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10. 스카우트
저 책상과 의자는 언제쯤 사라질지 모르겠다.
오늘도 역시나 옆자리에 떡하니 자리 잡은 책상과 의자를 보다가 절로 어깨가 축 늘어지는 걸 느꼈다.
“그래도 지난 며칠간 많은 걸 알려 주었으니 오늘은 크게 터치하지 않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견학을 온 것까지는 좋았다. 그래,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기에 거기까진 용납할 수 있었지만, 서류를 열 때마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게 뭐냐 묻는 왕자는 정말이지 피곤했다.
덕분에 그에게 설명해 주느라 밀린 일이 한가득이었다. 이번 주 안으로 다 처리하지 못할 게 뻔했기에, 다음 주엔 정말 처리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일 듯했다.
“하아.”
일감이야 열심히 쳐내면 쳐낼 수 있었지만, 오늘이 문제였다.
어제부턴 내 일이 아닌, 다른 팀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묻던 이를 떠올리곤 한 번 더 한숨이 나왔다.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다면 참 좋을 텐데, 왜 나에게만 계속 질문하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바로 옆자리였고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이 나인지라 친근함을 느끼는 것까진 좋았지만 너무 많은 질문은 곤란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셨어요.”
출근한 한 주무관에게 인사를 건넸다가 슬쩍 내 옆자리를 본 그가 꺼낸 말에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책상 언제 빼려는 건지 모르겠네.”
“일주일간 있을 예정이라고 하니까요.”
“하아, 정말 그놈의 차 좀 그만 마시고 막내가 타 주는 믹스커피 마시고 싶습니다. 아니 무슨 사람이 차만 먹고 사는 것처럼 한 시간에 한 번씩 마실 수 있어요?”
“에드워드 왕자가 차를 좋아하는 편이라고 듣긴 했습니다.”
“어휴, 진짜 홍차 쪽은 거들떠보고 싶지도 않을 지경이에요.”
처음 먹은 홍차 맛은 썩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같이, 한 주무관의 말마따나 한 시간에 한 번씩 차를 마시니 물릴 수밖에 없었다. 에드워드 왕자가 챙겨 온 다른 차도 마셨지만, 역시 우리 입맛엔 믹스커피가 최고였다.
입맛을 쩝쩝 다시는 한 주무관을 보며 정수기 쪽을 가리켰다.
“바로 타 드릴까요?”
“오, 좋지!”
“저도 한 잔 부탁합니다.”
“커피 드시게요?”
커피를 마실 땐 화가 극도로 났을 때밖에 없었다. 혹 부팀장의 기분을 인지하지 못했나 싶어 그를 살피자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아닙니다. 저도, 차 계속 마시는 게 질려서요.”
“바로 타 오겠습니다.”
그런 거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짐을 정리하다 말고 바로 정수기로 가 커피를 타 왔다. 커피를 마시는 두 사람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편해 보이자 덩달아 스트레스 지수가 누그러지는 걸 느꼈다.
“…….”
은은한 믹스커피의 향이 사무실 안을 감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매일 맡던 향이건만, 그 며칠간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르겠다.
“하늘 씨, 뉴스 볼까요?”
“알겠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뉴스를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뉴스 채널을 켜곤 그것을 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 현재 에드워드 왕자의 방한으로 인터넷이 뜨겁습니다.
- 그렇습니다. 특히 왕자의 방한으로 인해 많은 소문이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핫한 키워드를 몇 개 가지고 와봤습니다.
- S급 헌터 스카우트 그리고 문화재 보존 기술 협력이 많이 거론되는 모양이군요.
- 예. 에드워드 왕자가 헌터부에 방문할 때 동행한 이가 이영진 의원이기에 더욱 소문에 힘을 실어주는 듯합니다.
이영진 의원이 동행한 것과 문화재 보존 기술 협력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나는 곧바로 인터넷에 이영진 의원을 검색했다. 그리고, 그의 이력을 확인하곤 어째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 에드워드 왕자가 문화유산을 중요시하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세계 최고의 문화재 보존 기술을 지닌 우리나라에 협력 요청을 하기 위해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말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 그와 관련된 소식은 없습니까?
