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34)화 (34/246)

32화

08. 첩첩산중

다음 날, 어김없이 부팀장과 출근한 나는 아침 댓바람부터 사무실 앞을 서성이고 있는 인영을 발견했다.

“…….”

지난번에 한 번 겪어봤기 때문일까, 영 기분이 좋지 않다. 혹시나 다른 사무실을 찾아온 이를 오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좀 더 그를 살폈다.

“…쯧.”

뒤늦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부팀장도 사무실 앞의 인물을 발견한 듯했다. 작게 혀 차는 소리에 부팀장을 보았다가 시선을 마주해 온 이가 고개를 젓자 따라 고개를 흔들었다.

부팀장의 반응을 보건대 저 사람 또한 협회 사람임이 분명했다. 어제 청사에서도 헌터부가 썩 좋지 못한 대우를 받아 기분이 별론데, 오늘은 아침부터 이렇게 협회에게 무시당한다 생각하니 화가 치민다.

잔뜩 굳은 얼굴로 사무실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던 것도 잠시였다. 등지고 서 있던 이가 몸을 튼다. 눈에 들어온 익숙한 얼굴에 나는 절로 입을 벌렸다.

“…세현 씨?”

움찔.

사무실을 보는가 싶던 이가 멈칫한다. 그 어느 때보다 느리게 고개를 돌리는 김세현의 모습이 낯설다. 나는 한참 만에야 파란 눈동자와 마주했다.

“하늘 형!”

눈이 마주침과 함께 얼굴 가득 화사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저 미소를 마지막으로 본 지 며칠 되지 않았건만, 굉장히 오래전에 본 느낌이다. 기억 속의 미소가 빛을 바랬다면, 지금 저 미소는 너무도 찬란했다.

점차 김세현이 가까워질수록 얼굴 또한 또렷해진다. 뿐이랴, 그가 두 손을 대자로 뻗는 행동 또한 확연히 보였다. 이제 곧 그가 코앞에 당도한단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부팀장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까지.”

“…비키지?”

“김세현 씨라면 비키겠습니까?”

“혀엉, 보고 싶었어요.”

오래간만의 대치를 봐서일까, 낯설면서도 반가운 데가 있다. 팀장과 김세현이 아닌, 부팀장과 김세현의 대치에 어깨 너머로 그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어 보였다.

“사무실 문 열게요. 커피 드실 거죠?”

“…….”

“커피 마시면 밖에서 대기하시죠.”

“와, 형 커피 정말 오래간만에 마시겠네요.”

이번에도 역시나 자연스럽게 부팀장의 말을 무시한다. 혹여 부팀장이 기분 나빠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부팀장은 기분이 나빠 보이기는커녕 제법 반가운 눈치였다.

물론 저 반가움은 내가 느끼는 반가움과는 조금 다를 것이었다. 밖에서 샐지도 모른다던 바가지가 집에 돌아왔다는 반가움과 정말 반가운 건 다른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김세현이 대뜸 책상 앞으로 가는 것을 보곤 뒤늦게 상황을 깨달았다.

“그거 원탁으로 옮겨서 앉으세요.”

“…형, 이거 계속 여기 두고 있었던 거예요?”

“네? 네.”

책상 위에 올려 두기엔 바구니 사이즈가 커도 한참 컸다.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정수기로 가 부팀장의 율무차를 먼저 준비해 건넨 뒤 커피 석 잔을 타 자리로 향했다.

“제가 치울까요?”

아직도 자리에 앉지 않았을 줄은 몰랐다. 오도카니 서서는 가만히 꽃바구니가 놓인 자리를 보는 김세현에게 물어봤다가 묘하게 표정이 어둡다는 걸 눈치챘다.

“…….”

혹 본인 자리에 물건을 둬서 기분이 안 좋은 걸까.

종잡을 수 없는 김세현인지라 그럴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다. 책상에 커피를 내려놓은 뒤 곧바로 꽃바구니로 손을 뻗었다.

