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41)화 (41/246)

39화

09. 방문

지도의 오류를 잡아내는 작업을 반절가량 진행했을 즈음이었다. 나는 찌뿌둥한 몸을 일깨우려 크게 기지개를 켰다.

“흐으.”

아직 요령이 없어서일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집중한 보람은 있었다. 오전과 비교해 많은 부분이 녹색 빛으로 물든 모니터만 봐도 그랬다. 허리를 좌우로 뒤틀며 간단히 스트레칭을 마치곤 다시 작업을 진행키 위해 마우스를 잡았다.

내가 마무리했으면 좋았겠지만, 내일은 박 주무관에게 작업물을 건네야 했다.

지금쯤 현장서 지도 작성 중일 박 주무관을 떠올리니 퇴근 전까지 하나라도 더 확인하고 말겠다는 의무감이 샘솟는다. 나는 다시금 지도 작업에 열중했다.

“슬슬 일 마무리하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팀장이 일과를 종료하자 말을 꺼낸다. 작업하던 지도를 본 나는 한숨이 나려는 걸 애써 참아 냈다.

“…….”

퇴근 시간이 되어 다시 보니 제법 많은 양을 처리한 줄 알았던 양이 이보다 더 작게 보일 수가 없다. C-4 구역의 1/5가량을 채운 녹색 빛을 보고 있자니 좀 더 작업하고 퇴근하고 싶었지만, 그건 무리였다.

한동안 홀로 다니지 말라던 김세현이었다. 항상 부팀장과 출퇴근하는 걸 아는데, 저 말을 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파일 및 폴더를 백업하고, 이어 협조금 관련 서버를 종료할 때였다. 하나둘 자리서 일어나는 모습에 손가락을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팀장님, 박 주무관에겐 제가 바로 연락 넣겠습니다.”

“좋아.”

팀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부팀장이 바로 박 주무관에게 연락을 취한다. 현장서 퇴근하란 말을 전하던 부팀장과 눈이 마주치자 슬쩍 웃어 보였다.

“하늘 씨, 작업 많이 남았습니까?”

통화를 마친 부팀장이 묻는다. 나는 되물었다.

“부팀장님은요?”

“30분 정도 여유 있습니다.”

여유가 있다는 말은 즉, 이미 일과를 마쳤다는 말과도 같았다. 모니터를 보고 다시 부팀장을 보길 몇 차례, 나는 망설이다가 부팀장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 30분만 더 작업하겠습니다.”

“우리 막내가 열정적이네. 그럼 나도 30분만 더 하고 가야겠다.”

“…다들 그러면 나도 30분 더 있어야겠는데?”

“…….”

30분을 거론하는 이들을 보니 괜히 미안하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풉!”

“큭! 얼른 하던 거나 해.”

“…네.”

어째서 30분인가 했는데, 퇴근 시각까지 30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워낙 장난기가 많기에 이럴 수도 있었지만, 부팀장이 이런 장난에 동조할 줄은 몰랐다. 아주 조금 배신감을 느끼며 부팀장을 보았지만, 그의 얼굴에 어린 웃음기를 보니 따라서 웃음이 났다.

“얼씨구, 놀려도 좋아?”

“부팀장님이니까요.”

“어, 나는?”

“당연히 좋죠.”

다른 사람이라면 또 모를까, 이들이 거는 장난은 불쾌함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깝게 생각한다는 게 느껴져 좋았다.

“자, 그럼 마저 작업하고 마무리하자고.”

“넵!”

이제 30분만 더 지나면 퇴근할 수 있었다. 퇴근 전까지 하나라도 더 작업하자 다짐하며 마저 작업에 몰두했다.

***

다음 날, 어김없이 부팀장과 함께 출근하던 길이었다. 부팀장이 켠 라디오 뉴스를 경청하던 중 헌터부가 거론되자 귀를 기울였다.

- 이틀 전 발생한 던전에서 클램 웜 세 개체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 예, 그렇습니다. 클램 웜은 일반적으로 해안가에서 생성되는 던전에서 볼 수 있는 개체인데요, 드물게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되기도 합니다.

- 특히 클램 웜은 잡기가 무척 힘든 웜이라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헌터부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협회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클램 웜이 세 개체나 발견된 던전을 이렇게 빠르게 클리어한 건 우리나라가 최초라고 보시면 됩니다.

역시, 윗선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헌터부의 노고를 알아본다.

그저 노력을 알아준 것일 뿐이건만 이보다 더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좋게 평가해 주니 다행이군요.”

부팀장 역시 라디오 내용에 집중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로요.”

혹여 외부에서까지 안 좋은 평들이 가득했다면 그보다 더 실망스러울 순 없었을 것이었다. 헌터부를 띄우는 패널들의 대화에 집중하던 와중이었다.

“덕분에 윗선들이 큰 징계는 내리지 못하겠군요.”

“아.”

큰일을 너무도 태평하게 말한다. 자연스레 어제 대화를 떠올리곤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왕이면 징계 자체가 없었으면 좋겠네요.”

이미 어제 시말서를 쓰란 말이 내려왔지만, 기왕이면 그 또한 없어졌으면 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군요.”

