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06. 이것은 반칙입니다
어째서 저 사람이 여기 있지?
혹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면 오가다 만날 수도 있지만, 김세현이 사는 구역과 내가 사는 구역은 거리가 제법 있었다. 그것도 세 구역이나 말이다.
급작스러운 김세현의 등장에 놀라 멍하니 그를 보다가 들려온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누구?”
“아.”
놀란 나머지 기석과 함께 있다는 걸 깜박했다. 호기심 어린 눈빛이 김세현과 나 사이를 오가기 바쁘다. 나는 김세현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기석에게 말했다.
“먼저 들어가 있어.”
“…뭔 일 있으면 불러라?”
일이 있어 봤자 무슨 일이 있겠냐 만은 이 이상 녀석의 호기심을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한 번 호기심이 싹트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기석이기에 괜히 건드렸다간 김세현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알았다 답하며 들어가라 손짓하자 미적이던 녀석이 집 안으로 들어간다. 문이 닫히는 것까지 확인한 후 다시 몸을 틀었다.
“세현 씨?”
“…….”
혹 다른 사람이 있어 말을 안 하나 싶었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말없이 나를 내려다볼 뿐, 처음 본 자세 그대로 표정 변화도 없는 이를 보다가 잠시 잊고 있었던 소리를 상기하곤 주변을 살폈다.
분명 뭔가 굴러가는 소리가 났는데….
“아!”
저건가 보다. 가로등 아래 둥그런 무언가가 떨어진 것을 확인하곤 정체를 알아보려 발을 뗐다.
“어디 가려고.”
몸을 틀기 무섭게 팔을 잡아챈 김세현이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게 깔린 목소리로 으르렁거린다. 그 소리에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초점이라곤 보이지 않던 눈동자에 빛이 돌아와 있다. 하지만 이보다 사나울 수가 없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가로등 아래를 가리키며 떠듬떠듬 말했다.
“저거, 세현 씨 거 아니에요?”
“…….”
힐끗 김세현이 그쪽을 보더니 다시 나를 바라본다. 조금 전의 살벌한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이가 침을 삼키더니 입을 연다. 나는 귀 기울였다.
“내 거 아니에요.”
“아.”
“정말 아니에요.”
“…….”
“진짜 아니에요! 정말이라니까요?”
“…그래요.”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자꾸 말을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마치 자기 것임에도 아니라 우기는 사람처럼 말이다.
“아, 정말 내 거 아니라고요!”
“알았어요.”
“정말이라니까요?”
재차 본인의 것이 아님을 주장하기 바쁘다. 툴툴거리며 계속해서 자기 것이 아님을 내뱉는 이에게 물었다.
“이 동네는 어쩐 일이세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김세현이 아니라고 하던 입을 닫는다. 다시 꽁꽁 얼어붙은 그의 모습에 기다린 나는 한참 만에야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볼일이 있어서요.”
“그러시구나.”
그래, 일이 아니라면 이렇게 조용한 동네에 김세현이 올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고개를 주억거린 뒤 이어진 김세현의 물음에 엄지로 뒤를 가리켰다.
“여기가 제가 사는 동네거든요. 저 집이 제가 사는 곳이고요. 아, 아까 본 녀석은 제 친구예요.”
“친, 구요.”
“네. 오늘 낮에 통화한 친구예요.”
“친구.”
“군대에서 포상 휴가를 나왔다고 놀러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
“…….”
오늘 낮에 전화가 왔던 친구임을 밝히자 친구란 말을 되새김질하다 이내 침묵한다. 김세현을 따라 나 역시 입을 다물었다.
대화가 잘 이어지는 것 같았는데, 순간 정적이 감도니 왜 이리 멋쩍은지 모르겠다. 반가운 마음에 너무 TMI를 남발했나 싶다. 더는 대화가 이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슬슬 인사를 하고 들어가 보려 입을 열었다. 하지만 김세현의 말이 더 빨랐다.
“…하늘 형은 친구끼리 포옹도 하고 그래요?”
“네?”
“포옹이요. 친구끼리 포옹해요?”
“그, 렇죠?”
굳이 친구가 아니더라도 오래간만에 만나는 가까운 지인이라면 악수를 하거나 혹은 포옹을 하는 정도의 인사를 나누는 건 당연했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하는 행동이었고 말이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답하긴 했지만, 왜 그걸 묻는지 모르겠다. 친구라는 말을 되새기는 김세현을 지켜보다가 손목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촉에 멈칫했다.
“…….”
그러고 보니 아직 김세현이 내 손목을 잡고 있었다. 손목 안쪽을 가볍게 터치하는 손길 속에서 간질거리는 감각이 점차 커졌다. 한참 그 감각에 집중하는데, 심각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른다. 나는 시선을 들었다.
“하늘 형.”
“네.”
“친구라고 해서 너무 믿지 마요.”
“…….”
“형 보니까 뭐 특별한 건 없는 거 같지만, 언제나 의심하고 경계해요.”
“…….”
“남자는 다 늑대인 거 알죠? 아니, 남자고 여자고 나 빼고 아무도 믿지 말고.”
여기서 왜 늑대 소리를 하는 걸까.
게다가 본인만 빼고 믿지 말라는 말을 덧붙이는 이유는 또 뭐고 말이다.
간혹 김세현이 하는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바로 지금이 그런 상황이었다. 재차 모든 남자들은 늑대라며 조심하라 말하는 이에 우선 알았다며 답하다가 재차 손목을 만지는 손길에 다급히 손을 빼냈다.
