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45)화 (45/246)

43화

09. 방문

“흐으.”

정말 얼마 만에 맛보는 꿀맛 같은 휴식인지 모르겠다. 그것도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말이다. 침대에 누워 늘어지라 기지개를 켠 뒤 10시가 넘은 걸 확인하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제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에드워드 왕자가 돌아가고 중요 서류들을 모아 금고에 넣고, 또 중요 파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정리하느라 다른 날보다 퇴근이 늦어졌지만, 그 누구도 불만은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주말 내내 쉬는 건 정말 오래간만이었으니 말이다.

“…이제야 공무원이 된 기분이 좀 나네.”

공무원이 된 지는 제법 시간이 흘렀건만, 이제야 공무원이 되었다는 실감이 난다니 참으로 웃기다.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한 번 더 기지개를 켜곤 자리서 일어났다.

게으르게 누워 있는 것도 좋았지만, 배는 채워야 했다. 부엌으로 가 음식을 찾은 나는 김치밖에 없단 사실에 절로 한숨을 뱉었다.

오늘은 집에서 푹 쉬려 했는데, 아무래도 마트에 다녀와야 할 듯했다. 허기진 배를 만지작거리며 욕실로 가 대충 씻고 나와 다시 방으로 갔다.

아직 머리를 감지 않은 터라 모자를 쓰고 얼른 다녀와야겠다.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뒤 마지막으로 흰색 캡 모자를 쓰고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 집을 나섰다.

“…날씨 좋네.”

미세먼지 하나 보이지 않는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을 보고 있자니 리프레시를 해야만 할 듯했다. 이대로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시간을 좀 보낼까?

“후우.”

하지만 그 생각은 잠시였다. 되도록 혼자 다니지 말라던 이들의 말이 떠오르자 흔들리는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굳이 오늘이 아니더라도 오늘처럼 좋은 날은 다음에 또 찾아올 것이었다. 그래, 괜히 혼자 다니다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마트에 도착해 장을 본 뒤 곧바로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나는 재차 눈에 들어온 하늘에 다시 마음이 술렁이는 걸 인지했다.

“…진짜 날씨 너무 좋다.”

하면 안 된다 생각하니 나가고 싶단 충동이 거세게 인다. 충동을 누르며 집 앞에 당도해 대문을 열었을 때였다. 눈 앞에 펼쳐진 마당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반색했다.

그래, 외출하지 못한다면 집에서 즐기면 될 일이었다. 장을 보고 온 음식들을 정리하고 다시 마당으로 나와 본집 옆에 자리한 두 평 남짓한 작은 창고로 발을 놀렸다.

“돗자리가 어디 있더라?”

그늘진 곳에 돗자리를 펴고 누우면 정말 기가 막힌 휴일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었다. 창고 벽에 기대어 서 있던 돗자리를 발견하곤 그것을 챙겼다.

파란색 싸개에 싸인 돗자리가 참으로 오래간만이다. 위를 덮은 먼지를 툭툭 털어 내며 밖으로 나와 그늘진 곳에 펼쳐보았다.

“좋아, 상태 양호하고.”

혹 사용하기 힘든 상태면 어쩌나 했는데, 상태가 제법 양호했다. 집과 딱 붙여 바닥에 깐 뒤, 물티슈를 챙기고 나와 돗자리를 깨끗이 닦아냈다.

이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오면 젖은 부위도 다 마를 것이었다. 집으로 들어가 사 온 반찬으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곤 태블릿과 핸드폰, 그리고 베개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있어 다행이다. 바닥에 대 자로 드러누운 채 멍하니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자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나는 푸슬푸슬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했다.

“…좋다.”

매일같이 이렇게 쉬고 싶을 지경이다. 한참을 그렇게 구름을 보며 이런저런 동물을 떠올리던 참이었다. 메시지 도착음에 곧바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형, 뭐해요? (/∇\*)。o○♡]

이틀간 내리 연락이 없던 김세현의 문자다. 생각지도 못한 문자여서일까, 이보다 더 반가울 수가 없다. 나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집에서 쉬고 있어요.]

