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32)화 (32/246)

30화

08. 첩첩산중

“후우.”

출근길이 긴장되는 건 정말 오래간만이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평소보다 힘이 들어간 옷차림에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옷차림으로 가서 상을 받는 건 아닌 듯해 옷을 골라봤는데 나름 괜찮은 듯했다.

상만 받고 돌아올 것이긴 하지만, 막상 이렇게 차려입으니 제법 기분이 난다. 거울 앞에서 한 번 더 옷차림을 체크하며 출근 준비를 마치고 곧바로 집을 나섰다.

“…날씨 좋네.”

오늘따라 유독 날이 화창한 것이 상을 받는 나를 축하해 주는 것만 같다. 크게 심호흡하며 아침 공기를 만끽하다가 골목길로 접어든 부팀장의 차를 발견하곤 몸을 바로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옷도 그렇고.”

부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간만에 받는 상이라 그런지 신경 쓰이더라고요.”

어젯밤까지만 해도 이 상을 받는 게 맞나 싶었건만, 막상 아침이 되자 기분이 좋아지는데, 동전 뒤집듯 바뀐 마음에 얼마나 어처구니없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 덕분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길에 오를 수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벨트를 매고 차가 움직이자 자세를 바로 했다.

“시청에 도착하면 사람들 시선이 몰릴 수도 있습니다.”

골목길을 빠져나가며 부팀장이 입을 연다. 시선 이야기에 멈칫하다가 이어진 부가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홈페이지 건으로 관심이 쏠리는 건 둘째치고, 청사에 헌터부 소속 공무원이 발길 할 때마다 으레 겪는 일이죠.”

“그렇군요.”

“팀장님도 말씀하시겠지만, 불필요한 말을 거는 이들은 무시하십시오. 되도록 말을 섞지 않는 것도 좋고.”

“네.”

이렇게 부팀장이 말한다는 건 그만한 사유가 있을 것이었다. 전달할 말이 끝났는지 라디오를 켜는 부팀장을 응시하다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간단한 업무를 마친 뒤 팀장과 함께 시청에 가게 될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헌터부로 첫 출근을 하기 전 들렀던 것 말고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유리로 뒤덮인 청사의 모습을 그리다가 자꾸만 붕 뜨는 정신을 다잡았다.

“…….”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와 같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시청에 가 헌터부 명성에 누를 끼칠 일은 하지 않겠다 다짐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와, 팀장님도 이런 옷 있으셨습니까?”

“집에 전투용 옷 한 벌씩은 다 있지!”

움직임이 편한 옷을 주로 입던 팀장이 이렇게 쫙 빼입고 올 줄은 몰랐다. 슈트를 입고 머리까지 완전히 넘긴 모습으로 나타난 팀장이 이보다 멋질 수가 없다.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이 다가가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평소에도 가끔 이렇게 입고 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서라. 하나밖에 없는 전투복 입고 현장 나갔다 망가지면 답 없어!”

“보십쇼! 우리 막내도 팀장님 쫙 빼입은 거 처음 봐서 감탄하기 바쁘잖습니까!”

김 주무관이 나를 거론하며 씩 웃는다. 그에 정신을 붙잡은 채 고개를 주억였다.

“팀장님, 오늘 정말 멋지세요.”

“…그렇게 말해도 전투복은 안 입어!”

멋지단 말에 말을 잃은 것도 잠시, 이내 콧방귀를 끼며 답하는 팀장이다. 확실히 저 옷을 입고 던전에 가는 건 아까웠다. 고개를 끄덕인 뒤 손목시계를 확인한 그가 손짓하자 곁에 가 섰다.

“얼른 다녀올 테니까 혹 자리 비운 사이에 일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

“여긴 맡겨두십시오.”

“아아. 그럼 얼른 다녀오지.”

“다녀오겠습니다.”

팀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팀장과 함께 사무실을 나와, 이동 중에도 연신 팀장을 힐끔거렸다.

“할 말이라도 있어?”

“너무 일찍 출발하는 거 같아서요.”

이제야 막 아홉 시가 넘은 상황이었다. 너무 이른 방문이 아닐까 걱정하던 와중에 심드렁한 표정을 지은 팀장과 눈을 마주쳤다.

“오전에 방문한다고 했으니 오전에만 방문하면 돼.”

“아.”

“방문이 늦어지면 질수록 불필요한 시선만 더 따라붙으니까. 되도록 이른 시간에 빠르게 해치우는 편이 낫지.”

“네.”

부연 설명을 들으니 어째서 이렇게 바로 이동하는지 알 듯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팀장의 차에 올랐다.

“막내야.”

출발하고 몇 분이나 지났을까, 침묵을 깬 팀장이다. 나는 부름에 답했다.

“네, 팀장님.”

“헌터부 일하면서 불편하거나 한 일은 없어?”

“불편하기는요. 다들 잘해 주셔서 너무 감사할 뿐이에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불편한 점이 없단 답변에 팀장이 씩 웃는다. 따라 슬쩍 끌어올렸다가 불편한 점이 있으면 뭐든 말하라는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부서는 입 한 번 뻥긋만 해도 눈칫밥 생길 수도 있지만, 헌터부는 그런 거 없어.”

“네, 알고 있어요.”

“중요해서 한 번 더 말하는 거지만, 불편한 점 있으면 언제든 말해. 합이 맞아야 빨리 대응할 수 있지만, 한쪽만 희생하는 건 오래 가지 못하니까.”

“꼭 말씀드릴게요.”

말뿐이었다면 이렇게 답하지도 못했을 거다. 누구보다 진심인 팀장의 말에 계속 고개를 끄덕인 뒤 도심과 가까워질수록 차가 밀리자 시간을 체크했다.

