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56)화 (56/246)

53화

11. 시작되는

하지만 왕자에겐 그 행동이 더 자극적이었던 듯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다시 거리를 좁혀 올 린 없었으니까.

멀어진 만큼 가까워진 그를 보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 관리에 힘썼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왕자의 눈이 휘어진 순간, 결국 표정이 허물어졌다.

“…….”

이런 거리감이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천지에 몇 되지 않을 거다. 바로 코앞에 보이는 얼굴에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 때였다. 아예 퇴로까지 막을 생각인지 의자 양쪽 팔걸이를 짚으며 더욱 거리를 좁혀온다. 계속해서 몸을 물렸지만, 이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

“흐음.”

갑자기 이렇게 거리를 좁히는 의도가 뭘까.

저리 반짝이는 시선을 보내는 이유도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숨을 뱉을 때마다 얼굴 위로 흩어지는 숨이 영 별로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걸 참을 때였다. 순간 거리를 넓힌 에드워드 왕자가 자리서 일어난다. 그에 참고 있던 숨을 급히 몰아쉬었다.

“…….”

이럴 땐 어떻게 대응해야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잘 매듭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반 사람이라면 거리가 너무 가깝다고 말을 했겠지만, 상대는 귀빈이었다. 먼저 말을 거는 것조차 힘든 그런 귀빈 말이다.

“흐음.”

왕자가 예의 그 비음을 내며 내 얼굴을 살핀다.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한 이를 한 번씩 살피며 더욱 빠르게 눈을 굴리기를 몇 차례, 픽 웃음을 터뜨린 에드워드 왕자가 다시 자리에 착석하더니 같이 온 이에게 차를 준비하라 말한다. 완전히 관심을 끈 듯한 모습에 나는 안도했다.

“하아.”

뭐가 되었건 관심사에서 벗어난 것 같아 다행이다. 침만 꿀떡꿀떡 삼키며 긴장을 풀다가 재차 날 부르는 소리에 황급히 답했다.

“연하늘.”

“네, 왕자님!”

“…자신이 있어서 그런 겁니까? 아니면 정말 몰라서?”

묘한 시선을 보내던 왕자가 다시 물으며 얼굴을 요목조목 살핀다. 마치 무언가를 찾아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왕자의 눈동자를 보곤 의자 손잡이를 짚고 있던 손에 힘을 실었다.

“…….”

지금 당장 답하자면, 당연히 자신은 있었다. 김세현이 영국이 아닌 한국을 택할 거라는 그런 자신 말이다.

하지만 그의 뒷말은 도무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자신 있냐는 말 다음으로 나온 모르냔 질문은 상황 설명이 되어야만 답이 가능할 듯했다.

…물론, 왕자에게 질문을 할 수가 없기에 문제지만 말이다.

이미 한 번씩 결례를 한 상황서 한 번 더 선을 넘으면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혹여 말실수라도 하게 된다면 여러모로 곤란해질 수도 있었고.

나는 대답 대신 침묵을 택했다.

“…….”

눈이 마주치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내 에드워드 왕자의 얼굴에 가득했던 웃음이 사라진다. 그가 함께 온 동행인이 가지고 온 차를 조용히 마시는 모습에 슬쩍 의자를 돌려 팀장을 보았다.

눈이 마주친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입가를 끌어올린다. 그 모습에 나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뭐가 되었건 간에 지금 내 뒤엔 팀장이 있었다. 혹 내가 다른 답을 하려 하거나 실수를 했다면 어떻게 해서든 신호를 줬을 것이었다.

딱히 실수가 없었단 사실에 안도하며 다시 몸을 바로 했다. 그리고 침묵하는 왕자를 바라보았다.

“…….”

한참을 차를 마시던 왕자가 찻잔을 놓는다. 그러자 옆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그것을 챙겨 자리로 돌아간다. 의자 손잡이에 손을 올린 왕자가 손가락으로 툭툭 그것을 치다 다시 이쪽을 바라본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연하늘.”

“네, 왕자님.”

역시, 말이 끝나지 않았던 게 맞나 보다.

“정말 같이 안 갑니까?”

“네. 저는 한국이 좋습니다.”

“난 연하늘을 꼭 영국으로 데리고 가야겠는데.”

“…….”

김세현에게 직접 스카우트 제의를 하는 게 나을 거라고 말한 게 불과 몇 분 전이었다. 도돌이표를 찍듯 다시 돌아온 말이 당혹스럽다.

“그러니 한동안 자주 볼 거 같군요.”

“네?”

오늘이면 끝날 견학인데 왜 자주 본다는 건지 모르겠다. 알 수 없는 불안함이 턱 밑까지 차오를 즈음, 에드워드 왕자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발견했다.

“연하늘 데리고 갈 때까지 한국에 머무릅니다.”

“헉!”

“흡!”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왕자 스스로는 알고 있나 모르겠다. 생각지도 못한 폭탄 발언에 사무실 여기저기서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뿐이랴, 팀장 역시 놀란 듯 어깨를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간 상황이었다.

“왕자님.”

그의 발언은 우리에게만 폭탄은 아닌 듯했다. 그의 차 시중을 들던 이 또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걸 봤다가 다시 에드워드 왕자를 바라보았다.

