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37)화 (37/246)

35화

08. 첩첩산중

“네?”

“예전에 C 구에 산다고 했잖아요. 설마, 까먹었어요?”

“아!”

에드워드 왕자에 집중하다 보니 김세현의 집 또한 C구역에 있단 걸 깜박했다. 나는 걱정스레 그를 바라보았다.

“하, 이를 어쩌지? 내 집도 부서진 거 아닌지 모르겠네.”

“…….”

집이 부서진 게 아닌지 모르겠다며 왜 저리 천하태평인지 모르겠다. 격하게 뛰는 심장을 누르며 다급하게 물었다.

“세현 씨, 집 위치가 정확히 어느 즈음이에요?”

“저기요.”

다른 날과는 달리 너무도 성의 없어 보이는 모습이다. 턱으로 모니터를 가리키며 딴청을 피우는 것이 마치 제삼자의 상황을 보는 듯했다. 나는 C-4 구역 전체 CCTV를 띄우며 재차 물어보았다.

“어디 즈음인데요?”

“거기요, 거기.”

“…….”

지금, 나 놀림받는 건가?

이번에도 역시나 턱짓으로 답한다. 조금 전보다 목의 움직임이 크긴 했지만, 성의가 없다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시선을 마주했다.

눈이 마주친 그가 멈칫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김세현이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적극적으로 모니터를 살폈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무척이나 적극적인 태도가 인상적이다. 그래, 다른 일도 아니고 본인의 일인데, 이렇게 적극적이어야 맞았다. 나는 계속해서 김세현을 응시했다.

“지금 형 마우스 커서 있는 곳이요! 그래요, 저기 맞아요!”

“아.”

하필 왜 저길 가리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회색빛이 도는 지역에 커서가 가 있음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김세현의 집은 던전 범위 안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다행인 건 던전 중심부가 아닌, 던전 범위 끝자락 쪽이었다.

던전 끝자락 쪽은 상황에 따라 피해가 없던 경우도 있기에 빨리 던전만 클리어된다면 김세현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지도 몰랐다. 나는 조급해져서 김세현을 보며 입을 뗐다.

“당장 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집이라는 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그간의 추억이 깃든 장소기도 했다. 가 봐야 하는 거 아니냐 물었건만, 좀처럼 미동이 없다. 심드렁해 보이기까지 한 그를 보고 있자니 초조함이 들었다. 김세현이 입을 떼자 침을 삼켰다.

“헌터부에서 사람 파견했잖아요. 믿고 기다려야죠.”

“…….”

언제부터 헌터부를 그렇게 믿었다고 저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속이 보여도 너무 훤히 보이는 거짓말이었다.

“정말이라니까요? 헌터부가 나갔는데, 뭐가 그리 걱정이라고.”

이미 거짓말을 들켰음에도 우기기 바쁘다.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김세현 네가 우릴 이렇게나 믿고 있을 진 몰랐네?”

“그러게 말입니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요.”

“와, 형. 지금 그 눈 뭐예요? 그렇게 뜨면 내가 무서워할까 봐?”

차차차차차찰칵!

“…….”

“내가, 어?”

차차찰칵!

“무서워할 줄 알아요?”

차차차차찰칵!

핸드폰을 꺼낸 김세현이 연사로 날 찍기 시작한다. 잔뜩 흥분한 모습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하아.”

집이 위태위태한 상황 속에서 저렇게 태평할 수 있는 건 김세현밖에 없을 거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일인 것처럼 집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에게 물었다.

“정말 안 가 보셔도 돼요?”

“당연하죠. 나한텐 형이 있잖아요.”

“…네?”

집과 내가 무슨 연관관계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고개를 갸웃했다가 눈이 마주친 김세현의 얼굴에 홍조가 떠오른 걸 발견했다.

“헌터부가 일을 못 해서 내 집이 사라지면, 미안해할 거잖아요.”

“헌터부가 일을 못 한 적은 없어요.”

그래,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결코 아니었다. 단호하게 말을 정정해 주자 김세현이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순순히 수긍하는 건 좋았지만,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좋아요. 헌터부가 일을 잘해도 던전 몬스터 때문에 내 집이 사라지면, 저는 오갈 데 없는 상황이 되잖아요.”

“…그, 렇죠?”

“내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형밖에 없는데.”

“…….”

“형이 날 책임지지 않으면 난 갈 곳도 없고.”

김세현의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건 이미 겪은 바가 있기에 대강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이 없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안쓰러운 마음을 담아 그를 보다가 어느새 촉촉해진 푸른 눈동자를 발견했다.

어느새 축 늘어진 눈꼬리가 이보다 불쌍해 보일 수가 없다. 촉촉하게 젖은 푸른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뭐라도 해 주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하지만….

김세현의 식사량을 생각해 보면 우리 집에서 해결이 가능할까 싶었다. 지금처럼 최고급 옷만 걸치는 그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주택에서 지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갈 곳이 없다는 이를 거절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마른침을 삼키고 겨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되면 우.”

“흠, 흠! 하늘 씨.”

“네?”

헛기침을 하며 부팀장이 호출한다. 바로 답하자, 부팀장은 턱짓을 하며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

갑자기 왜 출입문 쪽을 가리키는지 모르겠다. …아?

“세현 씨.”

그래, 왜 그걸 잊었는지 모르겠다. 그와 눈을 마주했다가 손가락으로 출입문, 그러니까 출입문 방향에 있는 협회를 가리켰다.

“협회에서 지내시는 건 어떠세요?”

