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35)화 (35/246)

33화

08. 첩첩산중

“예, 들어오십쇼!”

그 어느 때보다 밝은 팀장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운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모습을 보인 낯선 남자다. 나는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헉!”

사무실 이곳저곳에 눈을 주는가 싶던 그가 이쪽, 정확히는 김세현에게 시선을 주더니 헛숨을 들이마신다. 무척이나 안도하는 모습에 김세현을 보았다. 김세현은 못마땅함이 여실히 드러난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세현 헌터님!”

“아!”

뭔가 익숙한 목소리다 싶었는데, 이 목소릴 들은 기억이 난다. 그래, 영상통화 도중 김세현이 짐 싸고 한국으로 돌아오려 했을 때 들은 목소리가 바로 이 목소리였다.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있다가 정장을 입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안녕하세요.”

“혹시 그때….”

인사만 했을 뿐인데, 저쪽도 바로 알아차린 듯했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이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성큼 거리를 좁혀 온 이가 꾸벅 허리를 숙이자 당황했다.

“그땐 정말 감사했습니다! 일이 커질 뻔했는데, 덕분에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뭘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도움도 그런 도움이 없었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이번엔 정말 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과한 인사를 받으니 이보다 민망할 수가 없다.

덩달아 자리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몸을 바로 하던 중 눈이 마주친 그가 재차 허리를 숙이자 따라 숙였다 몸을 폈다.

“큰일은 무슨. 본인에게 일이 생길 뻔했던 거겠지.”

삐딱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온다. 나는 김세현을 보았다.

“저한테 일이 생기는 것도 맞지만, 국가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럴 리가.”

“정말이래도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말에 김세현이 콧방귀를 낀다. 외교적 마찰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말에도 이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다. 눈썹 하나 꿈쩍이지 않는 김세현의 모습에 당황하다가 김 주무관이 다가와 입가를 손으로 가리자, 귀를 가져다 댔다.

“아는 사이야?”

“…조금요?”

그저 목소리로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정도였다. 김 주무관의 말에 얼버무리곤 김세현의 새된 반응에 눈을 끔벅였다.

“이따 갈 테니 먼저 돌아가 있으라니까?”

“이따가 언젠지 정확히 말씀 주셔야죠!”

“언제부터 내 스케줄에 그렇게 관심이 있었다고. 있는 척 그만하고 가지?”

“지금 에드워드 왕자가 헌터님 기다리고 계시는 거 뻔히 알고 계시잖습니까!”

“왕자건 뭐건 여기선 내가 법이니까 나한테 맞추라고 해!”

“와.”

“진짜 일관적이라 뭐라 말을 못 하겠네.”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타국의 왕자를 기다리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서 가 보라 손을 휘휘 젓는 김세현을 불렀다.

“저기, 세현 씨?”

“네, 형.”

“…….”

몇 차례 경험하긴 했지만, 이리 순식간에 순한 양으로 변하는 김세현은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다. 미간을 찌푸릴 땐 언제고 마냥 순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이에 한 템포 쉬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이분도 상황이 있을 텐데, 시간 정도는 알려 드리면 좋을 것 같아서요.”

“…….”

“이유가 있어서 가지 않는 거라면 그 또한 말씀드려야 이분이 커버해 주지 않을까요?”

그래, 갈지 말지를 확실하게 말을 해 주는 편이 서로에게 이득이었다. 말없이 날 보던 김세현이 남자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안 됩니다.”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이번엔 정말 가셔야 합니다. …회장님까지 나선 상황이에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언제 협회장 말 듣는 거 봤어?”

“하지만.”

김세현을 설득해 보려던 남자의 시선이 정확히 나를 향한다. 곤란함과 함께 다른 무언가가 실린 듯한 눈동자가 어지러이 흔들린다. 묘하게 날 안쓰러워하고 있단 생각이 든 순간, 사무실 기온이 뚝 떨어졌다.

“…지금, 나랑 한번 해 보자는 건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목소리를 내는 김세현이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싸늘한 얼굴로 남자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을 보다가 온몸에 올라온 닭살에 팔뚝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김세현, 싸울 거면 나가서 싸워.”

