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04. 나 이런 사람입니다
“후욱.”
“…….”
눈이 마주치자 더욱 거친 숨을 뱉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리 거친 숨을 쉬는지 모르겠다. 나는 슬그머니 붙잡고 있던 그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한 걸음 물러섰다.
“형.”
“네.”
“한 번만 불러 주면 안 돼요?”
“…….”
“세현 씨, 하고 불러 줘요.”
넘실거리는 기대감을 안은 채 한 번 더 불러 달라 요구한다. 푸른 눈동자 가득 자리한 또렷한 기대감이 무시하기 힘들다. 나는 천천히 입을 뗐다.
“세현 씨.”
“…….”
불러 달라고 하기에 불렀는데, 영 반응이 시원치 않다. 실컷 떠들 것 같던 김세현이 침묵하는 모습에 점차 민망함이 커진다. 이리저리 눈을 움직이다가 나는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와.”
작게 소리를 뱉은 그가 요목조목 내 얼굴을 뜯어본다. 이어 내가 붙잡았던 검지를 내민 채 접었다 폈다 반복하는 등의 이상행동을 보인다.
“하늘 씨.”
“네, 부팀장님.”
“잠깐 이쪽으로 오겠어요? 하늘 씨가 봐 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알겠습니다.”
평소 호출하는 일이 없던 부팀장이 무슨 일인가 싶다. 곧바로 그에게 가니 자리서 일어난 부팀장이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 나는 망설이다 착석했다.
“어떤 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거요. 이거 어떻게 하면 되죠?”
“…이거 말씀하시는 거예요?”
다른 걸 물어봤다면 또 모르겠는데, 지금 부팀장이 가리킨 건 매일같이 쓰는 컴퓨터 프로그램이었다. 그것도 단순 기입을 하면 되는 것 말이다. 혹 다른 걸 물어보나 싶어 파일을 살폈다가 함수도 아닌, 정말 단순한 기입 부분을 물어보는 상황에 혼란에 빠졌다.
“…….”
하지만 그 혼란도 잠시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팀장에게 실례다. 세상엔 이런저런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내 개념대로만 사람을 해석하는 건 옳지 않았다.
합계를 내면 되는 부분인 만큼 간단한 함수 사용법을 알려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듯했다.
“오, 그거 어떻게 한다고?”
“병아리가 지금 마술 부리는 거 같은데요? 한 번 더 보여 줘. 이번에 터득 좀 하자.”
“우리 막내가 똑똑하네.”
“괜히 헌터부로 온 게 아닌 것 같군요.”
“…….”
언제 왔는지 팀장과 박 주무관, 그리고 김 주무관까지 모인 상황이다. 연신 감탄사를 뱉는데, 왜 이리 민망한지 모르겠다. 파르르 떨리는 입가가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만 같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가 콧방귀 끼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날이 좋네.”
“…….”
언제 저기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등 뒤에 있던 팀장이 부팀장 자리 앞쪽에 서 있다. 크게 기지개를 켜는 모습에 눈을 끔벅였다.
“예, 날이 무척 좋군요.”
부팀장 또한 맞장구를 친다. 평소에도 자주 보던 장면이건만, 왜 이리 이상한지 모르겠다.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보다가 마지막으로 박 주무관에게 시선을 주었다.
“…….”
눈이 마주친 박 주무관이 한쪽 눈을 찡긋한다. 왜 저러나 싶었지만,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몇 번 더 함수 사용법을 가르쳐 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맞아. 나 그것도 좀 궁금한데.”
엉덩이를 떼기 무섭게 김 주무관이 화면 속의 계산 방법을 묻는다. 다시 자리에 앉아 물어본 것을 포함해 여러 가지 함수를 알려 주었다.
“흐음, 그렇게 사용하는 거구나.”
“그렇게 사용하는 거죠.”
“우리 병아리 똑똑하네.”
“똑똑하기는요. 하다 보면 쉽게 활용하실 수 있을 거예요.”
막상 사람들에게 함수 사용법을 알려 주니 이보다 더 뿌듯할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하는 거라곤 커피를 타는 일과 협조금 관련 서류를 정리하고 중계기를 열며 CCTV 확인을 하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바쁜 일과를 보내는 팀원들에게 도움이 되었단 사실에 괜스레 코끝이 간지럽다. 내친 김에 몇 가지 함수를 더 알려 준 뒤 자리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 했다.
“박 주무관님?”
“나 아직 이해 못 했어.”
“아.”
“난 미친놈 진정될 때까지 이해 못 할 예정이야.”
“…….”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김세현의 감정이 격해지자 혹여 내가 피해를 입을까 싶어 이쪽으로 피신시킨 거라 볼 수 있었다. 팀원들의 위치를 확인하니 더더욱 이 생각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말이다.
“음.”
이 감정을 뭐라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김세현이 잠시 감정이 격해지긴 했어도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싶기도 하면서 날 걱정해 주는 이들이 고마웠다. 이런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되어 뿌듯하기도 했고 말이다.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대다가 박 주무관의 말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우면 한 번 더 설명해.”
“네, 그럴게요.”
