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43)화 (43/246)

41화

09. 방문

아닐 거다.

그래, 이 시간에 이곳에 견학을 온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것도 이영진 의원을 대동한 채 말이다.

어느새 오후 네 시가 된 걸 확인하곤 한 번 더 팀장을 바라보았다.

“팀장님, 제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죠?”

“맞습니다. 박 주무관의 말마따나 아닐 거라 믿습니다!”

오늘은 얼추 일들이 잘 마무리된 터라 정시 퇴근이 가능한 날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생각지도 못한 이들의 방문으로 인해 퇴근이 미뤄질 수도 있는 상황은 누구라 한들 반기지 않을 거다.

“출발했다고 하니 대충이라도 청소하는 척이라도 하자고.”

“말도 안 돼.”

“아니, 다쳤으면 가만히 벙커에서 치료받고! 휴식 취하고! 돌아가면 될 일 아닙니까?”

“다친 적 없다고 해.”

“…예?”

아침부터 그 고생을 했는데, 다친 게 오보였다고?

어쩐지, 팀장의 얼굴에서 고됨이 느껴진다 했다. 하루 반나절 만에 폭삭 늙은 듯한 그를 보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손뼉을 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다들 정신없겠지만 손님이 온다고 하니 대충이라도 청소해 두죠.”

“…알겠습니다.”

“네!”

아침부터 휘몰아친 일들로 인해 정신이 없었지만, 부팀장의 말마따나 청소부터 해야 할 듯했다. 자리서 바로 일어나 정수기 쪽으로 이동했다.

“저는 대충이나마 화장실 청소해 두겠습니다!”

“쓰레기는 제가 치웁니다!”

“저는 정수기 정리 후에 바로 바닥 청소하겠습니다.”

“하늘 씨랑 함께 바닥 정리하죠.”

“나도 같이 청소하지. 박 주무관, 화장실로 따라와!”

“옙!”

휘몰아치는 일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며 시간을 허비할 순 없었다. 정수기 물을 비우고, 또 닦으며 바닥 청소를 시작한 부팀장에게 물었다.

“부팀장님, 에드워드 왕자와 그 의원은 언제쯤 당도할까요?”

“팀장님께 한번 여쭤봐야겠지만, 이미 출발했다고 하니 삼십 분 안으로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헉.”

삼십 분이란 시간은 길다 생각하면 길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일반적으론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었다. 빠르게 정수기 청소를 마치고 개수대의 물기까지 닦은 뒤 곧바로 바닥 청소에 임했다.

바닥을 쓸고, 또 닦으며 계속해서 시간을 확인하길 몇 차례, 화장실 근처의 바닥을 청소하던 부팀장이 팀장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정확히 언제쯤 도착할 거란 말이 있었습니까?”

“삼십 분 안으로 도착한다고 하더라.”

“그렇군요.”

“근데 이렇게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왕자가 방문해도 되는 겁니까?”

나도 그게 궁금하던 참이었다.

“이미 잡혀있던 일정이라고 해. 시기를 앞당기긴 했지만.”

“그럼 우리한테 미리 언질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일정이 정해졌으면 공문이라도 보내줬어야죠!”

김 주무관의 말마따나 일정이 있었다면 미리 헌터부에 언질을 줬어야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귀빈의 방문임에도 이렇게 대응이 늦을 수 있다니.

“일단 오늘은 얼굴만 비치는 비공식적인 방문이고, 내일 공식적으로 방문한다고 하니 그 전엔 공문 보내겠지.”

“헉, 내일이면 토요일이잖아요!”

“어떻게 좀 미룰 수 없을까요?”

그러고 보니 내일은 오래간만에 맞이하는 휴일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왕자의 방문에 휴일이 날아간다 생각하니 이보다 더 아쉬울 수가 없다.

“얼른 청소부터 마치도록 하죠. 정리할 게 많습니다.”

휴일도 중요했지만 부팀장의 말마따나 지금은 청소가 우선이었다. 빠르게 바닥 청소를 마무리 짓고 곧장 쓰레기를 정리 중인 김 주무관 쪽으로 합류했다.