“내가 옳을지, 연하늘이 옳을지 봐야겠군요.”

“…아.”

“과연 김세현이 어떤 선택을 할지 말입니다.”

…김세현에게 가서 물어보면 될 것을 굳이 여기서 확인하려는 저의를 모르겠다.

이런 내 기분은 아는 건지 에드워드 왕자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그것도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척이나 즐거워 보이는 그런 웃음이 말이다.

생각지도 못한 에드워드 왕자의 폭탄 발언으로 인해 남은 오후 시간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와도 같았다.

오죽했으면 에드워드 왕자가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팀장이 바로 퇴근하자고 했을까.

“…….”

덕분에 이렇게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집으로 가는 길이었지만, 이보다 더 심란할 수가 없었다. 나는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한숨을 뱉어 냈다.

“하아.”

도대체 왕자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 모르겠다. 누가 봐도 다음 일정이 있어 보이는 데도 말이다. 왕자 일행이 당황하던 모습을 떠올리자 절로 어깨가 축 늘어졌다.

“…….”

일정이 있다며 왕자를 자제시킬 줄 알았건만, 그들은 그저 당황만 할 뿐이었다. 마치 에드워드 왕자에게 그 어떤 지적도 할 수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정말 의도를 모르겠다, 의도를.

한참을 그렇게 바깥 풍경을 볼 때였다.

“아!”

그래, 어쩌면 그게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머리를 스친 생각에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메시지 함을 열었다가 가장 상단에 떠 있는 김세현과의 메시지 창으로 들어가 그에게 보낼 메시지를 입력했다.

[세현 씨, 혹시 에드워드 왕자의 제안을 거절하셨.]

“…….”

김세현 본인에게 물어보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어 보였지만, 막상 메시지를 보내려 하니 이걸 물어봐도 되나 싶다. 그도 그럴 것이 물어보려는 내용은 사적인 부분이었으니 말이다.

글을 입력하다 말고 멈춰 한참 고민했다. 결국 적은 내용을 지우곤 다른 내용을 입력했다.

[세현 씨, 바빠요?]

그래, 용건만 바로 물어보는 건 좀 아닌 듯했다. 메시지를 보내는 게 처음이기도 했고 말이다.

“…….”

메시지를 보내는 것일 뿐인데, 왜 이리 설레는지 모르겠다. 입력을 마친 후에도 몇 번을 주저하다 결국 메시지를 전송했다.

“…바쁜가?”

보내자마자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우스웠지만, 왜 이리 확인을 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몇 정거장이 지나도록 뚫어져라 핸드폰만 봤지만, 좀처럼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다. 나는 결국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

아무래도 타이밍이 영 별로였던 듯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바로 답장이 왔을 테니 말이다. 괜스레 핸드폰을 담은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계속해서 차창 밖을 내다보다가 어느새 내릴 때가 되었음을 인지하고 바로 벨을 눌렀다. 이윽고 버스가 멈추고 뒷문이 열린다. 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차에서 내려 크게 심호흡했다.

“하아.”

어둑했던 어제와는 다르게 날이 밝은 것이 역시 이른 퇴근 덕인 듯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며 동네에 자리 잡은 붉은빛을 보며 발을 뗐다.

혹여 내리는 동안 연락이 왔을까 핸드폰을 꺼내 봤지만, 핸드폰은 조용했다. 짧은 이동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다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

연락이 오면 진동이 울릴 텐데 계속 확인하는 것도 우습다. 나는 곧바로 소리까지 켜곤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젠 소리도 키웠으니 더는 확인하지 않아도 메시지가 오면 바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었다. 혼자 진동이 울리는 줄 착각해 계속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고 말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퇴근하자마자 소리를 켤 걸 그랬나 싶다.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끼익-!

“음?”

이게 무슨 소리지?

바닥을 마찰할 때 나는 커다란 굉음이 저 멀리서 들려온다. 가던 길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딱히 소리가 날 만한 상황은 보이지 않았다. 재차 걸음을 옮기려던 참이었다. 조금 전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들린 소리에 다시 도로 쪽을 바라보았다.

끼이익-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 가던 길을 멈춘 사람들이 웅성이며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본다. 나 역시 계속해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부앙-! 끼이익!

“…….”

이젠 거친 차 엔진 소리까지 들려온다. 이쪽으로 오는 것이 분명한 소리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근처의 카페 건물 가까이 자리를 옮기다가 사거리에서 나타난 덤프트럭을 발견했다.

끼이이익!

“꺄악!”

“헉!”

차가 휘청일 만큼 드리프트를 건 덤프트럭이 그대로 돌진한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싶어 지켜보던 때였다. 도로를 타고 달리던 트럭이 별안간 방향을 틀자, 그대로 다리가 굳었다.

“거기, 얼른 도망쳐요!”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말이 제대로 귀로 흘러나가는 것만 같다. 마치 물속에 들어가 있어 제대로 소리가 들리지 않고 먹먹한 것처럼 말이다. 뻣뻣하게 굳어 있다가 커다란 클락션 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헉!”

하필 트럭 또한 같은 방향을 선택할 줄은 몰랐다. 목전까지 다가온 트럭을 보다가 피할 수 없는 상황임을 깨닫곤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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