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9)화 (19/246)

18화

05. 라면이 먹고 싶어요

“아침 일찍 방문해 죄송합니다.”

“언제 그런 거 신경 썼다고. 체면치레는 됐습니다.”

아침 일찍 다녀간 협회 사람은 일과가 시작됨과 동시에 헌터부를 재차 찾았다. 그것도 조회가 시작되기도 전, 정각 아홉 시에 말이다.

매일같이 헌터부를 찾는 김세현조차 조회가 끝나면 사무실을 찾았건만, 정말 예의라곤 눈곱만치도 없다. 팀원 모두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볼일만 보려는 듯한 모습이 이보다 이기적일 수 없다.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째서 팀원들이 협회 측을 그렇게 싫어했는지 알 듯했다. 협회에 남은 호감이 오늘로 완전히 바닥을 친다.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중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휙 고개를 돌렸다.

“…….”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온 겁니까? 아침마다 조회가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텐데. 아침 댓바람부터 이렇게 찾아온 만큼 중요한 이야기라 생각하고 한번 말이나 들어 봅시다.”

“예상은 하셨겠지만, 협조금 관련해 의견을 전달하고자 왔습니다.”

설마 했는데, 정말 협조금을 조정하고자 아침 댓바람부터 헌터부를 찾을 줄은 몰랐다. 비뚜름한 미소를 입가에 건 팀장이 의자 등받이에 등을 완전히 파묻는다. 그와 함께 돌변한 팀장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살벌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하, 이번에도 또 올려 보시겠다?”

“능력만큼 보수를 받는 건 당연합니다. 전 세계적인 추세도 헌터를 우대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고요.”

“능력 되는 헌터 위주로 보수가 높아지는 추세지, 헌터 전체 보수를 올리는 건 아니라는 것쯤은 협회도 알고 있지 않나?”

“등급이 낮더라도 던전을 클리어하려 목숨을 거는 건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알차게 나라 세금으로 먹고사시겠다? 멋대로 던전 클리어 끝 무렵에 끼어들어 돈 챙기고?”

“와, 공무원 시험을 안 치렀을 뿐이지 공무원이 따로 없네요.”

“나도 능력 있었으면 좋겠다! 어렵게 시험 봐서 공무원 안 해도 척척 세금이 들어오는데!”

팀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이 말을 얹는다.

어찌 보면 무례할 수도 있었지만, 그간 협회 소속 헌터가 자행한 행동을 생각해 보면 이 분노는 온당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날 선 반응에도 좀처럼 반응이 없다. 묵묵히 팀장과 시선을 교환하던 이가 입을 열자, 그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아시다시피 지난번 김세현 헌터의 협조가 아니었다면 서울시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어제 호주에서 생성된 S급 던전을 무리 없이 클리어하는 모습도 보셨을 겁니다. 김세현 헌터가 얼마나 대단한지 말이죠. 다들 이미 알고 계신 사항이겠지만, 웬만한 비용으로 김세현 헌터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계시겠지요?”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능력 있는 헌터를 우대한다고 하셨는데 그만한 대우는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공법으로는 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인지한 듯, 이번에는 김세현을 입에 담는다. S급 헌터를 앞세워 협조금을 올린다는 말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이보다 더 어처구니가 없을 수 있나 싶다. 실망할 건덕지가 없을 줄 알았는데, 아직 바닥이 보이진 않은 듯했다. 또다시 실망하다 팀장이 박장대소하자 눈을 끔벅였다.

“푸핫! 김세현이가 대단하긴 하지!”

“물론이죠! 우리 김세현이가 달라지긴 했죠!”

“돈밖에 모르던 우리 김세현이. 얼마 전 생성된 던전 클리어 협조금 받아 갈 생각도 없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김세현이가 무상으로 움직일 줄 그 누가 짐작했겠습니까! 안 그래요?”

…김세현이 무상으로 움직였다고?

마치 김세현이 변종 키메라 던전 비용을 청구하지 않을 것처럼 말한다.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다. 나만큼이나 당황한 듯 목소리가 떨리는 협회 측 사람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김세현 헌터가 협조금을 수령하지 않을 리가요.”

“그건 개인이 알아서 할 문제고! 부팀장, 협조금은 헌터가 받지 않겠다고 하면 내치지 않는 거 맞지?”

“맞습니다.”

“그렇다는군.”

“…그럴 리가요.”

