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9)화 (29/246)

28화

07. S급 헌터의 유무

한동안 이렇게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없기 때문일까, 매체에서는 쉴 새 없이 던전과 헌터 관련된 이야기들을 쏟아 내고 있었다.

“…….”

누가 봐도 협회 측에서 알력을 쓴 것처럼 보이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들을 보다가 앓는 소리가 들려오자 시선을 옮겼다.

“이번이 제일 역대급인 것 같네요.”

“동감이야.”

“마사지기 풀가동하고 있어?”

“당연하죠! 그런데도 영 안 풀립니다.”

“쯧!”

원탁과 탕비실 사이에 놓인 마사지기에 온몸을 맡긴 김 주무관과 박 주무관이 연신 앓는 소리를 낸다.

외부에서는 계속해서 헌터부를 때리기 바쁜데, 막상 헌터부 팀원들은 개의치 않아 하는 듯했다.

지난 던전에서 파김치가 된 듯, 도통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두 사람이다.

“막내야, 잉여가 외국 스케줄 소화 중이라고 했지?”

“네.”

“언제 온다는 말은 없었고?”

“빨리 돌아오겠다고만 했지, 정확한 날짜나 시간 언급은 없었어요.”

빨리 오겠다는 메시지를 끝으로 김세현의 메시지는 더는 오지 않고 있었다.

“오늘 갑자기 들이닥치진 않겠죠?”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안 샐 거란 보장은 없지.”

김세현을 바가지에 비유하는 말이 좀 그랬지만, 팀원들이 저런 말을 하기까지 많은 일이 있을 터였다.

사실, 아주 조금은 바가지가 잘 어울린단 생각이 들었지만 말이다.

“후.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S급 헌터가 있고 없고 차이가 커.”

“특히나 이번 던전의 융합된 센터피드 개체는 이전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죠.”

“아아. 그랬지. 협회에서 조금만 늦었으면 나도 위험했어.”

평소 약한 소리를 하지 않는 팀장인지라 지금 하는 말은 거짓 없는 진심일 것이었다.

“던전 등급 조정, 해야겠죠?”

“…해야겠지.”

던전을 클리어한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먼지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먼지로 뒤덮여 좀처럼 범위와 피해 현황을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다행히 밤이 지나자 F-6 구역 안 피해 지역의 먼지가 잦아들어 이젠 등급 조정을 할 때였다.

다른 때와는 달리 바로 등급을 조정하지 않고 침묵하는 팀원들이다. 말은 없었지만,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듯했다. 나는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A급 던전이 가까운 시일 내에 생성되는 건 처음 아닙니까?”

내 생각을 읽은 듯한 박 주무관이다. 고개를 끄덕인 뒤 심각한 얼굴로 턱을 만지는 팀장을 바라보았다.

“이번 던전이 특이 케이스였으면 하는데 말이지.”

“잉여 아니었으면 단기간에 A급 던전이 세 번이나 생성되었을 겁니다.”

“…바로 세계 던전 상황 살펴보겠습니다.”

“아아. 부탁해. 막내는 어제 생성되었던 던전 관련해서 어떤 이야기가 돌고 있는지 동향 파악하고. 난 바로 던전 A급으로 등급 수정 보고서 보내야겠어.”

“네!”

동향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미 켜져 있는 TV를 뉴스 채널로 변경하곤 검색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좀 더 본격적으로 상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똑, 똑

“문 열려 있습니다!”

이런저런 정보들을 취합하던 중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울려 퍼진다. 김 주무관이 그쪽으로 말을 건네자 고개를 들었다가 문이 열림과 동시에 형형색색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자 눈을 크게 떴다.

“여기 연하늘 씨 계십니까?”

“…….”

남색 모자와 조끼를 걸친 배달원이 커다란 무언가를 들고 안으로 들어온다. 모자 위에 적힌 〈사랑의 꽃집〉을 발견하곤 시선이 어지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패턴이 익숙한 건 이전에 몇 번 겪어 본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겪었던 일들이 빠르게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나는 멍하니 꽃바구니를 바라보았다.

“연하늘 씨?”

“누가 그딴 걸 보냈지?”

배달원의 부름에 답하려는 찰나, 팀장이 한발 앞서 꽃바구니를 보낸 이를 묻는다. 나는 잠자코 상황을 지켜봤다.

“연하늘… 씨 본인에게 전달해 달라고 하셨는데, 본인 맞으신지요?”

