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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2)화 (22/246)

21화

06. 이것은 반칙입니다

마실 때만 해도 조금 과음하는 정도겠거니 여겼다.

하지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으려니 자연스럽게 어제의 내가 원망스러워졌다. 다음 날 출근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분위기 좀 탔다고 술잔을 기울이다니.

“…후우.”

솔솔 불어오는 아침의 찬 공기를 맞으며 정신을 다잡아 봤지만,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편두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정신 차리자, 연하늘.”

지금 이 상태로 부팀장의 차에 오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담벼락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하다가도 재차 찾아온 두통에 다시 기대어 설 수밖에 없었다.

“…….”

이게 전부 다 기석이 녀석 때문이다.

김세현과 헤어지고 집으로 들어와 저녁 준비하는 와중에도, 술을 마시는 중에도 툭하면 조금 전 남자 누구냐 묻는 통에 말을 얼버무리느라 계속 술을 마셔야 했다. 심지어 기석은 설마 김세현이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 사람이 맞다고 할 수도 없고.”

이미 김세현의 얼굴이 매체에 공개되었다고는 하지만, 굳이 밝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연신 김세현을 닮았다던 녀석의 말에 그럴 리 있겠냐며 주야장천 말을 돌린 어제의 대화를 떠올리곤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하아.”

나오는 게 한숨뿐인 건 전부 그 ‘형’ 관련 기사들 때문이었다. 그래, 그 형 이야기만 없었다면 그 고생을 하진 않았을 거다. 버석해졌을 것이 분명한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곤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땅을 파는 것도 파는 거지만, 지금은 그 힘으로 최대한 멀쩡하게 보이게끔 노력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움직이고 싶지 않은 몸을 움직이며 바닥 친 컨디션을 애써 끌어 올리던 와중에 가로등이 눈에 들어왔다.

“어?”

그러고 보니 지난밤 김세현과 마주쳤을 때 가로등 아래 무언가가 떨어져 있었다. 혹 지금도 있을까 싶어 주변을 살폈지만,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어 이내 찾는 것을 포기했다.

아침저녁으로 소일거리로 골목 청소를 하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아마 그 어르신들이 그걸 치운 듯했다. 제법 커다란 물체였던지라 정체가 궁금했는데, 확인할 기회는 끝난 모양이다. 아쉬움에 한숨을 내뱉다가 익숙한 차 엔진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흠, 흠!”

역시나 부팀장의 차가 맞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차가 내 앞에 정차하자 몇 차례 헛기침 후 조수석에 올랐다.

“좋은 아침입니다, 부팀장님.”

“…술 마셨어요?”

그저 인사 한마디 했을 뿐인데, 기가 막히게 알아맞힌다. 되도록 술 마신 티를 내지 않으려 했건만, 단번에 들켰다는 사실에 입가가 떨려온다. 대답이 없자 이상했는지 이쪽으로 시선을 준 부팀장이 얼굴을 살피다 어색하게 웃는다. 나는 민망함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열심히 씻기는 한 것 같은데, 술 냄새가 좀 나네요.”

“그, 죄송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출근하는데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사과 후 양해를 구해 조수석 쪽 창문을 열고는 부팀장 또한 차창을 여는 걸 보며 곧바로 벨트를 맸다.

“군대 간 친구랑 한잔했군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좀 마시게 되더라고요.”

“이런 날도 있으면 저런 날도 있죠. 가는 길에 잠깐 편의점 들러서 숙취 음료라도 사서 마셔요.”

“네.”

깔끔하게 씻고 나오긴 했지만, 아직 속의 울렁거림까지 진정시키진 못한 상태였다. 그 어느 때보다 숙취 음료가 필요한 상황이기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출발하며 창밖에서 시원한 바람이 안으로 들어온다.

아침 바람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내 정신이 아직 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까.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속도 그렇고 머리도 조금 맑아지는 것 같다. 그래도 숙취로 인해 근처 편의점에 당도할 때까지 조수석에 축 늘어져 있었다. 차가 정차하자마자 곧바로 내려 편의점으로 향했다.

숙취 음료와 함께 온장고에서 유자차를 꺼내 계산한 뒤 곧바로 숙취 음료부터 마셨다.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차로 돌아오자마자 유자차를 부팀장에게 내밀었다.

“부팀장님, 이거 드세요.”

“잘 마실게요.”

유자차를 받은 부팀장이 씩 웃는다. 그에 따라 미소 짓다가 큰 도로에 진입하며 창문을 닫는 부팀장에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

숙취 음료를 마신다고 바로 속이 편해지는 건 아니었지만, 이 울렁거림을 없애기 위해 뭔가를 했기 때문인지 한결 편안해진 느낌이다. 교통 체증으로 인해 멈췄다 서기를 반복하는 차 안에서 애써 아무렇지 않다 마인드컨트롤하며 속을 다독인 나는 어느새 사무실 건물 야외 주차장에 진입한 차에 늘어진 몸에 힘을 실었다.

“출발하기 전보다는 표정이 한결 나아 보이네요.”

혹 멀미를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속은 내 편이었다. 위 쪽을 만지작거린 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좀 괜찮아진 거 같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전엔 좀 쉬는 게 좋겠어요. 딱히 할 일도 없고 하니 다들 이해할 겁니다.”

“네.”

