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08. 첩첩산중
“오셨습니다!”
“…….”
먼저 안으로 들어간 이가 우리가 도착했음을 알린다. 그에 각자 할 일을 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렸다. 그 시선의 수가 생각보다 많단 사실에 당황했다.
분명 간단히 진행한다 들었건만, 국회의원 한 사람이 참여했다고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질 줄은 미처 몰랐다. 마른침을 삼키다가 곁에 와 선 팀장을 곁눈질하곤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오! 이쪽이네, 염 팀장!”
팀장을 부르는 이의 목소리가 낯익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가장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이 중 한 사람이 자리서 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지.”
“네, 팀장님.”
남자가 손짓하자 팀장이 턱짓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팀장의 뒤를 따랐다.
“의원님, 이쪽은 서울시 헌터부 팀장 염기태입니다. 그리고 옆은….”
통화한 목소리의 주인인 듯, 익숙한 목소리로 팀장을 이영진 국회의원에게 소개하는 남자다. 말을 흐리며 이쪽을 바라보는 이에 먼저 입을 뗐다.
“안녕하십니까, 헌터부 소속 연하늘입니다.”
“아, 자네가 그….”
머리부터 발끝까지 확인한 남자가 말을 하다 만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다가 찌를 듯한 시선이 느껴져 시선을 옮겼다.
“…….”
“…….”
TV에서 이영진 의원을 보긴 했지만, 직접 보니 이보다 더 카리스마가 넘칠 수 없다. 번뜩이는 안광을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다. 긴장감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다가 그의 시선이 옆으로 향하자 그제야 숨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오래간만이군, 염 팀장.”
“잘 지내셨냔 입바른 소리는 건너뛰겠습니다, 이영진 의원님.”
“쯧!”
“칭찬상 받을 사람도 왔는데, 얼른 진행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원님도 아시다시피 헌터부 인원이 너무 적어서 말이죠.”
“협회로 나가는 협조금만 해도 자네 하나 현장에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메꿔질 텐데.”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헌터부를 아예 없애시든가요. 협조금으로 모두 충당된다고 하는데 나라서 일하는 헌터 굳이 없어도 되는 거 아닙니까?”
“헉!”
팀장의 말에 여기저기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온다. 덩달아 놀라 팀장을 봤다가 그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얼굴로 이영진 의원을 바라보는 모습에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팀장을 바라보는 이다. 좀처럼 끝나지 않을 듯한 두 사람의 대치 상황에 그저 숨죽인 채 상과 부상을 가지고 왔단 어떤 이의 목소리에 강당 안의 차가운 공기가 풀리는 걸 느꼈다.
“얼른 진행하시죠. 바쁩니다.”
“누가 들으면 자네가 나랏일 전부를 다 하는 줄 알겠어.”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서울시 하나는 책임지고 있습니다만.”
“염 팀장, 그 정도만 하게! 하하, 의원님. 바쁘신데 시간 내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스케줄도 있으실 텐데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남자의 안내에 팀장과 나를 번갈아 가며 보던 이가 자리서 일어난다. 그에 옆으로 비켜선 채 강단에 올라가는 이영진 의원을 바라보았다.
“막내야.”
“네, 팀장님.”
“얼른 받고 가자. 혹시 사진 찍자고 하면 그저 알았다고 하고 찍고 와. 자기 뜻대로 못하면 꼬장이 장난 아닌 인사야.”
“…알겠습니다.”
꼬장이 장난 아니라면 괜히 심기를 건드렸다가 이곳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강단 정중앙에 자리한 발표대로 가 마이크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는 의원을 확인하곤 팀장과 함께 가장자리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이영진입니다. 오늘 이렇게 뜻깊은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기쁩니다.”
간략한 인사를 마친 이영진 의원이 잠시 강당 안을 둘러본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뚫어져라 이쪽을 보며 뒷말을 잇는 이에 주먹을 그러모았다.
“어떤 이의 작은 친절은 상대에게 큰 파문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그 파문은 때론 작게, 때로는 크게 흔적을 남기기도 하지요.”
“…….”
지금 그가 하는 말은 굳이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칭찬합시다〉코너와 관련된 이야기를 돌려 표현하는 그를 보다가 말이 이어질수록 어째서 팀장이 저 사람에게 날을 세웠는지 알 것 같았다.
말하는 족족 헌터부를 깔보고 있음이 확연히 느껴진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이들을 무시하는 모습에 점차 화가 치솟아, 말을 마친 의원이 이름을 호명하자 자리서 벌떡 일어났다.
“막, 내야?”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디디는 한 걸음 한 걸음 힘을 실으며 강단에 올라 이영진 의원과 마주했다.
“칭찬상 축하합니다, 연하늘 씨.”
상장과 함께 악수하자는 듯 다른 손을 내미는 이다. 그 손을 맞잡은 채 감정을 실어 손을 흔들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이영진 의원님.”
“…….”
무언가 말을 할 것 같던 그가 픽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애송이를 보는 듯한 모습에 발끈했지만, 이 도발에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발끈했던 마음을 다독이곤 이어 건네진 부상과 꽃다발을 수령했다.
