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8)화 (18/246)

17화

05. 라면이 먹고 싶어요

「김세현의 라면 메이트 ‘형’은 누구?」

「세계 최고 헌터 김세현에게 연인이?」

「S급 헌터 김세현이 좋아할 S급 라면 리스트 5」

「김세현, 알고 보니 빛나는 외모 가리려 마스크 착용?」

「김세현 헌터, 이미 몇 번 라면 먹은 것으로 밝혀져」

“…….”

S급 헌터, 그것도 김세현처럼 유명한 이라면 구설수를 염려해 말조심하는 건 필수였다. 특히나 김세현처럼 지금껏 얼굴을 감추고, 또 매체를 멀리한 헌터일수록 첫 인터뷰를 할 때 조심해야 하건만, 김세현은 전혀 그런 게 없는 듯했다.

“하아.”

기사에 내 이름이 나오거나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 실린 건 없었지만, 이렇게 긴장되고 또 걱정되는 건 전부 방송에서 김세현이 부른 형이 나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까지 읽은 뉴스 기사 댓글들을 떠올리니 이보다 더 초조할 수가 없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긴장이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러고 싶네요.”

김 주무관의 다독임에 어색하게 웃으며 속내를 내비쳤다. 김 주무관은 말을 고르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얼른 그가 할 말에 귀를 기울였다.

“뭣하면 잉여한테 다 처리해 달라고 해.”

“맞아. 병아리는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놈이 영 미더워도 처리할 건 확실하게 처리하는 놈이니 말이야.”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세현에게 그런 말을 할 만큼 친근한 건 아니었다. 아니,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했다.

계속해서 내 불안함을 위로해 주기 바쁜 팀원들을 보고 있자니 어떻게든 마음을 진정시켜야 할 것만 같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뱉기를 반복하던 팀장의 부름에 답했다.

“막내야.”

“네, 팀장님.”

“오늘은 그냥 집에 가서 푹 쉬어.”

“아닙니다!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몸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벌써 퇴근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나는 황급히 손사래 쳤다.

“…그럼 그러든가.”

요목조목 얼굴을 뜯어 살피던 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혹여 정말 가라고 할까 싶었는데, 다행이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나저나 라면 먹으러 오겠다는 거, 좀 긴장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일 사무실에 라면 한가득 비치해 둘 테니까 그걸로 커버 쳐. 절대 틈 보여 주지 말고.”

“알겠습니다!”

라면 먹으러 가겠다는 말뜻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김세현과 나 사이에 그런 뜻이 오갈 상황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일개 공무원이었고, 김세현은 김세현이었으니까.

“…….”

하지만 아주 잠깐, 김세현이 나와 자고 싶단 뜻을 내비쳤다고 생각했다고 왜 이리 민망해지는지 모르겠다. 괜히 부끄러워지는 이 마음은 또 뭐고 말이다.

이 모든 건 김세현이 날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따스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만 봐 준다는 식의 행동과 눈빛, 그리고 말투도 문제였고 말이다.

책상 아래로 숨긴 손가락을 연신 꼼지락거리며 착각은 하지 말자 다짐하며 찝찝한 감정을 애써 덜어 냈다.

다른 건 몰라도 김세현이 나와 자고 싶다는 뜻의 말을 하진 않았을 거였다. 그래, 생각해 보면 커피 마시러 오겠다고 말하던 것처럼 라면 또한 내가 끓여 주는 라면이 먹고 싶단 뜻이 분명했다.

“…….”

그냥 메시지로 라면 끓여 달라고 하면 될 텐데 굳이 매체 앞에서 그런 말을 한 건지 모르겠다. 형이라 콕 찝어 날 부르며 말이다.

“하아.”

설렘에서 벗어나니 이번엔 걱정이 찾아든다. 이러다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매체에 실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크게 심호흡하며 다시금 술렁이는 마음을 다잡고 곧바로 팀원들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시키실 일 있으면 저 주세요.”

“…오, 그럼 이거 좀 부탁해.”

“이것도 할래?”

