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46)화 (46/246)

44화

09. 방문

“형?”

잘생겼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잘생긴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매번 이렇게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 또한 없을 테고 말이다.

“…하늘 형?”

“아, 네.”

사람을 세워 놓고 혼자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모르겠다. 나는 새빨갛게 달아올랐을 것이 분명한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

“형.”

“네, 세현 씨.”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 한 번 더 열이 오르는 것만 같다. 이번에도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답해요, 알았죠?”

“네.”

뭘 물어보려고 이렇게까지 다짐을 받는 건지 모르겠다.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김세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형 좋다는 사람 많았죠?”

날 좋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런 말을 들어 본 적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없었어요.”

“거짓말!”

“정말이에요.”

거짓 없이 답하라고 해서 답했건만, 이런 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말이 끝나게 무섭게 말이다.

“그럼 사귀었던 사람은요?”

“…….”

“있었어요?”

갑자기 이런 걸 묻는 저의가 궁금했다. 그것도 심각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없었지만, 있었냐 되묻는 김세현을 보자니 괜히 있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건 영 별로였기에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하긴, 이런데 가만히 뒀을 리가 없지.”

“음.”

역시, 침묵하길 잘한 것 같다.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모태솔로였다는 사실 정도는 숨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속으로 안도하던 중이었다. 나는 이어진 김세현의 말에 침묵했다.

“뭐, 괜찮아요. 앞으론 없을 테니까.”

“…네?”

다른 말도 아니고, 앞으로 쭉 사귈 사람이 없을 거라니.

“형?”

“…….”

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세현을 보며 설렜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침묵을 유지했다.

“에이, 설마. 그렇게 받아들였다고?”

“…….”

“하, 진짜 형. 나 형 집에 들어가도 돼요?”

“안 돼요.”

“그러면 여기서 해도 돼요? 나 막 할 건데?”

“안 돼요.”

뭐가 되었건 간에 안 되었다.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답하자 기막혀하던 그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자리한다.

“역시, 이래야 형이지.”

“…….”

“형, 나 이제 시간이 별로 없어서. 커피 한 잔만 줘요.”

“…….”

정말 커피를 타 달라는 건지, 아니면 들어오기 위해 은근슬쩍 다른 말을 흘리는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조금 전의 악담을 취소하기 전까지는 결코 그 어떤 말도 들어줄 의향 없었고 말이다.

“아, 방금 한 말 취소할게요! 그럼 됐죠? 형은 앞으로 엄청난 사람 만날 거예요! 세계 최고 남자, 그런 사람으로!”

마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바로 말을 철회한다. 나는 퉁명스레 답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철회하지 않았다면 시간이 없다며 재촉해도 커피를 내어 주지 않았을 거다. 집으로 돌아가 꽃다발을 식탁 위에 내려놓곤 커피 탈 준비를 했다.

갑자기 찾아온 것도 찾아온 거지만, 오는 길에 이렇게 꽃다발을 챙겨 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간 보았던 꽃다발과 꽃바구니와 비교해 봐도 더욱 풍성하고 알이 큰 것이 자꾸만 시선이 간다. 커피를 준비하는 도중 계속해서 꽃다발을 보다가 나는 순간 뇌리를 스친 생각에 멈칫했다.

“…음?”

잠깐.

그러고 보니 조금 전 김세현이 한 말, 좀 이상하지 않았었나?

다른 것도 아니고 세계 최고 남자를 만날 거라니.

“…….”

예전과는 달리 남녀 막론할 것 없이 사귀고 결혼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는 하지만, 좋은 사람이 아닌 세계 최고의 남자를 만나게 될 거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김세현에게 말이다.

“에이.”

지금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은 그저 나 혼자 너무 앞서간 생각일 거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닌 김세현이 나에게 좋은 감정이 있어 그런 말을 했을 린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세현은 나완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S급 헌터가 말단 공무원에게 마음을 준다는 건 할리킹 소설에서나 가능함 직했다.