“그러니까 누구?”

팔짱을 낀 팀장이 위압적인 태도로 배달원에게 묻는다. 배달원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발견하고 슬그머니 자리서 일어났다.

“앉아 있어.”

박 주무관이 어서 앉으라며 손짓한다. 그에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

“그것이, 세계 최고 남자라고….”

말을 전달하던 배달원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든다. 덩달아 민망함과 부끄러움에 얼굴에 열이 오르는 건 전부 김세현 때문이다. 하고 많은 말 중 왜 하필 보내는 이로 그 말을 쓴 건지 모르겠다.

나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에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와.”

“진짜 뻔뻔하다.”

“우리나라에 철갑을 두른 건 소나무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팀원들이 김세현을 향해 혀를 차면 찰수록 얼굴에 열이 오른다. 슬쩍 꽃바구니 쪽을 바라봤다가 배달원이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

앞에는 팀장이, 그리고 주변에서 쉴 새 없이 말을 쏟아 내니 불안한 건 당연했다. 나는 자리서 일어나 팀장 곁으로 가 섰다.

“흠, 흠! 그거만 전달하면 됩니까?”

“그, 여기 편지도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

편지까지 보냈을 줄은 몰랐다. 엽서보다 좀 더 발전한 편지란 말에 절로 시선이 옆으로 간다. 팀장과 잠깐 눈이 마주쳤다. 팀장은 꽃바구니와 편지를 전달받았다.

“전달했으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가 보란 말에 빠르게 자리를 뜨던 배달원이 출입문을 나서기 전 멈춰 선다. 뭔갈 깜박하기라도 한 듯 다시 몸을 돌리는 모습에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였다. 나는 이어진 말에 그대로 굳었다.

“그리고. 그리고 하늘 형이 보고 싶단 말도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빠르게 할 말을 남긴 배달원이 게 눈 감추듯 자리를 뜬다.

“…….”

“…….”

사무실 문이 닫혔음에도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부산스럽게 서류를 뒤적이길 몇 차례, 마치 신호를 주고받기라도 한 듯 반 박자 늦게 움직이는 네 사람을 발견했다.

“이거 또 무슨 망언을 적어 보낸 걸까요?”

“아까 배달원이 말하는 거 보니 엄청나게 민망해하던데.”

“팀장님 완전 우리 막내 대타로 찍힌 거 아닙니까?”

“오늘 오고 말겠지!”

“에이, 김세현 성격에 한 번으로 끝날 리 있겠어요?”

그럴 리 없다는 김 주무관의 말에 팀장이 혀를 차며 원탁에 꽃바구니를 내려놓는다.

“막내야, 와서 얼른 열어 봐.”

“네.”

원탁으로 이동하곤 이전보다 화려하면서도 풍성한 꽃들이 가득 차 있는 꽃바구니를 애써 외면하며 편지를 건네받았다.

“확인 안 해?”

“…해야죠.”

확인하긴 해야겠는데, 영 손이 안 움직인다.

지난번에 받았던 카드 내용 때문일까, 자꾸만 멈칫하게 되는 손이다. 몇 번이고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은 뒤에야 느릿느릿 편지를 개봉했다.

「To. 하늘 형에게

형, 오늘 아침에 받은 사진 정말 예뻤어요.

내가 많이 보고 싶겠지만, 꽃 보면서 참아요. 바로 갈 테니까.

p.s.

그리고 형, 다음엔 내가 찍어도 되죠?」

“…….”

지난번과 비교해 너무도 멀쩡한 편지 내용이었지만, 왜 이리 이상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아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편지는 프린팅된 것이 아닌, 수기로 작성된 것이었으니까.

현재 김세현은 외국에 있었다. 그뿐이랴, 편지 속의 글자체는 김세현의 것이 아니기도 했다.

이 부끄럽기 짝이 없는 편지를 누군가가 받아적었을 거라 생각하니 참담할 지경이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뒤, p.s.에 적힌 내용을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환청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저 글자만 봤는데, 김세현이 나타나 카메라를 들이댈 것만 같다. 나는 편지를 봐도 되냔 부팀장의 물음에 그것을 바로 건넸다.

“…뭐지?”

“이거 왜 이리 멀쩡합니까?”

“너무 평범해서 의심스러운데요.”

“무슨 사진을 보냈기에 얘가 또 이래?”

“그냥, 평범한 사진이었어요.”