- 아직까진 없습니다.
이영진 의원이 문화재청에서 오랜 근무를 했다는 건 처음 아는 사실이었다. 뿐이랴, 그 안에서도 제법 높은 자리에 오르기도 했고 말이다. 이력을 살피며 커피를 마실 때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팀장이 보인다. 들어오다 말고 킁킁 향을 맡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
“하, 진짜 믹스커피가 최고지.”
“바로 한 잔 타 올게요.”
“됐어. 내가 타서 가면 되니까.”
“네.”
바로 정수기로 간 팀장이 커피를 타들곤 자리로 간다.
평소완 달리 커피 두 잔을 든 걸 보니 얼마나 믹스커피가 그리웠는지 알 듯했다.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 역시 출근과 함께 커피 두 잔을 가지고 자리로 가는 모습에 결국 참고 있던 웃음이 터졌다.
“음?”
“아뇨, 다들 믹스커피 그리워한 거 같아서요.”
“우리에겐 이게 최고지.”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우리 에드워드 왕자에게 믹스커피나 전도할까요?”
“오, 그것도 나쁘지 않지.”
항상 차를 마시는 왕자가 과연 믹스커피를 마실까 싶다. 하지만 한 번쯤은 노력해볼 만한 거 같기도 했다.
“자, 다들 주목.”
“네, 팀장님.”
팀장의 부름에 의자를 돌려 앉아 그를 보았다.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신 이가 종이컵을 책상 위에 내려놓더니 팀원들을 둘러본다.
“다들 알다시피 이번 주는 에드워드 왕자가 견학을 오는 터라 일에 집중하기 많이 힘들 거야. 힘든 만큼 실수할 확률이 높으니 다들 속도보단 실수하지 않는 쪽으로 일 진행하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든 던전은 생성될 수 있으니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고.”
“예!”
“좋아. 오늘 조회는 이것으로 마치지. 다들 할 일들 해.”
다시 종이컵을 집어 든 팀장이 단번에 잔을 비우곤 씩 웃는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다시 의자를 바로하곤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후우.”
다른 날 같았다면, 일 시작 전 잠시 휴식을 취했겠지만, 이번 주는 아니었다. 왕자가 오면 다시 또 그의 질문이 시작될 것이었다. 시간이 있을 때 하나라도 더 처리해 둬야 나중이 편했다.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며 밀린 일 처리를 하나씩 처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던전이 자주 생성된다 들었는데, 생각보다 조용해요.”
“다른 지역에 비해 던전 생성 빈도가 높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자주 발생하는 건 아닙니다.”
“흐음.”
오늘은 던전 생성에 꽂힌 듯, 아침부터 내리 던전과 관련된 질문을 하기 바빴다. 특히 던전 현장 상황에 관한 질문을 쏟아내는데, 해줄 수 있는 답은 극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현장과 관련된 부분은 오픈해도 된다는 지시가 있었음에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사무직인 연하늘은 CCTV로 현장 상황을 본다고 했지요?”
“네, 그렇습니다.”
“CCTV로 볼 수 있는 화면은 어떤 게 있죠?”
“던전 주변 현황을 살핍니다. 사람들의 대피 방향을 확인하고, 또 던전 규모가 커질 때 CCTV로 현장에 나간 헌터들에게 도움을 줍니다.”
“던전이 커지면 카메라는 꺼질 텐데?”
“꺼지기 전까지 파악하는 게 제 임무입니다.”
“…위성을 사용하면 더 편한 거 아닌가?”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물론, 여기 있는 팀원들 모두가 아는 사항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서 마냥 그것만 원한다며 손가락을 빨 순 없었다.
“하긴, 위성이라면 감춰야 할 곳도 보이긴 하겠어요.”
쉬이 답변하지 못하자 에드워드 왕자가 지레짐작하며 자문자답한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CCTV 화면 지금 볼 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바로 서울시 서버에 접속한 뒤 빨간 불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서울시 전체 지도를 보여 주었다.
