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07. S급 헌터의 유무
띠리릭- 띠리릭-
“흠.”
상황이 상황인지라 부팀장이 전화를 받는 건 무리였다. 곤란해하는 부팀장을 보며 입을 뗐다.
“제가 대신 받아도 될까요?”
대개 팀장 자리의 전화가 울릴 때면 시청이나 협회, 혹은 더 높은 곳에서 연락이 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것도 항상 팀장이 핏발까지 서며 대거리하는 전화 말이다.
혹여 전화를 받지 않았다며 불이익이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팀장 자리로 향했다.
“던전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고 하십시오. 어디서 전화 왔는지 메모해 두고.”
“네!”
부팀장이 말한 부분은 필수로 체크해야 하는 것이었다. 곧바로 팀장 자리로 가 크게 한 번 숨을 가다듬은 후 전화를 받았다.
“서울특별시 헌터부입니다.”
- …염 팀장 자리에 없나?
전화를 받음과 동시에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멈칫했다가 친절한 목소리를 내며 답했다.
“조금 전 F-6 구역에 던전이 생성되어 그쪽으로 가셨습니다.”
- 던전?
“네. 급한 용무신지요?”
- 던전만큼은 아니고!
“던전 클리어 후 연락되는 대로 전달하겠습니다. 어디라고 전해 드리면 될까요?”
- 민원실이라고 하면 알아들을 거요! 거 헌터부 천사 친절상 받게 되었다고도 전하고!
“아.”
다른 이야기도 아닌, 〈칭찬합시다〉와 관련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전화였다는 사실에 머릿속이 점차 하얗게 변했지만, 이어 들리는 상대방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정신을 다잡았다.
- 참나, 내 살다 살다 헌터부에 천사도 강림하나? 살다 살다 시청 홈페이지가 터지는 건 또 처음 보네!
“하, 하.”
차마 그 천사가 나라곤 말하지 못하겠다. 난처한 웃음을 흘리다가 부팀장의 목소리에 구원받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통화 안 끝났습니까?”
“바로 복귀하겠습니다!”
- 거 전했으니 되도록 빨리 연락 달라 전달하쇼!
“예, 알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언성을 높이던 이가 전화를 끊는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바로 자리로 돌아가 CCTV를 확인하던 중이었다. 나는 전화 타이밍이 묘하단 생각과 함께 모자이크된 피켓이 떠오르자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
설마라고 생각하고 아닐 거라 여기기엔 〈칭찬합시다〉 관련된 전화가 온 시기가 영 그랬다.
“후우.”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지금은 그 생각에 잠식될 여유가 없었다. 머리를 턴 뒤 CCTV 상황을 살폈다.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까진 센터피드 개체는 하나만 확인되고 있습니다. 규모는 C급 유지 중입니다!”
- 방금 팀장님과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막내야, 센터피드 현재 위치 보여?
먼저 출발한 한 주무관의 도착 소식이 전해진다. 센터피드 위치를 묻는 이에 영상을 보며 빠르게 위치를 찍어 그것을 팀원 전체에게 전송했다.
“현재 현자병원 사거리에서 북동쪽에 자리한 개나리 아파트 단지 쪽에 있습니다! 위치 방금 전송했으니 확인해 주세요!”
- 확인!
- 나도 확인!
문자를 본 이들이 확인했음을 전달한다. 현장에서 주고받는 긴박한 대화를 듣다가 네트워크 너머로 들려오던 소음이 점차 커지는 걸 인지했다.
이렇게 큰 소음이 들려오는 건 오래간만이었다. 마른침을 삼킨 뒤 계속 CCTV를 살피며 귀는 네트워크에 집중했다.
- 개나리 아파트 302동 11시 방향에 센터피드 발견!
- 한 주무관은 후방에서 엄호해!
- 알겠습니다!
센터피드를 발견했다는 말과 함께 팀장이 전투를 개시했다. 거친 숨소리와 타격 소리, 그리고 큰 굉음과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너무도 리얼했다. 제발 큰 피해가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었다. 전투 범위가 넓어져 센터피드를 확인할 수 있었던 유일한 CCTV까지 조금 전 작동을 멈춘 터라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다른 때완 달리 좀처럼 굉음이 잦아들지 않는 상황이다. 혹여 방해가 될까 싶어 연결된 네트워크 발신을 끄곤 부팀장에게 말을 건넸다.
“센터피드 등급을 생각하면 지금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돼야 하는데, 전투가 많이 길어지는 듯합니다.”
“팀장님이 나가 있으니 문제가 커지진 않을 겁니다. …그러길 바라야죠.”
부팀장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인 듯했다. 길어지는 전투 상황이 부디 센터피스 몬스터가 융합되어 벌어진 사태가 아니길 바랐다.
한참을 이어지던 굉음이 조금씩 잦아든다. 나는 현장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네트워크 볼륨을 크게 키웠다.
- 허억, 던전, 클리어!
언제쯤 끝나나 싶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던전이 클리어되었음을 전달하는 팀장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들게 느껴진다. 근 한 시간가량 이어진 전투가 종료되자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이어진 대화에 눈이 커졌다.
“고생하셨습니다.”
- 피해가 상당해!
“바로 호송팀 호출하겠습니다.”
평소 같았다면 부팀장의 질문에 피해 상황이 대략 어떠하단 답이 돌아왔을 것이었다. 이전과는 다른 상황에 걱정이 앞선다. 한참 현장 지휘를 하던 팀장이 다시 네트워크를 연결해 상황을 전하자 심장이 내려앉았다.
- 한 주무관도 방금 호송됐다.
“…많이 다쳤습니까?”
