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40)화 (40/246)

38화

09. 방문

“한 주무관은 다음 주에 복귀할 예정이야. 다들 오늘도 파이팅하자고!”

“네!”

평소와 같은 조회겠거니 생각했건만, 이런 기분 좋은 소식이 전해질 줄은 몰랐다. 팀장의 말에 책상 위 달력을 확인하자, 절로 입가가 올라갔다.

내일만 지나면 주말이었다. 그래, 이제 삼 일만 지나면 한 주무관이 복귀하는 거다.

“…….”

한 주무관이 돌아온다니 이보다 더 신이 날 수가 없다. 들썩이려는 어깨를 단속하며 협조금 서버에 접속한 뒤 어제 작업하다 만 문서를 열었다.

“참, 막내야.”

“네.”

“오늘은 뭐 따로 연락 없었어?”

“아.”

팀장의 턱짓이 가리키는 곳은 예의 그곳이었다. 옆자리로 시선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있다 없으니 또 이상하네.”

“또 무슨 수작질을 하러 안 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

이들이 이러는 건 모두 합당한 근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세현이 이렇게 자리를 비우는 날마다 큰 사건이 벌어지곤 했으니까.

…나중에 메시지라도 보내 볼까?

“이번 협조금은 현장서 따로 투입된 협회 놈은 없으니까 그대로 진행하면 돼.”

“알겠습니다.”

김세현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오늘은 박 주무관 대신 한 주무관이 작성하던 지도를 확인해야 했으니까.

미리 적어 둔 헌터 수를 확정 후 협조금 계산을 마치곤 곧바로 한 주무관이 담당하던 현장 관련 지도를 켰다.

“…….”

아직 피해 지역 전부가 표시된 건 아니지만, 절반 이상이 표시된 것이 오늘 중으로 모두 확인이 가능할 듯했다. 지도를 완성키 위해 오늘 현장으로 나가기로 한 박 주무관을 봤다가 때마침 기지개를 켜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왜?

슬쩍 주변을 살핀 박 주무관이 입만 벙긋인다. 대화를 나누려 했던 건 아니었지만, 뭔가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슬쩍 정수기 쪽을 가리키며 입을 움직였다.

커피 드실래요?

“나도 한 잔.”

“헉.”

“둘만 소곤소곤 대화 나누고 말이야.”

소리 없이 입만 벙긋인 터라 아무도 모를 줄 알았다. 김 주무관에 이어 팀장까지 볼멘소리를 뱉는데 이보다 민망할 수가 없다. 나는 그대로 입을 오므렸다.

“에이, 일단 둘이 대화하다 다른 분들께도 물어보려고 했죠. 그치, 막내야?”

“네.”

갑작스레 눈이 마주쳐 커피를 권한 상황이었으나 팀원에게도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뭐, 먼저 커피를 부탁했기에 물어볼 필요는 없어졌지만 말이다. 자리서 일어나 정수기 쪽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팀장님, 어제 A-8 구역 가까이 가셨는데, 별다른 말 없었나요?”

“딱히?”

“에이, 그러지 마시고요. 근처까지 접근하기조차 어려운데, 뭔가 특별한 거라도 보시지 않으셨나 해서요.”

어쩐지 조용하다 싶었다. 조용히 A-8 구역에 관해 묻는 박 주무관의 목소리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글쎄다.”

“그 담은 넘으셨어요? 안은 어때요?”

담이라 하면 예의 그 담벽을 말하는 걸 거다. A-8 구역을 둘러싼, 창덕궁 담벼락을 그대로 재현한 2층 높이의 담벼락 말이다.

그간 단 한 번도 내부 모습이 유출된 적 없던 걸 상기하며 귀 기울였다.

“아서라. 그 담을 아무나 넘을 수 있는 줄 알아?”

“그래도 에드워드 왕자 일행이 무사한지 확인을 하는 것까지 저희 담당이잖습니까.”

“경비초소에서 연락받았으면 됐지.”

