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4)화 (24/246)

23화

06. 이것은 반칙입니다

“네?”

“막 자랑하고 싶고, 그럴 거 같지 않아요?”

은근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는 김세현이다. 마치 SS급이라도 되는 듯 거만한 표정을 짓는 이에 툭 말을 뱉었다.

“딱, 히요?”

“왜요?”

“굳이 여기저기 알리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요.”

“…어째서?”

나야말로 물어봐 놓곤 되묻는 이율 모르겠다.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반문하는 이에 답했다.

“방금 말씀하셨잖아요. SS급인데 S급이라고 속이고 있다고. 만약 그렇다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감추는 걸 텐데, 그런 걸 주변인이 멋대로 발설하면 안 되죠.”

이미 지금도 S급 헌터 중 단연 으뜸이라 손꼽히는 김세현인데, 여기서 SS급이란 사실을 감춘 채 활동 중이었음이 알려지게 된다면 그 파장은 실로 엄청날 것이었다. 그래, 무엇이 되었건 상상 그 이상의 일들이 따라다닐 게 뻔했다.

그저 가설일 뿐이지만, 잠시 생각만 했을 뿐인데도 이렇게 등골이 서늘해지는 건 전부 상대가 김세현이기 때문일 거다.

그것도 SS급 헌터에 가장 가깝단 풍문이 도는, 그 김세현 말이다.

S급 헌터라 다행이라 여기며 고개를 주억이던 것도 잠시였다. 지금쯤 말을 걸고도 남았을 이가 조용하단 사실에 정신을 차렸다.

“…세현 씨?”

김세현은 어느새 입을 살짝 벌린 채 멍하니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나는 좀처럼 반응이 없는 모습에 볼을 긁적였다.

몇 번 본 표정이긴 하나 아직 저 표정에 익숙해지려면 먼 듯했다. 얼마나 잘생겼으면 저렇게 얼굴을 막 써도 보는 사람이 잘생겼다 느낄 수 있는 걸까.

띠리릭- 띠리릭-

한동안 잠잠하던 벨이 울린다. 팀장 직통 전화벨 소리에 몸을 틀어 그쪽을 보았다.

“예, 서울시 소속 헌터부 염기태입니다. …말 참 이상하게 하시네! 협조금 나간 게 왜 우리 탓입니까! 누누이 말했잖습니까, 답답하면 직접 와서 현장에서 뛰시라고! 아, 지금 본인은 헌터가 아니라 현장에 나갈 수가 없다? 그럼 돈으로라도 커버해야지 않겠어요? 현장 공무원이 많아지면 우리가 굳이 협회한테 협조해 달라고 할까?”

“…이런.”

“시청에서 온 연락인가 보네요.”

“한동안 연락이 없어 이상하긴 했습니다.”

확실히 한동안 연락이 없긴 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가 왔었지만, 지금 이 전화는 몇 주 만에 온 것이었다. 날짜를 헤아려 보며 팀장을 살피다가 점차 그의 표정이 사나워지자 마른침을 삼켰다.

“아니, 그러니까! 그렇게 불만이 많으시면 와서 직접 던전 클리어하라니까 그러네! 어? 그렇게 협조금 아까우시면 헌터부 사람을 좀 뽑아 주든가! 아니면 나라 소속 헌터 수를 늘리든가! 인원 좀 늘려 달라고 어필한 지가 언젠데 우리 막내 한 사람 겨우 충원해 주곤 이 무슨 생색이야!”

매번 저렇게 같은 말을 반복하며 사람을 긁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거다. 그것도 시민들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눈에 보이는 숫자만 우선시하는 것 또한 말이다.

어떻게 보면 혈세를 이용하는 일이기에 저들이 저런 말을 하는 게 당연했지만, 현재로서는 지금이 최선이었다.

그래, 헌터부 소속 공무원만 충원되어도 협회로 흘러가는 돈은 제법 줄어들 터였다. 가까운 길을 두고 굳이 먼 길을 택할 때는 언제고, 왜들 저리 아랫사람만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미간을 구긴 채 통화 내용을 듣던 와중에 옆에서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에 흠칫했다.

“정말 여긴 하나도 바뀐 게 없네요, 하늘 형.”

“…….”