“자, 사진 찍겠습니다!”
장대한 말을 늘어놓으며 헌터부를 얕보던 이영진 의원과는 달리 나에겐 말할 기회도 주지 않는 모양이다. 상을 받자마자 촬영하잔 말과 함께 발표대가 치워지는 걸 보다가 어느새 옆으로 와 선 이영진 의원에 표정을 굳혔다.
“연하늘 주무관, 표정이 너무 굳었네요!”
“…네.”
이제 사진만 찍으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었다. 어서 이영진 위원과 떨어지고 싶단 생각을 하며 애써 입꼬리를 올리고 그렇게 몇 장을 찍히고 나서야 강단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고생했어.”
“네에.”
말이 절로 늘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눈가를 축 늘어뜨리며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받다가 다른 이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리를 뜨는 이영진 의원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
다른 건 몰라도 그간 헌터부가 해 온 공은 세 치 혀로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독한 능구렁이란 생각 속에서 의원이 강의실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그쪽을 응시하다가 팀장의 부름에 그를 올려다보았다.
“할 일도 끝났으니 조금만 있다가 움직이자.”
“좋아요.”
지금 나가 봤자 다시 저 사람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냉큼 고개를 끄덕인 뒤 묘한 눈길을 보내오는 이에 눈을 끔벅였다.
“왜 그렇게 보세요?”
“…뭐, 잘했다고.”
입을 벙긋이던 이가 이내 잘했다며 씩 웃는다. 팀장의 미소를 보니 조금은 마음이 풀리는 것 같다. 나는 슬그머니 웃어 보이곤 강당에서 잠시 머무르다 복귀를 위해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 글쎄, 그렇다니까 그러네!”
“와.”
“우리 병아리, 정말 잘 크고 있구나.”
“…….”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청사에 머무르다 올 걸 그랬나 보다.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이들의 대견한 시선에 민망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저도 딱 한 번 이영진 본 적 있는데, 그 사람이랑은 말 섞고 싶지 않더라고요.”
“동감입니다.”
“뱀 같은 작자야. 대놓고 돌려 까는데, 우리 막내 아니었으면 내가 뒤엎을 뻔했지.”
강당에서 만난 이영진과 관련된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기에 그저 묻겠거니 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지만 팀장은 돌아오자마자 강당에서 있었던 일을 늘어놓기 바빴다. 덕분에 이렇게 칭찬이 쏟아지고 있었고 말이다.
“역시 우리 막내!”
“제가 거기 있었으면 시선도 마주치지 못했을지도요! 우리 막내가 은근히 간이 큰 듯합니다!”
“그 자리서 그런 말 들으셨으면 다들 화가 나셨을 거예요.”
다수가 있는 자리에서 헌터부를 깎아내리는 건 의원이라고 해도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다. 일대일이라고 한들 해서는 안 될 행동을 국회의원씩이나 된 사람이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이영진 의원의 번들거리는 눈빛과 함께 강단에서 하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이를 악물며 차오른 분기를 참아 냈다.
“…이영진 좀 놀랐겠는데요?”
“그런 거 같더라. 행사 끝나면 남아서 뭐라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바로 나가더라고.”
“큭큭! 그 꼴을 거기서 봤어야 했습니다!”
그간 당한 게 많아서일까, 연신 웃음을 터뜨리기 바쁘다. 통쾌해 보이기까지 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씩 감정이 누그러지는 것도 같다.
“그런데 말이죠. 이영진이 왜 그 자리에 왔을까요?”
헌터부와 사이가 좋지 않음에도 굳이 시청까지 찾아온 이유는 나 또한 궁금했다. 조용하던 박 주무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상합니다. 헌터부라면 치를 떠는 작자일 텐데요.”
“헌터부 사람이 상을 받는다고 하니 배알이 꼬였나 보지.”
“…그런 거라면야 문제 될 건 없습니다만, 신경은 써야 할 듯합니다. 이영진이 모습을 보일 때마다 좋았던 적이 없잖습니까.”
“그래야겠지.”
“저도 시간 날 때마다 이영진 관련 기사 찾아볼게요!”
따로 하는 일도 없기에 이건 내가 담당함이 마땅했다. 웃음기가 사라진 채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이쪽을 바라본다. 다소 놀란 듯한 팀원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한 주무관님도 안 계시기도 하고요. …이영진도 마음에 안 듭니다.”
그간 이런저런 류의 사람들을 경험하긴 했지만, 이영진 같은 사람은 정말 최악이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이를 보는 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풉!”
“하하, 그래그래!”
“막내가 그러겠다면 그래야지!”
헤드락을 건 김 주무관이 거칠게 머리를 헝클어뜨린다. 맥없이 그 손길을 받고 있자니 모두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슬그머니 입가를 끌어 올렸다.
이영진이 한 행동만 생각하면 화가 났지만, 이렇게 다들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그 감정이 누그러지는 듯했다. 물론, 다들 좋아한다고 해서 술에 물을 타듯 이번 일을 지나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말이다.
세 번의 탈락 끝에 공시에 붙은 저력을 이번 기회에 보여 주겠다 다짐하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