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7)화 (17/246)

16화

05. 라면이 먹고 싶어요

역시 조상들이 남긴 말은 틀린 게 없다.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전해 듣곤 그대로 김 주무관을 바라보았다.

“어, 병아리가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되지. …나 그런 능력 없어!”

“타이밍이 의심스럽긴 하단 말이지. 혹 지능 높은 몬스터가 사람인 척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건 좀 너무한데요!”

“그런 몬스터가 있다면 김세현 돌아오는 즉시 제거해 달라고 해야겠는데?”

“팀장님!”

흥분한 김 주무관이 계속해서 억울함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 말을 다 믿기엔 상황이 그랬다.

어제 난데없이 김 주무관이 꺼냈던 그 상황이 오늘 펼쳐졌으니까.

난이도 S급, 그것도 호주의 어느 인적이 드문 지역에 생성된 던전은 현재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덕분에 김세현 또한 그곳으로 차출되었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고 말이다.

다른 날과는 달리 잠잠한 메시지가 이상하다. 나는 핸드폰을 빤히 바라보았다.

“…….”

김세현이 헌터부에서 시간을 보내던 것도, 그리고 메시지를 주고받기 시작한 것도, 일방적인 메시지가 도착하던 것도 따지고 보면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 얼마 되지 않았건만, 연락이 없다고 이렇게까지 허전함을 느끼는 게 이상할 따름이다. 괜스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오래간만에 TV나 보잔 팀장의 말에 바로 리모컨을 들었다.

-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난이도 A 이상의 던전이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서울시 한복판에 A급 던전이 발생했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난이도 A급 던전이 발생한 뒤로 지금까지 러시아, 영국, 캐나다를 비롯한 열다섯 국가에서 난이도 A 던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짧은 기간에 이렇게 난이도 A급 던전이 많이 생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던전학자들 사이에서 더 높은 난이도의 던전 생성의 전조 증상일 거란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결국 오늘 새벽 1시, 학자들의 경고처럼 호주에 재난급인 난이도 S급 던전이 생성되었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특파원과 연결하겠습니다.

“앵커 말을 들으니 이상하긴 하네요.”

“따지고 보면 변종 키메라 던전도 A급 던전으로 정정되었을 테니 이 주 안에 우리나라에서만 A급 던전이 두 번이나 생성되었다고 봐야겠네요.”

“그렇지.”

“큰 게 두 번이나 왔으면 좀 잠잠해야 할 텐데요.”

“한동안 잠잠할 테니 너무 걱정들 하지 마. 괜히 던전 생성의 법칙이 존재하진 않지.”

팀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법칙 이야기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 또한 법칙 내용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였다.

“어쩌면 법칙이 틀어졌다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할지도요.”

역시 부팀장도 그 부분이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나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긴 팀장을 응시했다.

“추이를 봐야겠군. 위쪽에서는 아무 말 없고?”

“예. 딱히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흐음.”

“법칙 관련하여 윗선에 말은 넣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전한 거 좋아하는 이들인데, 말이나 통하겠어? 우선은 지켜보는 수밖에.”

확실히 최근 서울에 던전의 생성 빈도는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듯했다. 고개를 주억이며 팀장의 의견에 동조하며 다시 TV를 보았다.

- 현재 호주는 큰 충격에 휩싸인 상태입니다! 제 뒤로 보이는 저 검은 기둥이 바로 난이도 S 던전이 생성된 장소인데요, 현재 호주 소속 헌터들이 막고는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말이 전해진 상황입니다. 특히 S급 헌터를 한 명 보유하고 있는 호주인지라 그 충격은 큰데요, 결국 주변 국가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S급 헌터를 차출했다 전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김세현 헌터가 호주로 오고 있….

“…심각한데요?”

그래, 이보다 더 심각할 수 있나 싶다.