커피를 젓다 멈춘 손을 움직여 준비를 마치곤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마당을 둘러보고 있었던 듯, 가로등 쪽의 담벼락 쪽으로 향해 서 있는 그다.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가 나에게 마음이 없는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해야 할 듯했다. 저렇게 완벽한 사람 주변엔 그에 준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눈에 찰 리 없었다.

“…….”

한 가지 더 추가되었을 뿐인데, 왜 이리 목 안이 까끌거리는지 모르겠다. 기분도 좀 그렇고 말이다. 나는 마음을 다독이곤 그를 불렀다.

“세현 씨.”

“아, 형.”

“…….”

부름에 몸을 튼 그가 환히 웃으며 다가온다. 그가 손을 내밀자 커피를 건넸다.

“하, 맛있다. 하늘 형이 타 준 커피가 최고예요.”

“그냥 믹스커피일 뿐인데요.”

“뭐, 그렇다고 쳐요. 근데 하늘 형.”

“네.”

단번에 커피를 마신 그가 빤히 날 바라본다. 이럴 때마다 김세현은 항상 한 잔 더를 외쳤었다. 끓인 물이 남아 있기에 한 잔 정도는 더 타 줄 수 있을 듯했다.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발에 힘을 실었다.

“다음에 정식으로 초대할 땐 우리 여기서 고기 구워 먹어요.”

“그래요.”

“그리고 돗자리도 펴서 같이 누워서 하늘도 보고.”

“네.”

“누워 있기다 보면 잠도 솔솔 오겠다, 그쵸?”

“그럴 거예요.”

배가 든든한 상황서 누우면 잠이 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땐 잠도 자지만, 소화도 할 겸 같이 운동도 해요. 내가 단시간에 소화 가능한 거 그때 알려 줄게요.”

“그래요.”

단시간에 소화가 가능한 운동이 뭐가 있을까 싶지만, 알아 두면 나쁘진 않을 거 같다. 고개를 끄덕이자 무언가 엄청 할 말이 많아 보이던 그가 손을 내민다. 시선을 내려 그 손을 바라보았다.

“약속해요.”

다른 것도 아니고 새끼손가락을 내밀 줄은 몰랐다. 이 나이에 손가락을 걸라고 하다니. 나는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 채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나중에 다른 말 하기 없기에요.”

“네.”

“후우. 그럼 나 이만 가 볼게요. 아, 그리고 한동안 일정이 있어서 사무실엔 못 갈 거예요.”

“…그래요.”

그러지 않아도 에드워드 왕자가 월요일부터 와 있겠다고 한 터라 김세현이 자리를 비우는 건 나쁘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김세현에게도 에드워드 왕자가 와 있을 거란 말을 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자기 새끼손가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이를 불렀다.

“세현 씨.”

“네, 형.”

“월요일부터 에드워드 왕자가 사무실에 오기로 했어요.”

“…뭐라고요?”

“우리나라 헌터부가 어떤 일을 하는지 견학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말인데….”

김세현이 헌터부에 오게 된다면 다시 에드워드 왕자와 맞닥뜨리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에드워드 왕자가 김세현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손을 뻗을지도 몰랐다. 다른 곳도 아닌, 헌터부에서 말이다.

“흠.”

팔짱을 낀 김세현이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이내 머릿속이 정리되었는지 다시 웃는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내가 에드워드 왕자 만나는 거 싫어요?”

“…네.”

“뭐, 어쩔 수 없네. 형이 싫다면 만나지 말아야지.”

“…….”

내가 싫다 했다고 이렇게 빨리 만나지 않겠다는 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당황하며 그를 보았다.

“에드워드 왕자 만나지 않는 대신, 형도 약속 하나 해요. 에드워드 왕자가 막 들러붙어도 마음 주지 않겠다고.”

“…그럴게요.”