혹시나 싶었는데, 팀장 역시 안까지 들어가는 건 무리였던 모양이다. 차를 준비해 모두에게 전달 후 자리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A-8 구역을 검색했다.

담벼락을 넘는다고 한들 좀 더 들어가야 A-8 구역이 나오기에 혹시나 했다. 차를 준비해 모두에게 전달하곤 자리로 돌아와 A-8 구역을 검색했다.

“…….”

아쉬운 마음에 한 번 검색해 봤지만, 역시 나오는 건 없다. 누리꾼들이 상상하는 사진만이 가득한 이미지를 뒤적이다 다시 메인창을 띄웠다.

던전이 생성되면 며칠 간은 그 던전과 관련된 기사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졌기에 지금 이 시각에도 새로운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을 것이었다. 메인창 우측 자리한 실시간 검색어로 눈을 옮겼을 때였다.

“어?”

어째서 헌터부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른 거지?

난데없이 보이니 이보다 당혹스러울 수가 없다. 나는 검색어를 클릭해 뉴스 기사들을 살폈다. 기사가 갓 올라왔는지 기사는 다섯 개가 올라와 있었다. 상단에 뜬 뉴스 기사를 눌러 내용을 살피려던 참이었다. 제목 아래 적힌 기자 이름을 발견한 나는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

여기서 다시 최은재의 이름을 보게 될 줄이야.

지난번 A급 던전 생성 때 연락이 왔던 게 생각난다. 스크롤을 올려 기사 제목을 한 번 더 확인했다.

<헌터부도 막지 못한 던전, 결국 영국 왕자 휘말려>

기사 제목을 보니 어째서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헌터부가 올랐는지 알 것 같다. 나는 최은재의 기사를 닫고 다른 기사 몇 개를 훑어본 뒤 손을 들었다.

“팀장님, 어제 일로 에드워드 왕자가 A-8 구역으로 대피했다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그래?”

“괜히 안 좋은 기사 올라와서 시끄러워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역시 음모론을 좋아하는 박 주무관답다. 나는 바로 현재 상황을 알렸다.

“그게, 이미 올라왔습니다.”

“뭐라고?”

벌써 부정적인 기사가 올라올 줄은 몰랐는지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의 얼굴에 놀람이 가득하다. 나는 조금 전 읽은 최은재의 기사 제목과 함께 다른 기사 제목들을 입에 올렸다.

“하여간 건수만 잡았다 하면 물고 늘어지지.”

“걱정하지 마. 클램 웜이 나타난 던전치고 우리 빠르게 클리어한 편이니까.”

팀장의 말마따나 클램 웜이 나오는 던전은 몬스터의 크기가 다른 몬스터들에 비해 커 쉽게 클리어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동강 낸다고 한들 그것이 바로 움직임을 멈추는 게 아니기에 더더욱 곤란했고 말이다. 오죽했으면 클램 웜이 나오는 던전은 난이도 B급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까.

“…윗분들도 그렇게 생각해야 할 텐데 말이죠.”

아, 그렇지.

누리꾼들의 안 좋은 시선은 둘째치더라도 윗분들이 이 기사를 보며 좋게 생각할지가 미지수였다.

“다 잘 될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했으니까.”

“걱정은 그만하고 우선 하던 일부터 하도록 하죠. 혹 태클이 들어온다고 해도 다른 쪽에서 책잡히지 않으면 되니까.”

흔들림 없는 팀장과 부팀장의 말을 들으니 한결 불안이 가신다. 인터넷 창을 끈 뒤 다시 현장 관련 지도를 화면에 띄웠다.

중간중간 이어지지 않는 부분들을 잇고, 또 현장에서 적은 메모와 지도 부분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며 한참 지도 작업에 집중할 즈음이었다. 난데없이 울린 전화벨이 집중을 흐트러뜨린다.

띠리릭- 띠리릭-

이 소리는 팀장 직통 전화벨 소리였다. 나는 의자를 돌려 팀장을 바라보았다.