“…평소보다 밀리는데.”

아홉 시 반 무렵이면 풀리는 교통 체증이 이어지는 게 이상해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교통사고가 있었는지를 확인해 봤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유력 후보의 탈락에 이번엔 길을 막거나 서행을 해야만 했던 무언가가 있나 기사를 살폈다.

“뭐 나오는 거 있어?”

“시청 홈페이지에도 딱히 나온 건 없습니다.”

“그래? 오늘 차가 많이 나왔나.”

“그런가 봅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차가 밀릴 일은 없었다. 팀장의 말에 동의하며 밖을 봤다. 우리는 결국 예상했던 이동 시간을 훨씬 넘겨 시청 청사에 당도할 수 있었다.

“후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을 받는다는 생각에 설렘이 컸는데, 막상 차에서 내리니 이보다 더 긴장될 수 없다. 떨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가 다가온 팀장이 등을 팡팡 내려치자 그대로 앞으로 허리를 숙였다.

“자, 긴장 풀고! 가서 받을 것만 얼른 받고 복귀하자!”

“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등에서부터 시작된 충격이 온몸으로 번진다. 머리끝까지 찌릿할 만큼의 통증이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큰 목소리로 답한 뒤 팀장의 손이 떨어지자 몸을 바로 하며 앓는 소리를 집어삼켰다.

“가자!”

픽 웃음을 터뜨린 팀장이 앞장선다. 그 뒤를 따라 청사 건물에 도착했다. 그러자 그 앞을 부산스레 오가던 한 젊은 남자가 반색하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헌터부에서 오셨죠?”

“오. 여기서 상이랑 부상 전달하는 건가?”

건물 안의 수령 장소에 가야만 수령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듯했다. 팀장의 말에 반색하며 남자의 손에 시선을 줬다가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은 걸 보곤 상대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드리는 건 아니고, 어서 가시죠. 미리 준비는 끝내 두었습니다.”

“…벌써 준비가 끝났다고?”

“예. 평소 헌터부 분들이 아침 일찍 청사를 방문한다고 해서 빠르게 전달식을 진행하고자 준비를 해 둔 상태입니다.”

“전달식이요?”

간단히 전달만 받는 줄 알았는데, 전달식까지 준비되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눈이 마주친 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절로 아연해졌다.

“아, 그쪽이 이번에 친절상 수령하기로 한 그 연하늘 주무관인가 보군요! 전달식이라고 해 봤자 사진 몇 장 찍고 상과 부상 전달받으면 끝나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

그 사진이 문제였다. 입만 벙긋거리다가 팀장이 대신 말하자 곁에서 고개를 주억였다.

“그간 〈칭찬합시다〉 상 관련해서 전달식이 있었던 적 없지 않나?”

“이번에 새로 개설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다음부터 진행하는 거로 하지? 아직 지난주 던전 관련된 서류 작업도 마치지 못했는데, 시간 너무 할애하게 만드네.”

팀장이 말을 마치며 눈치를 준다. 그에 나도 말을 얹었다.

“현재 헌터부 사람이 부족한 터라 되도록 빨리 돌아가 봐야 합니다. 상과 부상만 따로 전달 안 될까요?”

“…그게.”

팀장에 이어 나까지 말하자 상대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남자의 느려지는 걸음을 따라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추다가, 그가 한숨을 내뱉자 괜히 불안해졌다.

“시청 내에서 진행하는 거라면 어떻게든 도움 드리고 싶은데, 외부 인사가 와 있어서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외부, 인사?

“외부 인사라니? 설마 매체에서 오거나 한 건 아니겠지?”

“아, 매체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빨리 말을 해 줬으면 좋겠다. 뒷말을 흐리는 이를 초조하게 바라보다가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오자 자리에 멈춰 섰다.

“이영진 국회의원님이 오셔서요.”

“…이영진? 그 이영진이?”

“예. 직접 칭찬상을 전달하겠다고 하신 바람에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

팀장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영진 국회의원은 헌터부와 사이가 좋지 않기로 유명한 인사였으니 말이다.

비단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이영진 국회의원과 헌터부서 간의 다툼은 유명했다. 협조금 관련하여 온갖 딴지를 거는 이들 선두에 선 그 사람이 하필 오늘 이곳에 왔단 사실이 왜 이리 불안한지 모르겠다. 혹여 내 실수로 인해 헌터부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삽시간에 차오른 긴장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온몸의 뼈가 삐걱거리는 것만 같다. 팀장의 부름에 버벅대며 고개를 들었다.

“그 놈팡이 입에서 좋은 소리 안 나올 수도 있는데,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네.”

흘리라고 한들 들어오기나 할는지 모르겠다. 벌써부터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한 것이 영 불안했다. 연신 마른침을 삼키다 보니 이윽고 도착했다는 말과 함께 안내하던 사람이 제2강당이라 적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얼른 받을 거 받고 돌아가잔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상태였다. 마치 던전의 입구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한참을 망설이던 중 등을 토닥이는 손길에 이내 마음을 먹었다.

그래, 지금 이렇게 여기서 망설여봤자 저 안에서 머무르는 시간만 길어질 뿐이었다. 혼자 왔다면 암울했겠지만 이곳에 함께 온 사람은 다름 아닌 헌터부의 팀장이었다.

이영진 국회의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놈팡이라 부르는 팀장이 동행한 만큼 걱정할 만한 일은 생기지 않을 거다. 나는 몇 번이고 크게 심호흡하며 긴장을 누르곤 최대한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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