[누워 있어요? (⸝⸝⸝⁼◡⁼⸝⸝⸝)??]

[네, 쉬고 있어요. 그런데 사진은 안 돼요.]

[( ㅎ⌓ㅎ )]

“풉.”

누워 있냔 물음에 사진을 달라던 지난번 일이 떠올라 안 된다 했건만, 이모티콘만 올 줄은 몰랐다. 절로 웃음이 났지만 이번엔 응할 마음이 없었다. 나는 더욱 단호하게 뜻을 전했다.

[안 돼요.]

[(´•̥̥̥ ᎔ •̥̥̥`)형 보고 싶은데 (╥_╥`)]

[사진들 있잖아요.]

[오늘의 하늘 형이 보고 싶은 거라구요! ; ㅂ;!!!]

[그래도 안 돼요.]

[…그럼 영상통화라도! (๑◕︵◕๑)!!!!!!]

[안 돼요.]

안 된다고 할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이 웃기다. 연신 웃음을 흘리며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하던 참이었다. 막 도착한 메시지를 보곤 멈칫했다.

[그럼 형, 내일 나랑 만나야겠다. ♡( ૢ⁼̴̤̆ ꇴ ⁼̴̤̆ ૢ)~ෆ♡]

[제가요?]

난데없이 내일 만나야겠다고 하는 저의를 모르겠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어진 말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내가 형 집으로 갈 테니까, 우리 형 집 마당에서 돗자리 펴고 놀아요. ヾ(≧▽≦*)o]

[맛있는 거 사 들고 갈게요 ( ๑ ❛ ڡ ❛ ๑ )❤]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으면 맛있겠다 (๑′ڡ‵๑)۶४४yϋᵐᵐӵ♡॰⋆]

“…….”

집 앞에서 김세현을 만나긴 했지만, 대문 안 상황을 그에게 알려 준 적은 없었다. 뭔가 싶어서 이리저리 눈을 굴릴 때였다.

“아.”

하긴, 대문이 있는데 안에 작은 마당이라도 있을 거란 추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다음 눈에 밟힌 단어를 눈여겨보았다.

저 단어가 유독 눈에 밟히는 건 지금 내가 저 말처럼 마당에 돗자리를 펴서 누워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하지만….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괜히 저 돗자리란 단어가 걸린다. 나는 결국 자리서 일어나 주섬주섬 돗자리를 치우곤 집 안으로 들어갔다.

[=͟͟͞͞(꒪ỏ꒪)]

[=͟͟͞͞(꒪⌓꒪;;) 이럴 때만 눈치 있지!!]

[음.]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에 도착한 문자다. 마당과 돗자리도 걸렸지만, 이 타이밍에 도착한 메시지를 보니 괜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김세현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찝찝함에 대문 밖으로 나가 이곳저곳을 둘러봤지만, 이렇다 할 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형, 나 내일 점심 즈음 갈게요 (´,,•ω•,,)♡]

아직 오라 마라 하지도 않았건만, 어느새 시간까지 정했다. 나는 망설이다 핸드폰을 두드렸다.

[다음에 초대하면 안 될까요?]

[ʕʘ̅͜ʘ̅ʔ ???????????]

[집 정리가 안 돼서요.]

집 정리가 되지 않았다기보다는 김세현을 집에 들이지 말라던 팀원들의 말이 떠올랐다는 게 맞았다.

“흠.”

답장이 올 법도 한데, 잠잠한 핸드폰이다. 혹 일이 생겨 바로 답장하지 못하나 싶던 참이었다.

띠링-

띠띠링-

띠링띠링띠링띠리링-

[꒰๑ऀ •̆ꈊ •̆๑ऀ꒱⁇]

[( ʘ̥̥̥̥ ه ʘ̥̥̥̥ )?]

