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07. S급 헌터의 유무
하지만 그 기대는 어디까지나 내 바람일 뿐인 듯했다.
김세현의 행보에 집중하던 뉴스는 어느새 모자이크로 가려진 사진을 알아내고자 하는 누리꾼으로 인해 시끌벅적했다. 심지어 대중매체에서까지 그 건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었고 말이다.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
1위부터 10위까지 야무지게 먹어 치운 김세현의 연관검색어다. 제아무리 큰 사건이 발발한다고 한들 상위권 검색어를 독차지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 그만큼 김세현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일정 시간마다 계속해서 바뀌는 연관검색어였지만, 그 모두가 김세현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청와대 김세현, 청와대, 김세현, 모자이크 등의 검색어를 보다가 새로이 갱신된 검색어를 보다 멈칫했다.
“…….”
저게 왜 저기 떠 있는 거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김세현 형’과 ‘김세현 라면’이 실시간 검색어에 뜬 상태다.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는지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는 단어가 무서울 지경이다.
점차 순위가 올라가는 형과 라면을 보다 다른 창에 띄워 둔 기사 댓글을 확인했다.
설마 저 모자이크에 그거 적혀 있는 거 아님? 호주 던전 클리어하고 김세현이 라면 먹으러 가겠다고 한 형 있었잖아. 그 형한테 고백하는 글 같은 거 아닐까?
└ 너무 가네. 고백도 때와 장소가 있지!
└ 잘도 청와대에서 그걸 허락해 줬겠다!
└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김세현이면 가능할지도.
└ 가능할지도222 지금 외국에서 김세현 모셔 가려고 얼마나 공들이는데, 그 정도 고백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
여기선 형과 라면이란 단어를 보지 못할 줄 알았다.
베스트에 척하니 올라와 있는 댓글을 보니 암담하기 그지없다. 잠시 잊고 있던 불안함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기 시작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사람이었다면 부끄러워서도 절대 원본 나돌게 두지 않을 거야.”
“명색이 대통령인데, 그 옆에서 저 꼬라지로 사진을 찍게 뒀다는 건 위신과 관련된 일이기도 하니까.”
“이상한 말 적혀 있으면 아주 난리가 나는 거지. 절대 밖으로 나돌 리 없어.”
“…네.”
팀원들의 말을 들으니 그럴 것 같기도 했다. 고개를 끄덕이곤 헛기침하는 한 주무관을 바라보았다.
“딴에 피켓 모양 알아볼 수 있게끔 모자이크 처리한 거 보면 김세현한테 비난 여론 생길 거 염두에 둔 것 같지 않아요?”
“오, 그거 그럴싸한데요?”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의도일 수도 있을 것 같군요.”
한 주무관의 의견에 부팀장도 동의한다. 말없이 기사 속 사진을 보다가 김 주무관의 부름에 답했다.
“네, 김 주무관님.”
“심란하면 기사 그만 봐도 돼.”
“…네.”
확실히 여기서 더 보면 다시 또 불안해질 것 같았다. 지금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불안감을 느끼며 검색 사이트를 껐다.
“…….”
어제까지만 해도 허전함도 느끼고, 언제 연락이 오나 기다려졌는데, 지금은 어제완 다른 느낌으로 부재가 다가온다.
이렇게 계속 불안할 거라면 차라리 김세현이 매일 헌터부에 있는 편이 나을 듯했다. 손에 쥔 볼펜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중이었다. 커피 향과 함께 종이컵이 책상 위에 놓이자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마음 다독여요.”
“감사합니다, 부팀장님.”
티 내지 않으려 했는데, 걱정이 드러난 모양이다. 몇 번 어깨를 토닥인 그가 자리로 돌아가자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
그래, 부팀장의 말마따나 따뜻한 차를 마시면 기분이 풀릴 듯도 했다. 나는 바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음료가 들어가서일까, 제법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계속 커피를 홀짝이다가 잔이 빌 무렵 다시 시작된 대화에 귀 기울였다.
“따로 연락 오는 거 없는 거 보면 천사 정도 선인가 봅니다.”
“이번 주는 지켜보자고. 다이렉트로만 말이 내려오는 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천사 선에서 그쳐 다행이라는 말은 다시 말해 그보다 더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막내야.”
컵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 채 팀장의 부름에 답했다.
“네, 팀장님.”
“막내는 커피 다 마시면 작업한 서류들 가지고 와.”
“알겠습니다.”