통화에 집중하다 보니 잠시 김세현이 자리에 있었다는 걸 깜박했다. 헌터부와 관련된 내용이 다른 이도 아닌 김세현에게 까발려졌단 사실이 왜 이리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홧홧해진 얼굴을 가려 보려 노력했지만, 계속 볼을 터치하는 손길에 어쩔 수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하늘 형, 나 커피 마실 건데. 커피 타 줄까요?”

“네.”

“…알았어요. 맛있게 타서 가져올게요.”

누가 봐도 지금 상황을 모른 체해 주는 듯했다. 은근히 센스가 있다 여기며 손을 들었다가 방금 김세현이 닿았던 볼을 만지며 입을 꾹 다물었다.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뜨끈해졌을 줄은 몰랐다. 이 정도라면 분명 발갛게 달아올랐을 것이 분명했다. 손으로 꾹꾹 누르며 애써 열감을 가라앉히다 김세현이 한 말을 뒤늦게 인지했다.

“…….”

하나도 바뀐 게 없다는 말은 그만큼 김세현이 헌터부를 잘 알고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래, 그 말을 하던 김세현의 표정과 말투 또한 심상치 않았다.

헌터 생활을 오래 한 만큼 김세현이 아는 건 많을 것이다. 그래, 차근차근 헌터부에 대해 알아 가고 있는 나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터였다.

눈으로는 김세현을, 귀로는 팀장의 통화 내용을 듣던 와중이었다. 팀장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자, 나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지금 이만큼 뛰고 있으니 지금 그 자리서 떵떵거린다는 거 잊지 마쇼! 아, 그렇지. 그러고 보니 왜 그건 안 나오는 겁니까?”

뭐가 안 나온다는 거지?

최근 헌터부에 발생한 일들은 나도 알고 있었다. 팀장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나 싶더니 이내 김세현 쪽으로 옮겨 가자 의아함을 느꼈다.

평소라면 김세현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팀장이 무슨 일로 김세현을 보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통화 중에 말이다.

심각한 얼굴로 김세현을 보던 팀장이 다시 날 바라본다. 그와 눈이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따라 덩달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게 뭐냐니! 뭐긴 뭐요, 〈칭찬합시다〉에 우리 막내 칭찬 글 올라온 거 왜 무시하냐는 거지! …뭐? 그저 디도스 공격일 뿐이었다고?”

“…….”

설마, 저 말을 해도 되냔 물음이었던 걸까.

이럴 줄 알았다면 고개부터 저을 걸 그랬다. 당혹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등 뒤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몸을 틀었다.

“…세현 씨?”

조금 전까지만 해도 커피를 타다 주겠다던 김세현이 이쪽을, 정확히 말하자면 팀장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잔뜩 성이 난 모습에 눈치만 보다가 그의 손을 타고 흘러내리는 갈색 액체를 발견했다.

“괜찮아요?”

멀쩡하던 종이컵은 왜 이리 구겨졌으며, 뜨거운 커피가 손을 뒤덮었음에도 왜 아무 반응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손뿐만 아니라 몸 여기저기에 커피가 튀어, 얼른 근처의 휴지를 뽑아 손에 묻은 커피부터 닦아 냈다.

“아프진 않아요? 많이 뜨거울 텐데!”

오늘은 정수기를 사용하지 않은 터라 물 온도가 맥시멈에 가까웠을 것이었다. 신속하게 커피를 닦아 내다가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지금 덩치가 한 말 사실이에요?”

“…어떤 말이요?”

“〈칭찬합시다〉 포상, 안 나왔어요?”

“아.”

다른 사람도 아닌 김세현이 이런 질문을 하니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청 홈페이지를 며칠간 터뜨린 장본인이 던진 물음에 시선을 피하다가 계속해서 채근하자 결국 입을 열었다.

“…저는 괜찮아요.”

“착한 공무원상 뭐 이런 것만 주고 말 것 같아서 그래요?”

“네? 아뇨. 정말 괜찮아서 그래요.”

“보너스도 나오는데?”

“그, 렇죠?”

“적은 액수도 아니고 무려 100만 원인데도요?”

“…….”

〈칭찬합시다〉 코너에서 선정된 이들이 그렇게 큰돈을 받는 줄은 몰랐다. 액수를 듣자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보단 내 얼굴과 이름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게 더 나았다. 고개를 끄덕인 뒤 김세현의 손이 움직이자 붙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뺐다.

“…하늘 형.”

“네.”