[(oꆤ︵ꆤo)]

[‧º·(˚ ˃̣̣̥⌓˂̣̣̥ )‧º·˚나랑은 친구 아니라서?]

[이게 바로 차별 대우? 。:゚(;´∩`;)゚:。]

[연하늘은 각성하라! Σ੧(❛ㅂ ❛!!) 차별 대우 금지!]

[문 안 열어 주면 냅다 하늘 형 집 앞에 드러누워야지!! ≡(:D)┿━<]

“하.”

다음에 오라고 했는데, 이렇게 격한 반응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마지막엔 아예 집 앞에 드러누워 버리겠다는 말에 헛웃음이 절로 났다. 어느새 농성하겠다는 메시지까지 도착하자 답장을 보냈다.

[그래도 안 돼요. 다음에 정식으로 초대할게요.]

[∑(๑ºㅁº๑)!! …정식?]

[네. 정리 깨끗이 해서 초대할게요.]

[흠, 그런 거라면 좀 생각해 볼래요. ꒰๑͒•௰•๑͒꒱ℒℴѵℯ❤]

없던 하트가 생긴 걸 보아하니 마음이 풀린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한 번 더 다음번에 초대하겠다 말을 전한 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하아.”

그저 짧은 대화였을 뿐인데, 김세현이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괜히 한 번 더 창밖을 살피곤 방으로 향했다.

***

그런 대화를 나눈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형! 저 왔어요!”

“…….”

분명 어제 다음 기회에 정식으로 초대한단 말을 했던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김세현의 방문에 놀라 현관문을 서성일 때였다. 거울에 비친 모습에 황급히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하아.”

정말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어제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려 했기에 아직 세수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실, 눈을 뜬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말이다.

황급히 세수하고, 또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손으로 빗으며 최대한 멀쩡해 보이게끔 정돈하려 했지만 계속되는 재촉에 결국 그대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형!”

대문 너머로 그 어느 때보다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다급히 대문을 열었다.

“형, 나 왔….”

“…아.”

문이 열림과 동시에 시야 가득 붉은색의 무언가가 들어찬다. 코를 자극하는 예의 향 또한 익숙했고 말이다. 내민 꽃다발에 그대로 뒷걸음질 치다가 말없이 이쪽을 바라보는 김세현과 눈이 마주쳤다.

“…형.”

“그, 어쩐 일이세요?”

몽롱하니 날 보던 푸른 눈동자에 점차 빛이 돌아온다. 그뿐이랴, 평소보다 반짝이는 것이 심히 부담스러웠다. 대문 밖에 서서는 이리저리 눈을 움직이며 내부를 살피는가 싶던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딛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보고 싶어서 왔죠.”

“어, 그.”

이렇게 쉽게 대문을 넘을 줄은 몰랐다. 어느새 마당 안에 들어와 이곳저곳을 살피는 김세현이다. 한 차례 마당을 둘러본 그가 다시 가까이 오더니 장미꽃다발을 건넨다. 나는 그것을 넘겨받았다.

차차차차찰칵!

“부스스한 모습도 너무 귀여워요, 형!”

“…하, 하.”

“형, 나 커피 한 잔만 줘요. 얼른 마시고 돌아가야 해서.”

“네?”

그간의 행동을 짐작건대, 이렇게 바로 돌아갈 것이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집 안만큼은 절대 사수하고 말겠다며 다짐한 의지가 허공으로 흩어진다. 나는 멍청히 되물었다.

“정식 초대 아니잖아요. 오늘은 형 얼굴 보고 싶어서 잠깐 들렀어요.”

“…….”

이런 말을 들을 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정식 초대가 아니라 바로 가야 한다는 말에 반응을 해야 할지, 아니면 내가 보고 싶어서 왔다는 것에 반응해야 할지 말이다.

갈팡질팡 중이었지만, 자꾸만 후자 쪽으로 마음이 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해사하게 웃는 김세현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멋졌으니까.

나는 그저 멍하니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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