생성된 던전을 배경으로 리포터 뒤로 검은 기둥이 보인다. 하늘 끝이 어딘 줄 모르게 우뚝 솟은 위용이 너무도 대단하다. 나는 절로 입을 다물었다.

안전지대에서 찍는 것이니만큼 저 던전과의 거리는 상당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화면의 반절 이상을 차지한 검은 기둥의 모습은 두렵기 짝이 없었다. 김세현이 호주로 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중, 갑자기 호주 현장에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나는 의자 손잡이 부분을 꼭 쥐었다.

우우웅- 우우웅-

소식을 전달하던 리포터 역시 사이렌 소리에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소란스러워진 주변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리포터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인다. 말을 들은 리포터가 뒤돌아 던전을 바라보는데, 나 역시 화면 너머의 시커먼 던전을 살폈다. 조금 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다급한 목소리로 전달된 급보에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현재 던전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안전지대로 대피 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헉!”

“저기서 더 커질 수 있다고?”

“김세현 언제 도착한대? 아니, 주변국에서 S급 헌터 출발했으면 몇은 도착했을 거 아냐?”

급박하게 돌아가는 호주 현황에 헌터부 사무실이 소란스러워진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주변국 S급 헌터 상황을 입에 담는 팀장을 보다가 재빨리 인터넷 뉴스를 둘러보았다.

그렇게 몇 분을 뒤적였을까, 새로고침을 하던 중 새로이 올라온 뉴스 기사가 보인다. 나는 곧바로 뉴스 내용을 전달했다.

“세현 씨가 도착했다고 하네요!”

“벌써?”

“급보인 듯합니다! 내용은 없고 그저 도착했다는 소식만 헤드라인으로 떴습니다!”

다른 나라 S급 헌터도 믿음직스러운 이들이었지만, 김세현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이리저리 김세현과 관련된 뉴스를 찾고 또 채널을 돌리던 중이었다. 나는 화면에 잡힌 장대한 검은 기둥에 손을 멈췄다.

- 현재 이곳은 아수라장 그 자체입니다! 호주 소속 S급 헌터가 중상을 입고 후퇴하며 급속도로 던전의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주변은 계속 대피하라는 사이렌이 울리고 있습니다!

“…이거 잉여 괜찮을까요?”

“괜찮길 바라야지.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S급 헌턴데.”

생각지도 못한 S급 헌터의 중상 소식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간 느껴온 심장 박동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거세게 뛰는 소리가 온몸이 집어삼키는 것만 같다.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TV에 집중했다.

“…….”

굉음과 하늘 끝까지 치솟은 검은 기둥, 그리고 혼비백산하며 대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흔들리는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다. 대피하면서도 상황을 담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던 카메라가 다시 던전 쪽을 향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화면에 잡힌 이상한 장면에 휘둥그레 눈을 떴다.

“어?”

“뭐 이상한 거라도 봤어?”

“…헉! 저거 뭔데?”

혹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었는데, 박 주무관 또한 같은 걸 본 듯했다.

흰색의 무언가가 검은 기둥 위로 지평선과 평행하게 지나가는 듯하더니 이윽고 기둥이 위아래로 양분되기 시작한다. 짧은 시간에 벌어진 상황이 몹시 당혹스럽다. 하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나는 이어진 장면에 입을 벌렸다.

잘려 나간 기둥의 윗부분이 왼쪽 끄트머리부터 시작해 점차 색이 옅어진다. 마치 물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린 것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에 이어 이번엔 아랫부분 또한 색이 옅어지기 시작한다.

“…….”

검은빛을 띠는 던전이 흐릿해진다는 건 누군가가 그 던전을 클리어 중임을 의미했다. S급 헌터도 중상을 입고 나온 던전이 이렇게 빠르게 클리어될 수 있다니.

얼이 나간 채 계속해서 TV를 보던 나는 김 주무관의 말에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저거, 우리 동네 미친놈이 하는 짓 같죠?”