“손 다시 잡아 줘요. 꼭 잡아 주면 더 좋고.”

“…….”

손을 빼려는 줄 알고 힘을 뺐는데, 다시 잡아 달라 할 줄은 몰랐다.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다시 손을 잡고 있었다.

“형.”

“네.”

“나, 손이 좀 아픈 거 같기도 한데.”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지, 그걸 왜 참아요!”

나는 김세현을 끌고 개수대 쪽으로 향했다.

“으음.”

“화상 입으면 얼마나 성가신지 알아요? S급이라고 해도 항상 조심해야죠!”

그래, 화상을 입으면 흉터도 흉터지만 이래저래 불편한 점이 많았다. 제아무리 S급 헌터라 할지라도 뜨거운 것이 몸에 닿으면 아플 것이었다.

흐르는 물 아래 김세현의 손을 놓고 이리저리 보고 있자니 그의 몸 곳곳에 커피가 묻었었다는 게 떠올랐다. 김세현 쪽으로 몸을 튼 나는 이번엔 몸을 살폈다.

“다른 곳은 괜찮아요?”

“…….”

말을 할 거면 바로 하지, 왜 저리 뜸 들이는지 모르겠다. 정말 어디 다른 곳이 아픈 게 아닐까 싶어 몸 이곳저곳을 살피며 좀처럼 말이 없는 이에게 재차 물었다.

“다른 곳은요?”

“좀, 아픈 곳이 있기는 한데.”

“어디 봐요!”

손은 바로 상태를 체크할 수 있지만, 커피가 튄 옷 아래는 옷을 걷어야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나마 재킷을 걸치고 있어 확인 범위가 좁아 다행이다.

“여기서 까라고요?”

휘둥그레 뜬 푸른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단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화상 입은 채 있어요?”

“…형한테만 보여 주려고 했는데, 형이 원한다면 당연히 까야죠.”

깐다는 표현이 너무 강했지만, 옷을 어느 정도 벗어야 확인할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다가 생각지도 못한 고성에 화들짝 놀랐다.

“당연….”

“우리가 안 괜찮아!”

“막내야, 와서 일해! 그 정도는 화상 안 입으니까!”

“그래도 확인을 해야….”

“확인? 그래, 그거 내가 할 테니까 막내는 가서 일해! A급 헌터가 확인하는 게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을 테니까!”

언제 통화를 마쳤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가온 팀장이 나와 김세현 사이에 끼어든다. 확실히 일반인인 내가 살피는 것보단 A급 헌터인 팀장이 상처 보는 눈이 탁월할 것이었다.

“막내는 자리로 돌아가!”

“네, 팀장님.”

굳이 돌아가야 하나 싶었지만, 큰일도 아니니 돌아가서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자리로 돌아가 김세현과 팀장을 지켜보았다.

“자, 어디 보자! 얼굴 멀쩡하고! 몸도 멀쩡하고! 손도 멀쩡하네!”

이리저리 김세현을 살펴보던 팀장이 이상이 없음을 전달한다. 눈으로 대충 보고 말하는 것이 영 믿음직스럽지 못했지만, 팀장의 말마따나 A급 헌터의 눈은 일반인인 나보단 상처를 살피기에 적합했다.

말없이 팀장을 노려보는가 싶던 김세현이 다시 커피를 타곤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커피를 건네받은 나는 이어진 그의 설명에 마음이 놓였다.

“하늘 형, 형이 닦아 주고 씻겨 줘서 화상까지 가지 않았나 봐요.”

“다행이에요.”

“…하늘 형은 왜 이렇게 친절해요?”

“친절은요.”

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도움을 줄 것이었다. 당연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친절하다고 하니 괜히 민망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이어진 김세현의 아리송한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저도 좀 더 노력해 보려고요.”

“뭐를요?”

“있어요, 그런 거.”

“…….”

뭔지는 모르겠지만, 김세현이 노력한다고 하니 괜히 기분이 묘하다. 환한 미소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저 미소가 마음에 걸린다.

“어서 커피 마셔요. 맛있게 탔으니까.”

“잘 마실게요.”

그래, 저 미소가 이상하게 잔상이 남는 건 전부 화상을 입을 뻔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저 행동 때문일 것이었다. 굳이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나 하는 마음으로 그가 권하는 커피를 마시며 이내 생각을 완전히 날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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