“이거 가지고 가서 해 봐.”

“감사합니다.”

일감이 있나 물었는데, 여기저기서 일거리를 나누어 준다. 모두 다 단순 작업 위주의 일감임을 확인한 뒤 크게 숨을 골랐다.

그래, 지금 당장 이렇게 고민한다고 한들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완전히 머리를 비우는 건 어려웠지만, 적어도 일에 집중할 때만큼은 머릿속에서 라면 이야기는 잊혀질 것이었다. 하나하나 천천히 일감을 살피곤 순서대로 처리해 나갔다.

***

다음 날, 여느 날처럼 부팀장과 함께 출근한 나는 사무실 앞을 서성이는 낯선 이를 발견했다. 그리곤 급히 몸을 숨겼다.

“부팀장님.”

돌발행동에 놀란 듯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다 만 부팀장이 시선을 준다. 나는 조용히 사무실 쪽을 가리켰다.

“혹시 모르니 시간 두고 따라와요.”

사무실 쪽을 확인한 부팀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시간을 두고 따라오란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부팀장이 출발한다. 나는 근처 벽 뒤로 몸을 은폐했다.

“…….”

카메라를 든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혹 동태를 살피러 온 걸까. 아니면 다른 볼일이 있어 헌터부 사무실을 찾은 걸까. 부팀장의 발소리만 들려오자 괜히 상황이 궁금했다. 나는 슬그머니 얼굴만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아, 안녕하십니까. 헌터 협회에서 왔습니다만.”

아, 협회구나.

혹시나 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좀 더 얼굴을 내밀었다.

“이 시각에 협회서 무슨 일로 방문하셨죠?”

“그것이….”

부팀장의 물음에 답하던 이가 난데없이 이쪽으로 시선을 준다. 그에 빼도 박도 못하게 훔쳐보고 있음을 들키니 이보다 민망할 수가 없다. 나는 파르르 떨리는 입가를 끌어 올렸다.

“…….”

아직 부팀장이 신호를 주진 않았지만, 훔쳐보고 있음을 들킨 마당에 몸을 계속 숨기고 있을 순 없었다.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부팀장 곁으로 가자 호기심 어린 검은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건네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김세현을 보지 않았다면 정말 잘생겼다고 생각할 만큼 다정해 보이는 이다. 그와 눈을 마주하다 문을 열라는 부팀장의 말에 바로 출입문을 열었다.

“일과 시간이 아니니 일과 시작되면 다시 찾아오시죠.”

“…제가 마음이 급해 미처 시간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일과 시작하면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안으로 들어갈 줄 알았던 모양이다.

부팀장의 지적에 시간을 확인한 남자가 침음을 삼킨다.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이다. 나는 부팀장과 함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 좋아 보인다고 해도 협회 사람은 협회 사람이니 항상 조심하는 거 잊지 말아요.”

“네.”

“하늘 씨가 상상하는 거 그 이상으로 썩은 내가 풀풀 나는 놈들입니다.”

“…….”

이렇게까지 강한 말투로 시니컬하게 말하는 부팀장은 처음 본다. 나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뭐, 김세현은 썩은 내라고 하기보다는 미친놈입니다. 헌터부 사람들이 그나마 김세현이랑 말 섞는 건 돈 밝히고, 또 돈 밝히고, 돈만 밝히던 미친놈이라 깨끗해서 그래요.”

“그, 렇군요.”

“뭐, 지금은 그리 깨끗한 놈처럼 보이지도 않지만요. 음흉하기 짝이 없는 놈이죠.”

“하하.”

오늘따라 부팀장의 단어 선택이 강하다. 아마 조금 전 이곳을 찾은 협회 측 사람 때문이리라.

“하늘 씨.”

“네, 부팀장님.”

“커피 한 잔 부탁해요.”

“속 괜찮으시겠어요?”

위장이 예민한 편인지라 되도록 커피는 멀리하던 이였다. 오늘은 한 잔 마시고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에서 느껴지는 피곤이 상당했다. 나는 빠르게 커피를 타 부팀장에게 건네었다. 한 잔 더 타 자리로 돌아와 앉기 무섭게 출입문이 열린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평소보다 일찍 출근한 박 주무관이 자리로 가던 중 부팀장을 보며 멈칫한다.

