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8)화 (28/246)

27화

07. S급 헌터의 유무

“사무실엔 별일 없었지?”

“…….”

이 타이밍에 팀장이 먼저 말을 꺼낼 줄 몰랐다. 낮에 걸려온 전화 내용이 떠오르자 절로 다리가 멈춘다. 다른 날관 달리 부팀장이 침묵하자 입을 뗐다.

“그게, 있긴 한데요.”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부팀장에게 설명할 때도 민망했건만, 청자가 더 늘어나니 민망함이 배가 되는 것 같다. 괜스레 손가락을 꼼지락대다 부팀장의 목소리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시청에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시청? 언제?”

“…….”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자 부팀장이 말을 받았다.

“던전 생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에 하늘 씨가…. 하늘 씨가 칭찬상을 수령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민원실에서 전화가 왔었다 전달하라 했습니다.”

“와.”

부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 주무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복잡한 감정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가 이보다 더 이해될 수가 없다. 나는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나마 천사 운운한 건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인 거 같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천사 나왔습니다.”

팀장의 말을 부팀장이 바로 바로잡는다. 그와 함께 이쪽으로 쏠린 시선에 낮에도 지었던 흐릿한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막내야, 그쪽 간 김에 시원한 물 한 잔 부탁해.”

“나도.”

여러 감정이 시선을 보내오던 팀장과 김 주무관이 물을 부탁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준비해 건네곤 한 모금 물을 마신 팀장이 재차 시선을 마주해 오자 눈을 끔벅였다.

“뭐 다른 말은 없었고?”

부팀장이 아닌 나를 보며 묻는다. 나는 낮에 부팀장에게 전달했던 내용 외의 대화 내용을 전했다.

“…전화부터 해야겠군.”

단번에 잔을 비운 팀장이 벌떡 일어나 자리로 향한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통화가 될까 싶었지만 그 생각이 무색하게 바로 연결된 전화다. 나는 쫑긋 귀 기울였다.

“거 민원실 민 주무관 연결하쇼. 뭐? 퇴그은? 던전 클리어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퇴근해! 이거 민원 좀 넣어야겠는데?”

“민원 머릿수 부족하면 저도 합류하겠습니다!”

민원 이야기에 자리에 앉아 있던 김 주무관이 무시무시한 말을 얹는다. 민원 몇 개로 아차 하다간 진급까지 밀릴 수 있는 것이 바로 공무원이었다. 정말 민원을 넣나 싶어 조마조마하던 것도 잠시였다. 누군지 모를 사람과 입씨름을 하던 팀장이 남은 이들 중 높은 직위의 사람을 바꾸라는 말을 꺼낸다. 나는 드디어 시작되었음에 침을 삼켰다.

“여기 헌터부요! 칭찬상 관련해서 전화가 왔다는데. 다음 주 수요일 오전? 방문은 가능한데, 가자마자 상만 전달하는 것으로 합시다! …오늘 던전 상황 보면서 그런 말이 나옵니까? 시끄럽고! 현장 나가는 헌터 대다수가 다쳐서 상 타는 애도 현장 나가야 하니 상만 딱 전달할 거 아니면 그쪽에서 사람 보내는 걸로 하쇼!”

“…아.”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그대로 굳었다가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은 팀장이 이쪽을 보자, 쿵쿵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헌터 대다수가 다쳤다는 것은 그만큼 현장에서 지휘하는 사람이 줄어듦을 의미했다. 그래, 현장 인원이 부족하다면 사무실에서 인원을 충원하는 건 당연했다.

“와, 팀장님 지금 우리 막내 팔아서 던전 부산물이라도 좀 얻어 보려고 하신 겁니까?”

“실망입니다, 팀장님.”

“…어쭈, 이렇게 몰아간다. 이거지?”

김 주무관과 부팀장이 최고다. 두 사람이 한마디씩 거들자 팀장이 콧방귀를 끼며 신문지가 깔린 의자로 돌아와 털썩 앉는다. 나는 말없이 그를 지켜보았다.

“우리 병아리, 이제 현장 일도 좀 터득해야겠네. 내일부터 내가 하나하나 알려 줄게.”

“하늘 씨가 외근 나가면 혼자 쓸쓸하게 사무실 지켜야겠군요.”

“부팀장까지 왜 이래!”

답답한 듯 팀장이 가슴을 팡팡 내리친다. 지금 상황에 답답할 게 뭐가 있나 싶다. 나는 불면 바로 떨어질 낙엽 같은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입을 뗐다.

