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10. 스카우트
“…와.”
“뭔데 그런 반응이야?”
지난 금요일과는 또 다른 반응이다. 좀처럼 밖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는 박 주무관의 모습에 절로 호기심이 샘솟는다. 옆자리의 김 주무관 역시 자리를 박차고 그쪽으로 가자 호기심은 배가 되었다.
“…허?”
다른 반응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건만, 김 주무관 역시 박 주무관과 같은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도대체 뭔데 그래?”
“팀장님, 어서 와 보셔야겠습니다.”
“거참.”
설명하는 대신 와 보라며 손짓하기 바쁘다. 그것도 바깥을 계속 주시하며 말이다. 헛바람을 뱉은 팀장이 창가로 간다. 나는 이번엔 다른 말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그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부팀장.”
“예, 팀장님.”
“와서 한 번 봐 봐.”
이번엔 부팀장까지 호출한다. 부팀장까지 이동하는 모습에 괜히 엉덩이가 들썩인다. 직접 보고 싶었지만, 가서 보는 건 옳지 않았다. 혹여 이쪽을 촬영 중인 이들이 있다면 지금껏 몸을 사린 보람이 사라질 테니까.
나는 창밖을 둘러보던 부팀장이 몸을 돌려 이쪽을 바라보자 들썩이던 몸을 바로 했다.
“팀장님과 저는 바로 밖으로 나가 보겠습니다. 다들 자리 지키고 있도록 해요.”
“거참, 올 거면 그냥 오면 되지, 왜 저리 거창해!”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럴 거면 좀 언질이라도 주든가!”
“…….”
부팀장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창밖을 보던 이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다급히 자리로 돌아가 윗옷을 챙긴 팀장과 부팀장이 사무실을 나선다. 출입문이 닫히자 자리로 돌아온 김 주무관에게 물었다.
“어떤 상황이에요?”
“말도 마. 지금 레드카펫 깔리고 난리도 아냐.”
“레드카펫이라니?”
“악단까지 온 거 같습니다.”
악, 단?
도대체 어떤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 생방송이 진행 중인 사이트를 둘러보았다.
“저 채널이네!”
내 자리를 보고 있었는지 김 주무관이 한 채널을 가리킨다. 레드카펫과 함께 북을 맨 군인의 모습이 화면에 보이자 바로 그것을 켰다.
“뭐 방송해?”
“예. 얼른 생방송 채널 접속해 보세요!”
“…….”
언제 에드워드 왕자 일행이 올지 모르기에 소리는 켤 수 없었다. 사무실 앞에 깔린 레드카펫 주위로 군악단들이 서 있음에 말을 잃었다.
“차라리 금요일이 나은 것 같기도 하고요.”
“금요일보다 기자들 더 왔어.”
박 주무관의 말마따나 지금 이 상황을 보니 금요일이 나았던 것 같기도 했다. 군악단에 기자들까지 가득한 모습에 말을 잇지 못하다가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며 길가를 비추자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오는 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왜 우리한텐 말없이 진행하는 건데?”
“…이영진 의원이 벌인 일 아닐까요?”
“그게 정말이라면 앞으로 이영진은 나도 완전히 무시하련다!”
정말 이영진 의원이 벌인 일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정말 그런 거라면 이 이상 좋게 보이진 않을 듯했다. 이미 안 좋았던 이영진 의원의 이미지가 바닥을 친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화면을 주시했다.
“어, 저기 차 옵니다!”
박 주무관의 말마따나 화면에 검은 차량이 모습을 보인다. 앞뒤로 경호 차량에게 감싸인 채 이동 중인 의전차량과 함께 앞서 오던 경호 차량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이들이 내려 주변을 살피는 걸 보고 있자니 영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이들이 다른 곳도 아닌 이곳으로 오고 있다니. 도통 현실감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경호단도 함께한 모양이네요.”
“…설마 저들 전부가 사무실에 들어온다는 건 아니겠지?”
“에이, 이 조그만 사무실에 다 들어오지도 못합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저들 중 일부는 보좌 명목으로 사무실에 오겠지.”
“…….”
이미 금요일에도 한 차례 사람들이 들어온 걸 확인하긴 했지만, 이렇게 화면으로 보고 있자니 괜히 기가 눌리는 것만 같다. 느리게 달리던 의전차량이 어느덧 레드카펫 앞에 선다.
차가 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 있던 경호원 중 한 사람이 차 뒷문을 연다. 문 너머로 차 안이 보이는 것도 잠시, 차에서 내리는 에드워드 왕자를 보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와.”
“진짜 왕자는 왕자네.”
“금요일에도 봤지만, 정말 비율 장난 아니네요.”
키가 그리 큰 편이 아님에도 커 보일 수 있는 건 전부 왕자의 비율 때문일 거다. 머리를 말끔히 뒤로 넘긴 채 간편한 옷차림을 한 그를 보며 연신 감탄하던 중이었다. 레드카펫을 지나 건물 앞에 당도한 이가 누군가와 악수를 하려는 듯 손을 내민다. 나는 상대 쪽을 바라보았다.
“아.”
“또 왔네.”
“오늘은 김한용 의원 안 오셨나?”
설마 했는데, 또 이영진이다.
