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30)화 (30/246)

29화

07. S급 헌터의 유무

“여보세요?”

- 네, 여보입니다.

“…….”

- 형?

이런 장난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고전적인 말장난에 말을 잃었다. 몇 번을 거듭해 날 부르던 김세현이 혹 전화 끊었냐 묻는다. 나는 답했다.

“아뇨, 안 끊었어요.”

- 다행이다. 부끄러워서 전화 끊은 줄 알고 놀랐잖아요.

“그, 부끄럽진 않았어요.”

부끄러운 게 아니라 그저 할 말을 잃었을 뿐이었다. 정정할 타이밍을 놓친 바람에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김세현의 말을 듣고 있어야 했다.

- 와, 형 알고 보면 은근히 대담한 거 알아요? …난 그래서 더 좋더라.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그간 메시지는 주고받긴 했어도 이렇게 통화를 하는 건 처음인 듯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었기에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자 집중했다.

- 서울에 A급 던전 생성되었었다면서요! 형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야 알았을 줄은 몰랐다. 지난번 메시지 내용을 곱씹다가 아직 대답하지 않았단 사실을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네. 전 괜찮아요. 그런데 한 주무관님이 다치셨어요.”

- …….

“이번에 피해가 컸어요. 사람들도 많이 다치고, 사망했고요.”

최근 발생한 던전들의 피해가 적었던 터라 이번 던전이 남긴 상처는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피해도 컸고 말이다.

- 거기 있었으면 하늘 형 걱정 없게 내가 나섰을 텐데.

침묵하던 김세현이 가라앉은 목소리를 낸다. 딱딱하면서도 축 늘어진 음성에 고개를 저었다.

“무사히 클리어했으니 괜찮아요.”

김세현이 자리를 비우게 된 건 일정이 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어선 아니었다.

물론,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한들 생성된 던전이 문제였지, 김세현이 이렇게 시무룩할 이윤 없었다. 저런 말을 할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

내가 걱정하지 않도록 나섰을 거란 말을 들으니 알 수 없는 간지러움이 몸 곳곳에 번진다. 마음만큼이나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발가락과 손가락을 보다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음에도 괜스레 부끄러워 손가락과 발가락을 오므렸다.

- 하늘 형.

“네, 세현 씨.”

- 이번 주엔 돌아가는데, 돌아가면 형 사진 찍으러 갈게요!

“음.”

- 못 믿어요? 나 사진 엄청나게 잘 찍는데? 내가 위에서 한 컷 한 컷 정성스럽게 인생 사진 남겨 줄게요!

인생 사진이란 말 위로 팀장의 목소리가 겹쳐 들려온다. 잠시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으며 생각해 보겠다 답한 뒤 볼멘소리를 늘어놓던 김세현이 뭔가 생각난 듯 부르자 답했다.

“듣고 있어요.”

- 꽃바구니 받았죠?

“네.”

- 형 쓸쓸하지 말라고 보냈어요. 나 보고 싶으면 언제든 영상통화 걸고요.

“하하.”

- 와, 지금 나 없다고 혼자 웃어요? 지금 당장 영상통화 걸게요! 계속 보고는 있지만, 직접 봐야지!

“어, 그렇게까지….”

뚜, 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끊긴 전화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핸드폰을 귀에서 뗐다가 곧바로 걸려 온 영상통화를 받았다.

“흠, 흠.”

통화할 땐 몰랐는데, 막상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하려니 괜히 민망하다. 입가를 가리며 헛기침하다가 조용하기만 한 상대에 고개를 갸웃했다.

“세현 씨?”

- …….

무슨 말이 돌아올 법도 하건만, 이번에도 반응이 없다. 말없이 카메라만 응시 중인 김세현을 보다 한 번 더 그를 불렀다.

“세현 씨?”

- 형.

“네.”

- 일정 좀 앞당길…. 하, 그냥 지금 갈까?

난데없이 지금 갈까, 하고 말을 던지는 이다. 아니, 말뿐만이 아닌 듯했다. 자리서 일어났는지 배경이 휙휙 바뀌는 모습에 이어 문을 여닫는 소리가 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 김세현 헌터님, 그 짐은 뭡니까?

- 한국 가려고.

- 아직 일정 남아 있습니다!

- 이 정도면 된 거 아니야? 나 되게 많이 참았는데.

그저 이동하는 줄만 알았는데, 짐을 싸고 나오는 것일 줄은 몰랐다. 나는 당황해서 급히 그를 불렀다.

“세현 씨!”

부름에 잠시 다른 곳을 비추고 있던 카메라가 움직이더니 김세현의 얼굴을 비춘다. 시선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는 그를 보다가 이어진 말에 정신을 차렸다.

- 네, 형! 나도 보고 싶어요.

보고 싶단 말은 한 적이 없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을 잇는 이에 방금 들은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일정 남았는데 오려고요?”

- 네, 형 보러 바로 가야죠!

- 안 됩니다! 오늘 영국 헌터 협회 회장과 총리와의 석찬 스케줄이 있습니다!