“…치울 게 생각보다 많네요.”

“그러게.”

그러고 보니 최근 쓰레기를 제때 버리지 못한 것 같다. 양손 가득 쓰레기를 든 김 주무관을 따라 양손에 쓰레기를 들었지만, 여전히 쓰레기는 남아 있었다. 저 남은 쓰레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며 보고 있는 와중, 구원의 손길이 찾아들었다.

“부팀장님!”

“어서 가죠.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순 없으니까요.”

자칫하다간 엘리베이터에서 왕자 일행을 맞닥뜨릴 수도 있었다. 건물 내 유일한 엘리베이터임을 떠올리곤 곧바로 발을 움직였다.

“잠깐!”

갑자기 화장실 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화장실로 시선을 주었다.

“밑에 기자들 있을 거야. 그러니 박 주무관이 대신 다녀오도록 해. 막내는 같이 화장실 치우자.”

“네.”

아, 기자가 있었지.

기자들 앞에 되도록 얼굴을 비치지 말라던 팀장의 말이 있던 만큼 몸을 사리는 것이 중요했다. 세 사람이 사무실을 나가는 것을 본 뒤 화장실로 향했다.

“막내야.”

“네, 팀장님.”

마포 걸레를 집자마자 팀장이 부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눈을 마주했다.

“내가 기자들 앞에 얼굴 내밀지 말라고 한 거, 궁금하지 않아?”

하지 말라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언제나 팀원들을 생각하는 팀장이기에 굳이 묻진 않았지만, 궁금하긴 했다.

“사실, 궁금합니다.”

“잉여 때문이야.”

“…세현 씨요?”

“그 녀석, 잘난 만큼 적이 많거든.”

“…….”

“지난번에 보니 협회 측에서도 김세현 협박용으로 널 들이민 걸 보면 상황이 썩 좋지 않아. 무슨 일이건 몸 사리도록 하고.”

협박이란 말에 자연스레 그날 일이 떠오른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김세현의 차가운 모습이 떠오르자 고개를 주억였다.

“명심할게요.”

“우리나 김세현이나 막내 널 지켜 주고는 있지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남을 너무 믿지 말고. 알겠어?”

“네.”

생각해 보면 헌터부의 유일한 일반인은 나였다. 모두가 헌터인 걸 생각해 보면 내가 약점이 되는 건 당연한 것이었고 말이다.

과연 김세현의 협박으로 내가 통할까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가족과도 같은 팀원이었으니까.

“우리 막내는 말도 잘 듣지!”

“읏!”

머리를 헤집는 손에 다시금 허리가 접힌다. 거의 90도 가까이 접힌 허리였지만, 이 이상 숙이는 건 자존심이 용납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버티다가 팀장이 웃음을 터트림과 함께 누르던 힘이 사라진다. 그제야 몸을 바로 할 수 있었지만, 매번 접히는 허리가 괜히 속상했다.

“이젠 버틸 줄도 알고 많이 컸어?”

“…90도 이상 내려가는 건 좀.”

“푸핫! 그래, 그래. 앞으로 조심하마!”

팀장이 껄껄 웃으며 멈췄던 손을 움직인다. 함께 막바지 정리를 마치자 한결 깔끔해진 화장실이 보인다. 만족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되겠지?”

“충분하네요.”

급하게 청소한 거라고 하기엔 정말 깨끗했다. 개운함까지 느껴지는 화장실을 보며 끄덕이곤 팀장과 함께 뒷정리 후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다녀왔습니다.”

청소가 끝남과 동시에 쓰레기를 버리러 갔던 세 사람이 들어온다. 손을 씻으려는지 곧바로 화장실로 향한다.

“아래 기자들 있지?”

“아침보다 더 많던데요? 아무래도 에드워드 왕자 일행이 이곳으로 온다는 소식을 접한 모양입니다.”

“그 너구리가 말을 흘렸나?”