“내가 치울게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만히 서 있던 이가 꽃바구니를 들어 원탁으로 옮긴다. 자리로 돌아오는 그를 보다가 조금 전과는 달리 어두운 기색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김세현은 의자에 앉더니 씩 웃으며 나를 올려다봤다. 따라 입꼬리를 끌어 올린 채 이어진 김세현의 행동에 눈을 끔벅였다.

“의자 불편해서 일어났어요?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내가 많이 양보했다! 여기 앉아서 일 봐요.”

“…….”

자기 허벅지를 손으로 치며 앉으라 말하는 이다. 어쩜 저렇게 민망하고 뻔뻔한 말을 쉽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잠깐 못 봤다고 어색했는데, 저 말을 들으니 이제 정말 김세현이 돌아온 게 체감이 난다.

열이 오른 게 얼굴에 티 나지 않길 바라며 냉큼 내 자리에 착석했다.

“여기도 좋아요.”

“…….”

“커피 드세요.”

“잘 마실게요, 형.”

조금은 실망한 듯 보이던 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히 웃으며 잔을 든다. 뚫어져라 그를 보다가 역시나 남아 있지 않은 어두운 감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끄덕이려 했다.

“아참, 형. 칭찬상은 수령했어요?”

칭찬상을 받게 되었다는 말은 김세현에게 한 적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라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다 아는 수가 있죠.”

“…….”

단번에 커피 한 잔을 비운 김세현이 두 번째 잔을 비우며 말한다. 개구진 웃음을 입가에 단 이를 보다가 사무실 문이 열리며 큰 목소리가 나자 그쪽을 바라보았다.

“좋은 아, 깜짝이야!”

김세현이 와 있을 줄 몰랐는지 팀장이 크게 뜬 눈으로 옆자리를 바라본다. 정말 놀란 듯 몇 초간 그 자리에 서서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는 뒤늦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로 향하는 이를 지켜봤다.

“쟨 언제 왔어?”

“출근해 보니 사무실 앞에 있더군요.”

“쯧!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오는 건 협회 특성인가?”

마치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나간 것만 같다. 팀장의 말에 속으로 공감하며 김세현의 부름에 그를 바라보았다.

“형, 그나저나 나랑 약속한 거 지킬 거죠?”

“약속이요?”

김세현과 따로 약속한 건 없었다. 약속 비슷한 거라고 해 봤자 예전에 김세현의 소원을 하나 들어주기로 했던 것밖에 없었다. 고개를 갸웃하다가 불퉁한 얼굴로 불만을 토해 내는 이를 지켜봤다.

“일정 다 소화하고 오라면서요! 그럼 형 위에서 사진 찍게 해 주겠다고 할 땐 언제고!”

“…전 확답드린 적 없는데요.”

그래, 생각해 본다고 했다면 했겠지만, 확답한 기억은 없었다.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형이 좋아한다고 해서 열심히 일하고 왔는데!”

“그건… 잘하셨어요.”

영국 총리와 협회 회장을 만나는 자리를 펑크내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풉!”

“큭큭!”

잘했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팀장과 부팀장이 웃음을 터뜨린다. 그와 함께 김세현이 울적한 표정을 짓는다. 저 표정을 보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차오른다. 커피를 한 잔 더 타 올까 생각하며 진동 소리와 함께 상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 그를 보았다.

“…….”

잠시 화면을 확인하는가 싶던 김세현이 이내 통화를 거절하고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전화가 끊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울리는 진동이다. 진동 소리를 무시하는 이에 슬쩍 말을 걸었다.

“세현 씨.”

“…….”

계속해서 전화를 무시하는 걸 보면 연락받기 싫은 이의 연락인 듯했다. 눈을 마주해 온 이의 모습에 말을 고른 뒤 그에게 제안했다.

“이따가 라면 끓여 드릴까요?”

아침부터 사무실 앞을 지켰다는 건 아직 아침 전일 수도 있었다.