내 마음을 단속하는 듯한 말을 들으니 잠시나마 잠잠했던 마음이 재차 출렁이는 것만 같다. 세계 최고의 남자와 함께 조금 전 발언을 되새김질하며 그를 보았다.

“그럼 에드워드 왕자가 가면 연락해 줘요. 일정 없으면 협회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아, 형 문자는 늦어도 확인할 거니까 먼저 문자 줘도 되고요.”

“네, 그럴게요.”

나 또한 바라던 일이었다. 냉큼 김세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흐뭇함이 가득 묻어나는 눈빛을 보내던 그가 이만 가 보겠다며 대문을 나서자 따라 나갔다.

“조심히 가세요.”

“형도 항상 조심, 또 조심하고요.”

“그럴게요.”

“아무나 막 집에 들이지 말고!”

“네.”

“누가 뭐 도와달라고 해도 도와주러 가지 말고!”

“…….”

“요즘 시대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요? 도와주러 갔다가 신장 떼여요!”

“그, 노력은 해 볼게요.”

괴담일 뿐인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노력은 해 본다는 말에 답답했는지 한쪽 발을 바닥에 쿵쿵 내디디며 불만을 내보인다.

나는 웃으며 다시 답했다.

“하하, 네. 그럴게요.”

“…영상통화 자주 할게요. 그리고 메시지도 자주 보낼 테니까 꼭 확인해요.”

이보다 더 자주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말은 아닐 거다. 고개를 끄덕이자 망설이던 김세현이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하, 진짜. 형!”

“네.”

몇 걸음 가다 말고 다시 돌아온 김세현이 도로 돌아와 앞에 선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것이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나는 그가 입을 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형, 그러지 말고 지금 운동 한번 할래요?”

“아뇨.”

지금은 운동할 생각이 없었다. 시간이 없다고 한 만큼 짧은 운동을 하겠다는 말이겠지만, 일정이 있는 김세현을 붙잡고 있을 생각도 없었다.

“…….”

단호한 대답에 거친 숨을 몰아쉬던 김세현이 멈칫한다. 아쉬움과 미련이 넘치는 눈동자를 보며 재차 그를 떠밀었다.

“어서 가세요. 일정 있으시다면서요.”

머뭇대던 그가 조금 전보다 더욱 강렬한 미련을 담은 눈망울로 쳐다본다. 하지만 나는 그를 못 본 체하며 계속 가 보라 종용했다.

“…그럼 갈게요.”

“네, 조심히 가세요.”

“나 진짜 가요?”

“네.”

“진짜 진짜 가요?”

“어서 가세요.”

“…가요.”

일정이 있어 가 보라는 것일 뿐인데, 축 늘어진 어깨와 눈, 그리고 슬쩍 내려간 입꼬리를 보니 마치 가기 싫은 걸 억지로 떠미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일정은 지켜야 했다. 나는 한 번 더 그에게 말을 전했다.

“어서 가 보세요. 이러다 일정 늦겠어요.”

“이따 연락할게요.”

“네.”

이번엔 정말 가려는 모양이다. 제자리서 머뭇대던 그가 드디어 발걸음을 뗀다. 조금 전보다 더욱 느린 발걸음으로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김세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언제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했는데, 막상 김세현이 골목을 빠져나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완전히 그의 모습이 사라졌음에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작게 한숨을 뱉으며 뒤돌아섰다.

“…….”

생각지도 못한 방문에 놀라 제대로 대응했나 싶었지만, 그래도 며칠 만에 김세현을 보니 제법 기분이 좋다.

다시 집으로 들어간 뒤 조금 전 김세현에게 커피를 타 주고 남은 뜨거운 물을 다시 끓여 커피 한 잔을 더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얼음을 띄워 그것을 들고 방으로 향했다.

“시원하네.”

김세현이 남긴 말 때문일까, 같은 믹스커피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이상하게 맛이 좋다.

기분 좋게 커피를 마시며 곧바로 보던 예능 프로그램을 재생하곤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운 휴일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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