너구리란 단어를 듣자마자 절로 이영진 의원의 얼굴이 떠오른다. 묘하게 안 좋은 모습만 닮은 듯한 그를 생각하니 자꾸만 웃음이 나려 한다. 나는 입을 오므리며 웃음을 참아 냈다.

“그럴 겁니다. 얼굴 알릴 절호의 찬스를 놓칠 위인이 아니잖습니까.”

“하여간 그 너구리도 참 신기하죠! 하는 일은 없어 보이는데, 매번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걸 보면요.”

하는 일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얼굴을 내미는 능력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많은 국회의원 가운데 이영진의 얼굴이 이리 선명하게 기억나진 않을 테니 말이다.

“흠, 흠! 제가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말이죠.”

헛기침으로 시선을 모은 박 주무관이 운을 뗀다.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던 이가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다가오란 손짓하는데, 아무래도 비밀 이야기를 할 모양인 듯했다. 나는 그와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이영진 의원 뒤에 엄청난 사람이 있다는 말이 있거든요.”

“누군데 그래?”

이번엔 팀장도 솔깃한 듯 허리를 숙이며 가까이 다가온다. 김 주무관 역시도 말이다. 나와 김 주무관, 그리고 팀장의 얼굴을 살핀 박 주무관이 입을 열자, 마른침을 삼켰다.

“그, 있잖아요. 안세관 전 국무총리 말입니다. 그 사람이 뒷배란 말이 많아요.”

안세관이라 함은 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국무총리직을 맡으며 두루두루 나라 안팎을 신경 쓰며 그 누구보다 대통령을 잘 보필했기로 알려진 이였으니까.

“안세관? 그 사람이?”

“에이, 말도 안 되지. 정당부터가 다르잖아.”

그래, 이영진과 안세관은 속한 정당부터가 다른데 어떻게 뒷배일 수 있나 싶다.

그간 들었던 박 주무관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실망했음을 감추지 않으며 그를 보았다.

“와, 진짜 상황 보면 그럴싸하다니까요? 안세관이랑 이영진이랑 같은 중고등학교 나오고! 고향도 동향이고!”

“그래, 그래.”

음모론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는지 팀장이 박 주무관의 어깨를 다독이며 몸을 바로 한다. 나 역시 몸을 바로 하며 화장실을 가리켰다.

“박 주무관님, 얼른 손 씻고 오세요.”

“…와, 진짜 너무들 하네!”

“박 주무관은 나랑 같이 손이나 깨끗이 씻고 오자.”

“완전 박박 씻어 버릴 겁니다!”

“그래, 그래.”

김 주무관의 말에 불퉁한 표정을 지은 박 주무관이 바로 화장실로 향한다. 김 주무관이 따라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팀장이 화장실에서 나온다.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자리로 돌아간 그가 책상 위를 정리하는 모습에 나 역시 바로 자리로 돌아갔다.

“…….”

미리 서류 정리를 마쳤기에 더 정리할 건 없었지만, 괜히 이것저것 만지며 한 번 더 정돈했다. 손을 씻고 나온 두 사람이 자리로 돌아가 궁둥이를 붙이는 순간, 창밖이 소란스러워졌음을 인지했다.

“와, 이거 앉아서 쉬지도 못하게 하네요?”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박 주무관이 자리서 일어나 곧바로 창밖을 살핀다. 혹시나 하며 기다리다가 박 주무관이 창을 닫고 뒤돌아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왔어?”

“예.”

“그런데 왜 그리 떨떠름해?”

“그게 말이죠.”

뭘 봤기에 저리 떨떠름한 표정인 걸까.

말을 고르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박 주무관이 사무실 안을 살피더니 마지막으로 팀장을 바라본다.

“누군데 그래? 빨리 말을 해야 준비할 거 아냐.”

“그게 말이죠.”

“그니까 누구!”

“흐흐.”

“얼씨구?”

사람들의 재촉에 이번엔 웃음을 흘리기 바쁘다. 도대체 누가 왔기에 이런 반응인지 모르겠다. 나는 어느 정도 웃음이 그쳤는지 입을 연 그를 바라보았다.

“김한용 의원도 동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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