“…뭐 열받는 일 있었습니까? 무슨 일로 커피를 다 마시세요?”

보통 안 하던 행동을 하면 무슨 일 있냐고 묻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박 주무관은 아니었다.

박 주무관의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커피만 마실 뿐이다. 나는 방금 전 있었던 일을 대신 설명했다.

“그 자식들, 또 시작한다 이건가?”

“뭘 시작하는 건가요?”

“아, 병아리는 모르겠구나.”

박 주무관이 아차 하는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입을 연다. 나는 이어진 설명에 집중했다.

“그 자식들, 김세현이나 다른 S급이 공 세울 때마다 나라에 압박 넣거든. 현재 협조금이 너무 낮다면서 좀 더 액수 올리라고 말이야.”

“…양아치네요.”

“풉!”

“콜록!”

협조금 단위를 몰랐다면 또 모를까, 그 업무를 보는 나로선 양아치나 다름없었다.

“병아리도 그런 말 할 줄 알아?”

연신 콜록대던 박 주무관이 눈가를 손으로 훔치며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랑 있을 땐 더 심한 말도 합니다.”

욕을 썩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하려고야 한다면 할 수 있었다.

“그럼 뭐 할 줄 아는 욕 있어?”

“음….”

욕은 알지만 굳이 여기서 해야 할까 싶다. 눈치를 살피자 두 사람 모두 어서 해 보라 손짓한다. 나는 크게 심호흡 후 입을 뗐다.

“개자식, 바보, 멍청이, 얌생이. 그리고 양아치?”

접한 욕은 많았지만, 이 정도만 할 줄 알아도 세상 모든 사람을 욕할 수 있었다.

그래, 아침에 왔던 그 사람 또한 이 다섯 단어로 종결지을 수 있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그런 얌생이 같은 짓을 하러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올 생각을 하다니.

정말 최악이다.

“푸핫!”

“하하! 양아치!”

좀처럼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두 사람이다. 아니, 멈추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박장대소로 바뀌고 있었다.

얌생이만 한 욕이 또 어디 있나 싶다. 격하게 웃기 바쁜 이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때마침 들어온 김 주무관과 한 주무관을 반겼다.

“오셨어요.”

“무슨 일 있습니까? 복도가 떠나갈 것 같던데.”

“푸핫! 양아치랍니다!”

“…차포 떼고 양아치라니? 알아듣게 설명 좀 해 봐, 병아리.”

“그게….”

한 번 더 조금 전 상황을 설명하며 양아치 발언까지 전하자 두 사람의 입가가 씰룩이기 시작한다. 결국 웃음을 터뜨리는데, 나는 미간을 좁혔다.

“풉! 아니, 그게.”

“하하! 화통하다, 우리 막내! 마음에 들어!”

“물가에 내놓은 병아린 줄만 알았는데, 거친 말도 할 줄 알고! 내가 다 뿌듯하네!”

“좀 더 센 말도 할 줄 안답니다! 우리 병아리가! 더 센 말도 할 줄 안대요!”

“푸핫! 그래, 네가 최고다, 최고!”

어느새 김 주무관이 등을 팡팡 내리치며 웃는다. 따끔하긴 했지만, 이리 좋아하는 걸 보니 이 정도 아픔쯤이야 참을 만했다.

이리 욕을 좋아할 줄 알았다면 미리 말할 걸 그랬나 보다. 다음에 욕할 기회가 생긴다면 결코 놓치지 않을 거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 미치겠다!”

“푸하하!”

“아니 지금 무슨 생각을 했기에 그렇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어?”

“그래, 의기양양한 게 보기 좋다!”

의기양양해도 좋다는 말을 들으니 이보다 더 뿌듯할 수가 없다. 더더욱 어깨에 힘이 더 들어간다. 나는 팀원들을 따라 입가를 말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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