“…저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래, 겁이 나긴 하지만 사람이 부족한 상황서 몸을 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막상 입 밖으로 생각을 꺼내니 떨림도 한결 가시는 것 같기도 하다. 파르르 떨리는 손을 모아 주먹을 쥐며 재차 뜻을 밝혔다. 멍하니 이쪽을 보던 팀장이 다가와 거칠게 머리를 헤집자 그대로 머리가 눌렸다.

“어디 있다가 이제야 우리 부서에 온 거야!”

“팀장님, 막내 목 사라집니다!”

“하핫!”

김 주무관의 말에 머리를 누르는 힘이 약해진다. 질끈 감았던 눈을 슬며시 뜨며 몸을 바로 했다가 팀장과 눈을 마주쳤다.

“진짜 현장 보내려고 한 말 아니야. 시청에 오래 머무르기 싫어서 핑곗거리 만들었을 뿐이고.”

“아.”

그런 것일 줄은 몰랐다. 시청 청사에 오래 머무르지 않기 위한 핑계였단 말에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것 봐. 이제야 걸음마 시작한 병아릴 누가 사지로 몰겠어!”

“큭큭, 우리 막낸 놀리는 재미가 있단 말이죠.”

“하늘 씨 현장 투입한다고 하면 저부터 파업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헌터부라 그런 걸까, 농담도 참 무섭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바로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시청에 오래 머무르기 싫어서 핑계를 댔는데, 말은 잘 맞추고 가야겠지?”

“네!”

“다음 주 수요일에 시청 가서 누가 물어보면 현장 대기해야 한다고 해. 시장이 와도, 대통령이 와도 현장 대기야, 알았어?”

“네,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짧은 단어였기에 까먹을 순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곤 먼저 씻으러 들어갔던 박 주무관이 샤워실에서 나오는 즉시 재빠르게 김 주무관이 이동하는 모습을 좇았다.

“저희 아직 식사 전인데, 세 분도 뭐 드셔야죠.”

“좋지!”

“저도 찬성입니다!”

“김 주무관, 밥 먹고 갈 거지?”

“철도 씹어먹을 수 있습니다!”

팀장의 물음에 샤워실에서도 답이 돌아온다. 그에 핸드폰을 손에 쥔 채 한식으로 주문하잔 말에 바로 상대적으로 배달 시간이 짧은 국밥을 선택했다.

김 주무관에 이어 팀장이 샤워실로 들어간다.

음식이 오기 전까지 현장 이야기를 해 주겠다는 박 주무관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어진 그의 설명에 연신 감탄사를 뱉을 수밖에 없었다.

괴담이나 음모론을 거론할 때도 한 입담 했는데, 현장 상황을 설명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마치 현장에 내가 가 있던 것처럼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가 어느새 팀장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한 주무관 상태는 어떻습니까.”

“다행히 현장을 벗어날 때까진 정신이 있었어. 오는 길에 정밀 검사받았단 메시지를 보낸 걸 보면 큰 문제는 없는 듯해.”

“…그렇군요.”

“이번 기회에 하루 이틀 정도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그 녀석 피로도가 상당하긴 하지.”

휴식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생각한 것보다 부상이 심한 건 아닌 듯했다. 한 주무관의 피로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현장 헌터들의 피로가 심하다는 말로 이어진다. 헌터부 인원이 왜 이리 부족한 것인지에 관한 의문이 솟구쳤다. 나는 손을 들었다.

“질문 있습니다.”

“말해 봐.”

“저, 헌터부는 왜 이리 사람이 적나요?”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다만 지금껏 따로 물어볼 만한 타이밍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답을 얻고자 질문을 던졌던 것뿐인데, 삽시간에 시선이 내게 쏠렸다.

“아, 그거?”

“충원해도 충원해도 사람이 죽어서 그 수가 유지된다는 소문 때문에 물어본 거지?”

“…네.”

“사실, 그건 날조된 거고. 위험수당 때문에 그래.”

“위험수당이요?”

위험수당 관련된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돈을 더 줘도 사람들이 생각해 볼까 말까 한데, 쥐꼬리만큼 한 연봉에 위험수당 얹어서 나오는 것도 저기선 불만이 많거든.”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하는 박 주무관이다. 말을 잃은 채 이어진 부팀장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래서 협회 쪽으로 헌터들을 다 뺏긴 것이겠죠.”

“아무렴. 나라를 위하고자 하던 이들도 대우를 안 해 주니 거진 협회로 넘어갔지.”

“공무원이 철밥통, 철밥통 해도 헌터부는 연금이나 받을 사람이 있겠어요? 매번 이렇게 갈려 나가는데.”

“현장 담당 헌터들 중에서도 조만간 협회로 넘어가겠다는 이들이 있더군요.”

“…붙잡고 싶지만, 붙잡을 거리가 있어야 붙잡지.”