지금 당장 끓여 줄 수도 있지만, 아직 조회 전이었다. 조회를 진행하며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건 결례였다. 재차 조회 후 라면을 끓여 주냐 물었다가 더는 내려가지 않을 것 같던 눈꼬리가 축 처지는 모습을 목도했다.

“라면….”

라면이란 말을 읊조리던 김세현의 어깨가 처진다.

그완 반대로 팀장과 부팀장의 웃음소리가 점차 커진다. 정반대의 반응만 보이는 세 사람을 보다가 이내 복잡한 생각을 뒤로했다. 그래,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젠 적응할 때도 되었다.

그렇게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며 조회 시간을 기다리다 출근한 김 주무관과 박 주무관 역시 팀장처럼 놀라는 모습에 픽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좋은, 우왁!”

“뭔데 그렇게 놀…. 흐억!”

“지금 웃음이 나와요? 내가 이렇게 울적해하는데?”

“그, 풉! 네.”

풀 죽은 강아지 같은 모습으로 저런 말을 하니 이보다 더 웃음이 날 수가 없다. 오래간만에 보는 김세현을 보며 여과 없이 웃다가 어이없단 시선을 보내던 이가 꺼낸 말에 더욱 웃음이 났다.

“하. …진짜 형이니까 봐준다.”

저 말도 몇 번 듣긴 했지만, 오늘 들으니 무척 반갑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조회부터 하지!”

“형, 나 잠깐 나갔다 올게요.”

“네.”

팀장이 조회를 하겠단 말에 김세현이 바로 자리서 일어난다. 협회에서 왔던 누구완 전혀 다른 모습이 사람을 더욱 빛나 보이게 한다. 역시 김세현이란 생각을 하며 손을 흔들곤 그가 사무실을 나가자 팀장을 바라보았다.

“지난주에 발생했던 A급 던전 관련 서류는 이번 주 안으로 마무리 짓고 시청으로 넘기는 것으로 하자.”

“예.”

“이번 주는 던전이 거의 생성되지 않아 한시름 놓았지만, 언제 생성될지 모르는 게 던전이니 항상 긴장의 끈 놓지 말고!”

“네!”

“막내는 내가 뭐라고 했었지?”

“…어떤 말을 하셨었는지.”

무슨 말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황하며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그러다 박 주무관이 밖을 가리키는 손동작을 취하자 그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저긴 사무실 문이었다.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내가 답답했는지 박 주무관이 입을 벙긋이자 그 모양을 따라 입을 움직였다.

“안, 돼요? 하…. 지 마세요?”

“항상 잊지 마, 알았어?”

“…네.”

그저 따라 했을 뿐인데 팀장의 얼굴에 흐뭇함이 자리한다.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오늘 조회는 여기서 마치겠다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문을 열고 들어온 김세현을 발견했다.

“…덩치가.”

바로 자리로 올 줄 알았건만, 그대로 팀장에게 간 김세현이 으르렁거린다. 팔짱을 낀 채 여유로워 보이는 팀장과 비교해 여유로움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그의 대치를 보다가 재차 들려온 진동에 김세현을 보았다.

“전화나 받지 그래?”

“그건 네 알 바 아니고, 덩치.”

“아, 혹시 스케줄이라도 펑크 냈나 보지?”

“한국에 있는 거라곤 하늘이 형밖에 없는데 스케줄은 무슨!”

“그으래? 그렇다 이거지이?”

김세현을 뚫어져라 보며 말꼬리를 늘이던 팀장이 품 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상대가 전화를 받았는지 그는 씩 웃었다.

“여기 헌터부요. 와서 김세현이 좀 수거해 가쇼.”

“…제길!”

통화하는 팀장을 보던 김세현이 슬쩍 이쪽을 보더니 거친 소리를 뱉는다. 뒷머리를 헤집으며 불만을 토로하는 이를 보다가 얼마 안 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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