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08. 첩첩산중
말이 70m고, 100m였다. 움직임이 빠른 몬스터라면 단숨에 사정거리 안에 들 터.
나는 황급히 현라 백화점 사거리와 가장 가까운 CCTV 화면을 띄웠다.
“…….”
뭐라도 좀 나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현재 작동 중인 카메라로는 사거리 쪽 상황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호텔과 가까운 CCTV 화면을 확인했다.
“딱히 보이는 건 없군요.”
“네.”
이곳 또한 건물에 막혀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현재 상황에서 유일하게 현장을 확인 가능한 건 먼지바람에 휩싸인 그 CCTV밖에 없는 듯했다. 나는 재차 먼지로 가득 찬 화면을 오른쪽 하단에 고정 후 C-4 구역 전체 CCTV를 살폈다.
“다행히 규모 변동은 없는 상황입니다!”
- 좋아! 좀 더 빨리 이동해 보지! 1분 안에 호텔 도착한다!
- 저희는 현장 도착까지 약 10분 정도 남았습니다!
- 바로 사거리 쪽으로 가! 나도 호텔 살피고 바로 그쪽으로 갈 테니까!
- 예, 팀장님!
“하늘 씨, 계속 상황 살펴보도록 해요.”
“네.”
어깨를 토닥인 부팀장이 자리로 복귀한다. 나는 계속해서 전체 CCTV를 살피며 먼지로 뒤덮인 화면을 주시했다.
현재로선 몬스터가 계속 전진 중인지, 아니면 방향을 틀었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팀장이 도착할 때까지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순 없었다. 바쁘게 가동 중인 카메라를 살필 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난데없는 핸드폰 진동음이 들린다. 나는 김세현을 빠르게 곁눈질했다.
“스팸이에요.”
“…….”
핸드폰은 보이지도 않았는데, 스팸이라 단언하는 모습이 묘하게 의심스럽다.
한 번 더 김세현을 봤지만 역시나 손엔 핸드폰이 없었다. 다시 눈을 마주하니 그가 한숨을 뱉으며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한다.
“…스팸 맞네요.”
혹 다른 내용이 아닐까 싶었는데, 스팸이 맞았나 보다.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다시 품에 넣는 모습에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 헉, 호텔 막 도착!
다시 화면을 살피기도 전에 네트워크 너머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집중해 대화 내용을 귀담아들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 현재 호텔 쪽은 인기척이 전혀 없어!
“대피한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까?”
- 확인해야지. 호텔은 긴급 안내 버튼이 어디 있었지?
“프론트 하단에 여닫을 수 있는 작은 문이 하나 있을 겁니다. 그곳에 비치되어 있습니다.”
- 좋아! 이쪽 해결하면 바로 사거리 쪽으로 가도록 하지!
“예.”
몬스터의 이동 방향도 중요했지만, 급선무는 에드워드 왕자 일행의 행방이었다. 호텔에 인기척이 없단 말을 들으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곧바로 부팀장에게 말했다.
“저는 던전 밖을 둘러보겠습니다.”
- 막내야, 밖 둘러보는 김에 협회 놈들도 오고 있는지 한 번 봐 줘!
“네, 김 주무관님.”
그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빠르게 사람이 오가는 CCTV들을 골라 모니터에 띄워 에드워드 왕자 일행과 협회 측 사람을 찾았다.
“…….”
많은 사람이 대피 중이기에 에드워드 왕자 일행도 멀리 가진 못했을 터였다. 던전과 가까운 곳을 살폈지만, 좀처럼 눈에 띄는 이들이 없다. 나는 곧바로 호텔과 가장 가까운 대피소를 살폈다.
- 다행히 호텔에서 대피한 모양이야. 나는 바로 사거리로 가지!
“대피소로 바로 연락 넣겠습니다.”
- 좋아!
던전이 생성될 시 가까운 대피소로 피신하는 건 전세계적으로 권장하는 대응지침이었다. 에드워드 왕자 일행 역시 이쪽의 대피소로 향하고 있을 텐데, 좀처럼 눈에 띄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혹 인파를 피해 다른 길을 택한 건가?
