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44)화 (44/246)

42화

09. 방문

“김한용?”

“오, 김 의원이 온 거면 생각보다 상황이 어렵진 않을 거 같은데요?”

김한용 의원이 동행했다는 말에 팀원들 모두가 반긴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영진 의원과는 달리 김한용 의원은 헌터부에게 좋은 사람인 듯했다.

팀장이 겉옷을 입으며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는 모습에 덩달아 자리서 일어났다. 곧바로 옷이며 머리까지 대충 정리하곤 크게 심호흡했다.

“막내야.”

“네, 팀장님.”

“이영진 의원이 뭐라고 해도 되도록 말 섞지 말고.”

“네.”

말을 섞으란 지시가 내려와도 섞을 생각은 없었다. 단번에 답하자, 팀장이 피식 웃는다. 그런 팀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한 번 더 의지를 다잡았다.

“우리 막내가 이영진 의원 정말 싫어하나 보네요.”

“칭찬상 받으러 갔을 때 이영진 의원이랑 기 싸움을 했다잖아. 우리 막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쉿! 말조심들 해. 이제 곧 도착할 거야.”

“저는 엘리베이터로 나가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아, 부탁해.”

팀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부팀장이 바로 자리를 뜬다. 출입문이 닫히는 모습에 괜스레 한 번 더 옷을 만졌다. 잠시 뒤, 사무실 밖이 제법 소란스러워지자, 주먹을 세게 쥐었다.

“…….”

매체를 통해 에드워드 왕자를 보긴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유명인사를 보게 되는 건 처음이었다. 따지고 본다면 김세현이 에드워드 왕자보다 더 유명한 이이긴 했지만, 그는 논외였기에 이번이 처음이 맞았다.

잠시 이영진 의원이 떠올랐지만, 그는 지금 만나는 에드워드 왕자와 비교하자면 유명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이였다. 단번에 그를 머리에서 지워 냈다. 시끄러운 소리가 가까워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 문이 열리자 몸을 바로 했다.

“들어가시죠.”

문고리를 잡고 선 부팀장이 벽 너머의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 무척이나 정중한 것이 아무래도 왕자인 듯했다. 몸을 바로 했다가 벽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를 보곤 절로 입이 벌어졌다.

“…….”

에드워드 왕자가 이렇게 작았었나?

매체에서 볼 때만 해도 키가 커 보였건만, 실제로 본 왕자의 키는 나보다 좀 작은 듯했다. 하지만 작은 키와는 달리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무시할 것이 되지 못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그가 내부를 살피는 사이, 그의 보좌관들로 보이는 이들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양쪽 벽에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섰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그들을 보고 있자니 괜히 기가 눌리는 것 같았다. 나는 발에 힘을 주며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관리했다.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당신이 헌터부 팀장입니까?”

“그렇습니다.”

“루머로 인해 고생 많았다 들었습니다.”

“이렇게 찾아와주신 덕분에 이젠 편해질 듯합니다.”

“좋아요.”

“…….”

외국어에 능통하다 듣긴 했지만, 이렇게 우리나라 말을 능숙히 사용할 줄은 몰랐다. 한 번 더 감탄하던 중이었다. 출입문 너머로 누군가의 모습이 보이자 그쪽을 바라보았다.

“…….”

“…….”

하필 이영진 의원과 눈이 마주칠 건 뭘까.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애써 펴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 있다가 뒤이어 모습을 드러낸 김한용 의원에게 시선을 주었다.

희끗희끗한 백발로 유명한 그였지만, 막상 이렇게 실제로 보니 인자해 보이는 게 그러잖아도 부드러운 이미지로 알려진 것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사나운 인상의 이영진 의원과 비교되는 모습에 절로 김한용 의원을 향한 호감이 자라는 것만 같다.

“어서 오십시오, 김한용 의원님. 이영진 의원님.”

“그간 잘 지냈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왕자와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은 팀장이 이번에는 두 사람을 맞이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팀장의 손짓에 다른 이들과 함께 팀장 곁으로 가 섰다.

“왕자님, 그리고 의원님들. 이쪽은 우리 서울시 헌터부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팀원들과 함께 인사했다. 일렬로 선 팀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던 왕자가 내 앞에 와 서자, 마른침을 삼켰다.