“이게 전부 CCTV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100m에 한 대씩은 의무적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그 범위를 좀 더 좁히자는 법안이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던전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겠어요.”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언제 어디서 던전이 생길지 모르기에 좀 더 촘촘히 CCTV가 설치되는 건 반길 일이었다. 물론, 사생활 침해라는 말로 반대 의견을 내는 이들이 많아 그 법안이 계속해서 표류 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계속해서 CCTV에 관심을 보이는 에드워드 왕자에게 그것을 보여 주며 설명하던 중이었다. 가슴 포켓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이 울리자 양해를 구하고 그것을 확인했다.
[| ᐕ)੭*⁾⁾]
“…….”
며칠 연락이 없다 싶었는데, 하필 이때 메시지가 올 줄은 몰랐다. 이모티콘만 달랑 보낸 김세현의 문자를 보다가 이어 도착한 메시지를 보곤 입을 꾹 다물었다.
[(´ᴗ ·̫ ᴗ`)˚₊·—̳͟͞͞ ♡]
말없이 하트를 날리는 건 또 뭘까.
무슨 의도인지 파악하기 위해 뚫어져라 메시지를 보다가 재차 도착한 메시지에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ʚ(*´꒳`*)ɞ° 일정 끝났어요]
[(ง ᵕᴗᵕ)ว ᕕ( ᐛ )ᕗ (ง ˆ̑ ‵̮ ˆ̑)ว゛]
“풉.”
정말 저런 이모티콘은 어디서 얻은 건지 모르겠다. 춤을 추는 이모티콘을 보며 웃다가 시선을 느끼곤 옆을 바라보았다.
“아.”
“…애인?”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가리킨 왕자가 피식 웃으며 꺼낸 말에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그냥, 그냥 재미난 메시지가 와서요.”
애인은 무슨, 그저 김세현의 메시지를 보고 웃었을 뿐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애인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고개를 저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묘한 미소를 지은 왕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침묵했다.
“흐음, 그래요.”
“…….”
아니라는 걸 상대에게 알렸건만, 어째 알리지 않은 것보다 못한 기분이다. 계속해서 도착하는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고 바지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었다.
“확인해도 됩니다.”
“아니에요. 나중에 봐도 됩니다.”
그래, 조금 전 핸드폰을 꺼내 확인한 건 그저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지, 메시지를 주고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좋아요. 그럼 계속 CCTV 확인합시다.”
“네, 왕자….”
Rrrr- Rrrr-
CCTV를 보잔 왕자의 말에 답하던 것도 잠시였다.
사무실을 가득 채운 벨소리가 요란스럽다. 나는 허리를 곧추세우며 긴장했다.
“이 전화벨은 무슨 벨이죠?”
“긴급 전화입니다.”
“긴급 전화?”
왕자의 질문에 답한 뒤 김 주무관이 긴급 전화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울시 헌터부입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도록 하죠!”
“…….”
마지막 던전이 생성되었던 건 불과 지난주였다. 그것도 바로 옆자리의 왕자가 벙커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던 그 던전 말이다.
던전이 생성되었다는 말에 사무실을 호위 중이던 이들 역시 술렁이기 시작한다.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다가 이내 통화 중인 김 주무관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잠깐 사이에 통화를 마친 듯 김 주무관이 심각한 얼굴로 사무실 안을 둘러본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얼굴에 잔뜩 긴장했다.
“O-2 구역 늘푸른공원에 규모 C급, 난이도 B급 던전이 생성되었다고 합니다!”
“뭐? 난이도 B급? 다들 준비해!”
“예!”
던전 등급을 전해 들은 팀장이 황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와 함께 한 주무관 또한 자리서 일어나 곧바로 사무실을 뛰쳐나간다. 김 주무관이 서랍에서 수기 협조문을 꺼내 작성하는 모습을 보곤 재차 CCTV 지도를 띄워 늘푸른 공원 주변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