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10. 스카우트
“현재 늘푸른 공원을 중심으로 반경 150m가량의 CCTV가 모두 꺼졌습니다! 골고루 꺼진 터라 대피 방향은 따로 알리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오케이!”
말을 들은 박 주무관이 바로 문자를 작성한다. 사무실 전체에 울리는 긴급 문자 소리에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핸드폰을 꺼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방금 던전 상황을 알리는 긴급 문자를 발송한 터라 그게 도착하는 소리입니다.”
“보여 줘요.”
“네.”
그러지 않아도 보여 주려 했던 참이었다. 긴급 문자를 화면에 띄워 그것을 에드워드 왕자에게 건넸다. 내용을 살핀 이의 얼굴에 놀라움이 자리하는데, 괜한 뿌듯함이 차올랐다.
“방금 여기서 보낸 거라고?”
“네.”
“…이런 방식도 나쁘지 않군요.”
다른 사람도 아닌 에드워드 왕자가 저리 말하니 기분이 좋다. 나는 씰룩이는 입가를 잠재우며 양해를 구해 바로 중계기 쪽으로 향했다.
“부팀장님, 가동 완료했습니다!”
다른 날보다 중계기 버튼이 손에 착 감기는 것이 아무래도 조금 전 에드워드 왕자의 반응을 봤기 때문인 듯했다.
“좋아요.”
고개를 끄덕인 부팀장이 바로 양쪽 귀에 중계기와 네트워크와 연결되는 이어폰을 착용한다. 나 또한 착용하려면 할 수 있었지만, 그보단 왕자의 호기심을 채워 주는 편이 나을 듯했다.
그래, 괜히 착용했다가 왕자가 관심을 보이면 그보다 곤란할 순 없을 것이었다.
나는 바로 자리로 돌아와 힐끔 왕자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서울시 헌터부입니다. 현재 O-2 구역에 범위 C급, 난이도 B급 던전이 생성되었습니다. 늘푸른 공원을 중심으로 하여 반경 1km까지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바로 중계기 쪽 이어폰을 터치해 매체 및 현장으로 향하고 있는 경찰과 소방대원들에게 상황을 전달한다. 능숙하게 현장을 조율하는 부팀장을 말없이 바라보는 왕자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했다. 나는 슬쩍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 왕자님.”
“음?”
“TV도 한번 보시겠어요?”
그래, 백 번 입 아프게 설명하는 것보단 던전이 생성된 지금 한번 확실하게 경험하는 편이 왕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방금 부팀장이 연락을 넣었기에 매체에서도 바로 긴급 화면을 띄웠을 것이었다.
“저는 바로 협회로 가겠습니다! 박 주무관, 가자!”
“옙!”
오늘은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이 함께 움직일 모양인 듯했다. 함께 협회로 향하는 모습을 보다가 팔을 건드리는 손길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TV 쪽을 가리키는 에드워드 왕자다. 나는 바로 TV를 켜 긴급 상황을 전달 중인 화면을 띄웠다.
“…이렇게 빨리 연결됩니까?”
“네.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니까요.”
역시, 부팀장의 연락을 받은 매체가 곧장 빨간 화면을 띄운 상황이었다. 놀라는 왕자를 보고 있자니 괜히 어깨에 힘이 실린다. 말없이 TV를 보는 왕자 앞에 리모컨을 내려놓곤 다시 CCTV 화면을 살폈다.
“하늘 씨, 현재 상황은?”
“아직 던전 규모가 커지진 않은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매뉴얼대로 대피 중에 있습니다!”
“다른 게 보이면 언제나처럼 전달해요!”
“네, 부팀장님!”
CCTV 지도를 두고 던전 주변 CCTV 화면을 띄워 이리저리 살필 때였다. 별안간 지켜보던 화면이 꺼진다. 황급히 지도를 확인 후 입을 열었다.
“부팀장님, 동북 방향으로 던전이 급팽창 중입니다!”