사람을 대하며 이렇게 떨린 적은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내밀어진 왕자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악수하곤 내게 인사를 건네는 이에게 솔직한 심정을 내비쳤다.

“반갑습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왕자님.”

“…후후.”

마음이 전해진 건지 왕자의 얼굴에 슬쩍 웃음이 자리한다. 자리를 뜨기 전, 가슴께로 내려갔던 시선이 다시 정면을 향하는 모습에 슬쩍 시선을 내려 옷 상태를 살폈다.

“…….”

혹 문제가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딱히 문제는 없었다. 공무원증도 그렇고, 옷도 멀쩡한 걸 확인하곤 안도했다가 이어 이영진 의원이 앞에 서자 입을 꾹 다물었다.

“오래간만이군.”

“…네.”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타국의 귀빈을 앞에 두고 우리나라 국회의원을 무시하는 건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 나는 짤막하게 답하고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쯧.”

내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는지 혀를 찬다. 내민 손을 빠르게 잡았다 떼곤 말없이 나를 보던 그가 지나치자 작게 숨을 들이켰다.

“오래간만일세.”

“예, 의원님도 잘 지내셨지요?”

“하하. 나야 뭐 자네들 덕분에 항상 잘 지내지.”

팀장과 악수하며 다른 손으로 어깨를 도닥이는 모습을 보니 어째서 김한용 의원을 반긴 건지 조금은 알 듯했다. 차근차근 인사를 하며 덕담을 건네던 이가 앞에 와 선다. 나는 몸을 바로 했다.

“연하늘 주무관?”

“네.”

“…자네가 천ㅅ……. 호오.”

굳이 뒷말을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 알 듯했다. 당혹감에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참이었다. 웃음소리에 김한용 의원을 바라보았다.

“하하, 너무 그렇게 당황하면 내가 미안해지는데.”

“그, 아닙니다.”

“내 자네 기억하고 있겠네.”

굳이 기억할 필욘 없었다. 그것도 천사란 단어와 연관 지어 말이다. 김한용 의원이 손을 내밀자, 덜덜 떨리는 손가락에 힘을 주며 그 손을 맞잡았다.

“연하늘 주무관 덕분에 한동안 참 즐거웠어.”

“그, 네.”

난 하나도 즐겁지 않았지만, 즐거웠다는 사람이 있다니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기도 했…. 사실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악수한 그가 자리를 이동해 에드워드 왕자 쪽으로 간다. 나는 부팀장이 자리로 돌아가잔 신호에 자리로 돌아가 섰다.

“갑자기 연락도 없이 이곳을 찾았지만, 양해해 줄 거라 믿습니다.”

에드워드 왕자가 팀장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고압적인 느낌이 나는 말투에 한 번 더 감탄했다.

한국어를 제법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어색하면서도 고압적인 느낌이 나는 말투가 무척 인상적이다.

“예, 환영합니다.”

“말을 들어 알겠지만, 내일부터 이곳을 견학하고자 합니다.”

“예.”

“견학 온 이유는 안 궁금합니까?”

팀장에게 답을 구하던 에드워드 왕자가 팀원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차례대로 팀원을 둘러보던 왕자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

다른 팀원들에 비해 시선이 제법 오래 머무르는 것만 같다. 녹색 눈동자가 뚫어지라 바라보면 볼수록 서서히 부담감이 차오르던 참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에드워드 왕자가 팀장을 바라본다.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흠, 흠!”

에드워드 왕자와 눈이 마주친 팀장이 솔직하게 속내를 밝히자 이영진 의원이 헛기침하며 눈치를 준다. 하지만 그 행동에 굴할 팀장은 아니었다. 이영진 의원을 힐끔 바라본 팀장이 뒷말을 잇는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팀장의 말에 동조했다.

“따로 이곳을 방문할 이유가 있나 싶어서 말입니다.”

“솔직해서 좋군요. 마음에 들어요.”

팀장의 발언이 마음에 들었는지 에드워드 왕자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에 안도하며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이번 클램 웜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을 무척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클리어에 참여한 인원도 무척 적다 들었는데, 단시간에 그것을 클리어했다지요?”