이미 아는 내용인 듯했지만, 걱정해 준 이들을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더 말할 수 있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정말 이들이 모르는 함수가 있을 수 있으니 공부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상황 파악되었으면 이제 좀 가지?”
조용히 김세현 쪽을 보고 있던 팀장이 그에게 말을 건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약간 으스대는 듯한 어조가 현재 팀장의 기분이 매우 좋음을 알려 주는 듯했다.
“형, 이름 한 번만 더 불러 주면 안 돼요?”
“내 말 들려?”
“한 번이면 되는, 아니지. 한 번 물꼬를 텄으니 앞으로 자주 불러 주세요.”
“우리 막내 입이 그렇게 싼 줄 알아? 턱턱 부르게?”
“형, 아시다시피 제 이름은 무료거든요. 마구 불러도 되니까 매일 불러 주세요. 자꾸 불러 주면 더 좋고요.”
“야, 말 한번 잘했다. 김세현이, 너 좀 얼른 협회로 가라.”
“허락도 없이 누구 이름을 막 불러. 말할 때마다 금액 청구할 테니까 알아서 사리지?”
“…….”
김세현이 올 때마다 매번 보는 장면이지만, 매번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건 유치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유치하게 느껴지는 말다툼 때문이었다. 더하여 나를 대할 때완 전혀 다른 모습으로 팀원을 대하는 김세현의 태도 때문이기도 했고 말이다.
말다툼이 점차 과열 양상을 띤다. 둘 사이에 끼어들어 말려야 하나 고심하다 김 주무관이 꺼낸 제안에 반색했다.
“오늘은 점심 좀 일찍 먹죠? 던전에 도착한 건 아니지만, 제법 허기지네요.”
바로 시간을 확인한 뒤 생각보다 이른 시각임에 당황했다.
아침 일찍 던전이 생성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클리어되었기 때문일까. 아직도 열한 시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오후가 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많은 일이 짧은 시간 안에 휘몰아쳤다는 사실이 놀랍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던 나는 모두가 이른 식사에 동의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아침도 안 먹었는데, 좀 일찍 점심 먹죠?”
“오늘은 갈비탕 통일이죠?”
“막내가 주문하게?”
“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아마 점심 이야기를 꺼낸 건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의도일 거다. 나는 바로 주문 양을 체크했다.
“형.”
“네, 세현 씨.”
“던전 클리어하고 와서인지 나 배고픈데.”
“…….”
그러고 보면 여기서 가장 고생한 사람은 저기 있었다.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배를 만지작거리는 이다. 나는 그에게 같이 먹겠냐고 묻던 중 말을 자른 팀장을 바라보았다.
“좀 가서 먹지? 협회에 뷔페 잘해 뒀잖아.”
“뷔…페?”
협회가 돈을 잘 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유기농에 고기까지 한가득할 줄은 몰랐다. 괜한 부러움에 조용히 뷔페를 읊조리다가 김세현이 꺼낸 말에 솔깃했다.
“형, 나랑 같이 협회 가서 뷔페 먹을래요? 거기 먹을 거 많아요.”
“우리 막내는 갈비탕 먹을 거니까 그쪽은 그쪽이 알아서 식사하쇼. 헌터들 사이에서 밥 먹다가 체하면 책임질 거야?”
“형 불편하면 싹 다 치워 줄게요.”
“…제안은 고맙지만, 여기서 먹을게요.”
뷔페를 먹는단 생각에 잠시 김세현의 말에 솔깃했지만, 뷔페는 협회가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게다가 체하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들의 식사를 방해한다면 그 또한 불편할 테고 말이다.
김세현의 제안을 거절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이가 이어 꺼낸 말에 기함했다.
“그럼 나도 갈비탕 먹어야겠네요. 음, 소소하게 갈비탕 여섯이랑 밥 열 공기 추가요.”
배가 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소소하게라는 말이 붙은 주문 양은 전혀 소소하지 않았다. 나는 김세현에게 보답으로 밥을 대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바로 접었다. 그리고 음식이 추가되진 않을까 빠르게 주문을 넣었다.
“형, 근데 언제까지 거기 있을 생각이에요?”
“설명 다 끝났으니 이제 가야죠.”
이젠 거친 숨을 몰아쉬지 않으니 슬슬 자리로 돌아가도 될 듯했다. 고개를 들어 부팀장을 보니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자리서 일어나 복귀했다.
“하늘 형, 오늘은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마저 하던 일 해요. 난 내 할 일 할 테니까.”
“네.”
이미 오늘 처리할 일을 마친 터라 따로 처리할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일이 없다고 할 순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장단을 맞췄지만, 좀처럼 자랑을 멈추지 않는 이에 결국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좀 할 일이 많아요, 내가. 세계 최강 헌터는 역시 인기가 너무 많아서 탈이네요.”
“그렇군요.”
“하지만, 형이랑 이렇게 있을 시간은 많아요. 뭐, 최강 헌터니까요.”
“…하하.”
할 일은 많고, 인기도 많은데 나랑 이곳에 있을 시간이 많다는 말이 아이러니하다.
게다가 저 최강 헌터란 말을 뱉을 때마다 듣는 내가 더 부끄러워지는 것 같았고 말이다.
민망함을 참으며 작업 프로그램을 켠 나는 식사가 오길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