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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0)화 (20/246)

19화

06. 이것은 반칙입니다

호주에 생성되었던 S급 던전이 클리어된 지도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그래, 일주일이나 흘렀으면 이젠 좀 김세현을 향한 관심이 식어야 마땅했다.

차차차차차찰칵!

“…….”

나날이 뜨거워지는 세상의 관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세현은 평소처럼 곁에서 쉴 새 없이 촬영 버튼을 누르고, 매일같이 탕비실을 비우는 데 혈안이었다.

“하늘 형, 내일은 어떤 옷 입고 출근해요?”

“글쎄요.”

미리 입을 옷을 결정하는 편이 아닌지라 김세현의 질문에 답을 해 주긴 무리였다. 아무래도 집에 가 봐야 알겠다는 말을 덧붙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번에 입고 왔던 갈색 카디건 있잖아요. 그거 내일 입고 와요.”

“내일요?”

빨아 둔 터라 입고 오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굳이 그 옷을 콕 집어 말하는 이율 모르겠다.

“하여튼 내일 그거 입고 와요, 알았죠?”

다른 날 같았다면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을 김세현이건만, 그저 입고 오라고만 반복할 뿐이다.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핸드폰 진동을 인지한 나는 시선을 돌렸다.

“누구예요?”

“…글쎄요.”

이 시간에 연락할 사람은 없었다. 아마 대출이나 보험 권유 전화가 아닐까 싶다. 가볍게 생각하며 화면을 본 나는 생각지도 못한 번호와 이름에 자리서 벌떡 일어났다.

“음?”

“무슨 일이야?”

“저 잠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형, 나도 가요.”

전화를 받으러 가는데 어째서 같이 가겠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계속해서 존재를 어필하는 핸드폰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오래간만에 온 전화라서요.”

통화 내용을 예상해 보건대 곁에서 누가 듣는다고 해서 문제 될 내용은 아니었다. 어차피 안부 인사 정도겠지.

짧은 통화일 게 분명했지만, 사적인 전화를 다른 사람 앞에서 받는 건 민망했다.

“…….”

거절할 줄은 몰랐는지 김세현의 눈동자가 동그래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얼굴 가득 불만이 들어찬 모습에 당황했다가 팀장의 말에 몸을 틀었다.

“다녀와.”

“네!”

김세현의 저 표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전화가 우선이었다. 허락이 떨어지자 바로 사무실을 나온 나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며 전화를 받았다.

- 통화하기 힘들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가 반갑다. 나는 픽 웃음을 흘리며 반대 손으로 전화를 옮긴 뒤 말을 이었다.

“회사잖아. 그나저나 이 번호로 무슨 일이야?”

군대에서는 핸드폰 사용을 하지 않겠다 다짐해 놓곤, 이렇게 연락하는 건 반칙이었다. 뭐, 반갑긴 했지만 말이다.

- 나 포상 휴가 나왔다.

당연히 핸드폰을 반입했다 생각했지, 휴가를 나왔을 줄은 몰랐다. 나는 황급히 물었다.

“언제?”

- 엊그제 나왔지.

“난 너 핸드폰 반입한 줄 알았지.”

- 반입은 상병 돼서 하려고.

“하하.”

역시 기석이답다.

옥상 정원에 도착하니 오늘따라 사람이 없다. 나는 입구와 가까운 의자로 가 자리를 잡았다.

- 너 헌터부 들어갔다면서.

“그렇지 뭐.”

- …통화하는 거 보니 목숨은 붙어 있나 보네.

“다들 잘 해 주셔.”

처음 헌터부로 배치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이제 곧 죽은 목숨이겠거니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외부에 알려진 헌터부의 이미지는 정말 지옥과도 같았으니까.

공무 중 목숨을 잃을 확률이 그 무엇보다 높다 알려졌는데,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물론, 지금도 위험한 부서임은 맞았다. 다만, 헌터가 아닌지라 사무 보조만 하고 있어 위험과는 거리가 멀다고 봐야 했다.