-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어. 빌어먹을! 협회 놈들만 제때 도착했어도 융합 단계까지 진행되진 않았을 텐데! 하여튼 이쪽 상황 정리하는 대로 사무실로 갈 테니 오늘은 바로 퇴근하지 말고 기다리고들 있어!
“알겠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바로 퇴근할 생각은 없었다. 부팀장이 상황 종료를 알린다. 나는 중계기와 네트워크를 껐다.
“아까 전화는 어디서 온 겁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멈칫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시청에서 왔습니다. 그, 민원실에서요.”
“뭐라고 하던가요?”
민원실이라는 말에 눈을 크게 뜬 부팀장이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복잡해 보이는 시선과 마주친 나는〈칭찬합시다〉 관련하여 상을 수령하란 연락이 왔음을 전했다.
“설마 그 피켓이….”
부팀장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듯하다. 흐릿한 미소를 짓다가 다가온 부팀장이 어깨를 토닥이자 상체를 축 늘어뜨렸다.
“통화 중 피켓 관련된 이야기라거나 윗선 이야기는 없었습니까?”
“홈페이지가 터졌다는 말과, 그….”
이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게 민망하기 짝이 없다. 숨을 고르곤 말을 이었다.
“천사 이야기만 나왔습니다.”
“아.”
천사 이야기에 부팀장 또한 말을 잇지 못한다. 시선만 공유 중이었지만, 마음이 통하는 기분 속에서 한참을 그렇게 침묵하다 부팀장이 꺼낸 말에 반색했다.
“현장 상황도 궁금하니 TV나 보죠.”
“네.”
지금 상황을 타개하기엔 TV만 한 게 없다. 바로 TV를 켜 부팀장과 함께 뉴스 속보를 시청했다.
- 현재 이곳은 자욱한 먼지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던 굉음은 잦아들었지만, F-6 구역 전방에 깔린 먼지는 시간이 좀처럼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던전은 규모 C급, 난이도 B급 던전으로 알려져 있으나 던전을 빠져나온 피난민들은 상황이 종료되면 이번 던전의 등급이 격상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
중계기와 네트워크를 통해 현장이 얼마나 치열하고 긴박했는지 느꼈지만, 이런 상황일 거라곤 미처 예상치 못했다.
현장에 나간 기자의 멘트와 함께 화면을 가득 채운 F-6 구역이 비춰졌다. 쉴 새 없이 날리는 먼지로 인해 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현장에 침묵했다.
“…….”
공무원이 되어 이런 광경을 보는 건 처음이다. 그 이전에도 몇 번 본 적 없었고 말이다. 김세현의 부재 하나로 인해 이렇게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다니.
- 현재 던전은 클리어 되었습니까?
- 아직 클리어 소식이 전달되진 않았습….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현재 부상자들을 호송키 위해 호송팀이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 호송팀이 투입되었다는 것은 안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여겨도 될 것으로 보이는군요.
- 그렇습니다.
- 잠시 뒤 한 번 더 현장에 나가 있는 송아미 기자와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먼지만 자욱한 것이었으면 좋겠군요.”
“예.”
부팀장의 말마따나 그저 먼지만 요란한 것이었으면 했다. 리모컨을 달란 부팀장에게 그것을 건넨 뒤 채널을 돌려 다른 뉴스로 현장 상황을 보는 부팀장과 계속해서 추이를 살폈다.
최근 생성된 던전들 중 최장 시간 유지되었던 던전으로 인해 매체들의 관심은 그쪽으로 쏠린 상태였다.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는 사실이 반가웠지만, 지금은 반가움을 느끼는 것조차 찝찝했다. TV로 중계되는 F-6 구역을 보며 작업 가능한 부분부터 서류 작업을 하다가 아홉 시가 가까워질 무렵, 사무실 문이 열리자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
“괜찮으십니까?”
“나야 뭐, 조금 긁힌 정도야.”
“먼지만 뒤집어썼습니다.”
“…저도요.”
그야 TV에서 보기만 해도 먼지가 자욱했으니, 어느 정도는 그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흙먼지를 뒤집어썼을 줄은 미처 몰랐다. 머리카락은 물론, 얼굴과 몸 전체에 흙먼지를 붙이고 나타난 세 사람의 모습에 말을 잃었던 것도 잠시였다.
“제가 그나마 깔끔하니 먼저 얼른 씻고 나오겠습니다!”
“어허, 계급 몰라? 계급대로 가지!”
“그럼 제 계급이 제일 낮으니 먼저 들어가야겠습니다!”
“…….”
돌아오기 전까지 현장서 힘들었을 이들이 샤워실을 두고 투덕거리는 모습이 좀처럼 실감 나지 않는다. 결국 가위바위보로 순번을 정해 박 주무관부터 씻게 된 모습을 말없이 보다 팀장이 허벅지를 탕탕 두드리며 지친 기색을 내보이자 바로 자리서 일어났다.
탕비실에 놓아 둔 신문지를 가지고 와 원탁 의자에 깔고, 또 걸쳐 그들이 앉을 수 있게 의자를 세팅한 뒤 팀장과 김 주무관에게 말했다.
“여기 앉아서 좀 쉬세요.”
“뭘 그렇게까지 힘들게 신문을 깔아. 그냥 앉아도 되는걸.”
“먼지 묻으면 닦기 힘들어서요.”
“…….”
의자 쿠션 재질이 바로 닦아 낼 수 있는 재질이었다면 또 모를까, 닦기 힘든 재질인 만큼 처음부터 조심하는 편이 나았다.
성큼 다가와 의자에 앉으려던 팀장과 김 주무관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멈칫한다. 그리곤 슬쩍 이쪽을 보는가 싶더니 신문지 위치를 조정해 조심히 착석하는 모습을 확인한 뒤 목을 만지작거리는 김 주무관을 발견하곤 다시 정수기 쪽으로 향했다
아니, 가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