나는 좀 더 범위를 넓혀 도로 CCTV 현황을 화면에 띄우기 시작했다.
- 이런! 김 주무관, 박 주무관! 협회 놈들은 언제쯤 도착 예정이지?
잠잠하던 네트워크 너머에서 다급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황급히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 클램 웜이다! 현재 세 개체가 사거리로 몰려오고 있어!
- 헉, 클램 웜이요?
해안 지역에 생성되는 던전에서나 모습을 보이는 클램 웜이 도시 한 복판에 나타났다고? 그것도 세 개체씩이나?
웜 계열 몬스터 중에서도 가장 상대하기 까다롭다 알려진 몬스터인 클램 웜이 무려 세 개체나 나타났다는 건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클램 웜 세 마리면 덩치 혼자서는 어려울 텐데.”
김세현까지 말을 얹는 것이 영 상황이 좋지 않은 듯했다. 왕자 일행을 찾는 것을 잠시 멈춘 나는 C-4 구역과 협회 사이의 CCTV들을 모조리 켰다.
“…….”
그간 협회 헌터들의 행동을 생각해 보면 현장까지 오는 데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었다. 나는 협회부터 시작해 던전이 있는 C-4 구역 방향으로 화면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리고 몇 분이 흘렀을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들을 발견한 나는 곧바로 상황을 알렸다.
“막 협회 헌터들이 C-4 구역에 도착했습니다!”
- 김 주무관보다 일찍 도착하는 건 처음 아니야?
팀장의 말마따나 이처럼 협회 헌터가 현장에 빨리 투입된 적이 있나 싶다. 나는 계속해서 CCTV를 통해 그들의 움직임을 좇았다.
- 저희도 곧 당도합니다!
- 좋아, 그럼 다들 오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한 번 막아 보지!
네트워크 너머로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목소리에 감정을 실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 하핫! 우리 막내 걱정을 들으니 없던 기운도 솟아나네!
- 너무 걱정하지 마! 오늘만큼은 협회도 그 어느 때보다 협조적이니까!
- 아무렴! 잉여 집에 작은 흠집이라도 가면 그쪽도 곤란하지!
상황이 너무 긴박한 나머지 잠시 김세현의 집 또한 던전 범위 안에 들어갔다는 걸 깜박했다. 나는 김 주무관에게 그 사실을 협회 헌터 측도 인지하고 있는지 물어보려 입을 뗐다.
“협회도 김세현 집이 던전 범위 안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마치 내 마음 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만 같은 질문이다. 고개를 주억이며 들려올 답변에 귀를 기울였다.
- 예! 협조문을 제출하며 C-4 구역에 던전이 생성되었다고 전하니 얼마나 당황했는데요! 급하게 연락을 취하나 싶었는, 피해!
콰앙!
피하란 소리와 거의 동시에 굉음이 들려온다. 이전에 들었던 굉음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소리였다. 나는 그대로 허리를 곧추세운 채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알 수 없는 소리가 계속해서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된다. 차오르는 긴장감에 몇 번이고 침을 삼킬 때였다.
- 취하나 싶었는데, 갑자기 A급 헌터를 턱 하니 내놓지 뭡니까? 이상하다 싶었는데, 잉여 집이 있다는 말 듣고 이해했습니다!
안정감이 느껴지는 김 주무관의 설명을 들으니 이보다 다행일 수가 없다.
- 하, 그러니까 잉여 집 사수하려고 A급 헌터를 보냈다, 이건가?
- 그런 듯합니다! 팀장님, 저희 왔습니다!
- 김 주무관은 왼쪽, 박 주무관은 오른쪽 웜을 담당하도록 해! 협회는 B급 한 명과 C급 한 명 두고 양쪽으로 찢어지도록! 이후 보조 헌터들이 도착하면 전부 후방에서 대기하라고 해!
- 예!
김 주무관과 박 주무관이 현장에 당도할 즈음 협회 측 헌터도 도착한 듯했다. 팀장의 지시가 떨어지자 두 사람의 목소리 너머로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전달된다. 그 어느 때보다 협조적인 모습이 비정상처럼 느껴져야 마땅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현장에서 전달되는 전투 소리에 다시 집중할 때였다. 재차 들려온 진동음이 이상하게 귀를 사로잡는다. 나는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스팸이에요.”