이렇게 던전 크기가 빠르게 커진 적이 있나 싶다. 조금 거리가 있는 카메라에 접속했지만, 바로 화면이 꺼진다. 범위를 확인 후 부팀장에게 한 번 더 알렸다.
“던전 규모 B급으로 격상 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부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박 주무관 자리로 간다. 긴급 문자를 쓰며 중계기로 상황을 전달하는 모습을 보곤 다시 CCTV 화면에 집중했다.
“…….”
이렇게 빠른 속도로 던전이 커진다는 건 던전 난이도 또한 올라갈 수도 있단 말과도 같았다.
너무 순식간에 던전이 커진 터라 대피 중인 시민들도 당황하고 있을 거다. 그뿐이랴, 현장을 통제 중인 이들 또한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 CCTV를 보던 때였다. 한 화면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자 그 부분을 확대했다.
“헉.”
“…포이즌 스네일이군.”
화면에 비친 몬스터를 보던 왕자가 몬스터명을 입에 담는다.
“팀장님, 포이즌 스네일입니다. 하늘 씨, 현재 파악된 개체 수는?”
에드워드 왕자의 말을 들었는지 곧바로 부팀장이 팀장에게 말을 전달하다 묻는다. 나는 화면을 응시하며 답했다.
“한 개체가 보입니다! 그런데, 크기가 너무 큽니다!”
“A급은 되어 보이는군요.”
이번에도 역시나 끼어든 에드워드 왕자다. 심각한 얼굴로 화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나는 곧바로 에드워드 왕자가 말한 등급을 부팀장에게 전달했다.
“A급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김 주무관, 다시 협회로 가서…. 뭐?”
다시 협회로 가 협조 헌터 수를 늘리라 할 줄 알았건만, 말을 하다 말고 반문하는 이다. 그에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하.”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뱉은 그가 날 바라본다. 희미한 미소가 어린 모습을 보던 것도 잠시, 부팀장이 입을 벙긋인다. 무의식적으로 벙긋이는 입 모양을 따라 하다 흠칫했다.
…방금 일정이 끝났단 문자를 받았는데, 벌써 협회에 돌아와 있었던 걸까.
아는 사람이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잉여란 입 모양을 만든 부팀장이 크게 한숨을 내뱉는다. 이어 한결 여유롭게 컨트롤 타워를 이끄는 모습에 다시 CCTV를 보았다.
“…….”
언제 어디서 김세현의 모습이 보일지 모르겠다. 빠르게 CCTV를 둘러보며 그를 찾다가 검은 옷을 입은, 익숙한 뒤태의 그를 발견했다.
“하.”
대피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던전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볍다. 마치 마실을 나가는 듯한 모습에 픽 웃음이 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A급 몬스터의 등장에 긴장했는데, 어느새 긴장은 풀린 상태였다.
“…….”
“연하늘?”
“네, 왕자님.”
부름에 답하며 고개를 돌리니 묘한 시선을 보내오는 왕자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아차 싶었다.
“…….”
그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를 것이었다.
김세현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어떻게 전달할까 하다 조용히 모니터를 가리켰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단 한 번 경험하는 것이 이해가 빠를 거다. 말없이 나를 보던 왕자가 다시 모니터를 본다. 나도 다시 포이즌 스네일이 보이는 화면을 지켜보았다.
화면을 본 지 1분이나 흘렀을까, 갑자기 포이즌 스네일 주변에 먼지가 인다. 그와 동시에 왕자의 움직임이 멈춘다. 슬쩍 곁눈질하니 뚫어져라 화면을 바라보는 그가 보였다. 다시 화면을 보자 먼지바람이 제법 덩치를 불린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번엔 얼마나 상황이 지속될까 하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포이즌 스네일이 옆으로 넘어가는 모습에 나는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죠?”
“전투 중이에요.”
“…….”
전투 중이라는 말에 왕자가 미간을 좁힌다. 재차 왕자를 확인하곤 다시 김세현의 전투에 집중했다.
옆으로 완전히 넘어간 포이즌 스네일이 강한 힘을 받은 듯, 여기저기 움푹 파이기 시작한다. 점차 파이는 곳이 많아지는 모습을 보던 중이었다. 쏟아지는 공격을 더는 버티지 못한 듯 포이즌 스네일이 터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놀랍군요.”
