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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55)화 (55/246)

52화

11. 시작되는

어제 하루 출퇴근길에 버스를 이용했을 뿐이건만, 이보다 더 힘들 수 있나 싶을 지경이다.

어제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파김치가 되어 사무실에 들어서자 먼저 출근한 팀원들이 보인다. 나는 애써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얼굴이 왜 그렇게 곤죽이 됐어?”

“조금만 늦었으면 지각할 뻔했네, 막내.”

“하하.”

애써 입꼬리를 올렸지만, 나오는 소리가 이보다 더 힘이 없을 수가 없다. 나는 이 자리에 서기까지 있었던 일을 반추했다.

“…….”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출근 전 일어난 일이 너무 많았다.

맞춰 둔 알람 소리를 놓쳐 늦게 일어났고, 급히 챙기고 나가 버스를 타니 이번엔 핸드폰과 지갑을 두고 온 걸 뒤늦게 깨닫곤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래, 거기까지만 해도 다음 벌어질 일에 비해 상황은 양호했다. 급한 마음에 버스 번호를 잘못 봐 다른 방향으로 가다 사무실로 온 참이었다. 택시 정류소에도 줄이 길게 늘어져 있어 자칫 잘못했다간 정말 지각할 뻔했다.

이 상황을 설명하기엔 몸이 너무 지쳤다. 나는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일이 좀, 많았어요.”

“…그래 보이네.”

“오늘 같이 퇴근할까?”

꼴이 말이 아닌지 팀장이 슬며시 어제 제안했던 내용을 다시 입에 담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내일이면 부팀장님도 오시는데요.”

그래, 하루 이틀 버스를 타기로 해 놓고 그 시간도 지키지 못하고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자리로 가 짐을 풀곤 의자에 앉자마자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대었다.

“하아.”

만원 버스를 탔기 때문일까, 이렇게 앉아서 숨을 돌릴 수 있단 사실이 반가울 수가 없다. 괜히 의자를 좌우로 흔들며 마음을 다독일 때였다. 책상에 놓인 종이컵에 고개를 들었다.

커피가 당겼지만, 차마 타러 갈 기운이 없던 참이었다. 이보다 더 고마울 순 없었다. 울망울망한 눈빛으로 한 주무관을 올려보았다.

“한 주무관님.”

“그렇게 불쌍한 표정 짓는다고 여기서 통할 것 같아?”

“큭큭, 이미 통한 거 아니에요?”

“한 주무관, 나도 한 잔.”

“저도요!”

“저도 부탁드립니다!”

다른 날과는 달리 모두가 한 주무관에게 커피를 부탁한다. 지쳤지만, 커피는 내 담당이었다. 자리서 일어나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다 어깨를 누르는 손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오케이. 막내, 넌 쉬어. 일 시작하면 집중해야지.”

“네.”

정수기 쪽으로 간 한 주무관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타다 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하아.”

카페인이 들어가서일까, 괜히 벌써 몸이 풀린 느낌이다. 믹스커피 향을 맡으며 계속해서 커피를 홀짝이다 보니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는 걸 인지했다.

“자, 오늘 조회 시작하지.”

“네!”

팀장의 말에 바로 의자를 돌렸다. 이쪽을 보던 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부팀장이 자리를 비운 상황인지라 어제처럼 김 주무관이 부팀장 대신 컨트롤 타워를 담당하는 것으로 한다. 그리고, 한 가지 안타까운 소식이 있어.”

“안타까운 소식이요?”

“어떤 소식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안타깝다는 말을 들으니 뭔가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주변을 둘러보다 다시 팀장을 보았을 때였다. 그의 시선이 묘하게 나를 빗겨 나간다. 고개를 움직여 시선이 향한 곳을 확인하곤 다시 팀장을 바라보았다.

“오늘, 에드워드 왕자가 온다고 하더군.”

“예에?”

“아니 지난주에 견학 끝난 거 아닙니까?”

“금요일에 오지 못했다고 그만큼 일수 채우러 온다는데, 우리가 뭐라고 하겠어.”

“하아.”

아침부터 이상하게 일이 꼬인다 싶었는데, 그게 전부 에드워드 왕자가 다시 올 거라는 걸 알려 주려 했던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연거푸 한숨을 뱉었다.

“그래도 그쪽에서 말하는 걸 보니 오늘만 오는 거 같더라고. 지난주 하루가 비었으니 그 하루 오늘 잘 채워 보자.”

“예!”

“…네.”

지난번 던전을 한 번 겪으며 이미 헌터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강 파악했을 것이었다. 굳이 하루를 더 채우러 오겠다는 저의를 도무지 모르겠다.

분명 이곳에 오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래, 이유가 없다면 굳이 올 일은 없었다.

에드워드 왕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만큼 그 누구보다 조심해야 할 건 바로 나였다. 게다가….

김세현의 연인으로 착각한 에드워드 왕자가 단번에 스카우트 제의를 한 걸 보면 그가 방한한 것은 역시 김세현을 스카우트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했다.

“…….”

오늘 아침부터 일들이 있어서일까, 김세현 본인이 가지 않는다 말하는 걸 직접 들었음에도 영 불안했다.

