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10. 스카우트
난데없이 영국에 가자니.
당혹감이 눈 앞을 가린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나 싶던 참이었다. 이어진 말에 어째서 그 말을 꺼냈는지 알게 되었다.
“김세현에게 연인이 있을 줄은 몰랐군요.”
“아닙니다! 연인이라뇨!”
“어쩐지, 통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래,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게다가 뭐가 통하지 않는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극구 부인했다.
“정말 그런 사이 아니에요!”
“…그럼 조금 전 메시지는 뭐죠?”
“그건….”
메시지 내용을 떠올리곤 그가 어떤 부분에서 오해하고 있는지를 인지했다.
“평소에도 자주 쓰는 이모티콘일 뿐이에요.”
그래, 매번 김세현이 보내는 메시지엔 하트가 꼭 들어 있었다. 처음엔 그것을 보고 심장이 철렁하기도 했지만, 그게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건 이젠 알고 있었다. 친근함의 표시 정도로만 이용 중이라는 걸 말이다.
“…….”
해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어째 더욱 의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에드워드 왕자를 보며 한 번 더 해명하려 입을 열 때였다. 화장실에 갔던 부팀장이 돌아오자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늘 씨, 무슨 일 있습니까?”
부팀장이 자리를 비운 건 몇 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생긴 듯했다. 에드워드 왕자가 가면 상황을 전달하는 편이 나을 듯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요.”
의아한 눈빛을 보내던 부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자리서 일어나 중계기를 종료했다.
“…….”
분명 중계기를 오픈할 때만 해도 버튼이 손에 감겼건만, 종료할 때의 감은 썩 좋지 못했다. 천천히 순서대로 버튼을 눌러 중계기를 종료하곤 다시 자리로 돌아오니 에드워드 왕자의 시선이 따라붙는다. 볼이 뜨거울 만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그 질문에 답할 생각은 없었다. 갈 마음이 없기에 단호히 거절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지만, 혹여 그 거절로 인해 헌터부나 나라에 피해가 올지도 모를 일이니까.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모니터를 보며 현장 상황을 살폈다.
매일같이 퇴근 시각이 돼서야 돌아가던 왕자였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던전이 클리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뜬 상황이었다. 빈 옆자리를 보며 작게 한숨을 뱉은 뒤 슬그머니 부팀장의 눈치를 살폈다.
이제 슬슬 왕자의 제안을 받았다는 말을 할 때가 된 듯했다. 기왕이면 다른 팀원들도 있는 자리서 말하고 싶었지만, 내일이 되면 다시 에드워드 왕자가 사무실에 나타날 것이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곤 곧바로 그를 불렀다.
“부팀장님.”
“예, 하늘 씨.”
모니터를 보던 부팀장이 고개를 든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킨 뒤 에드워드 왕자가 제안한 내용을 입에 담았다.
“영국, 말입니까?”
“네. 그리고, 저에게 세현 씨와 연인 관계냐 물어보기도 했고요.”
그저 에드워드 왕자가 한 말을 전달하는 것일 뿐인데, 왜 이리 민망한지 모르겠다.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온 거죠?”
“그게 재난 문자를 보겠다고 해서 에드워드 왕자에게 핸드폰을 건넸었거든요. 그때 메시지가 와 오해를 한 듯합니다.”
“흠.”
설명을 들은 부팀장이 턱을 만지작거린다. 심각해 보이는 모습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팀장님, 에드워드 왕자 말입니다. 어째서 저에게 영국에 같이 가자고 한 걸까요? …만에 하나 제가 세현 씨와 그, 런 사이라 쳐도 굳이 절 데리고 가려는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그래, 김세현을 스카우트하러 와놓곤 어째서 나에게 손을 내민 걸까. 도통 의도를 알 수 없다. 한참 답을 기다렸지만,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부팀장이다. 나는 그를 한 번 더 불렀다.
“부팀장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뭔가 말을 할 듯 입을 벙긋이다 만 그가 고개를 젓는다. 이어 어색하게 웃는 모습에 부팀장이 할 말을 삼킨 걸 깨달았다.
“…….”
“…….”
무엇을 말하려 한 거냐 물어보려니 민망하다. 말없이 시선만 교환하다가 자리서 일어나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부팀장님, 율무차 한 잔 드릴까요?”
“좋아요. 그게 좋겠군요.”
“네.”
분위기가 이상할 땐 역시 차만 한 게 없다. 곧바로 율무차와 커피를 타 율무차를 건네곤 자리로 돌아왔다.
“하늘 씨.”
“네.”
“아마 오늘은 현장에 나간 이들 모두 그곳에서 퇴근할 겁니다.”
김세현이 단번에 던전을 클리어했다고는 하지만, 급속도로 커진 범위 때문에 현장에서 처리할 일이 많을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내일까진 왕자가 올 테니 작업 밀린 게 있으면 미리 해 두십시오.”
“네, 부팀장님.”
에드워드 왕자도 갔으니 이젠 정말 열심히 일하는 일만이 남았다. 부팀장의 눈치도 더는 살피지 않아도 되니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할 수 있을 듯했다. 나는 마저 열어 둔 파일을 살피며 작업을 이어 나갔다.