“…그렇다는데요.”

가벼운 스케줄이었다면 또 모를까, 영국 헌터 협회 회장과 총리와의 저녁 식사는 이렇게 사적인 감정으로 쉽게 걷어찰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 회장이건 총리건 난 형 보는 게 더 중요해요!

- 김세현 헌터님!

- 형은 나 안 보고 싶어요?

보고 싶다며 일정을 내팽개치려는데, 여기서 답을 한다면 일이 커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가 밝기만 하던 그의 얼굴이 점차 충격으로 물드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 형?

“…스케줄 소화하고 오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이번 주 안으론 올 수 있다 했잖아요.”

개인적인 일정이었다면 또 모를까, 상대는 무려 협회 회장과 총리였다.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렇게 가벼이 펑크낸다면 훗날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을 일이었다.

- 그거 말고! 형 진짜 나 안 보고 싶어요?

“으음.”

- 와, 형 지금 나랑 밀당하는 거예요? 나 막 심장 철렁하게? 형 그런다고 내가 막 밀고 당겨질 사람으로 보여요? 물론, 미나 당기나 당겨질 거지만!

거친 숨소리와 함께 김세현이 화면에 더욱 얼굴을 가져다 댄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 후욱! 형, 나 진짜 당장 갈까요?

더욱 거칠어진 숨소리 너머로 들려온 애절한 음성에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 김세현 헌터님! 이번에도 펑크 내시면 외교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이번이란 말은 이전에도 펑크를 냈던 전적이 있음을 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세현이 펑크라니. 나는 말없이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한참을 그렇게 시선을 피하던 김세현이 눈을 마주해 온다. 눈치를 살피는 듯한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조심스러운 부름이 들렸다.

- 하늘 형.

“네.”

- 혹시 하늘 형. 그, 막 일 열심히 하고 그런 사람…. 좋아해요?

“네.”

맡은 바 일을 확실히 하는 사람을 선호하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터. 고개를 끄덕이니 어색한 미소를 짓던 이가 다시 어딘가로 이동한다. 잠자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오늘 일정 전까지 푹 쉬시고 나중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다른 곳을 비추던 카메라가 다시 김세현 얼굴을 비춘다. 퉁퉁 부은 얼굴인 김세현 뒤로 보이는 풍경이 조금 전 통화를 시작할 때와 같다. 금방이라도 한국으로 돌아올 것 같던 기세가 한결 수그러졌음에 다시 일정을 소화할 거냐 물었다.

- 형이 좋아한다니까 한 번 꾹 참아 볼게요.

“…….”

- 원랜 안 참지만, 형 보고 참는 거예요.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눈치를 봤건만, 언제 그랬냐는 듯 뜨거운 시선을 보내오는 김세현이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열이 오른다. 다시금 뛰기 시작한 심장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형, 내일 또 이 시간에 전화할게요.

“네.”

- 스케줄 빠르게 해치우고 갈 거니까 나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하고요.

“그럴게요.”

여기서 또 침묵한다면 통화가 길어지고, 길어지게 된다면 김세현의 일정에 한 번 더 문제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잘 자라는 말과 함께 영상통화가 종료되자 그대로 소파에 등을 파묻었다.

“하아.”

이미 문자로 외국에 있음을 알았지만, 외국에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실감 나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김세현 뒤에서 들려왔던 대화 내용을 곱씹다가 영국 총리와 헌터 협회 회장과의 만남이 있단 말이 재차 떠오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미 몇 차례 김세현이 S급 헌터의 위용을 보인 적 있었지만, 이번처럼 현실감 있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한 나라의 정상과의 만남을 사적인 이유로 쉽게 펑크를 내려 했던 상황을 떠올리곤 이미 이전에도 그런 전적이 있었음에도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머리털이 쭈뼛 섰다.

“S급 헌터는 역시 처우가 다르구나.”

전 세계적으로 S급 헌터의 수가 워낙 적어 타국의 S급 헌터를 스카웃하기 위해 많은 나라가 공을 들인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래, 그랬기에 김세현이 펑크를 냈어도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던 거겠지.

툭하면 메시지를 폭탄처럼 보내고, 툭하면 연사로 사진을 찍으며 옆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던 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새삼 깨닫게 되니 기분이 묘하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하곤 절로 헛웃음이 났다.

[형, 잘 자요 ଘ(੭ˊ꒳ˋ)੭✧ 내 꿈 꾸는 거 잊지 말고요 ₊·*◟(⌯ˇ ɞ ˇ⌯)◜‧*]

여기저기서 모셔가고자 하는 S급 헌터가 이런 문자를 보내는 걸 안다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시간을 확인하곤 취침 시간이 되었단 사실에 TV를 끄고 뒷정리 후 바로 방으로 가 몸을 뉘었다.

“…….”

최은재의 연락을 받았을 때만 해도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는데, 김세현과 통화를 나누고 나니 제법 상쾌했다. 기분 좋게 옆으로 돌아누운 채 스멀스멀 찾아온 수마에 그대로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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