작업한 것이라고 해 봤자 몇 되지 않았다. 미리 정리해 둔 파일을 인쇄해 정리한 뒤 곧바로 그것을 팀장에게 가지고 갔다.
“흠, 어디 보자.”
결재를 위해 매번 서류를 올리곤 있다지만, 매 순간 긴장되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특히나 협회 측으로 나가는 금전 쪽 서류기에 더더욱 그랬다. 한참 내용을 살피는 모습에 긴장감이 배가 된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팀장이 바로 자리서 일어난다. 의자에 걸쳐둔 윗옷을 서류를 든 팔에 걸치는 모습에 물었다.
“어디 가시게요?”
물음에 팀장이 픽 웃더니 턱짓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 방향을 확인한 뒤 출입문 쪽을 가리켰음에 멈칫했다.
“…….”
설마, 아닐 거다.
팀장이 가리킨 방향은 출입문이 있는 쪽이었지만, 조금만 더 가면 그곳이 있었다. 그래, 협회 말이다.
“협회 가시려고요?”
“잉여가 저리 활개를 쳤는데, 또 이러니저러니 말 늘어놓을 게 뻔하잖아. 먼저 가서 푸닥거리 좀 하고 오려고.”
“간 김에 동태도 살피고요?”
“그렇지.”
갑자기 협회 방문을 한다고 해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역시 모두가 김세현을 의식하는 듯했다. 시간을 내면서까지 동태를 살필 줄은 몰랐다. 괜히 미안해져서 모두에게 말을 건넸다.
“차 드실 분 계신가요?”
“오, 좋지!”
“항상 마시는 걸로 부탁해.”
“저도 마시는 걸로 부탁합니다.”
“난 패스. 가서 협회 곳간 조금이라도 털어야지.”
“다녀오십쇼!”
“아아.”
곳간을 털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팀장이 창문으로 향하더니 곧바로 뛰어내린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지긴 했지만, 볼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는다. 창가로 가 문을 닫은 뒤 이어 정수기 쪽으로 향했다.
“나랑 같이 준비하자.”
“네.”
무슨 일로 한 주무관이 함께 준비하잔 말을 꺼낸다. 고개를 끄덕였다가 정수기가 아닌 정수기 옆의 냉장고 냉동실을 열어 안을 살피는 모습에 물었다.
“뭐 찾으세요?”
“얼음 얼린 거 있나 해서.”
“맨 아래 칸 보시면 있어요.”
“오, 여기 있네.”
바로 아래 칸을 살핀 한 주무관이 씩 웃으며 얼음을 꺼낸다. 건조대에 엎어 둔 유리잔을 꺼내 믹스커피를 여러 개 까서 넣는 걸 보니 아이스커피를 만들 모양이었다.
유리컵에 뜨거운 물을 받기 시작한 그가 건네는 종이컵마다 물을 채운다. 그가 건넨 컵의 내용물을 티스푼으로 저어 쟁반에 올린 뒤 작은 목소리로 날 부른다. 나는 답했다.
“네, 한 주무관님.”
“…잉여가 생각 없이 행동하는 거 같아도 다른 헌터에 비해서는 생각이 좀 있긴 해. 우리 막내한테 피해가 오게끔은 하지 않을 거야.”
“…네.”
“내가 봤을 땐 모자이크 건도 잉여가 머리를 쓴 거 같단 말이지. 자존심을 건드려서 외부에 내용은 유출 못 하게 하되, 어필 가능한 그런 거 말이야.”
“아.”
그쪽으론 생각해 보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한 주무관의 의견에 복잡했던 머릿속이 단번에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더하여 무거웠던 마음까지 제법 가벼워지는 듯했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합니까?”
“왜, 질투해? 친분 쌓는 중이니까 끼어들지 마.”
“와, 한 주무관님 제가 다가가면 거리 두시면서! 차별하는 겁니까?”
“당연하지!”
평소에도 투닥이는 한 주무관과 박 주무관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독 그 투닥임이 과하다. 내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오버하는 느낌에 슬그머니 입가가 올라갔다.
그래, 걱정된다고 계속 그 생각만 하고 있으면 감정에 매몰되고 말 거다. 다른 이들도 함께 머리를 맞댄 상황임을 상기하며 준비를 마치고 차를 돌리던 중 울린 긴급 전화에 숨죽였다.
따르릉, 따르릉-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헌터부입니다.”
벨이 울림과 동시에 자리서 일어난 김 주무관이 급히 긴급 전화를 받는다.
“…우리 저 벨 소리 좀 어떻게 변경해 달라고 건의할까?”