헌터부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이곳 생활이 좋음을 조잘거리다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웃음소리에 따라 웃었다.

- 좋은 사람 만나서 다행이네.

“그렇지.”

- 헌터부 사람들은 전부 헌터일 텐데, 네가 거기 속해도 돼?

“사무직 무시하지 마라.”

나도 처음 헌터부로 발령받기 전까진 일반인이 헌터부 소속이 될 수 있는지 몰랐다. 내 말에 기석이 웃음을 터뜨린다.

- 그나저나 형님이 휴가 나왔다는데 뭐 없어?

“집으로 와. 한잔하자.”

술집에서 마시는 것도 좋았지만, 그보단 집에서 편히 술잔을 기울이는 편이 좋았다. 녀석 또한 그걸 좋아하고 말이다.

- 좋지. 비밀번호는 그대로지?

“먼저 가 있으려고?”

- 집에 오니까 첫날은 좋아해 주셨는데, 집에만 있으니 좀 나가라고 눈치 주더라. 서러워서 살겠나.

“아하.”

- 상황 보면서 나 네 집에서 좀 더 머물 수도 있어.

“편히 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기석만큼은 집에서 와 지내도 문제 될 것 없었다. 고민할 것 없이 알았다 답했다. 이어 소주는 자기가 살 테니 오는 길에 안주랑 고기를 사 오라는 말에 보지 못할 걸 알면서도 고개를 주억였다.

“알았어. 그럼 이따 봐.”

- 삼겹이나 오겹으로 사 와!

“그래.”

매번 삼겹 아니면 오겹만 먹으면 지겨울 법도 한데, 항상 이 부위만 먹는 것도 신기하다. 짧지만 반가운 통화를 마친 뒤 나는 바로 사무실로 복귀했다.

“반가운 전화였나 보네? 표정이 폈어.”

“아, 네. 군대 간 친구가 전화가 와서요.”

“그런 거라면 받아 줘야지.”

“하하.”

다른 건 몰라도 군대에서 오는 전화는 꼭 받아 줘야 한다 입을 모으는 팀원들이다. 그에 웃으며 옆자리를 봤다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김세현과 눈이 마주쳤다.

“세현 씨?”

“…중요한 사람이에요?”

“뭐, 오랜 친구니까요.”

기석과는 정말 오래된 사이였다. 간혹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는 있었지만, 기석만큼 마음이 통하는 상대는 없었다.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형.”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김세현이 다소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나는 바로 답했다.

“네.”

“나 커피 한 잔만 타 줘요.”

“그럴게요.”

커피 타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할 게 없는 상황이었으니, 뭔가 해 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바로 커피를 타 김세현에게 건네곤 팀원들에게도 물었다.

“커피 드실 분?”

“여기.”

“나!”

“나도 부탁해.”

“나도.”

“전 율무차로 부탁합니다.”

모두가 차를 마시겠다 손을 든다. 그에 바로 커피와 율무차를 타서 건넨 뒤 마지막으로 커피 석 잔을 가지고 자리로 복귀했다.

“여기 이것도 드세요.”

“…나 주는 거예요?”

말없이 커피잔을 보던 김세현이 손가락으로 종이컵 두 개를 가리키며 묻는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이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말을 덧붙였다.

“네. 세현 씨 커피 빨리 마시잖아요.”

“…잘 마실게요, 하늘 형.”

커피를 부탁할 때만 해도 영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슬그머니 올라간 입매 하며 살짝 휘어진 눈매 하며 누가 봐도 기분 좋아 보인다. 마음이 풀린 것 같아 안도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시작된 찰칵거리는 소리에 민망함이 차올랐다.

“커피 타 준 사람이 귀여워서인가, 커피도 귀엽네.”

“…….”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저 당당함이 부럽다. 물체를 의인화시켜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부끄럽다.

귀 끝까지 뜨거워진 기분이었지만, 굳이 그것을 의식할 생각은 없었다. 애써 그것을 모른 체한 채 연신 조잘거리는 김세현의 말에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퇴근까지 업무에 집중했다.