역시, 영국 왕자도 김세현의 무용엔 감탄사가 절로 나는 모양이었다. 내가 처리한 게 아니지만, 이렇게 뿌듯한 건 전부 저것을 처리한 사람이 한국 소속 S급 헌터인 김세현이기 때문이었다.
“예, 팀장님. 알겠습니다.”
팀장과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는지 부팀장이 답한다. 포이즌 스네일이 완전히 화면에서 모습을 감추자 그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부팀장님, 화면에서 포이즌 스네일이 사라졌습니다.”
“예. 방금 전해 들었습니다.”
팀장도 현장에서 본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인 뒤, 부팀장이 상황 종료를 알리자 의자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하아.”
“벌써, 끝난 겁니까?”
옆자리의 사람이 다른 이였다면 김세현의 무용담을 바로 늘어놓았을 거다. 하지만 상대는 에드워드 왕자였다. 나는 자랑을 포기하곤 짧게 고개를 주억였다.
“네.”
“…….”
그래, 지금 당장 알리지 않는다고 해도 이제 곧 상황을 알게 될 테니 굳이 내가 말을 전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하늘 씨.”
“네, 부팀장님.”
“잠시 자리 비우겠습니다.”
그가 출입문 쪽으로 눈짓한다. 얼굴색이 좋아 보이지 않는 게 아무래도 화장실에 갈 모양인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세요.”
급한 일은 마무리되었으니 자리를 떠도 상관없었다. 황급히 밖으로 나가는 부팀장을 보던 나는 핸드폰 진동음에 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아.”
조금 전 재난 문자를 보여주려 에드워드 왕자에게 건넸음을 깜박했다. 그가 들고 있는 핸드폰을 보며 손을 내밀었다.
“왕자님, 핸드폰 돌려주시겠어요?”
상황을 보건대 방금 도착한 메시지는 김세현이 보낸 것이 분명했다. 말없이 나를 보던 그가 핸드폰을 건넨다. 전달받자마자 바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
[하, 정말 너무 쉽네요.୧꒰๑͒•͈ㅂ •͈๑͒꒱୨ᵎᵎ✧ 몸도 풀지 못했어요.]
[역시 난 세계 최고 헌턴가 봐요. 하, 정말 너무 쉽네. 쉬워. (*,,ÒㅅÓ,,)و ]
[세현 씨 덕분에 빨리 클리어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쵸? (๑•̀ㅂ•́ )و❤ ]
[네.]
다른 S급 헌터들도 이렇게 빠르게 던전을 클리어하진 못했을 거다. 김세현이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답변하며 연신 그를 추켜세우다가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숨소리에 고개를 틀었다.
“…….”
“계속해요.”
언제 이렇게 가까워졌는지 모르겠다. 바로 코앞에 보이는 왕자를 보곤 황급히 몸을 물렸다.
“…흐음.”
거리가 벌어졌음에도 왕자는 좀처럼 몸을 바로 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의미심장한 얼굴로 나와 핸드폰을 바라보는 그를 보다가 슬그머니 핸드폰을 주머니에 담았다.
지잉-
“계속 메시지 보내도 됩니다.”
“괜찮습니.”
지잉- 지잉-
“다.”
상황 파악을 못 한 핸드폰이 연신 존재감을 발산한다. 무슨 메시지가 오는지 신경 쓰였지만, 그보단 지금은 에드워드 왕자를 보는 게 나을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진동이 울릴 때마다 점차 확신에 차는 에드워드 왕자의 표정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걸렸으니까.
“연하늘.”
“네, 왕자님.”
“제안할.”
지잉- 지잉- 지잉-
“…게 있습니다.”
에드워드 왕자 역시 핸드폰 진동에 말린 듯했다. 진동이 그치고 나서야 말을 잇는 이에 되물었다.
“제, 안요?”
난데없이 무슨 제안을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어진 그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연하늘, 나와 영국에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