부팀장의 말마따나 다들 이해해 주겠지만, 그렇다고 계속 쉴 생각은 없었다. 컨디션이 어느 정도 올라온다면 바로 일하자 다짐하며 함께 사무실로 도착하니 다른 날과는 달리 박 주무관이 먼저 출근해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박 주무관님.”

“어, 좋은…. 얼굴이 왜 그래?”

“과음했다고 하더군요.”

“과으음?”

과음이란 말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에 괜히 볼을 긁적이며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는 이에게 과음 이유를 전했다.

“…어제 통화한 친구가 포상 휴가를 나와서요. 한잔했습니다.”

“와, 친구랑만 마셔? 우리랑도 한잔해야지! 회식 잡아야겠는데요?”

술 냄새가 난다는 등의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회식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다. 나는 슬쩍 입가를 끌어 올렸다.

“네, 참석해야죠.”

생각해 보면 내가 이곳에 온 이후 단 한 번도 회식 자리가 없어 원래 회식이 없나 했다. 서로 모르는 상황서 술자리를 가졌다면 불편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래, 어쩌면 지금보다 더 가까워질지도 몰랐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어? 병아리 얼굴 왜 이리 핼쑥해?”

“그게….”

이번에도 역시나 과음 소식을 전했다가 조금 전 박 주무관이 한 말처럼 같이 한잔해야 하는 거 아니냔 말에 회식 자리에 꼭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뭐? 우리랑은?”

“그러지 않아도 방금 병아리랑 회식 약속 잡았습니다!”

“오오, 그래?”

“…하하.”

그간 회식 이야기가 잠깐 거론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회식을 향한 열망이 큰 줄 미처 몰랐다. 마지막으로 출근한 팀장까지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절로 나오는 헛웃음만 짓다가 팀장이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던졌다.

“회식해야지?”

거절할 일도 아니라 바로 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팀장이 소리를 높였다.

“병아리도 회식 참석하겠다고 하니까 이번 주 금요일에 시간들 내 봐!”

“와, 이제 우리 회식 하는 겁니까?”

“아아. 본인이 허락했으니 해야지!”

“…….”

마치 내 동의가 없다면 저녁 회식 자리가 없었을 거란 말처럼 들린다. 눈을 끔벅이며 팀장을 바라봤다가 조회를 시작하겠다는 말에 몸을 바로 했다.

“뭐 언제나 같은 말이지만, 항상 맡은 바 일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던전으로 외근을 나가면 몸조심하는 거 잊지 마.”

“예!”

“특히 한 주무관은 요즘 계속 외근 나갔지? 지칠수록 방심하면 큰 사고로 이어지니 항상 몸 사리고! 뭣하면 협회 놈들한테 넘겨.”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조회는 여기서 마치지. 던전 소식 오기 전까지 푹 쉬어.”

“예.”

팀원들 얼굴을 하나하나 살핀 팀장이 마지막으로 나를 보며 쉬라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반가운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곤 그대로 축 몸을 늘어뜨렸다. 아니, 늘어뜨리려 했다.

“형!”

벌컥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김세현이 쪼르르 다가와 원탁 의자를 끌고 옆자리로 와 앉는다. 그런 김세현을 물끄러미 보다가 익숙한 그의 옷차림에 물었다.

“…혹시 어제 집에 못 들어가셨어요?”

평소 매일같이 다른 슈트를 입고 나타나던 김세현인지라 어제와 같은 슈트를 입고 방문한 모습은 무척이나 눈에 띄었다. 어젯밤 그와 생각지도 못한 장소서 마주쳤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김세현이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다른 때라면 벌써 시답지 않은 말이라고 해도 답했을 김세현이건만, 왜 이리 조용한지 모르겠다. 나는 덩달아 침묵하다가 그의 부름에 답했다.

“형.”

“네.”

“꿀물이라도 타 줘요?”

“…냄새 많이 나요?”

김세현까지 이런 말을 꺼낼 정도라면 정말 술 냄새가 지독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혹감에 킁킁 몸 이곳저곳 냄새를 맡아도 따로 술 냄새는 나지 않았다. 아, 혹 입 안에서 냄새가 나는 건가. 나는 얼른 입을 꾹 다물었다.

“냄새는 뭐 조금 나는데, 얼굴색이 영 안 좋아서요.”

“…….”

“아니, 그렇게 입 꾹 다물 필요까진 없고! 정말 조금밖에 안 난다니까요? 티 안 나요! 내가 세계 최강 헌터라 맡을 수 있는 정도라고요!”

세계 최고 헌터만 맡을 수 있단 말을 믿기엔 이미 팀원들 전부가 술 냄새를 맡은 상황이었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김세현을 보았다. 정말 냄새 많이 안 난다며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김세현이 재차 꿀물을 권하자 고개를 저었다.

“숙취 해소 음료 마셔서 괜찮아요.”

그래, 시간만 있으면 이제 곧 컨디션이 올라올 것이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슬쩍 웃어 보였다.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던 김세현이 무언가 안도하는 듯한 얼굴로 한숨을 뱉었다. 뭐지? 눈을 끔벅이며 그를 보자 변명이 뒤따랐다.

“뭐, 그냥 형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라고요.”

“네.”

“진짜라니까요?”

“…네, 고마워요.”

갑자기 이러는 걸 보니 어제저녁에 본 김세현이 생각난다. 뭔가 싶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춘 그 뒤로도 몇 번이나 괜찮아 보인다 말하는 이에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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