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6)화 (16/246)

15화

04. 나 이런 사람입니다

변종 키메라 던전이 클리어된 지 며칠 후.

매일같이 헌터부로 얼굴도장을 찍으러 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때까지 머무르던 김세현이 점심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자리를 뜬 상황이었다.

“흐으.”

오래간만에 느끼는 해방감이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다.

몸을 축 늘어뜨리며 그대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여기저기서 그간 고생했다 말을 건네온다. 나는 흐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자식, 내일도 올 거 같죠?”

“갈 때 못 들었어? 보나 마나 오겠지.”

“뭐, 그래도 가끔은 쓸 만하던데요?”

“다른 헌터도 아니고 그 김세현이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때도 있고 말이죠.”

“그건 인정. 물론, 김세현보단 김세현을 움직인 병아리가 더 대단하지만 말이야.”

이곳에 있는 사람 중 가장 경험이 적은 내가 대단할 건 없었다. 대견함이 듬뿍 담긴 시선과 눈이 마주치자 나는 급히 손사래 쳤다.

“대단하다뇨! 오히려 저 때문에 피해 보시는 거 같아 죄송한데요.”

커피 마시러 오라는 인사말을 건네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김세현이 헌터부를 제집처럼 들락날락할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그래, 협조금 수령 때를 제외하곤 헌터부와 그 어떤 접촉도 하지 않았을 거다. 김세현과 헌터부 사람들의 대치 상황이 떠오르자 미안한 마음이 더욱 커진다. 한 번 더 팀원들에게 사과를 건넸다.

“아서라. 네가 그렇게 사과한다고 해서 과거 바뀌는 것도 아니고.”

“우리 막내가 여지를 주지 않았다고 해도 그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헌터부에 똬리 틀었을 겁니다.”

“아무렴! 그놈은 오지 말라고 해도 올 놈이야. 신경 안 써도 돼.”

“김세현은 하고자 하는 거 있으면 무조건 그걸 해야 직성이 풀리는 놈이야. 그 정돈 여기 사람들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병아리가 오지 말라고 해도 올 놈이니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갑자기 이런 말 하면 좀 그런데, 어디 사람 안 사는 외국 어딘가에 S급 던전 하나 떡하니 생성되었으면 좋겠네요.”

갑자기 던전 이야기를 입에 담은 김 주무관이다. 놀라 눈을 끔벅이다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가 그쪽으로 흐르는 상황에 잠자코 대화에 귀 기울였다.

“그건 그렇지.”

“기왕 생성될 거 좀 먼 곳에 생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 피해 없는 그런 곳이요.”

“항공기도 자주 안 뜨는 그런 곳도 좋지!”

“S급 헌터 수도 적고 땅 넓고 우리나라랑 거리가 가까운 곳이면 호주 정도 생각나네요.”

“…그래도 지금 김세현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 하루 만에 돌아올 거 같지 않습니까?”

“뭐, 그건 그렇지만요.”

이쪽을 보던 팀원들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에 잠시 사라지나 싶던 미안함이 재차 차오른다. 이럴 땐 김세현의 빠른 귀가를 종용하는 것이 급선무다. 나는 내일 김세현이 온다면 되도록 일찍 돌려보내자 속으로 다짐했다.

“…….”

그래, 벌써 김세현이 헌터부에 똬리를 튼 지도 제법 시일이 흐른 상태였다. 바로 옆 건물이 협회임에도 불구하고 김세현이 계속 헌터부에 머무른다면 여기저기 입방아에 오를 건 자명했다.

협회 측에서도 그렇고 헌터부에서도 그렇고 김세현을 안 좋게 바라보는 이들이 점차 늘어날 테고 말이다.

“그놈 진짜 등급만 낮았으면 팀장님에게 혼쭐내 달라고 했을 텐데 말이죠!”

“이미 나도 났지! A급이라면 어떻게 해 보겠는데, 하필 S급이야, S급!”

“…….”

뭐, 헌터부 사람들은 이미 김세현을 새된 눈으로 보고 있는 듯했지만 말이다.

“프로그램 종료 다 했나?”

“네, 마쳤습니다!”

“그럼 가자고.”

팀장이 자리서 일어나자 나머지 팀원들 역시 짐을 챙겨 일어난다. 나는 팀원들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오늘 저랑 술 한잔하실 분?”

“집에 가서 혼술해.”

“와,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평일에 술은 무슨 술이야. 집에 가서 쉬어야지. 다음 주에 한 주무관 휴가 냈으니 이번 주 잘 쉬어야 현장 나간다고! 특히 박 주무관은 더 열심히 쉬어야 하지 않겠어?”

팀장은 박 주무관의 제안을 단칼에 잘라내더니 한 주무관 대신 박 주무관을 외근 보낼 생각임을 밝혔다. 나는 절로 박 주무관에게 시선이 향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 좋아 보이던 박 주무관의 어깨가 이보다 더 축 늘어져 안쓰럽기 짝이 없다.

“일반인이 거기 간다고 뭐 달라집니까?”

“가서 통솔해야지!”

“통, 솔.”

통솔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던 박 주무관이 난데없이 어깨를 쭉 펴며 몸을 꼿꼿이 세운다. 이어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한 표정으로 팀원들을 둘러본다. 입술이 달싹이는 것이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 전 통솔만큼은 세계 최고긴 하죠!”

“전 컨트롤 타워 세계 최고입니다.”

“전 협회에 수기로 협조증 보내는 거 하난 최고죠!”

“푸핫!”