“따르릉의 따 자만 들어도 경기가 납니다.”
소곤대는 한 주무관과 박 주무관의 대화를 뒤로하며 자리로 복귀한 뒤 곧바로 교통센터에 접속했다.
“F-6 구역 큐브빌딩에 규모 C급, 난이도 B급 던전이 활성화되었다고 합니다!”
“난이도가 B?”
“헉! 저는 얼른 팀장님부터 호출하겠습니다!”
던전 활성화 소식에 다급히 김 주무관이 팀장에게 전화를 건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허리를 곧추세우곤 부팀장의 물음에 답했다.
“현재 CCTV 가동 상황은?”
“큐브빌딩을 중심으로 북쪽 CCTV 가동률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서쪽과 남쪽으로 설치된 CCTV들이 하나둘 작동을 멈추고 있고요!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잠식되는 상황입니다!”
“범위는?”
“범위가 확장되는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현재 큐브빌딩을 중심으로 반경 700m까지 규모가 커진 상태입니다!”
이 속도라면 규모가 빠르게 재수정될 것이 분명했다. 고개를 들어 부팀장이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신속히 상황을 정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박 주무관은 되도록 다른 방향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십시오! 그리고 한 주무관은 먼저 출발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부팀장님, 현재 팀장님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던 김 주무관이 바로 상황을 전달한다. 나는 부팀장을 보았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현재 출동 가능한 헌터가…. 김 주무관, 협조문 준비하십시오! 간 김에 팀장님께 현 상황 보고 하시고요!”
“예!”
서랍서 바로 협조문을 꺼내 빠르게 기입을 마친 김 주무관이 사무실을 뛰쳐나간다. 한 번 더 CCTV를 확인한 뒤 상황의 심각성에 바로 중계기를 작동시켰다.
마지막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도착한 재난 문자가 오늘따라 위험천만하게만 느껴진다. 문자를 보낸 박 주무관까지 빠르게 자리를 뜬다. 나는 빠르게 자리로 복귀해 다시 CCTV 상황을 살폈다.
“어떻습니까.”
“같은 방향으로 계속해서 CCTV가 꺼지는 상황입니다. 현재 범위서 100m가량 세력을 키운다면 범위 등급 조정이 들어가야 할 듯합니다!”
중계기로 팀원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동시에 박 주무관의 자리로 이동한 부팀장이 컴퓨터에 뭔가를 빠르게 입력한다. 잠시 뒤 재차 도착한 재난 문자는 좀 더 멀리 대피하란 내용이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재난 문자를 다시 읽었다.
“…….”
한동안 B급 이상 던전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이보다 긴장될 수가 없다. 혹여 하나라도 놓치는 게 있을까 계속해서 CCTV를 살피다가 시야에 잡힌 무언가에 기절초풍했다.
“부팀장님! CCTV에 몬스터가 잡혔습니다!”
“어떤 몬스터지?”
“그것이…”
하필 이때 몬스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건 왜일까.
침을 삼키고 몬스터의 외양을 주변 사물과 비교하며 설명해 나갔다.
“…몸체 크기는 이층 버스 정도로 추정됩니다! 몸체엔 다리로 추정되는 기다란 부위가 많이 달려 있고, 전체적인 색상은 검습니다!”
설명을 들은 부팀장이 곧바로 이쪽으로 온다. 모니터를 확인한 부팀장이 침묵하다 이내 침음을 삼킨다. 평소엔 볼 수 없던 모습에 그 어느 때보다 초조해졌다.
“이런.”
빠르게 자리로 복귀한 부팀장이 네트워크와 중계기를 한 번에 연결한다. 손짓에서 느껴지는 다급함이 이보다 더 무서울 순 없었다.
“현장에 계신 분들, 그리고 출동 중인 분들에게 전달합니다. 현재 F-6 구역에 B급 몬스터인 센터피드 개체 하나가 확인되었습니다. 모두 각별한 주의 바랍니다.”
- 뭐? 센터피드?
- 센터피드면 지원 요청 좀 더 할까요?
- 보통 두 개체가 같이 다니니 A급 이상으로 내어 달라고 해! 둘이 융합이라도 하게 되면 A급 헌터 한둘론 못 잡아!
- 알겠습니다!
협회에서 팀장과 만났는지 팀장과 김 주무관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A급 헌터 한둘로는 제압할 수 없단 말을 들으니 이보다 암담할 수가 없다. 화면 속 센터피드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다가 이번엔 팀장 자리에서 울린 전화에 그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