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36)화 (36/246)

34화

08. 첩첩산중

「영국 왕위 계승자 서열 3위 에드워드 왕자 비밀리에 방한」

「헌터 왕자의 방한, 숨겨진 의도는?」

「C-4 구역의 유명 호텔 리스트」

뉴스 헤드라인을 쭉 훑어보니 정말 그 에드워드 왕자가 극비리에 방한한 게 맞는 모양이었다.

“흠.”

평소 하나의 화제가 있다면 여러 시각으로 접근하는 뉴스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하나같이 에드워드 왕자의 방한 의도를 의심하는 기사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김세현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

모든 매체가 하나의 소리를 낸다는 건 그간 에드워드 왕자가 일궈온 일 때문일 거다.

타국의 헌터와 접촉할 때마다 그 헌터를 영국 소속으로 만들었던 이가 바로 에드워드 왕자였다. 그런 왕자가 김세현을 기다리고 있다 말했으니 자연스레 생각이 그쪽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얼마 전 영국 스케줄을 소화하고 돌아오기도 했고 말이다.

혹 내가 생각하는 그것 때문에 영국에 다녀왔던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멍하니 빈 의자만 보던 와중에 누군가가 의자에 앉는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요?”

“아, 좀 생각할 거리가 있어서요.”

“내 생각?”

슬쩍 모니터로 시선을 준 김세현이 은근한 미소를 짓는다.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뉴스들도 그렇고 해서요.”

“흐음.”

뉴스와 나를 번갈아 보며 턱을 만지던 김세현의 얼굴이 묘하다. 무슨 생각을 하나 싶어 뚫어져라 그를 보고 있으려니, 김세현이 물어 왔다.

“내가 가면 서운해요?”

“당연하죠.”

“이거 좀 흔들리는 거 같기도 하고.”

“…정말 영국 가시려고요?”

흔들린다는 말은 영국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나라에 S급 헌터가 김세현 말고도 또 있다고는 하지만 김세현만큼 파급력이 강한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대화도 나누고 시간도 보내는 사이였는데 가버리면 엄청 서운할 것이었다.

“…….”

안 갔으면 하지만, 그건 내 욕심이었다. 말은 할 순 없어도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김세현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진다. 그에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였다.

“아니, 왜 눈을 그렇게 떠요!”

“음.”

“안 가요, 안 가! 형이 가라고 등 떠밀어도 안 갈 거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요!”

“…정말이요?”

“한국 뜰 생각 추호도 없다니까요? 내가 없는 사이에 누가 하늘 형 홀랑 집어 갈까 지키고 있는 거 안 보여요?”

“…….”

누가 집는다고 해서 내가 집힐 무게도 아니었지만, 김세현이 가지 않는다니 이보다 더 안도할 수가 없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슬그머니 미소 짓다가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 이를 보았다.

“하늘 씨.”

“네, 부팀장님.”

부팀장의 부름에 답했다. 부팀장은 컴퓨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또 모르는 게 있나 보다. 익숙하게 가르쳐 주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 했다.

“이거 잘 모르겠….”

한쪽 팔을 붙잡은 김세현이다. 할 말이 있나 싶었지만 도리어 김세현은 내가 아닌 부팀장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알면서 모르는 척 부르지 말지?”

“그러는 그쪽은 그 숨부터 처리하시죠. 먹든가, 참든가.”

“우리도 누가 우리 막내 확 집어 가진 않을까 항상 대기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

갑자기 시작된 대치 상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부팀장이 혀를 차며 알아서 하겠단 말하자 고개를 저었다.

“직접 찾는 것보단 아는 사람이 알려 주는 편이 빨라요.”

그러지 않아도 부팀장이 처리하는 일이 많은데, 무언갈 찾으며 시간을 허비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붙잡힌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 내고 곧바로 부팀장 자리로 이동했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죠?”

“아, 이것도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에요.”

역시, 간단한 조작법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

김세현과 부팀장을 번갈아 보았다가 부팀장이 뚫어져라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음에 의심을 거뒀다.

그래, 평소 부팀장을 생각해 보면 무슨 일이 있을 때면 숨기는 것 없이 말했었다. 지금 이렇게 모니터만 본다는 건 정말 모른다는 의미일 게 틀림없었다.

간단한 것일수록 검색 사이트에 찾아봐도 잘 나오지 않는다는 걸 상기하며 부팀장이 물어본 건에 대한 설명을 마친 뒤 고맙다고 말하는 이에 볼을 긁적였다.

“형, 다 했으면 얼른 와요. 나 형이 부족하단 말이에요.”

“…네.”

부족하다는 말이 왜 이리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반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복귀했다. 그와 함께 나를 옆으로 슬쩍 민 김세현이 조금 더 책상 안으로 들어와 앉는 걸 보았다.

“이 뉴스들 보지 마요. 내가 안 간다는데, 굳이 봐서 뭐 해요.”

손을 뻗은 그가 모니터에 띄운 검색 사이트를 종료한다. 나는 눈을 끔벅였다.

“무슨 일로 잉여가 다 바른말을 할까. 인제 해결되었으니 막내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전부 본업에 복귀해!”

“예!”

“알겠습니다.”

“…….”

나에게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팀원 전체에게도 말할 줄은 몰랐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랐다가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뉴스 기사를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입가가 씰룩였다.

찰칵!

“아.”

차차차차찰칵!

한동안 잠잠했던 김세현의 핸드폰이 다시 바빠진다.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주었다.

“하늘 형은 매번 찍을 때마다 다채로운 것이 보석 같아요.”

차차차차차찰칵!