절로 일그러지는 얼굴에 힘을 준 채 이영진 의원 옆에 서 있던 팀장과 부팀장을 발견했다.
“이제 곧 올라올 거 같으니 다들 화면 작게 띄워.”
“네.”
“알겠습니다!”
한 주무관의 말에 모니터 우측 하단에 조그만 화면을 띄워 계속해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어, 들어온다!”
무언가 팀장과 말을 나누는가 싶던 에드워드 왕자가 곧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그 뒤를 따르는 일행이 얼마나 되는지 헤아리다 이제 정말 사무실에 당도할 거란 사실에 영상을 종료했다.
“후우, 이거 긴장되네.”
“견학이니 뭐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잠깐 보고 가겠죠.”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한 주무관의 말마따나 헌터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피고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초조한 마음을 안은 채 계속해서 출입문 쪽으로 온 신경을 집중시키던 것도 잠시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는지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이어 문이 열리며 안으로 들이닥친 검은 정장의 이들을 발견했다.
“…….”
먼저 자리를 지키는 건 좋았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들어올 줄은 몰랐다. 열 명은 되어 보이는 이들이 창가와 반대편 벽 쪽에 서는데, 괜히 기가 눌린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자니 재차 복도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나는 자리서 일어났다.
“어서 드시죠.”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팀장이 에드워드 왕자로 추정되는 이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을 건넨다. 몸을 바로 한 나는 이윽고 모습을 보인 왕자와 함께 이영진 의원까지 안으로 들어오자 표정 관리에 힘썼다.
“지난주에도 봤지만, 역시나 작군요.”
“…….”
역시 작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 에드워드 왕자가 미리 사무실 안에 들어와 있던 이에게 손짓하자 문과 가장 가까이에 서 있던 남자가 다가가 허리를 숙인다. 에드워드 왕자가 귓속말로 뭐라 말하니 남자가 곧바로 사무실을 나간다. 활짝 열린 출입문 쪽을 볼 때였다.
팀장과 부팀장의 손짓에 지난주처럼 다른 이들과 함께 일렬로 섰다.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견학합니다. 한국 헌터부가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꾸밈없이 보여 주도록 해요.”
“예.”
오늘도 역시나 말투가 참 그렇다. 하지만 그걸 지적할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팀원들과 악수를 나눈 에드워드 왕자가 마지막으로 서 있던 나를 바라본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의 행동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피식 웃음을 터뜨린 그가 손을 내밀자 바로 그 손을 맞잡았다.
“잘 부탁해요, 천사.”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디서 천사 소리를 들은 건지 모르겠다. 나는 잘 부탁한다는 말을 꺼내곤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내 자리는 어딥니까.”
“자리, 까지는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견학이라고 하긴 했지만, 사무실에 자리까지 만들 만큼 오래 머물 거라는 생각을 한 사람은 이곳에 없을 것이었다.
“그럴 것 같아 방금 준비시켰습니다. 그래, 저곳 좋겠군요.”
혹 불쾌해하면 어쩌나 싶었건만, 에드워드 왕자의 표정은 그야말로 산뜻했다. 안도하며 가리키는 곳을 봤건만, 왕자는 다른 곳도 아닌, 내 바로 옆의 빈자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절로 파르르 입가가 떨려왔다.
다른 곳도 책상을 놓을 자리가 많건만, 하필 왜 그곳을 택한 건지 모르겠다. 나는 팀장을 보며 SOS를 속으로 외쳤다.
“그곳 말고 저쪽은 어떻겠습니까?”
눈빛을 읽었는지 팀장이 바로 본인 자리 옆의 빈 곳을 가리킨다. 제발 저쪽으로 가주었으면 좋겠다.
“난 저기가 좋습니다.”
“…….”
하지만 그건 내 바람일 뿐이었다.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왕자님이 편하실 대로 자리 잡으셔도 됩니다.”
침묵하던 이영진 의원이 왕자의 말에 힘을 싣는다.
이영진 의원의 알랑방귀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왕자다. 저 표정을 보니 다른 곳에 자리를 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침음이 입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끔 안간힘을 썼다.
“…….”
방금 에드워드 왕자가 왔는데, 왜 이리 피곤한 건지 모르겠다. 나오는 한숨을 집어삼키던 참이었다. 복도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무언가가 모습을 보이자 입을 벌렸다.
“이쪽.”
왕자의 손짓에 바로 내 옆자리에 책상이 놓인다. 나는 자리로 간 왕자가 의자에 앉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옆자리 주인이 누구죠?”
“접니다.”
왕자의 물음에 반 박자 늦게 손을 들었다. 물끄러미 나를 보던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자리를 가리키자 눈을 끔벅였다.
“일하는 거 보고 싶은데.”
“아.”
“어서 가 봐. 다들 자리로 돌아가고.”
“예!”
팀장의 말에 서 있던 이들 모두가 자리로 돌아간다. 김 주무관과 함께 자리로 갔다가 옆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을 느끼며 착석했다.
“이름이?”
“연하늘입니다.”
“그래요. 연하늘은 무슨 일을 하죠?”
“…….”
이렇게 바로 이름을 부를 줄은 몰랐다. 생각지도 못한 호칭에 당황했지만, 말없이 답을 기다리는 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