“자세한 건 김세현이 오면 물어보시든가! 거참, 같은 협회라면서 협회 소속 헌터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다니.”

“참으로 대단한 협회군요. 속한 헌터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소속 헌터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말을 어떻게 뱉을 수 있는지 그거참 신기하군요.”

팀장과 부팀장의 티키타카에 남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그뿐이랴, 주먹을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핏기가 사라진 상태였다.

“말을 전달했으니 인상안은 윗선에 전하십시오.”

부드러운 표정 따윈 이제 짓지 않을 모양인 듯했다.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얼굴로 일갈한 그가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출입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뒤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아, 속 시원하다!”

“놀란 모습 보셨습니까?”

“당연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돈벌레가 무보수로 던전을 클리어했다는데, 안 놀랄 사람이 있겠어?”

“…사실 저도 좀 놀라긴 했습니다.”

“잠시만요.”

역시 김세현이 협조금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 이들이다. 다급히 손을 들자 시선이 모인다. 나는 입을 열었다.

“협조금 나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음?”

“부탁으로 간 거잖아?”

“그건, 그렇죠.”

내 부탁을 받고 김세현이 던전에 간 건 맞았다. 하지만 부탁과 협조금이 무슨 관계인진 모르겠다.

“헌터들 사이에서 부탁한다는 말은 무보수로 도와달라는 뜻이야.”

“…네?”

“막내는 몰랐겠지만, 김세현은 아는 은어였어. 그러니까 절대 책정하지 마, 알았어?”

“…….”

부탁한다는 말이 무보수로 도와달라는 말일 줄은 몰랐다.

그뿐이랴, 난이도 B급이면 억대의 돈이 책정됨에도 불구하고 선뜻 부탁을 들어주다니. 어쩐지 부탁할 때 거듭 확인한다 했다. 나는 몇 번의 말만으로 알았다며 던전으로 향하던 모습을 떠올리곤 입 안이 바싹 말라왔다.

“자기가 좋아서 한 거니까. 뭐, 고마우면 커피 정도만 타 줘. 다른 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커피 한 잔만 타 줘도 김세현은 좋아할 겁니다.”

커피만 타 주기엔 액수가 너무 컸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을 처분한다고 해도 그 액수를 전부 채우지도 못할 거다. 괜스레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 샘솟았지만, 어제 김세현이 했던 말을 상기하며 굳게 마음을 먹었다.

“뭐, 따로 해 주지 않아도 좋아하는 거 같던데 그냥 한동안 사무실 좀 편히 사용하게 두죠? 세금 많이 굳었잖습니까.”

“그래서 그냥 지켜보는 거잖아.”

“아하.”

그래, 어제 김세현이 인터뷰 전 입에 담은 라면이 있었다. 중의적인 표현을 쓴지라 조금 헷갈렸지만, 먹는 걸 워낙 좋아하는 김세현이었기에 그가 말한 건 먹는 라면이 맞을 것이었다.

이번만큼은 협회에 청구하지 않고 사비로 라면을 사 직접 끓여 주자 다짐하며 한 번 더 손을 들었다.

“저 잠시 외출해도 될까요?”

“어디 가게?”

“잠깐 근처 마트에 다녀오려고요.”

“마트?”

“오, 마트 좋지! 올 때 콜라 하나 부탁해.”

“네!”

“…….”

다른 때 같았다면 지금쯤 답이 돌아왔으련만,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팀장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한참 나를 보던 이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인다. 허락이 떨어지자 바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후우.”

어떤 라면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몇 가지 라면을 박스로 사서 김세현에게 고르라고 하면 될 듯했다. 한 박스 정도의 양이라면 어느 정도 배는 채울 수 있겠지.

라면을 사면 이번 달 여윳돈은 사라진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번 도움을 생각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

그래도 이 정도 성의면 김세현도 이해해 줄지 몰랐다. 혹 부족하다면 비상금을 끌어다 좀 더 라면을 비치해 두면 될 거다. 나는 바삐 발을 놀렸다.

***

“형!”

조만간 도착할 줄 알았지만, 예상보다 이르다.

날 부르는 소리와 함께 출입문이 열리며 김세현이 모습을 보인다. 나는 슬쩍 간이 탕비실 쪽을 보며 흐뭇함이 차올랐다.

혹시나 싶어 일찍 마트에 다녀오길 잘했다. 그때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아직까지 마트에 가진 못했을지도 몰랐다.