“내일은 카메라를 가지고 올까.”

최신 핸드폰만으로도 충분했다. 김세현이라면 왠지 모르게 전문 장비를 가지고 와 여기저기 조명까지 설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한사코 손사래 쳤다.

“아뇨! 카메라 반입은 절대 안 돼요!”

물론 카메라 반입 불가라는 건 없었지만, 지금은 불가다.

핸드폰으로도 민망한데 그 커다란 것이 날 향한다면 이번엔 정말 참지 못할지도 몰랐다.

빤히 나를 보는가 싶던 김세현이 다시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민다. 연사를 찍는 듯 찰칵거리는 소리가 이어졌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카메라만큼은 피하고 싶단 생각에 계속해서 김세현에게 무언의 압박을 넣은 뒤 연사를 찍는 손을 멈추지 않는 이가 던진 질문에 냉큼 답했다.

“카메라 가지고 오지 말아요?”

“네. 절대요.”

“…뭐, 형이 싫다면 재고해 볼게요.”

픽 웃음을 터뜨린 김세현이 재고해 보겠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 안도하며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시 작업을 진행하며 중간중간 김세현과 대화를 나누고 또 커피를 마시다가 점심시간이 될 무렵, 한동안 조용했던 긴급 전화가 울림에 긴장했다.

“서울시 헌터부입니다.”

빠르게 전화를 받은 김 주무관이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심각한 그의 표정에 파르르 입가가 떨려 왔다.

“C-4 구역에 던전이 활성화되었다고 합니다! 규모는 B급, 난이도는 C급입니다!”

“바로 가지! 김 주무관! 박 주무관!”

“바로 준비하고 따라가겠습니다!”

“저도 끝나는 대로 바로 가겠습니다!”

“그럼 난 먼저 출발하지!”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을 부른 팀장이 나가기 전 부팀장과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는 말이 필요치 않았다. 그대로 창문을 통해 팀장이 나가자 창문을 닫은 뒤 중계기와 네트워크를 오픈하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 C-4면 뭔가 익숙한 느낌인데?”

협조문을 준비하던 김 주무관이 상체를 세우며 입을 뗀다. 나 또한 기시감을 인지하곤 그를 보았다.

“거기잖아요, 형.”

“거기요?”

김세현의 말에 그를 봤다가 그의 손가락이 모니터를 향하고 있음에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헉!”

“…헉! 여기 에드워드 왕자가 머무는 구역인데요?”

“뭐?”

“팀장님! C-4 구역으로 좀 더 빨리 가 주십시오, 에드워드 왕자가 C-4 구역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 뭐? 알았어!

네트워크 연동이 끝남과 동시에 팀장에게 이 소식을 전하는 부팀장이다. 놀란 팀장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잠잠해진 사무실 분위기에 좀 더 빠르게 중계기를 오픈 후 자리로 돌아왔다.

“…….”

에드워드 왕자가 B급 헌터라는 건 널리 퍼진 정보였다. 난이도가 C급이라 그나마 다행일까 싶었지만, 그를 보필키 위해 따라온 이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이번 던전은 절대 반갑지 않았다.

“그럼 저는 바로 가겠습니다!”

김 주무관이 급히 나간다. 빠르게 CCTV 상황을 확인해 현황을 전달하자 박 주무관이 재난 문자를 보낸다. 이어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왜 그렇게 긴장해요?”

“귀빈이잖아요.”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귀빈의 안전에 이상이 생긴다면 문제가 컸다. 언제 어디서 생성될지 모르는 던전이라고 한들 영국과 우리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히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나는 연거푸 마른세수를 하며 집중하려 애썼다.

“형, 그렇게 긴장 안 해도 그 녀석은 멀쩡할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주변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잖아요.”

“아, 그 걱정이었어요? 난 또 그놈이 다칠까 걱정하는 줄 알았네.”

“…….”

너무도 태평히 말하는 김세현을 보고 있자니 정말 던전이 생성된 게 맞는지, 그 장소에 에드워드 왕자가 있는 게 맞나 싶을 지경이다. 잠시 말을 잃었으나, 너무도 태연자약한 이의 모습이 너무도 이상해 유심히 그를 살폈다.

평소에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능청맞은 여유로움이 사라지지 않는 김세현이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그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유지 중임에 하나 떠오른 생각을 입에 담았다.

“혹시, 보필하는 분들도….”

그래,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김세현이 여유롭진 못할 것이었다. 적어도 어제 이곳을 찾았던 그 남자라도 찾아와 김세현에게 매달렸겠지.

“형, 이런 쪽 촉 말고 다른 쪽 촉 좀 세울 생각 없어요?”

“…제 촉은 언제나 살아 있어요.”

촉이 없었다면 직접적으로 말을 듣기 전까지는 에드워드 왕자를 보필하는 이들이 헌터란 사실을 몰랐을 거다. 이보다 더 촉이 살아 있을 순 없다 생각하며 김세현을 보다가 그의 고개가 살짝 옆으로 기울어지는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하?”

“…….”

마치 내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듯한 제스처다.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지금은 현장이 우선이었다. CCTV를 확인하란 부팀장의 말에 몸을 바로 했다.

보필하는 사람들도 헌터란 사실을 확인했지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던전이었다.

“후우.”

심호흡하며 풀어진 긴장을 끌어 올린 나는 곧바로 CCTV를 면밀히 살폈다.

“근데, 형.”

“네.”

조용하던 김세현이 날 부른다. 그에 답하면서도 계속해서 화면만 보다가 이어진 말에 김세현을 볼 수밖에 없었다.

“C-4 구역에 내 집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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