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39)화 (39/246)

37화

08. 첩첩산중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에드워드 왕자가 대피한 만큼 모두가 세현 씨 집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힘을 모을 테니까요.”

그래, 김세현의 집을 사수하잔 말이 나온 이상 팀원들은 그 말을 어떻게 해서든 지켜 낼 것이었다. 물론, 협조적이라던 협회 측 헌터들 또한 말이다.

“…하.”

뚫어져라 시선을 마주하던 이가 헛숨을 뱉으며 의자에 등을 기댄다. 이어 이마를 짚더니 뭐라 중얼거리는데, 소리가 너무 작아 뭐라 하는진 알 수 없다. 말없이 그를 보다가 다시 현장으로 관심을 돌렸다.

- 우측 클램 웜 클리어!

- 좌측 헬프 요청입니다! 웜 크기가 너무 커요!

- 우측 헌터들은 좌측으로 모두 지원 바란다! 중앙도 정리 후 바로 합류하지!

웜의 크기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힘이 강함을 의미했다. 그뿐이랴, 웜의 공격 범위 또한 넓어져 자칫하다간 사거리 또한 사정거리 안에 들 수 있었다.

“…….”

웜이 정리되는 건 시간문제인 것만은 확실했지만, 클리어 중 김세현의 집에 여파가 갈까 걱정이다. 나는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감추려 손깍지를 낀 채 계속해서 현장 상황을 귀담았다.

- 헉! 꼬리 날아간다, 막아!

- 방향 바꿔! 저 건물은 막아야 한다!

필사적으로 건물을 막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언가 무너지고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왜 이리 초조한지 모르겠다.

- 중앙 클리어! 바로 좌측으로 이동한다!

마치 내가 긴장하고 있음을 인지하기라도 한 듯 적시에 팀장의 목소리가 사무실 안을 가득 채운다. 안도하며 좌측에 모인 헌터들에 합세한 팀장, 그리고 김 주무관과 박 주무관의 네트워크 너머로 전해지는 상황에 귀 기울였다.

“…….”

평소 던전에서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긴장되었지만, 이번만큼 긴장되었던 적이 있나 싶다. 계속되는 긴박한 상황에 흥건히 젖은 손바닥을 옷에 닦길 몇 차례, 나는 서서히 현장 소음이 잦아드는 것을 인지했다.

-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만이 전달되는 상황이 이보다 더 긴장될 수가 없다. 나는 상체를 기울여 네트워크 스피커가 설치된 쪽으로 몸을 가까이했다.

- 스읍! 던전 클리어!

그때였다, 팀장이 상황 종료를 알린 것은. 나는 곧바로 인사를 건넸다.

“고생하셨습니다!”

“피해 상황은 어떻습니까.”

- 협회 측 헌터 몇이 다친 상황이야. 우리는 긁히긴 했어도 무사해!

“큰 피해가 없어 다행입니다. 바로 호송팀 보내겠습니다.”

- 아아!

순간 다쳤다는 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건 한 주무관이 떠올라서였다. 팀원들이 무사하단 말을 들으니 긴장이 풀린다. 그대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많이 긴장했나 보네요, 하늘 형.”

서 있었다면 꼼짝없이 몸 상태를 들켰을 거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긴장했었나 봐요.”

일이 잘 해결되었다니 이보다 더 다행일 수가 없다. 나는 책상에 두었던 물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그나저나 팀장님.”

- 음?

“김세현 집은 어떻습니까.”

아차, 집이 있었지.

팀원들이 무사하단 말에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팀장과 부팀장의 대화를 경청했다.

- 흠, 그게 말이야.

“…….”

다른 날 같았다면 바로바로 상황을 알려줬을 팀장이 뜸을 들인다. 그에 재차 긴장감이 차오른다. 남긴 커피를 비우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 그게 말이지.

“네, 팀장님.”

- 하아, 그게 말이야.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모르겠다. 손에 쥔 컵을 만지작대다가 팀장의 부름에 답했다.

- 부팀장, 막내야.

“네.”

“듣고 있습니다.”

- …푸핫! 사거리 주변 건물 모두 지켰다!

“…후우.”

“하아.”

갑자기 심각하게 부르기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네트워크 너머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세현 씨, 제 말 맞죠?”

“…….”

“모두가 세현 씨 집 지켜 줄 거라는 말 말이에요.”

“…후우.”

뭐라 말할 것처럼 입을 벙긋하던 김세현이 이마를 짚으며 천장을 바라본다. 이어 들려온 한숨이 이보다 깊을 수가 없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몬스터로 인해 손해를 입진 않을까 되게 걱정했던 모양인 듯했다. 손바닥으로 눈가를 가린 채 뭐라 중얼거리는 그를 보며 씩 웃어 보였다.

“집이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혹여 지켜 줄 거란 말을 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집에 문제가 생겼다 소식을 전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 김 주무관은 박 주무관과 정리 좀 하고! 나는 바로 에드워드 왕자 쪽으로 이동하지! 상황 종료!

“위치 확인해 전달하겠습니다!”

- 좋아!

“상황 종료합니다.”

던전은 클리어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에드워드 왕자 쪽이 남아 있었다. 그래, 다른 날과는 달리 오늘 던전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기 위해서는 팀장이 에드워드 왕자를 만나 그들이 안전한 걸 확인해야 했다.