심적으로는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김세현에겐 협회가 더 편할지도 몰랐다. 뷔페식의 식사도 공짜로 할 수 있고, 또 S급 헌터에겐 전용 공간이 따로 지급된다고 들었다.

김세현이 날 가깝게 여기는 건 고마웠지만, 역시 집에 들이는 건 아닌 듯했다. 슬쩍 부팀장을 보자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내가 같이 있는 게 싫어요?”

“아뇨, 그건 아니에요. 그냥 세현 씨가 불편할까 봐 그러죠.”

“나 협회 사람들이랑 안 친한데.”

“…….”

친하지 않다는 말을 들으니 더는 뭐라 할 수가 없다. 조금 전보다 더욱 처진 눈꼬리가 처량해 보인다. 마치 비를 맞은 강아지 같은 모습이 이보다 더 안쓰러울 수가 없다. 저리 불쌍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흔들린다. 나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짐을 무너뜨리고야 말았다.

“그럼 그래요.”

“…정말이죠?”

눈을 끔벅이던 그가 재차 묻는다. 나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신, 며칠 만이에요.”

“하늘 씨.”

대답과 동시에 부팀장이 부른다. 그쪽을 보았다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그가 혀를 차자 눈을 굴렸다.

부팀장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알고 있었다. 과거에 김세현을 집에 들이지 말라고 했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불쌍해 보이는 김세현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김세현의 옷차림을 살핀 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보이는 것들만 걸친 모습에 침을 삼켰다. 그래, 아무리 김세현이 우리 집에서 지내고 싶다고 한들 이렇게 비싼 것들을 몸에 휘감은 사람이 평범한 집에서 지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어쩌면 몇 시간 머무르다 안 될 것 같아 호텔로 자리를 옮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며칠이란 말을 붙인 것도 전부 그 때문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김세현의 집이 아직 멀쩡하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사무실 안에 감도는 정적이 날 탓하는 것만 같다. 위축되어 있는데, 깊은 한숨을 뱉은 부팀장이 물어 왔다.

“김세현 집 위치가 어디라고 했죠?”

얼른 CCTV를 확인했다.

“C-4 구역 현라 백화점 사거리 근방입니다.”

“그렇습니까?”

위치를 전해 들은 그가 곧바로 네트워크 이어폰을 터치하며 이쪽을 바라본다. 정확히는 김세현을 바라보는 부팀장이다.

“듣고 있습니까?”

- 예, 부팀장님!

- 들립니다!

“김 주무관, 박 주무관. 그리고 팀장님. 던전 중심은 협회에게 맡기고 현라 백화점 사거리 쪽 절대 사수합니다!”

- 갑자기 왜?

“못 막으면 시말서 쓴다는 각오로 임하셔야 합니다.”

- 예?

- 거기 뭐 있습니까?

시말서 이야기에 현장에 나간 세 사람이 화들짝 놀란다. 덩달아 놀랐다. 이번엔 나를 바라보는 부팀장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곳에 김세현 집이 있다고 합니다.”

- 막내야, 절대 안 된다!

- 무조건 절대적으로 사수해 보이지!

부팀장은 어디까지나 김세현의 집이 있다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안 된다는 말이 나오다니.

절대 사수하겠다는 말은 또 어떻고 말이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격한 반응에 힐끗 김세현을 보았다.

“…….”

오갈 데가 없으면 잠시 우리 집에 와 있어도 된다 말했건만, 어째 조금 전보다 훨씬 불쌍해 보이는 얼굴로 날 바라보는 김세현이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던 것도 잠시, 정신을 다잡았다.

지금은 이렇게 딴소리와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계속해서 던전 주변 CCTV를 살피며 상황을 살피다가 뭔가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된 CCTV 화면을 확대했다.

“…어?”

저게 뭐지?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바닥이 융기되고 침강되길 반복하는 도로가 보인다. 볼록 튀어나온 부분이 도로를 가르고, 그 뒤론 다시 무너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저 볼록한 부분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씨앗을 심기 위해 고랑을 파놓은 듯 바닥이 푹 꺼진 상태였다.

이게 뭘까 싶어 계속해서 그것의 움직임을 살피던 와중에 도로를 타고 움직이던 지진이 방향을 틀자, 헛숨을 들이켰다.

“헉!”

도로 근처 빌딩으로 곧장 직진한 그것이 그대로 건물과 부딪힌다.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니었지만, 부딪힘과 동시에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먼지바람이 인다. 나는 다급히 손을 들었다.

“부팀장님!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뭔데 그래?”

이런 상황은 처음 보기에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알 수 없는 무언가와 부딪힌 빌딩이 삽시간에 무너지는 모습에 더욱 다급해졌다.

“빨리요!”

보챔에 부팀장이 빠르게 다가와 화면을 본다. 나는 이리저리 CCTV 화면을 뒤져 다시 그것의 움직임을 모니터에 띄웠다.

“…설마.”

“이쪽에 뭐가 있습니까?”

화면 속 움직임을 보며 뭔가가 떠오른 듯했다. 부팀장의 물음에 화면을 나눠 전체 CCTV 화면을 확인하곤 마른침을 삼켰다.

“그게….”

“와, 그대로 직진만 하면 거기 나오겠네요.”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저렇게 태연자약할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저곳에 본인 집이 있나 싶을 만큼 말이다. 태평스러운 말투를 뒤로한 채 말했다.

“이대로 70m 전진하면 세현 씨의 집이 있는 사거리에 도달합니다!”

“뭐?”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놀란 부팀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세현 씨의 집에서 100m 더 전진하면 에드워드 왕자가 머무는 호텔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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