던전을 다녀온 뒤 계속해서 세계 최고 헌터 임을 자부하던 김세현을 따라 하는 이들이다.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보니 웃음을 멈추기 힘들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김 주무관과 먼저 헤어지고, 나머지 팀원들과 함께 야외 주차장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나는 박 주무관의 말에 옆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둘이 계속 같이 다니네요?”

“뭐, 오가는 길이 멀지도 않으니까요. 카풀하니 전 유류비가 줄고 하늘 씨는 편히 출퇴근이 가능하니 서로 윈윈이죠.”

“카풀은 부팀장이 제안했어?”

“아뇨. 하늘 씨가 제안했습니다. 계속 얻어 타는 게 미안했나 보더군요.”

“부팀장님이 알았다고 해 주셔서 편히 다니고 있습니다.”

출퇴근길에 우리 집이 있다고 했지만, 따지고 보면 부팀장의 출퇴근 경로에 우리 집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나마 옆 구역이라 멀리 돌아가는 건 아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단 부팀장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엔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결국 부팀장의 차를 얻어탄 지 사흘 만에 제안하면서도 너무 일찍 말을 꺼냈나 싶었는데, 부팀장도 좋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괜히 기분이 좋다. 코를 만지는 척 손으로 올라간 입꼬리를 가렸다. 그러다 팀장과 박 주무관이 멈춰 서자 따라 걸음을 멈췄다.

“그럼 내일 보자고.”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뵐게요.”

“내일 뵙겠습니다.”

팀장과 박 주무관이 차를 세운 쪽으로 이동한다. 부팀장과 함께 차로 이동해 옆좌석에 올랐다.

“오늘 정말 파란만장했죠?”

“네.”

“그나마 김세현이 자리를 빨리 떠 다행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숨돌릴 시간조차 없었을 테니까요.”

“…….”

“아, 사무실에서 말했다시피 이건 김세현이 문제지, 하늘 씨를 탓하려고 꺼낸 말은 아니에요.”

“네.”

한 번 더 부팀장에게 확인을 받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차가 출발하자 바로 벨트를 맸다.

“오늘따라 차가 없군요.”

“네.”

무슨 일로 이렇게 차가 없는지 모르겠다. 이 시간에, 그것도 이런 큰 도로에서 이렇게 속력을 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오늘 있었던 일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또 라디오를 틀어 뉴스를 듣다 보니 어느새 집 골목길로 접어든 차다. 나는 내릴 준비를 시작했다.

“다 왔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내일 봐요.”

“들어가세요.”

부팀장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잡초 좀 뽑아야겠네.”

작은 텃밭에 잡초가 한가득하다. 이번 주말은 쉬는 날이니 아무래도 텃밭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할애해야 할 듯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잡초의 양을 헤아리다 가까운 곳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를 포착했다.

“…뭐지?”

제법 큰 소리였기에 바로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마당엔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나는 찾는 걸 포기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걸 굳이 찾으며 시간을 버릴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까지 찾았는데 눈에 띄지 않는 걸 보면 그냥 작은 돌멩이가 벽에서 굴러떨어지거나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가지일 게 뻔했으니까.

나는 곧바로 집에 들어가 빨래 바구니에 옷가지를 벗어 던진 뒤 욕실로 들어섰다.

“음음.”

샤워를 할 때마다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마친 뒤 방으로 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흐으.”

온몸으로 전해지는 이불 촉감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한참을 가만히 누워 있다가 느릿느릿 자리서 일어났다.

“옷은 입어야지.”

혼자 사는 집이라고 해도 계속 헐벗고 있을 순 없었다. 잠옷을 입으려 일어나던 중, 창가 쪽에서 들려온 작은 소리에 그쪽을 보았다.

“헉!”

창문이 열려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황급히 바지를 입곤 창문으로 다가가 다급히 밖을 살폈다.

혹 오가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집 안이기에 옷을 벗고 안 벗고는 집주인 마음이었지만, 창문을 활짝 연 채 그러는 건 아니었다. 창문 걸쇠를 확인하는 겸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문단속을 마친 뒤 다시 침대로 뛰어들었다.

다른 날 같았다면 일어난 김에 식사를 챙겼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점심때 먹은 보쌈이 아직도 소화되지 않은 기분에 배를 만지작거리자니 절로 점심 식사 때가 떠오른다. 나는 혀를 내둘렀다.

“…….”

혼자서 보쌈 20인분, 후식으로 주문한 냉면 5인분을 먹어 치운 것도 부족했는지 김세현은 내가 먹다 남긴 냉면까지 탐했다.

“하아.”

식욕이 왕성한 건 알고 있었지만, 남이 먹던 것까지 손을 댈 줄은 미처 몰랐다. 그뿐이랴, 식사가 끝나자 줄기차게 커피를 타 마시며 좋아하던 김세현이었다. 거기에 더해 옆에서 끝없이 이어지던 찰칵거리는 촬영음에, 더불어 간간이 들려오는 세계 최고 헌터라는 말까지 들으며 일과를 보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니었다. 내 입에서 최고 헌터라는 말을 듣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또 세계 최고 헌터가 타 주는 커피라며 카페인이 부족할 때마다 기가 막히게 커피를 타 주던 이였으니까.

돌아갈 때도 계속해서 최고 헌터란 말을 유도하기 바빴다. 너무도 속 보이는 행동에 결국 최고 헌터라는 말을 해 줬고 말이다.

“…….”

처음이야 그렇다손 쳐도, 계속해서 최고 헌터란 말을 유도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그래, 어린아이가 칭찬을 받았을 때 한껏 그것을 자랑하고 뽐내는 모습과 김세현의 행동은 닮아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세현이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들기 편한 자세를 찾다 보니 어느새 수마가 찾아온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편히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엄청난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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