이렇게 불안할 땐 정신을 다잡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 오늘만큼은 절대 에드워드 왕자에게 빈틈을 보여 주지 말아야겠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의지를 불태우며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온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늦게 올 줄은 몰랐다.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가 이미 오후 세 시가 넘은 걸 보곤 한숨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았다.

그래, 이렇게 늦게 왔다는 건 다르게 생각한다면 그 또한 딱히 헌터부에 볼 일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

지난주완 달리 에드워드 왕자의 반응이 영 이상했다.

이것저것 물으며 연신 감탄할 땐 언제고 이보다 더 심드렁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순 없었다. 그뿐이랴, 친절한 듯싶던 그의 태도 역시 달라졌고 말이다.

설마, 스카우트 제의를 무시해서 그런 걸까?

잠시 지난주의 스카우트 제의를 떠올렸다가 힐끗 왕자를 확인하곤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런 것 하나로 저리 사람이 날카로워졌을 린 만무했다. 아마 자리를 비웠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도 있었던 것이겠지.

“…….”

뭐가 되었건 간에 옆자리의 왕자가 저리 날이 서 있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오늘 자 서류 작업을 마쳤단 사실에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던전 협조문 관련 문서를 발견하곤 반색했다.

그래, 이걸 새로 켜서 작성한다면 시간도 보내고 좋을 듯했다.

에드워드 왕자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협조금 관련 문서 작업하는 모습을 보러 온 것일지도 몰랐고 말이다. 그에게 먼저 말을 걸 순 없었기에 말없이 공란의 협조금 문서 파일을 열어 그가 볼 수 있도록 차근차근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연하늘.”

“네, 왕자님.”

“지난주 던전 문서를 지금 작성하는 겁니까?”

“…….”

“문서 작성은 늦군요.”

보여 주기 위해 새 문서를 켰던 것일 뿐이었다.

무척이나 날이 선 에드워드 왕자의 말투가 영 거슬린다. 표정 또한 썩 좋지 않았고 말이다.

나는 곧바로 그 문서를 닫고 이미 작성을 마친 문서를 띄우며 그를 바라보았다.

“작성은 마쳤지만, 혹여 작성 방법을 궁금해하실까 싶어 새로 한번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왕자님.”

그래, 에드워드 왕자가 자리를 비워 준 그동안 일 처리는 진즉에 끝낸 터라 오늘은 크게 일감이 없었다.

이미 작성을 마쳤는지는 몰랐는지 왕자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모니터를 보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자, 입을 꾹 다물었다.

“흐음.”

예의 그 비음을 내며 에드워드 왕자가 팔짱을 낀다. 그리고는 의자에 몸을 묻는 모습에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작성하는 건 안 봐도 됩니다.”

“네.”

“연하늘.”

“네, 왕자님.”

“내가 지난주에 한 말이 있을 텐데, 언제 답할 겁니까?”

“…….”

무슨 말을 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지난주와는 달리 적극적인 태도에 나는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9급 공무원 연봉은 정말 조그맣던데.”

그에게 있어 내 연봉은 조그마할 뿐이었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만큼은 큰돈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영국으로 가면 평생 손에 쥐지 못할 돈을 쥘 수 있습니다.”

“거절합니다.”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고.”

“거절하겠습니다.”

왕자가 말을 꺼낼 때마다 단호하게 자르곤 검지로 팔짱 낀 손을 툭툭 두드리는 그를 바라보았다.

“뭘 내어 줘야 생각이 바뀌지?”

“다 괜찮습니다. 저는 한국이 좋아서요.”

“…….”

돈이 중요했다면 마음이 흔들렸겠지만, 나에겐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너무도 많았다. 부모님과의 추억, 그리고 여기 있는 팀원들만 해도 에드워드 왕자가 내미는 돈으론 이미 같은 저울에 올릴 수도 없을 정도였고 말이다.

“…이해할 수 없군요.”

굳이 이해를 바란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에드워드 왕자가 원하는 건 이렇게 말을 돌리지 않아도 명확했다.

왕자가 먼저 대놓고 말을 했으니, 나 또한 감추지 않고 말해도 될 것이었다. 그래, 쌍방이 조금씩 결례를 한다고 해도 먼저 결례를 범한 건 왕자 측이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거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왕자님, 저에게 이러지 마시고 김세현 헌터에게 가서 직접 스카우트 제의를 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

“설령 제가 왕자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김세현 헌터는 쉽게 움직일 사람이 아니에요.”

그간 그 어떤 제안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걸 보면 나를 스카우트한다고 해서 김세현이 움직일 거란 생각을 하는 건 정말 그를 가볍게 보고 있음을 뜻했다.

“…하.”

말을 꺼낼수록 표정이 묘하게 변하던 왕자가 이내 헛웃음을 터뜨린다. 팔짱을 끼고 있던 자세까지 풀더니 상체를 쑥 앞으로 내민다. 나는 슬그머니 뒤로 몸을 물리며 거리를 유지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네.”

다른 건 몰라도 이거만큼은 확실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네요.”

“…….”

“재미있어.”

재미있다는 말을 반복하던 에드워드 왕자가 피식 웃음을 흘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날이 서 있던 사람이 이리 돌변하니 더더욱 의심스럽다. 나는 슬그머니 몸을 물리며 왕자와 거리를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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