빠르게 에드워드 왕자 일행의 위치를 살피다가 A 구역 중에서도 특정 지역으로 향하는 차량에 바로 팀장에게 전달했다.

“팀장님, 현재 A-8 구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 막내, 고생했어. 이후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이만 네트워크 종료해.

방향을 전달하니 곧바로 팀장이 지시한다. 나는 짧게 대답 후 바로 네트워크를 껐다.

마음 같아선 좀 더 방향을 확인 후 전달하고 싶었지만, A-8 구역까지 CCTV로 쫓는 건 무리였다.

말로는 정치인 및 저명한 인사, 그리고 귀빈들의 대피처라 알려졌지만, 실상은 그 안으로 들어간 이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들어갈 수 있는 자격 요건이 갖추어졌다고 한들 대통령의 승인이 있어야만 입장이 가능한 터라 이후의 일은 팀장에게 일임하는 게 맞았다.

“…….”

막상 지시대로 네트워크를 종료했건만,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몸을 감싼다. 나는 괜스레 던전 생성 구역을 한 번 더 살피곤 교통 정보 센터 화면을 종료했다.

“부팀장님, 시원한 물 한 잔 드릴까요?”

“예, 부탁합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부팀장 또한 입안이 바싹 말랐을 것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중계기를 종료 후 정수기로 향했다. 빠르게 시원한 물 한 잔과 커피 두 잔을 타서는 먼저 부팀장에게 물을 건넸다. 그리곤 다시 커피를 챙겨 자리로 돌아와 김세현에게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세현 씨, 집 때문에 마음고생 심했을 텐데 커피라도 마시면서 마음 다독이세요.”

생각해보면 헌터부도 고생이었지만, 김세현 또한 속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었다.

커피란 말에 멈칫하던 그가 얼굴을 가린 손을 내리며 자세를 바로 한다. 눈이 마주치자 한 번 더 커피를 권했다.

“어서요.”

“…하늘 형.”

커피를 받은 김세현이 눈을 마주해 온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형, 일부러 그러는 거죠?”

갑자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간 일부러 무언갈 한 적이 있었나 싶었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

“아뇨.”

“하, 진짜 미치겠네.”

“…우선 커피부터 드세요.”

그래, 뭐라도 마시면 한결 마음이 진정될 거다. 내민 커피잔을 응시하던 그가 연신 일부러 이러는 거냔 말을 중얼거리며 손을 내민다. 커피를 건네준 뒤 자리에 앉았다.

“형, 나 한 잔 더요.”

“이거 드세요.”

아무래도 한 잔 더 타 와야 할 것 같다. 김세현의 말에 바로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밀며 다시 일어나다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췄다.

다른 날처럼 커피잔을 받아 갈 줄 알았건만, 지금 상황은 다소 뜻밖이었다. 김세현의 손이 내 손 위를 감싼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의 손가락이 손등 위를 슬며시 쓰다듬는데, 그 생동이 사람 기분을 삽시간에 묘하게 만들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무척이나 가벼운 움직임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손이 닿은 곳에서 피어오른 울렁임은 너무도 강렬했다.

한동안 잠잠하나 싶던 심장 또한 다시 요란하게 제 존재를 발산한다. 손끝이 묘하게 떨리는 바람에 종이컵을 세게 쥐었다가 김세현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자 황급히 손을 빼냈다. 커피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는 슬그머니 손을 뒤로 숨기며 한 번 더 말했다.

“커피 드세요.”

“형.”

잔을 든 김세현이 뚫어져라 날 바라본다. 조금 전보단 한결 누그러진 반응이 이제 좀 마음이 놓이는 모양인 듯했다.

그보단, 내 손 떨림을 느낀 것 같았지만 말이다.

피식피식 웃는 모습을 보니 이보다 더 민망할 수가 없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답했다.

“네, 세현 씨.”

“내가 이렇게까지 많이 봐주는 건 형이 처음이에요.”

마치 영광인 줄 알라는 듯한 말투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 형은 좋겠다. 세계 최고 헌터가 이렇게 봐주기도 하고. 그쵸?”

“하, 하.”

한동안 조용하나 싶었는데, 역시나 세계 최고를 운운한다. 하지만 그 모습이 싫은 건 아니었다. 이제야 기운을 차린 듯한 김세현을 보니 이제야 던전 클리어가 실감이 나는 듯했다. 다시 정수기로 가 커피를 두 잔 타고 자리로 돌아왔다.

“여기 한 잔 더 드세요.”

“최고라서 주는 거예요?”

어느새 김세현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봐줘서요.”

그간 김세현이 많이 봐준 것은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와 나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다른 것만 봐도 그랬고 말이다.

뭔가 반응이 돌아올 법도 하건만, 도통 말이 없다. 말을 걸던 모습 그대로 날 바라보는 이와 눈을 마주했다. 김세현은 마치 눈싸움이라도 하듯 나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더니 한참만에야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진짜. 형은 정말 최고예요.”

“…네.”

저렇게 뜬금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걸 보니 평소의 김세현으로 돌아온 것 같다.

계속해서 최고라 말하며 웃기 바쁜 이를 보고 있자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 같다.

“…….”

어지러웠던 던전도 정리가 되었고, 이렇게 마음 놓고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슬그머니 올라가는 입꼬리가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만 같다. 솔솔 풍기는 믹스커피 향도 말이다. 몇 번을 반복해 커피 향을 맡다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며 잠시의 휴식을 만끽했다.

내일부터 시작될 소란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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