이런 고충이 있을 거라곤 정말 예상치 못했다. 협회에 내칠 돈으로 사람을 붙잡는 편이 낫지 않나 싶은데,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모르겠다.

“식사 왔습니다.”

“오!”

“어서 밥 먹고 퇴근합시다!”

밥이 도착했단 말에 자리서 벌떡 일어난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음식을 세팅한다. 배달원에게 카드를 내미는 부팀장을 보며 함께 음식을 세팅하다가 부족한 의자는 자리에서 끌고 왔다.

“내일은 한 시간 늦게 출근해.”

“오!”

“팀장님 사랑합니다!”

“대신, 1분이라도 늦으면 바로 시말서야.”

“예!”

“다들 얼른 먹고 퇴근하자고!”

시말서 이야기를 꺼낸 팀장이 개구지게 웃으며 수저를 든다. 수당 이야기에 다소 무거워졌던 분위기가 평소처럼 돌아온다. 덩달아 입가에 미소 지으며 빠른 퇴근을 위해, 그리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손을 놀렸다.

***

큰 던전을 한 번 겪어서일까, 이보다 더 김세현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수가 없다.

어서 그가 돌아왔으면 좋겠지만, 마음과는 달리 김세현은 한참 뒤에나 한국에 들어올 듯했다.

잠이 깨자마자 울린 핸드폰에 메시지를 확인하곤 마지막으로 도착한 내용에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형, 보고 싶어요(っ˘̩╭╮˘̩)っ]

[˚‧º·(˚ ˃̣̣̥᷄⌓˂̣̣̥᷅ )‧º·˚ 얼른 한국 가고 십ㅂ다 ]

[일정이 남아서 (*´⌒`*)]

[며칠 더 여기 있어야 해요( •᷄⌓•᷅ )]

[하, 세계 최강 헌터라 그런지 ٩(๑ `н´๑)۶ 여기저기서 절 가만히 놔두질 않네요. 이 미친 인기란 (๑•̀ㅂ•́๑)✧]

[…보고 싶은데 사진 한 장 찍어서 보내 주면 안 돼요? 뭐든 좋은데˖˚˳⌖ ଘ(⸝⸝ᴗ͈ ̫ ᴗ͈⸝⸝)ॢ* ੈ ♡‧₊ ˚]

“…사진 많을 텐데.”

그래, 지금껏 일할 때 옆에서 쉴 새 없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땐 언제고 사진을 보내 달란 저의를 모르겠다. 반대편으로 돌아누운 채 이어 도착한 메시지에 눈을 끔벅였다.

[하늘 형! 좋은 아침이에요! ₍ᐢ.ˬ.ᐢ₎❤]

[네, 좋은 아침이에요.]

[형 얼른 사진!(´•̥̥̥ ᎔ •̥̥̥`) 하늘 형이 부족하단 말이에요(╭•̀ ㅂ  •́╮)]

[…꼴이 말이 아니라서요.]

자고 일어나면 항상 머리가 까치집이 되는 터라 당장 사진을 찍는 건 무리였다. 완곡히 돌려 거절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진을 요구하며 눈물 가득한 이모티콘을 보내올 뿐이다.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 장이면 되죠?]

그간 김세현을 경험해 본바, 한번 저렇게 우기기 시작하면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진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었다. 차라리 꼴이 우습더라도 사진 찍어 보내는 편이 나을 듯해 한 장이면 되겠냐 메시지를 보내니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답장이 날아왔다.

[더 많으면 좋겠지만, 참을게요 (*,,ÒㅅÓ,,)و]

“풉.”

여기서 왜 참는다는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픽 하고 웃음이 터져 그 자세 그대로 사진 한 장을 찍어 전송 후 자리서 일어났다.

“아침이나 챙길까.”

그간 출근하느라 제때 아침을 챙기지 못했는데, 오늘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날이었다. 곧바로 부엌으로 가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식사를 마칠 즈음 도착한 메시지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 =͟͞͞ ( ꒪౪꒪)ฅ✧]

[=͟͟͞͞ =͟͟͞͞ ヘ( ´Д`)ノ]

[=͟͟͞͞ = ͟͟͞͞=͟͟͞͞ =͟͟͞͞(  `ᾥ’)っ✄ 금방 갈게요!]

[천천히 오세요. 전 출근 준비하러 갈게요.]

금방 오겠다고 한들 일정을 다 소화해야 귀국길에 오를 수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너무 급히 움직이다 보면 탈이 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나마 외국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일까, 한결 마음이 놓였다.

“끄응.”

출근하자마자 김세현이 외국에 있음을 전달해야겠다. 크게 기지개를 켜며 자리서 일어나, 설거지까지 마친 뒤 출근 준비를 위해 욕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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