두 사람의 대치 상황이 탐탁지 않은 듯 팀장이 나가 싸우란 의견을 낸다. 좋게 대화를 마무리하라는 것도 아닌, 나가서 싸우라 할 줄은 몰랐다. 당황하며 김세현을 보았지만, 팀장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에 흠칫했다.

“지금 누가 봐주고 있는데, 그따위 생각을 해.”

“…….”

평소에도 툭하면 사람 말을 무시하는 김세현이긴 했지만, 지금은 그때완 달리 위험한 느낌이 강했다. 숨소리조차 죽인 채 그저 남자만 바라보는 김세현이다. 그런 그를 눈에 담다가 한 번 더 두 사람의 대치 사이에 끼어든 팀장을 보았다.

“장소는 봐 가면서 하지?”

“비켜, 덩치.”

“싸울 거면 너희 협회 가서 싸우라는 말 안 들려? 지금 여기서 싸우면 민간인들 다쳐.”

“비키라고.”

두 사람 사이에 선 팀장에게 다가서는 김세현의 걸음걸이가 위협적이다. 팀장과 지근거리에 서서는 한 번 더 위협을 가하는 이에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고 움직이지 않으려 드는 발을 뗐다.

“세현 씨!”

“형.”

느릿하게 눈을 끔벅인 김세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날 부른다. 고개를 끄덕인 뒤 그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시원한 물이라도 드릴까요?”

“…네.”

혹여 물이 안 당긴다고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다. 바로 정수기로 가 물을 떠 가지고 와 그것을 건넸다.

“물 차가우니까 천천히 드세요.”

“네.”

고개를 끄덕인 이가 건네받은 잔의 물을 천천히 마신다. 뜨거운 커피를 마실 때보다 느릿한 속도로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다가 등 뒤에서 들려온 숨소리에 몸을 틀었다.

“…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긴장하며 눈치를 살피던 남자가 반쯤 넋을 놓은 듯 멍하니 이쪽을 바라본다. 그런 그를 멀뚱히 보던 찰나, 별안간 허리를 감싼 손에 그대로 끌려갔다.

“이 사람과 관련된 것에 손댔다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전해.”

“흡!”

“말도 안 되는 수작 부리다간 진짜 너 죽고 나 사는 거라고.”

재차 으르렁거리는 김세현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목덜미에 닿는 숨에 소름이 돋는다. 뒤이어 등 뒤로 느껴지는 김세현의 체온과 허리를 감싸 안은 손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이 몸 곳곳으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 보면 이런 식의 접촉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래, 서로 키가 크다는 걸 자랑하기 위해 괜히 어깨동무하듯 등에 매달리고, 또 등을 내어 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완 전혀 달랐다.

파르르 눈을 떨며 앞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나와 김세현을 번갈아 보던 남자가 이윽고 한 번 더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슬금슬금 어딘가로 움직인다. 보지 않는 척하면서도 자꾸만 출입문 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발견하곤 툭 말을 건넸다.

“그, 조심히 가세요.”

“흡!”

말을 걸자 화들짝 놀란 남자가 재빠르게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사무실에 나타날 때도 제법 빨랐지만, 사라질 때는 그완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사라졌다. 나는 침묵하다 등 뒤, 그러니까 내 허리를 감싸고 선 김세현의 목소리에 흠칫했다.

“하늘 형.”

“…네.”

“저놈, 알아요?”

“목소리는 알아요.”

“목소리?”

“지난번에 세현 씨랑 통화할 때 목소리 들었어요.”

“…그걸로 끝?”

“네.”

눈치가 없단 말을 자주 들은 편이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정말로 내가 눈치가 없었다면 그때 잠깐 들었던 목소리 주인이 저 남자였단 걸 알아차리지 못했으리라.

“근데 형.”

“네?”

조금 전의 차가운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다. 평소의 부름에 답한 이어진 말에 당황했다.

“나 좀 위험한 거 같은데.”

“위험이요?”

난데없이 위험하단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반쯤 몸을 틀며 고개를 들었다가 김세현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음을 발견했다.