“칫.”
혀를 찬 그가 조금 전까지 손을 붙잡고 있던 손을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한다.
저 행동을 보고 있자니 내 손을 놓쳤음을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뭐가 되었건 간에 조금 전 그 감촉은 영 이상했다. 아직도 손목 안쪽에서 홧홧한 감각이 감도는 것 같았다. 애써 그 감각을 잊으려 노력하며 슬그머니 양손을 등 뒤로 감췄다.
“…….”
그래, 이거라면 김세현도 섣불리 다시 손을 뻗지 못할 거다. 나도 괜히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양손을 완전히 감추는 데 성공하곤 의기양양하게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하?”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인 김세현이 어이없다는 듯 소리를 뱉는다. 계속해서 그와 대치하던 와중에 그가 픽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숙인다. 이어 천천히 고개를 드는데, 김세현과 눈이 마주친 나는 시선이 흔들리는 걸 인지했다.
“하늘 형.”
“…네.”
저런 얼굴로, 저런 눈빛으로 본다고 해도 이 이상 손은 내어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입맛을 다시며 강한 눈빛을 보내와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이어진 말을 듣곤 슬그머니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그러는 거죠?”
“…….”
당연히 손은 일부러 숨기는 것이었다. 혹여 들킬세라 살그머니 움직였건만, 이미 들킨 마당에 더 숨길 필요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아예 대놓고 등 뒤에서 손깍지를 끼니 이쪽을 보던 김세현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자기 머리를 헤집는다.
“아오!”
“…세현 씨?”
바닥에 발을 팡팡 구르기도 하고, 이리저리 오가며 머리를 헤집기를 반복하며 야단법석을 떤다. 그뿐이랴, 움직일 때마다 거친 소리를 내뱉는 통에 조용하던 골목이 제법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황급히 그를 말렸다.
“여기선 조용히 하셔야 해요!”
사무실이야 헌터부 사람들, 특히 팀장의 목소리가 큰 터라 주변에서 개의치 않아 했지만, 이 동네는 나이 많으신 분들이 많이 사는지라 잠귀가 밝았다. 해가 떨어지면 취침하고 해가 뜨면 눈을 뜨는 이들이 많아, 이렇게 소동을 피우면 문제가 됐다. 계속해서 그를 말린 나는 한참 만에야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제 좀 진정되셨어요?”
“…후우.”
말없이 나를 보던 김세현이 깊은 한숨을 뱉더니 작게 끄덕인다.
“하늘 형.”
“네.”
“제가 아까 뭐라고 했어요?”
“…….”
“뭐라고 했느냐고요.”
갑자기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건 반칙이다. 이리저리 움직이다 말고 다가와서는 얼굴을 쭉 내민 채 으르렁거리는 행동 또한 반칙이었고 말이다.
잘생긴 얼굴은 거리가 가까워도 전혀 무너지지 않는 모양이다. 빼어난 용모에 잠시 말을 잃었지만, 지금은 답을 해주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그가 했던 말을 되짚어보았다.
“…….”
처음엔 가로등 아래 떨어진 물건이 자기 것이 아니라고 했고, 또 시답지 않은 소리를 늘어놓았고.
기억을 반추해 봤지만, 도통 무엇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말들을 가늠해 본 뒤 시답지 않은 말 중 하나를 골라 입에 담았다.
“세현 씨 말고 아무도 믿지 말라고요?”
평소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듯한 이였다. 아니, 따지고 본다면 정말 잘난 사람이기에 그렇게 사는 건 당연했다.
“잘 기억하네.”
혹 다른 말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다. 손을 든 그가 볼을 툭 건드리며 다정히 말을 건네자 얼굴에 열이 올랐다.
“항상 기억해요. 나 말고 아무도 믿지 말라는 거.”
“…네.”
“남자 조심하고요! 누가 막 형한테 뭔가 하려고 하면 안 돼요! 하지 마세요! 하고!”
“…….”
저 말, 이상하게 익숙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속사포처럼 쏟아진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이어진 김세현의 변화에 절로 눈이 커졌다.
마치 단것을 먹은 듯 달콤하기까지 한 김세현의 미소다. 잘게 휜 눈꼬리도 그렇고, 예쁘게 말아 올린 입꼬리도 그렇고. 보면 볼수록 심장이 가쁘게 뛰기 바쁘다. 나는 깍지 낀 손에 힘을 주었다.
“…….”
평소 얼굴을 너무 막 쓰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이렇게 제대로 쓰니 미인이 따로 없다. 잘생긴 얼굴의 끝판왕을 고르라고 한다면 김세현을 고를 거라는, 헛된 생각을 하며 그를 보다가 어서 들어가라 손짓하는 이에 급히 인사를 건넨 뒤 빠른 걸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아까 그 표정은 정말 반칙이었다.
던전에 들어가 저리 웃으면 몬스터도 반할지 모른다 생각하며 연거푸 한숨을 내뱉다가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야, 사람 너무 오래…. 너 얼굴 왜 그 모양이냐?”
“얼굴?”
식사 준비 중이었는지 부엌에서 나오던 기석이 국자로 얼굴을 가리킨다. 그에 눈을 끔벅이다 이어진 말에 멈칫했다.
“토마톤 줄 알았다? 뻘게서.”
“…….”
열이 오르는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말 빨개진 모양이다. 욕실로 가 거울에 비친 얼굴을 확인하니, 이보다 더 붉어질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새빨개진 얼굴이 보였다. 결국 한참 동안 세수하며 열을 식힐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