“에이.”

“설마 그럴까요.”

“…일단 받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설마 그럴까 싶다. 하지만 그건 그저 바람일 뿐인 듯했다.

“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이런 전화 할 거면 세계 각지에 클램 웜 던전 클리어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가 확인부터 하지 그래요! 협회에서 A급 헌터가 둘이나 보냈기 망정이지, 그거 아니었으면 던전 범위 안에 들어간 곳 대부분이 쑥대밭으로 변했을 거요!”

“…….”

설마 했는데, 정말 던전 관련하여 연락이 왔을 줄이야.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목청을 높이는 팀장을 보고 있자니 이보다 더 안쓰러울 수가 없다. 전화 받는 손 이곳저곳에 붙어 있는 반창고를, 그 아래에 남은 수많은 흉터를 본다면 저런 말은 쉬이 할 수 없을 것이었다.

“내가 누누이 말했잖습니까! 답답하면 직접 던전 클리어하시라고! 이번 현장에 나온 이들한테 들었는데, 계약직 헌터 셋이 또 나갔다면서요! 그것도 B급 헌터가 셋이나! 안 그래도 없는 인원인데 정예 멤버까지 나간 상황서 뭘 자꾸 바랍니까, 바라기를!”

계약직 헌터, 그것도 B급 셋이 나갔다는 건 정말 큰 문제였다. 현재 서울시와 계약한 헌터의 수를 헤아려 보다가 세 자리는 거들떠볼 수도 없는 상황임에 침음을 삼켰다.

“아, 국회의원이 뭐라고 하건 말건 우리는 상관 안 한다니까 그러네! 사람 지키는 일이 우선이지 무슨 밉보이는 걸 신경 써라 마라야!”

“…설마 또 거기서 말이 나온 걸까요?”

“그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습니다. 헌터부라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이들이니까요.”

그들이 누구인진 정확히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헌터부를 옹호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무척이나 싫어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

지금 상황에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국회의원 이영진이 떠오르자 마우스를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우리는 할 만큼 했다고 전해 주쇼! 그래도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나! 전화 끊소!”

잔뜩 흥분한 팀장이 거칠게 전화를 끊는다. 어깨가 들썩이는 모습이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듯했다. 바로 차가운 물을 챙겨 와 그에게 건넸다. 말없이 나를 보던 팀장이 팀원 전체를 부르자 몸을 바로 했다.

“다들 시말서 쓸 준비해!”

“시말서요?”

“그것만 쓰면 됩니까?”

“모르지! 감봉이 들어올지, 말지는!”

아직 시말서 및 감봉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니 이보다 더 기운이 빠질 수가 없다.

슬쩍 주변을 살핀 나는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들의 모습을 발견하곤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

조마조마한 나완 달리 팀원들은 하나같이 평온했다. 그래, 마치 이런 일이 자주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끔 열심히 노력했건만, 막상 이런 식으로 그 노력의 결과물이 돌아오니 기운이 빠진다. 어째서 헌터들이 자꾸만 협회 쪽으로 빠지는지도 알 듯했다.

“후우, 시원한 물 마시니 좀 마음이 누그러지네.”

단번에 물을 비운 팀장이 입가를 쓱 닦으며 웃는다. 평소와 같은 웃음이었지만, 따라 웃긴 무리였다. 말없이 서 있다가 머리를 쓰다듬는 팀장의 손길을 받으며 점차 허리를 굽혔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언젠간 위쪽도 생각을 달리할 거야.”

“아무렴! 지금은 까라면 까겠지만, 우리 노고를 사람들이 몰라주는 것도 아니니까!”

“…네.”

그래, 윗선이 이리 헌터부를 무시한다고 해도 우리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많은 사람이 아는 마당에, 이렇게 기죽을 필욘 없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한다면 언젠간 윗선도 이 모습이 보일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지금 같은 취급은 받지 않으리라.

나는 좀 더 열심히 일에 매진하겠다 다짐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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