“…후욱.”

이렇게까지 거리가 가까울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누가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바로 얼굴끼리 접촉이 생길지도 모를 만큼 가깝다. 그대로 꽁꽁 얼어붙은 채 점차 김세현의 얼굴이 가까워지는 순간, 허리를 다른 손이 감싸더니 잡아당기는 힘에 눈이 커졌다.

“자, 거기까지!”

김세현이 거친 숨을 몰아쉼과 동시에 팀장이 얼른 김세현과 내 사이를 벌린다. 그대로 김세현의 품에서 벗어난 뒤 그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형, 나 좀 아파요.”

“어디ㄱ”

“거기까지! 넌 자리로 돌아가. 김세현이 너는 아픈 척 그만하고 그 숨 좀 어떻게 진정시켜보고.”

“형이 호 하고 불어 주면 참 괜찮을 거 같기도 한데.”

“…그건 좀.”

어린아이였다면 또 모를까, 호 불어 달라는 건 좀 아니었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나 아픈데, 호도 안 해 줘요?”

“호는 좀 그래요.”

저렇게 대놓고 호해 달란 말을 들으니 해 주고 싶어도 민망해서 해 주지 못할 듯했다. 나는 한 번 더 고개를 저었다. 축 늘어진 눈동자가 영 마음에 쓰였지만, 아닌 건 아니었다.

“형, 나 배고픈데. 하늘 형이 만든 라면 먹고 싶어요.”

“좀 가서 먹지?”

“계란 두 개 풀어 줘요! 라면은 네 봉이요.”

“그럴게요.”

그래, 라면을 끓여 주기로 했었지.

갑작스러운 일에 잠시 깜박했다. 바로 팀장의 품에서 벗어나 곧바로 개수대로 향했다.

냄비에 물을 받아 안친 뒤, 라면 봉지를 까고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며 조금 전 있던 일을 곱씹어 보았다.

“…….”

김세현이 협회 소속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조금 전 대치 상황을 보았을 때 완전히 협회에 마음을 내어 주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 그게 아니라면 협회장에게 너 죽고 나 산다는 말은 하지 못했을 거다.

…물론, 김세현이라 가능할 것 같기도 했지만 말이다.

“…….”

하여튼 방금 일은 좀 놀라웠다.

협회에 속해 있기에 어느 정도는 협회 사람들과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인 듯했다. 무관심한 태도와 날이 선 태도로 협회 사람을 대하던 모습을 떠올리니 괜히 김세현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긴다.

그래, 나처럼 모두가 회사 사람과 친할 순 없는데, 으레 그럴 것으로 혼자 착각하고 김세현에게 적용해 등 떠밀 뻔한 행동은 고쳐야 마땅했다.

미안함이 앞서 라면을 끓이는 데 평소보다 배 이상은 공을 들였다.

마지막으로 김세현이 주문한 계란까지 넣어 휘저은 뒤 원탁으로 라면을 가지고 갔다. 마지막으로 젓가락과 수저, 그리고 앞접시를 챙겨 어느새 원탁으로 이동한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뜨거우니 천천히 드세요.”

“그럴게요, 형.”

눈이 마주친 그가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 다시 정수기로 이동해 시원한 물 한 잔을 떠다 옆에 놓고 김세현이 식사를 시작하자 자리로 돌아와 작업하던 파일을 마저 작업하기 시작했다.

“근데 형.”

“네, 세현 씨.”

라면을 먹을 땐 조용하던 이가 갑자기 부른다. 고개를 들었다가 그와 눈을 마주했다.

“앞으로 조심해요. 되도록 혼자 다니지 말고.”

“…….”

“정말 악질적인 놈들이니까.”

“그건 우리도 알아서 방비할 테니 너는 네 일이나 하지 그래.”

김세현의 말에 팀장이 끼어든다. 김세현이 슬쩍 내 뒤를 보는가 싶더니 다시 눈을 마주해 오며 생긋 웃는다. 평소와 같은 미소였지만, 저 미소를 보고 있자니 대답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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