갓 일어나 찍은 사진인지라 꾀죄죄했을 뿐, 특별히 이상한 사진은 아니었다.

“어디서 찍었는데?”

“오늘 아침 집에서요.”

“…와, 이것 봐라?”

“잉여 아직 병아리 집 모르지?”

“아직까진 따라붙은 적은 없었습니다.”

팀장의 물음에 부팀장이 답한다. 나는 바로 그 말을 정정했다.

“지난번에 집 앞에서 만났는데요.”

“뭐?”

“뭐라고?”

“그게….”

군대서 휴가 나온 친구가 왔을 때 만났었음을 전달한 뒤 영 좋지 않은 주변 분위기에 괜히 눈치를 보았다.

“연하늘.”

“네, 팀장님.”

“절대 김세현 집에 들이지 마. 알았어?”

“…….”

“문단속도 하고! 불쌍한 척해도 안 돼! 곧 죽어 가는 상황 아니면 절대 출입 불가야!”

“음.”

“배 아프다고 떼굴떼굴 굴러도 안 돼! 화장실 쓰겠다는 것도 안 돼!”

“그, 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얼굴로 말하는 팀장이다. 집에 김세현을 들이는 게 이렇게까지 심각한 일인가 싶었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가 있을 터. 거듭 확인하는 이에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편지와 함께 꽃바구니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

“일단 큰 문제는 없어 보이니 다들 하던 일 하자고.”

“예!”

머리를 맞대고 심각한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 자리로 돌아가 하던 일을 시작한다. 꽃바구니를 챙겨 자리로 돌아와 책상 한편에 놓았다가 다시 그것을 옆의 빈자리에 올렸다.

“…….”

혹여 천사가 어쩌느니 하는 말이 적혀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말이 없어 천만다행이다. 물론, 배달원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말이다.

편지를 만지작거리다 하던 일을 위해 그것을 서랍에 넣곤 다시 던전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확인해 나가기 시작했다.

***

A급으로 정정된 F-6 구역의 던전은 우리나라만이 아닌 외국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A급 던전이 짧은 기간에 두 번 생성되었다는 사실을 외신에서도 앞다퉈 전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며 퇴근 후의 여유를 만끽하던 중이었다. 난데없이 알림이 울리는 핸드폰을 보자….

“어?”

이 사람이 무슨 일로 메시지를 다 보냈는지 모르겠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며 알게 된 이가 보낸 메시지를 읽곤 헛웃음이 절로 났다.

[하늘 씨, 오래간만이야. 나 최은재.]

[다름이 아니라 하늘 씨 헌터부에 갔단 말 들었는데, 혹 이번 던전 관련해 뭐 아는 거 없어?]

이보다 더 투명하게 속내가 보이는 메시지는 없을 거다. 함께 공무원 공부를 하던 와중 갑자기 방향을 틀어 언론대학을 나온 특성을 살려 기자가 된 이의 메시지에 침묵하다가 이어 도착한 내용에 그대로 핸드폰을 소파에 내려놓았다.

[우리 제법 친했잖아. 정보 좀 나눠 줘.]

이따금 밥을 먹는 무리에 섞여 있긴 했지만, 친한 관계는 아니었다. 번호를 교환하고도 몇 번 대화를 나눠 본 적 없는 이의 속이 훤히 보이는 질문에 짧게라도 답을 해 주는 편이 나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로 인해 헌터부 사람들에게도 많은 이들이 접촉해 보려 혈안이 될 거라 들었다. 모른다 말하면 그것조차 기사에 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했다. 나는 다시 TV를 보았다.

- 이번에 생성되었던 A급 던전으로 인해 학계는 물론이고, 외신들도 한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이번 던전은 이전과는 달리 던전 생성의 법칙에 해당하지 않는, 그야말로 변칙적인 생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우리 김세현 헌터가 호주로 건너가 S급 던전을 클리어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지요?

- 호주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A급 던전 및 A급에 준하는 던전들이 모습을 보이고 있어 지금까지의 대응 체계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말들이 나오는 중입니다.

이미 조사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나 이렇게 뉴스로 들으니 더욱 실감이 난다. 심각한 얼굴로 던전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진행자와 패널들을 지켜보다가 이번엔 메시지가 아닌, 전화가 오자 핸드폰을 다시 잡았다.

최은재의 연락이라면 거절해 받을 의향이 없음을 전달할….

“어?”

당연히 최은재라 여겼건만,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다름 아닌 김세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