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49)화 (49/246)

47화

10. 스카우트

“저는 협회 협조금 관련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협회 협조금?”

“네.”

혹 협회 협조금이란 말을 알아듣지 못한 걸까?

영어로 설명해야 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진땀을 흘리던 참이었다. 능숙하게 흘러나온 말에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죠?”

자리에 앉자마자 이런 질문이 들어올 줄은 몰랐다. 슬쩍 부팀장 쪽을 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왕자에게 설명했다.

“말처럼 협회가 협조할 때마다 책정되는 금액이 있습니다. 이 금액은 헌터 등급, 그리고 던전 등급에 따라 나뉘며 이 금액을 계산하여 주기적으로 협회로 금액을 보내고 있고요.”

“연하늘의 직위는?”

이번엔 직위를 묻는다. 계속되는 질문에 당연히 협회 관련된 질문을 할 줄 알았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반 박자 늦게 답했다.

“9급 공무원입니다.”

“9급.”

“…….”

조금 전과는 달리 무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모습이다. 괜히 그 모습에 내 직위에 문제가 있나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직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는 그가 다음 말을 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보통 돈은 높은 직위의 사람이 맡지 않나?”

“그건….”

실은 나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대개 돈을 계산하는 건 갓 입사한 사람보단 다른 이들이 한다 여겼으니까.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제대로 된 답을 돌려줘야 했다. 하지만 아는 게 없으니 답변하기란 무리였다. 이리저리 눈을 굴릴 때였다.

“사무직을 보는 사람이 적어 그렇습니다. 저와 연 주무관을 제외하곤 모두 현장에 나가니까요.”

“아하.”

“또한, 저희는 직위보단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줍니다. 연 주무관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기에 협조금을 담당하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

그저 왕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것일 뿐이지만, 이보다 더 감동적일 수가 없다. 부팀장이 나를 이렇게까지 후하게 쳐주고 있단 사실에 가슴 가득 피어오른 뭉클함이 온몸으로 번진다. 입을 우그러뜨리며 감정을 누른 채 이쪽을 보며 슬쩍 눈웃음 짓는 그에게 눈을 끔벅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에드워드 왕자를 보자 물끄러미 시선을 마주해 온다. 나는 조용히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협조금을 받는 헌터는 대개 어떤 구조로 돈을 받아 가죠?”

“이곳에서 세금을 뗀 금액이 협회에 입금이 되고, 협회에서 일정액 수수료를 떼고 받는다 알고 있습니다.”

“영국과 다를 바 없군요.”

영국도 우리나라처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게 신기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흠, 흠!”

에드워드 왕자와 대화를 나누던 와중 들려온 헛기침 소리다. 결례가 되지 않도록 보지 않는 척 조심스럽게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

하필 이영진 의원이 낸 소리일 줄이야.

팀장과 함께 원탁에 가 앉은 이영진 의원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에드워드 왕자를 바라보았다. 다른 이도 아닌 이영진 의원이 짤막한 헛기침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건 전부 눈앞의 왕자 덕분이었다.

“…….”

이래서 사람들이 권력을 찾는 걸까?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괜히 에드워드 왕자를 등에 업은 기분이다. 나는 슬그머니 입가를 끌어 올렸다.

“크흠!”

“허흠!”

옆자리와 맞은 편 자리에서 격한 헛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그쪽을 보자 어느새 팀원들 모두가 가림막 아래로 사라진 걸 발견했다.

“크, 크흣!”

“…….”

뭔가 싶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웃음이 터진 모양인 듯했다. 옆자리의 김 주무관의 어깨가 들썩이는 모습을 보다 다시 몸을 틀어 에드워드 왕자를 보았다.

“…….”

왕자는 또 왜 이런 시선을 보내는 걸까.

무척이나 묘한 시선을 보내오는 왕자를 발견하곤 슬그머니 몸을 바로 했다.

왕자와 대화를 나누던 와중 갑자기 다른 곳을 봐서 기분이 안 좋아진 건 아닐까 눈치가 보인다. 부산스럽게 눈을 움직일 때였다. 왕자의 부름에 바로 답했다.

“네, 왕자님.”

“그런데 왜 헌터부는 이 좁은 공간에 있는 거죠?”

“아, 그건….”

솔직하게 설명하려면 할 수 있었지만, 이 자리엔 다른 사람도 아닌 이영진 의원이 있었다. 여러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숙지했으나 이 질문과 비슷한 질문은 보지 못했다. 뿐이랴, 지침에도 적힌 것이 없었고 말이다. 힐끔 팀장을 보니 그가 고개를 젓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다시 왕자를 보았다.

“연하늘?”

고개를 갸웃하는 왕자다. 어서 답하지 않고 뭐하냔 제스처에 곧바로 답했다.