이번에도 역시나 확인 없이 스팸이라 즉답한다. 물끄러미 김세현을 보며 연이어 메시지가 도착하는 소리에 입을 뗐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 정도는 해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래, 스팸 문자라 여기기엔 연속으로 문자가 도착할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혹여 김세현에게 누군가 연락을 취하는 것일지도 몰랐고 말이다.
상황이 상황이기 때문일까, 자연스레 에드워드 왕자가 떠오르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고 몇 초나 흘렀을까. 피식 웃음을 터뜨린 김세현이 품으로 손을 넣는다. 핸드폰을 꺼내 내용을 확인하는가 싶더니, 김세현은 어느새 핸드폰 화면을 돌려 내게 내용을 보여 주었다. 그 바람에 놀라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맞죠? 스팸.”
“…그, 러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확인해 보란 권유 자첼 하지 않았을 거다. 중요 부위는 옷자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하체 사진이 스팸 메시지에 실려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도 침대로 추정되는 곳에 누운 듯한 자세로 말이다.
“…….”
살면서 이렇게 사진까지 첨부된 스팸 메시지는 처음 본다. 얼굴에 열이 오르다 못해 몸까지 열이 나는 게 아무래도 몸 전체에 열이 오른 듯했다. 슬쩍 시선을 내려 손을 보자, 손목 안쪽까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연신 헛기침하며 다시 모니터 쪽으로 몸을 틀었다.
“형, 물 한 잔 떠다 줄까요?”
물을 주냐는 김세현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민망함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굳이 그걸 표현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음도 동동 띄워서 가져다줄게요.”
콧노래를 부르며 김세현이 자리를 뜬다. 힐끔 김세현의 뒷모습을 훔쳐보며 부산스레 마우스를 움직이던 중이었다. 던전과 제법 거리가 있는 도로를 달리는 검은 색 차량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곧바로 그 화면을 크게 키웠다.
“…….”
어떻게 이 차가 이곳에….
그저 눈에 들어와 화면을 확인했을 뿐인데, 이렇게 바로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자동차 앞쪽에 영국 국기와 태극기가 걸려 있음에 곧바로 부팀장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부팀장님! 에드워드 왕자가 탄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이 A구역 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현재 A 구역과 C 구역 경계에 있는 호태역을 지나가는 중입니다!”
“차량 넘버는 어떻게 됩니까?”
“KOR-014입니다!”
번호를 보니 저 차량에 탑승한 이가 에드워드 왕자임이 좀 더 확실해졌다. 의전차량 번호를 전달받은 부팀장이 곧바로 조회를 마쳤는지 이쪽을 바라본다. 이어 고개를 끄덕이는데, 이보다 더 안도할 순 없었다. 반색하며 얼른 안내했다.
“팀장님, 현재 에드워드 왕자 일행은 A 구역으로 이동 중임을 확인했습니다.”
- 후욱, 좋아! 걱정을 덜었어. 모두 사거리 절대 사수한다! 김세현 집에 금 하나 가지 않게 사수해!
- 예!
에드워드 왕자의 무사를 확인한 팀장이 빠르게 상황을 정리한다. 이어지는 전투 실황을 들으며 연신 마른침을 삼키던 와중이었다. 불쑥 코앞에 나타난 종이컵에 나는 옆을 보았다.
“마셔요.”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줄 알았건만, 언제 커피를 타 온 건지 모르겠다. 나는 커피를 받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세현 씨.”
“…그래요.”
커피를 줄 때완 달리 고맙다는 말을 전하자 얼굴에 심통이 어린다. 왜 그런가 싶어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많이 바빠 보여서요.”
갑자기 바빠 보인다는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무척이나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이다. 던전이 생성되고 대응하는 모습을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나는 커피를 책상에 내려놓곤 그를 불렀다.
“세현 씨.”
“네, 형.”
부르기 전까지만 해도 온 세상에 불만을 가진 것 같던 얼굴이 삽시간에 처량하게 변모한다. 너무도 빠른 변화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였다. 땅 밑으로 파고들 듯 축 내려간 눈꼬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