 없었다면 난 지금쯤 삼도천을 건너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

사람이 어쩜 이리도 겸손할 수가 있나 싶다. 그저 할 일을 한 것뿐이라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남자를 보며 감동하던 것도 잠시였다. 남자 너머로 사람들이 트럭 문을 열어 한 남자를 끌어 내리는 모습을 발견했다.

“사람을 칠 뻔했으면 속도를 줄여야지!”

“저 헌터님 없었으면 사람이 몇이나 죽을 뻔한 줄 아시오?”

상황이 무척 긴박했음에도 운전석에서 끌려 나온 중년 남성은 묘하게 평온해 보였다.

사람을 치지 않았다고 한들 그대로 직진했다면 그대로 건물을 덮쳐 본인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 의문은 얼마 가지 못했다. 인파 속에서 들려온 말에 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얼른 경찰 불러요!”

“구급차도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저는 괜찮습니다. 잠시 놀랐을 뿐이에요.”

나는 손을 저으며 괜찮다는 걸 어필했다.

주변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하며 연신 내 상태를 묻는다. 몇 번이고 거듭해 괜찮다고 말하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헌터와 눈이 마주쳤다.

“괜찮다니 다행이에요.”

“네, 그, 혹시 성함을 여쭤도 될까요?”

덕분에 무사했다고 말하고 싶은데, 이름을 모르겠다. 조심스럽게 이름을 묻자, 남자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한 손을 내밀었다. 얼른 그 손을 맞잡았다.

“저는 서울시 소속 계약 헌터 서강민이라고 합니다.”

“서강민 헌터님 덕분에 살았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아, 저도 성함 여쭤도 될까요?”

평소 사람들이 생각하는 헌터부 사람들과 동떨어진 사람인지라 괜히 밝혔다간 안 좋은 이미지가 이들에게 박힐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헌터부 소속임을 감춘 채 이름을 밝혔다.

“저는 연하늘이라고 합니다.”

“연하늘 씨. 이름이 참 잘 어울리네요.”

“그, 런가요?”

“곧 경찰 도착한다고 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서강민의 인사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씩 웃는다. 누가 봐도 그를 향한 호감이 큰 모습에 역시 사람들 사이에서 헌터 이미지는 좋다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저기 오네요!”

“오!”

이 근방을 순찰하던 중 연락을 받은 듯 벌써 경찰차가 모습을 보인다. 근처에 경찰차를 세우곤 다가오는 경찰을 보다가 어느새 내 옆으로 와 선 서강민 헌터를 올려보았다.

“아무래도 우리도 경찰서까지 가야 할 거 같네요.”

“네.”

상황을 설명하려면 경찰서에 가는 건 당연했다.

“경찰서에 가면 일단 대충이라도 치료받아요.”

“치료요?”

“네. 손 여기저기 까졌어요.”

“아.”

아무래도 조금 전 넘어지며 생채기가 난 듯했다. 크게 다친 건 아니었지만, 그냥 두기엔 생활하는 데 불편할 만한 상처들이다. 고개를 끄덕인 뒤 트럭 운전수를 경찰차에 태운 경찰이 다가오자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방금 목격자 진술 들었습니다. 이분이 다칠 뻔했고, 이쪽 분이 구해 주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서까지 동행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저희는 차가 따로 있으니 따라가겠습니다.”

제아무리 헌터라고 한들 모르는 사람을 덥석 차에 태우겠다 할 줄은 몰랐다. 경찰 또한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변 사진을 찍은 뒤 경찰차로 가고 말이다. 나는 멍하니 경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럼 우리도 가죠.”

“…그, 네.”

이미 경찰이 자리를 떴는데, 혼자 가겠다고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살면서 경찰서에 온 건 오늘로 두 번째다.

처음엔 피해자의 가족으로, 오늘은 피해자로 앉아 있자니 기분이 참 묘했다. 경찰서 안을 둘러본 뒤 구급상자를 열어 상처 부위에 소독을 시작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뇨.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어디 따로 다친 것도 아니고 손바닥 좀 까진 거 가지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건 오버였다. 고개를 내젓곤 솜과 소독약을 꺼내 곧바로 상처를 소독했다.

큰 사고가 날 뻔했던 것치곤 정말 사소한 생채기만 보인다. 빠르게 소독을 끝내고 구급상자를 정리한 뒤 저 멀리서 취조를 받는 운전수를 바라보았다.

“…….”

경찰이 뭐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반응이 없는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차에서 끌려 나올 때도 뭔가 이상해 보이던 남자였다.

“상태가 이상해 보이네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 서강민 헌터가 말을 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다른 사람도 이상하다 느낄 정도라면 정말 이상한 게 맞았다. 마치 나사가 몇 개 빠진 것처럼 보이는 이를 유심히 살피던 중이었다. 메시지 도착음에 곧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o(*゚▽゚*)o)))]

[✧。(✪▽✪*)・。✧]

[나 지금 형이 보낸 메시지 본 거 맞아요? (੭ ˃̣̣̥ ㅂ˂̣̣̥)੭????]

“풉.”

이모티콘만으로 사람을 웃길 수 있는 건 김세현이 유일할 거다. 웃음이 터졌다가 이쪽으로 쏠린 시선에 황급히 헛기침하며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그저 메시지를 본 것뿐인데, 이렇게 마음이 놓일 수가 없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진정되는 것만 같다. 연거푸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다시 앞을 봤을 때였다. 경찰들이 운전수를 대동해 어디로 가려는 모습에 자리서 일어났다.

“우선 유치장에 구금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상태가 좀 이상해 보여서요.”

현장에 나왔던 경찰이 상황을 설명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여기 진술서 좀 작성해 주십시오.”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다가온 형사가 종이를 건넨다. 육하원칙으로 작성해 달란 말에 끄덕이곤, 현장 상황을 최대한 자세히 기술 후 돌려주었다.

“옆에 계신 헌터분이 구해 주셨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건넨 진술서를 살핀 형사가 나와 서강민 헌터를 번갈아 바라본다. 묘한 눈빛을 보내는 것이 아무래도 내 직업을 본 모양인 듯했다.

혹 나와 서강민 헌터가 아는 사이인지, 아니면 어떤 상황 때문에 그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가늠하는 듯한 모습이 훤히 보였다. 굳이 지금 내 입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곧 형사가 내 직업을 말할 듯했다. 나는 그가 말하기 전까지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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