“이 부분은 제 설명보단 팀장님이 설명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그래, 하지 말라고 할 땐 팀장이나 부팀장에게 말을 돌리는 게 옳았다.

“좋아요. 그럼 한국은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는지 보여 봐요.”

이는 지침에 있었다.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곤 바로 협조금 관련 페이지 중 공개해도 좋단 허락이 떨어진 페이지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매년 나라에서 헌터 협조금 책자를 각 지역 헌터부로 배포합니다. 헌터부에서는 책자를 참고하여 이 사이트에 입력합니다.”

“그럼 협회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한가?”

“네. 그렇습니다.”

“편리하군요. 영국에서도 한 번 검토해볼 만한 사안이에요.”

양측이 접속할 수 있는 사이트란 말에 왕자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턱을 만지작거리며 감탄하는 모습에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그 감정은 잠시였다.

“…….”

왕자가 감탄하는 것처럼 상호 간의 정보가 빠르게 오갈 수 있도록 개발된 것이 바로 이 사이트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협회 측에서는 단 한 번도 이 서버에 접속한 적 없었다. 그래, 매번 수기 협조문을 가지고 오라 했었지.

“의원님, 커피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이영진 의원에게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커피란 말을 들으니 이보다 커피가 당길 순 없었다. 군침을 삼킬 때였다.

“에드워드 왕자, 저는 일정이 있는 터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앞으로의 안내는 여기 염기태 팀장이 맡을 겁니다.”

너무도 빠른 퇴장이다.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자리서 일어난 이영진 의원을 볼 때였다. 에드워드 왕자의 대답에 입을 다물었다.

“그래요.”

“…….”

이보다 더 건조하고 담백할 수가 있나 싶을 지경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건조한 말과는 달리 에드워드 왕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점이었다. 나는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가온 이영진 의원에게 왕자가 손을 내민다. 웃으며 악수한 그가 이내 자리를 뜬다. 사무실 출입문을 나서기 전 이영진 의원이 이쪽을 바라본다. 정확히 날 바라보는 시선에 절로 손에 힘이 실렸다.

칭찬상을 받으러 갔을 때도 저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무척이나 날이 선 눈빛이 이윽고 문 너머로 모습을 감춘다. 팀장이 배웅하러 가는지 뒤따라 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연하늘.”

“네.”

“여기 사람들은 이영진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까?”

“…어, 음.”

이렇게 정곡을 찌를 줄은 몰랐다. 당혹감에 쉬이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뿐이랴, 괜스레 등에 땀이 흐르는 기분에 어색한 웃음이 절로 났다.

“…흐음.”

말없이 날 보던 에드워드 왕자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음을 낸다. 그에 계속해서 어색한 미소만 짓던 중이었다. 에드워드 왕자가 손뼉을 치자 다가온 이를 바라보았다.

“차 준비해.”

대답 대신 허리를 숙인 그가 원탁에 007 가방을 올린다. 가방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찻잔과 병에 담긴 검은 무언가를 꺼낸다. 유심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어 다른 이가 가방에서 꺼내는 투명한 액체를 지켜보았다.

“얼 그레이 마셔봤어요?”

“그, 아뇨.”

홍차 쪽은 문외한이었다. 왕자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말없이 나를 보던 왕자는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늘 차는 얼 그레이로 합니다.”

“그, 예.”

“예, 알겠습니다.”

마치 얼 그레이가 아닌 다른 차는 마시면 안 된다는 듯한 어조다. 반 박자 늦게 답하는 팀원들 또한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은 듯 보였다.

어느새 원탁 위엔 못 보던 전기 포트까지 올라온 상황이다. 어느새 찻잔도 팀원 수에 맞춰 놓여 있었고 말이다.

“…….”

굳이 포트가 필요할까 싶었지만, 현장서 조달하는 게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재 이곳을 찾은 이는 다름 아닌 영국 황실의 왕위계승자인 에드워드 왕자였으니 말이다.

준비성이 이보다 철저할 수 있나 싶다. 속으로 감탄하던 중 왕자가 다시 자리에 앉는다. 뒤따라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찻잔 하나를 왕자에게 건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다들 한 잔씩 하고 일해요.”

“감사합니다, 왕자님.”

“잘 마시겠습니다.”

잔을 건네받은 이들이 한마디씩 말을 얹는다. 마지막으로 차를 받은 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잘 마시겠습니다, 왕자님.”

뜻하지 않은 시각에, 그것도 요란스럽게 찾아온 왕자가 당혹스러웠지만, 이것 또한 잠시 겪고 지나갈 일이었다. 그래, 일주일이라고는 했지만, 헌터부 상황을 어느 정도 살피고 나면 왕자도 관심을 끄고 다른 일정을 잡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평소완 달리 코를 스치는 향이 너무도 낯설다. 나는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며 에드워드 왕자를 따라 차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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