그러고 보니 징계와 관련된 사항을 물어보지 못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제 보니까 다들 징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거 같아서요. 자주 이런 일이 있었나 궁금합니다.”

“자주까지는 아니지만, 간혹 이럴 때가 있습니다. 특히 외부 인사가 방문했을 때 던전이 발생하면 그 책임을 이쪽으로 미루곤 하죠.”

“그렇군요.”

미처 거기까진 생각지 못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지는 설명에 귀 기울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징계가 내려오진 못합니다. 윗선에도 헌터부를 싫어하는 이들이 있지만, 정반대로 지지하는 이들도 제법 되니까요. 이번 일도 일단 짐작만 할 뿐이지, 정말 징계가 내려올지는 미지수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네.”

“혹 징계가 내려온다고 해도 가벼운 징계 정도로 끝날 겁니다. 여태 감봉 처분을 받은 건 두 번밖에 없었으니까요.”

시말서 정도로 정리될 거란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놓인다. 슬쩍 입가를 끌어 올리곤 계속해서 라디오 뉴스를 경청했다.

- 현재 왕자 일행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 정확한 내용이 알려진 것은 아니나 현재 A-8 구역으로 대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일지는 미지수입니다.

- 그렇군요. 저희도 에드워드 왕자 일행의 상황이 파악되는 대로 바로 청자분들에게 소식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출근 전 뉴스를 봤기에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매체에서도 아직 에드워드 왕자 일행의 행적을 모르는 듯했다. 우리가 아는 사실 선에서 전달되는 내용을 듣다 보니 어느새 뉴스가 끝나 라디오에서 CF가 들려온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시야에 사무실이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 너머에 자리한 높디높은 협회 건물을 애써 못 본 체하며 헌터부 사무실 건물 쪽으로 시선을 내렸을 때였다. 나는 눈에 들어온 생각지도 못한 인파를 발견했다.

“부팀장님?”

“…우선은 한 바퀴 주변을 돌도록 하죠.”

“네.”

주변을 돈다는 건 저들이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한 것일 테다. 길에 접어들 때의 속도 그대로를 유지하며 인파가 모인 곳을 지나친다. 나는 빠르게 눈을 움직였다.

누가 봐도 비싸 보이는 카메라와 여러 개의 마이크를 모은 이들이 보였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끝으로 차가 다른 골목으로 접어든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인파에 나는 입을 열었다.

“부팀장님, 기자로 보입니다.”

“…….”

사건이 터지면 대개 기자들은 옆 건물로 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협회 건물이 아닌, 우리 사무실이 있는 곳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하늘 씨, 팀장님께 전화 걸어요.”

“알겠습니다.”

그래,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바로 핸드폰을 꺼내 스피커폰 모드로 전화를 걸었다.

- 음? 우리 병아리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의아한 목소리가

“팀장님, 접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 어? 그래. 무슨 일 있어?

“현재 사무실 건물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 우리 사무실?

뜻밖의 상황인지 팀장의 목소리가 한 톤 높이 올라간다. 나는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실었다.

“혹시나 싶어 현재 저랑 하늘 씨는 회사 주변을 돌고 있습니다.”

- 나도 곧 도착하니까 계속 돌고 있어. 다른 팀원들에게도 연락하고.

“예.”

- 특히 막내는 되도록 외부에 얼굴 내보이지 말고.

“그, 알겠습니다.”

갑자기 왜 얼굴을 보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반 박자 늦게 답했지만, 지금은 의아함을 푸는 것보단 연락을 돌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는 곧바로 팀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현재 사무실 건물 상황을 전달했다.

끝으로 박 주무관과 통화를 마치자 사무실 앞 도로로 차가 진입한다.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 사무실 앞 상황에 침음을 삼켰다.

“…사람이 더 많아졌는데요?”

“심상치가 않군요.”

부팀장의 말마따나 현재 상황은 심상치가 않았다. 혹여 놓치고 있는 뉴스가 있나 싶어 바로 인터넷을 뒤져 보았지만, 이 상황과 관련된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흠.”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듯싶던 부팀장이 슬쩍 나를 본다.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이 오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이렇게 주변을 돌기로 하죠. 혹시 모르니 이번엔 좀 크게 돌겠습니다.”

“네, 부팀장님.”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서는 일단 팀장이 와야 할 듯했다. 계속해서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뒤지다가 한 번 더 건물과 가까워졌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플래시를 터뜨리는 기자단이다. 나는 당황하며 부팀장을 보았다.

“팀장님이 오셨나 보군요.”

“…….”

상황을 모르니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건물이 가까워질수록 차 속도가 줄어든다. 한 번 더 밖을 살피기 위해 몸을 틀었다.

“부팀장님, 창문 좀 열게요.”

“예.”

창문을 조금 열자, 플래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 사람들의 목소리를 분간했다.

“…까?”

“…한다고 합니다!”

말이 너무 겹쳐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나는 좀 더 창문을 내려 몸을 기울였다.

“…헌터부의 입장이 궁금합니다!”

헌터부의, 입장?

갑자기 헌터부의 입장이 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알 수 없는 내용에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또렷하게 들려온 말에 머리가 하얘지는 걸 경험했다.

“현재 에드워드 왕자가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헌터부의 빠른 대처가 없었다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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