“형, 잘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원탁 의자를 끌어다 옆자리에 펼친 이가 씩 웃으며 앉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세현 씨는 괜찮아요?”

“물론이죠. 세계 최강 헌터인데요.”

“하하.”

이번에도 역시나 세계 최강을 입에 담는 김세현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 지었다.

“그나저나 하늘 형.”

“네.”

“호주 인터뷰 봤어요?”

“…생방송으로 봤어요.”

“그래요?”

생방으로 봤다는 말을 들은 김세현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밝다. 반짝거리는 푸른 눈동자 속에 어린 기대감을 어렵지 않게 읽어 냈다. 나는 정수기 쪽에 쌓아 둔 박스를 보며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오늘 오전에 열심히 레시피 찾아봤어요.”

오늘은 일이 적은 편이라 잠시 짬을 낼 수 있었다. 간단하지만 맛있게 끓일 수 있는 라면 레시피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라면 끓여 주려고요?”

내 시선을 따라 정수기 쪽을 본 김세현이 묻는다.

“네.”

기왕 라면을 사는 김에 채소와 달걀까지 사 온 상태였다. 몇 번이고 영상을 보며 익혔기에 충분히 맛이 좋을 것이었다.

“…….”

뭔가 말을 할 법한데, 좀처럼 말이 없다. 라면 박스를 보며 입만 벙긋거릴 뿐이다. 의아함에 뚫어져라 그를 보다가 옆자리와 맞은 편, 그리고 뒤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주변을 살폈다.

“큭, 크흡!”

눈이 마주친 팀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책상에 고개를 파묻더니 어깨를 들썩인다. 라면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왜들 저리 웃음을 참는지 모르겠다. 나는 다시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라면 박스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마치 몬스터를 보는 눈빛이 저렇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레 물었다.

“…라면 다른 걸로 바꿔 올까요?”

어떤 라면을 좋아할지 몰라 빨간 국물 라면과 흰 국물 라면, 그리고 비빔면을 골랐는데, 영 잘못된 선택이었던 모양이다. 영수증을 챙겨 두기도 했고, 아직 박스도 뜯지 않았으니 가지고 가면 다른 라면으로 교환이 가능할 거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손목을 붙잡혔다.

“됐어요. 저 좋아하는 라면이에요.”

…좋아하는 라면이라고 말하는 것치고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다. 나는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결국 김세현이 한 번 더 좋아하는 라면이 맞다고 말하는 걸 듣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열심히 골랐는데, 다행이에요.”

“…네에.”

한 번에 그의 입맛을 맞출 줄은 몰랐다. 절로 춤추는 입가가 민망했지만, 기분만큼은 좋았다. 괜스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나는 볼을 툭툭 건드리는 손길에 옆을 바라보았다.

“하늘 형.”

“네.”

많은 감정이 담긴 시선이 내 얼굴을 훑는다. 나는 김세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귀여우니까 봐준다.”

“…….”

“그런데 다음은 없어요.”

볼을 터치하던 손가락이 슬며시 위치를 옮겨 턱 라인을 쓸어내린다. 미약한 터치였지만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마다 오소소 솜털이 이는 것 같다. 그뿐이랴, 뒤늦게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서 올라오는 간질거리면서도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이 몸 곳곳으로 번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급히 고개를 뒤로 물렸다.

“…….”

그저 가벼운 터치였을 뿐인데, 왜 이리 심장이 나대는지 모르겠다.

간지러운 감각을 물리려 김세현이 닿았던 턱 주변을 손등으로 꾹꾹 누르길 몇 차례, 재차 나를 부르는 소리에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형, 나 배고픈데 라면 끓여 줘요.”

“얼른 준비할게요.”

다른 날관 달리 배고프다 말하는 그의 눈빛이 묘하다. 번질거리는 듯하면서 이글거리는 것 같기도 한 눈동자가 재촉한다. 어지간히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맛있게 끓여 볼게요.”

“기대할게요.”

기대한다 말하며 다리를 꼬은 김세현이 깍지낀 손으로 무릎을 잡는다. 슬그머니 휘어진 눈매를 멍하니 보다가 미모를 감상할 때가 아니란 생각에 정신을 다잡았다.

그래, 지금은 라면에 집중할 시간이다.

저 얼굴은 지금 보지 않고 나중에 뜯어 봐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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