“부팀장님.”

“네, 하늘 씨.”

“저 오늘은 여기서 내릴게요.”

“그래요.”

갓길에 차를 세운 부팀장에게 인사를 건네고 차에서 내렸다.

“…….”

집 근처이긴 하지만, 이렇게 걸어 돌아가는 건 오래간만인 듯했다. 시야에서 부팀장의 차가 사라지자 핸드폰을 꺼냈다.

“…어디 보자.”

기석이 녀석과 먹을 고기를 사러 가는 겸 떨어진 용품도 한꺼번에 사야겠다. 작성을 마친 메모장에 고기와 더불어 곁들여 먹을 음식을 적은 뒤 곧바로 마트로 향했다.

필요한 생필품과 먹거리를 양손 가득 사니 이보다 지갑이 가벼워질 수가 없다. 하지만 그만큼 마음은 무거웠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손에서 느껴지는 짐의 무게가 상당하다. 하지만 그리 무겁다 느껴지진 않았다.

“음, 음.”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가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는 게 반갑기만 하다. 점차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빨라졌다. 어느새 집이 보이는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자연스럽게 집 쪽을 보니 집 담벼락에 누군가 기대어 서 있다. 나는 슬그머니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땅거미 진 골목길인지라 인영이 누구인지 바로 분간할 수 없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듯했다. 손에 쥔 봉투를 바로 쥐며 다시 걸음을 옮기자 부스럭거리는 봉투 소리를 들은 듯 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던 이가 몸을 바로 한다.

“연하늘!”

역시 저 녀석일 줄 알았다. 낮에 통화하며 들은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가로등 불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녀석의 모습에 멈칫하다 입을 열었다.

“너 진짜 짱구구나.”

정말 이런 짱구가 있나 싶다. 어째서 녀석이 훈련소 입소 때 오지 말라고 했는지 알 듯했다. 피식피식 숨을 뱉자 손에 든 짐을 가져간 녀석이 볼멘소리를 뱉는다. 나는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

“아 진짜! 내가 그 말 하지 말라고 했지!”

“짱구를 짱구라고 하지, 뭐라고 해?”

“…됐다, 됐어. 내가 뭘 바라냐.”

고개를 저은 기석이 푹 한숨을 내뱉는다. 나는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기나 먹자. 그럼 머리가 동그래질지도 몰라.”

“와, 연하늘. 주둥이 막 놀리는 것 좀 봐라.”

“하하.”

이런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은 이 녀석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었다. 끅끅대며 웃다가 함께 웃던 녀석이 헛기침하며 눈을 마주해 오자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야지. 그건 그렇고….”

“뭔데?”

뭘 하려고 저렇게 똑바로 눈을 뜨는지 모르겠다. 이번엔 무슨 말을 할까 싶어 잠자코 지켜보다가 두 손 가득 짐을 든 녀석이 양팔을 대 자로 뻗자 침묵했다.

“뭐 해?”

지금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술렁이기도 하고, 또 아릿하기도 하고. 하여간 정말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바로 저 행동 때문에 말이다.

“…….”

항상 귀가할 때마다 부모님이 해 주시던 행동을 녀석이 따라 할 줄은 몰랐다. 반가움과 기쁨 속에 알 수 없는 울컥함에 괜히 침을 넘기며 감정을 삭이곤 쑥스러움 가득한 목소리로 툴툴대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야, 이거 좀 무겁거든? 빨리하고 가자.”

“…응.”

이런 식으로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건 반칙이었다.

그대로 기석을 마주 안자 등 뒤로 손을 감싸는 듯하던 녀석이 도로 손을 늘어뜨리며 어깨에 턱을 괴어 왔다. 그 꼴에 픽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웃으려 했다.

데구르르-

“음?”

지척에서 무언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녀석 허리에 손을 올린 자세 그대로 거리를 벌려 주변을 살폈다가 생각지도 못한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세현 씨?”

눈이 마주친 건 다름 아닌 김세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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