“예, 그렇습니다.”

“영국도 그런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이곳을 방문했을 거라곤 차마 생각지 못했다. 타국의 왕자가 헌터부의 공로를 높이 사는 말을 들으니 이보다 더 감동일 수가 없다.

“…….”

저 말만 들었을 뿐인데, 어째서 영국 사람들이 에드워드 왕자를 좋아하는지 알 듯했다. 그뿐이랴, 그가 어째서 각국을 돌아다니며 헌터들을 모집하는지도 알 듯했다.

“그래서 말인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곳을 견학하려고 합니다.”

“…예?”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팀장 또한 나와 같은 말을 들은 듯 반 박자 늦게, 그리고 끝 음을 올리며 답한다. 마치 되묻듯 말이다.

“오늘은 인사차 왔습니다. 이곳 출근 시간이 어떻게 됩니까? 내일부터 올 겁니다.”

“아.”

“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가 마치 내 마음과도 같다. 힐끔 옆을 보니 모두의 표정이 영 좋지 못했다. 아마 나 또한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듯했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에드워드 왕자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라면 상대의 휴식 따윈 상관하지 않는 무자비한 왕자일 뿐인 듯했다. 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타국 소속의 헌터를 스카우트하려 각국을 돌아다니진 않았겠지.

“음, 내일은 휴식이라 곤란합니다.”

“…휴일이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특히 던전이 생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의 휴일은 헌터부에게 있어 무척 중요합니다.”

어쩔 수 없이 내일도 출근하나 싶었는데, 그를 막은 건 다름 아닌 김한용 의원이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월요일에 다시 방문하는 것으로 하죠.”

“감사합니다, 왕자님.”

우기면 어쩌나 했는데, 왕자도 휴일이란 말을 듣곤 한발 물러선다. 그에 왕자를 향한 반감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더하여 김한용 의원을 향한 좋은 감정이 무럭무럭 자랐고 말이다.

“오신 김에 차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생각해 주는 건 좋지만, 이곳 차는 입에 맞지 않습니다.”

“그, 렇군요.”

이렇게 대놓고 차가 입에 맞지 않는다 할 줄은 몰랐다. 아니, 어쩌면 그게 당연할 수도 있었다. 억지로 먹는 것보다야 이렇게 대놓고 말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말이다.

“대신에 월요일에 내가 마시는 차를 가지고 오도록 하죠. 다들 좋아할 겁니다.”

“영광입니다, 왕자님.”

“좋아요. 그럼 월요일에 보는 것으로 하죠.”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좋아요.”

재차 사무실을 살핀 그가 날 바라보며 웃는다. 단정한 용모를 한 터라 미소 짓는 모습이 참으로 멋졌지만, 그뿐이었다. 아니, 이상하게도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그 웃음에 따라서 어색하게 입가를 끌어 올렸다.

“그럼 갑시다.”

“…예.”

뭔가 건수를 잡아 보려고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갈 줄은 이영진 의원도 몰랐던 모양이었다. 급속도로 식은 그를 보고 있자니 이보다 더 고소할 수가 없다.

…이미 웃고 있으니 좀 더 웃어도 문제 되진 않겠지?

나는 어색한 웃음이 아닌, 마음을 다해 미소 지었다.

“크흠!”

“크험!”

옆에서 갑자기 헛기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옆을 봤다가 입가를 씰룩이는 김 주무관과 박 주무관을 발견하곤 웃는 얼굴을 그대로 유지했다.

“…….”

뜻하지 않게 웃었지만, 이렇게 적재적소에 웃게 될 줄은 몰랐다. 팀장과 부팀장이 그들을 배웅키 위해 밖으로 나가고도 계속해서 웃던 중이었다. 난데없이 김 주무관과 박 주무관이 달려드는데, 별수 없이 그들에게 몸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와 진짜, 이 녀석 간도 크다니까?”

“평소엔 쪼그마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아까 보셨어요? 얼굴 일그러진 거?”

“하, 진짜 우리 병아리 최고다!”

“저 진짜 웃음 참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웃을 타이밍이 맞아 대놓고 웃었을 뿐이었다. 무척이나 통쾌해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그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겨 준 것 같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두 사람에게 안긴 채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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