“저런 짓을 할 놈은 그놈밖에 없지.”

“진짜 난놈이네.”

김세현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S급 던전까지 손쉽게 처리할 만큼 압도적일 줄은 몰랐다.

말하는 와중에도 계속 던전의 색은 옅어지고 있었다. 옅은 회색으로 변한 던전이 이윽고 빛깔을 완전히 잃는다.

언제 그 자리에 검은 던전이 있었나 싶을 만큼 청명하기만 한 파란 하늘과 그 아래 자리한 붉은 빛의 사막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나는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에 휩싸였다.

-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그때였다. 조용하던 특파원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정신을 다잡고 이어지는 특파원의 말에 집중했다.

- 보시는 것처럼 현재 던전은 완전히 클리어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던전을 클리어한 헌터는 조금 전 호주에 도착한 S급 헌터, 우리나라의 김세현 헌터라고 합니다!

“…물건은 물건이네, 저 녀석.”

“젠장, 저 지금 뭐가 차올랐는지 아십니까? 애국심이 차오릅니다, 지금!”

“그거 버려, 얼른!”

“저도 빼고 싶죠! 그런데 안 빠집니다!”

언제 자리서 일어났는지 박 주무관이 왔다 갔다 하며 감정을 표출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덩달아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하지만 나까지 부산스럽게 움직인다면 사무실 안이 어지러워질 것이 뻔했다. 나는 애써 참았다.

“어, 저기! 김세현 아닙니까?”

“어디!”

부팀장의 지적에 팀장 역시 TV 쪽으로 다가간다. 어느새 옹기종기 모인 팀원 사이에 낀 나는 화면에 비친 점 하나가 점차 가까워지며 사람의 모습을 띠자 한 번 더 감탄했다.

“…굳이 자동차가 필요치 않겠네.”

“그건 팀장님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내가 경차면 저놈은 스포츠카야.”

“…그런데 말입니다, 왜 이쪽으로 오는 거죠?”

“난들 알겠어?”

그러고 보니 어째서 이쪽으로 오는 건지 모르겠다. 조금 전 등장할 때만 해도 화면 오른쪽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니, 다시 한국으로 오려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게 맞았다.

삽시간에 다가온 김세현이 조금 전까지 상황을 중계하던 리포터 옆에 멈춰 서더니 카메라를 바라본다. 다른 날과는 전혀 다른 그의 모습이 낯설지만, 낯설지 않다. 멋들어진 김세현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흐트러진 게 없네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

“머리에 무스라도 잔뜩 발랐나 보지!”

“얼굴은 또 왜 안 가려!”

올백으로 넘긴 머리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옷차림 또한 너무도 말끔했다. 먼지 하나 보이지 않는, 갓 옷을 입은 것처럼 멀쩡한 그다. 나는 김세현을 살피다가 머리를 쓱 한 번 뒤로 넘긴 이가 리포터를 부르자 집중했다.

- 나 좀 할 말이 있는데.

- …혹시 김세현 헌터십니까?

- 맞아.

- 반갑습니다, 김세현 헌터님! 혹시 짧은 인터뷰 가능하십니까?

- 물론. 그 전에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해도 돼?

뭔가 전할 거라도 있는지 한마디 하고 싶단 뜻을 밝히는 김세현이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방향까지 틀어 카메라 앞에 섰나 싶…. 카메라?

“야, 야.”

“저 입 누가 틀어막을 사람 없어?”

“…….”

CCTV를 통해 무언갈 전달하고자 하던 김세현과 지금 할 말이 있다는 김세현이 겹쳐 보이는 건 그저 착각일 거다. 아니, 착각이었으면 했다.

말할 기회를 얻은 김세현이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손을 내밀며 검지와 엄지를 겹친다. 누가 봐도 손가락 하트로 보이는 형태에 시야가 일그러진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어진 김세현의 말에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 형, 한국 도착하면 라면 먹으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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