***
에드워드 왕자, 한국형 헌터부에 찬사를 보내
헌터부 견학 중인 영국의 신사의 다음 행보는?
K의 신화는 계속된다. K-헌터부
헌터부를 향한 찬사, 에드워드 왕자의 진심은?
쉬는 시간을 이용해 인터넷 뉴스를 보다 발견한 에드워드 왕자 인터뷰 기사를 보니 영 기분이 묘하다. 하나같이 에드워드 왕자가 헌터부를 찬양했단 헤드라인을 보니 더욱 묘해졌다.
“…….”
무슨 꿍꿍이로 이렇게 칭찬하는 걸까.
물론, 던전이 생성되고 매뉴얼대로 진행되는 일들을 보며 에드워드 왕자가 놀라긴 했지만, 그게 이렇게 대서특필 될 만큼의 것인가 싶을 지경이다. 게다가 일찍 돌아간 에드워드 왕자가 이렇게 인터뷰를 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고 말이다.
“…….”
칭찬을 늘어놓은 다음 날,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
혹 김세현에게 가 스카우트 제의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옆구리를 찌르는 손길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헉, 내가 다 놀랐네!”
“그, 죄송합니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불러도 대답이 없어?”
어째 놀란 나보다 김 주무관이 더 놀란 듯했다. 토끼눈을 뜬 이를 보며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에드워드 왕자가 오지 않아서요. 괜히 불안한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을 좀 해 봤어요.”
“으이구. 왕자는 왕자가 알아서 할 거야. 우린 우리 점심이나 생각해 보자고.”
“…네.”
그래, 김 주무관의 말마따나 에드워드 왕자는 왕자였고, 우리는 우리였다.
“막내는 뭐 먹을래? 한식? 중식? 아니면 양식?”
“저는 언제나 중식입니다!”
그래, 한식이야 언제든 먹을 수 있었지만, 중식은 아니었다. 팀장과 눈이 마주쳤다가 그가 웃음을 터뜨리자 따라 입가를 끌어 올렸다.
“푸핫!”
“막내가 정말 중식 좋아하네요.”
“그럼 오늘은 중식이랑 한식 둘로 나눌까?”
“좋죠!”
“그럼 바로 메뉴 정하고 주문 넣자고.”
“주문은 제가 하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주문만큼은 자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의사를 내비쳤다. 팀원들이 말하는 메뉴를 받아 적고, 주변 맛집을 추천받아 바로 주문을 넣었다.
“중식은 30분, 한식은 약 50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좋아. 그럼 중식 시킨 사람들 먼저 먹자고.”
“네.”
기왕이면 함께 먹는 것도 좋았지만, 면발이 붇기에 그건 무리일 듯했다. 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였다.
“그나저나 팀장님, 저 책상이랑 의자는 어떻게 처리하죠?”
“오늘까지 왕자가 견학을 오기로 했으니 일단 놔둬야지. 다음 주가 되어도 가져가지 않으면 연락 넣고.”
“저 의자랑 책상 누가 봐도 값나가는 거 같죠?”
“괜히 왕자겠어?”
확실히 저리 크고 단단해 보이며 세밀한 조각이 새겨진 책상과 의자는 값비싸 보였다. 말없이 빈 책상을 보던 중이었다. 접이식 의자를 떠올리곤 원탁을 바라보았다.
“…….”
재력이라면 김세현도 내놓으라 할 만큼 엄청날 텐데, 김세현은 돈을 허투루 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간단히 사무실에 비치된 의자를 끌고 와 앉던 모습을 떠올리니 괜히 에드워드 왕자와 김세현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게 된다.
“그나저나 어제 던전도 생성되었었는데, 던전 관련 내용은 없고, 에드워드 칭찬한 내용만 가득하네요?”
“뭐, 우리에겐 그게 더 좋기는 하죠.”
던전도 던전이었지만, 확실히 에드워드 왕자의 칭찬의 파워는 무시할 게 되지 못했다. 왕자의 칭찬에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헌터부를 칭찬하고 있으니 말이다.
“부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에드워드 왕자가 이렇게 말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특히 이영진 의원 말입니다!”
모두가 헌터부를 치켜세울 때 헌터부가 아닌 나라의 공이라 말한 이가 바로 이영진 의원이었다.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이럴 땐 좀 함께 어울려 칭찬도 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할 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에드워드 왕자와 함께 이곳에 왔었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곤 이내 고개를 휘휘 저으며 생각을 멀리 날려 보냈다.
이제 곧 중식이 오는데, 굳이 안 좋은 생각을 하며 입맛이 떨어지게 할 이유는 없었다.
“근데 막내야.”
“네, 박 주무관님.”
“그나저나 그 이야긴 뭐야?”
“어떤 이야기를 말씀하시는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말끝을 흐리자, 박 주무관이 입을 연다. 나는 집중했다.
“그거 말이야. 에드워드 왕자가 막내 널 스카우트 했다는 그 이야기.”
“아.”
“왕자가 올까 싶어서 물어보기 그랬는데,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안 올 것 같아서 말이야. 얼른 상황 좀 설명해 봐.”
“네.”
그러지 않아도 때를 보며 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하려던 참이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적신 뒤 어제 있었던 일을 팀원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