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4)화 (14/246)

13화

04. 나 이런 사람입니다

무엇을 전하나 싶던 김세현의 손짓은 앞으로 CCTV가 작동되지 않을 것임을 알리는 수신호였다. 혹시나 싶어 전체 CCTV를 확인해 보았지만, 이 이상 접근은 불가능했다.

“…….”

조금 전까지 본 장면은 진짜가 맞나 싶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그래, 압도적이란 말밖에 표현이 불가능했다. 손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B급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는 건 아무나 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이미 대단한 걸 알고 있었지만, 새삼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피부에 와 닿는다. 멀거니 CCTV 전체 화면을 보다가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이 귀환하자 고개를 들었다.

“이게 지금 무슨 일이랍니까?”

“그놈이 현장으로 갔다는 말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방금 던전에 들어갔으니 이제 곧 해결되겠지. 더는 상황 지켜보지 않아도 되니 하던 일들 해.”

“예!”

“알겠습니다.”

“막내도 인제 CCTV 그만 보고.”

“…혹시 몰라서요. 조금만 더 지켜보겠습니다.”

아무리 S급 헌터라고 할지라도 광범위한 던전 모두를 통솔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조금 더 살펴보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지만, 고개를 젓는 팀장에 침묵했다.

“미친놈이긴 해도 실력 하나만큼은 최고인 녀석이니까.”

“…네.”

김세현의 능력을 거론하는데, 이 이상 우길 수는 없었다. 아쉬움을 꾹 누르며 교통센터 사이트를 밑으로 내렸다.

“…….”

화면을 보고 있지 않음에도 조금 전 보았던 김세현의 무위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나는 절로 8년 전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대학 새내기였다. 새로 만난 동기들과, 그리고 선배들과 친해지기 위해 술자리에 자주 참석했었고, 그로 인해 술에 잡아먹힌 날이 상당했다.

하지만 그날은 달큰하니 취한 것이 무척 기분이 좋았었지.

“…….”

그래,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채 그렇게 마냥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곧바로 가는 것이 아닌, 집 근처 놀이터에 들른 것도 다 거기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날, 그 자리에 김세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날,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부모님과 시간을 보냈다면 상황은 많이 바뀌었겠지.

“후우.”

이렇게 생각하고, 또 후회해 봤자 변하는 건 없었다. 그래, 후회는 적당히, 그리고 그 후회 속에서 알게 된 것만 챙기면 될 일이었다.

“재난 문자 채널 종료했습니다. 후우, 이제 좀 마음이 놓이네요. 갑자기 변종 키메라가 쏟아질 건 또 뭐랍니까!”

…일하는 와중에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모르겠다.

몸을 바로 하며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이번 일은 김세현이 나서길 잘했어.”

“변종 키메라가 B급이긴 하나 처리하기 까다롭다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팀장님, 예전에 변종 키메라 던전에 가셨다가 큰일 치르실 뻔하셨죠?”

“아아. 까딱했으면 목숨이 날아갈 뻔했지.”

“…….”

A급 헌터인 팀장의 목숨이 위험할 정도였다면 변종 키메라가 얼마나 위험한 몬스터라는 걸까.

변종 키메라를 사냥하던 김세현의 모습이 떠올라, 내린 CCTV 화면을 은근슬쩍 다시 띄웠다.

“막내야.”

“헙, 네!”

“…그거 그만 보고 마저 작업하던 거 해. 오늘 안으로 서류 검토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금방 창을 띄웠는데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모르겠다.

팀장의 지적에 재차 창을 내리곤 황급히 어제부터 밀린 일들을 차례대로 해치웠다.

협조금 관련해 몇 번의 검산을 하며 서류 작성을 마무리한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자료 검산을 마친 뒤 서류를 프린트해 팀장에게 가지고 갔다.

“어디 보자.”

정리한 서류를 받은 팀장이 이리저리 내역을 살핀다. 혹여 실수한 부분이 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런 부분은 없는 듯했다.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나저나 우리 오늘 점심은 뭐 먹습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어야지.”

“시원하게 갈비탕 어떠십니까? 부팀장님도 드실 수 있고요.”

“전 좋습니다.”

“저도 좋아요.”

갈비탕 말을 들으니 아직 점심시간이 되지 않았음에도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하다. 배를 만지작거리다가 커피를 부탁하는 박 주무관의 부탁에 자리서 일어났다.

커피를 타 그에게 전달한 뒤 다시 자리로 가 앉은 나는 슬그머니 CCTV 화면을 띄워 던전 주변 상황을 살폈다.

“어?”

“음?”

“무슨 일이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뱉은 모양이다. 졸지에 팀원들 시선이 이곳으로 모인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현장 상황을 보고했다.

“상황이 정리된 듯합니다.”

“아직 안 껐어?”

“네.”

팀장의 물음에 작게 답하자 그가 헛웃음을 터뜨린다. 나는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그렇게 궁금하면 보던가.”

“감사합니다!”

“그렇게 궁금했어?”

“네.”

김세현이 몬스터를 해치우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음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김세현은 내 부탁으로 현장에 나간 상황이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어진 그의 말에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현장이 그렇게 궁금하면 조만간 한 번 나랑 같이 현장 나갈까?”

“…….”

“우리 막내 벌써 숨넘어가겠는데요, 팀장님?”

“하하! 농담이야, 농담! 볼 거나 봐.”

농담이라며 웃고 마는 팀장이다. 덩달아 부팀장과 박 주무관의 입가에 미소가 자리한다. 나는 긴장이 풀린 채 열심히 CCTV를 살폈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몬스터와 김세현밖에 비치지 않던 화면에 경찰과 소방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CCTV로 여기저기 살피다 한 주무관이 경찰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발견했다.

“오, 한 주무관이네?”

김 주무관 역시 궁금했는지 고개를 내밀어 화면을 본다. 나는 그가 좀 더 잘 볼 수 있도록 자세를 틀었다.

“한 주무관은 뭐 해?”

“이제 막 현장에 도착한 모양입니다. 경찰들과 대화 나누고 있는데요?”

현장 상황이 궁금했는지 이쪽으로 온 박 주무관이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친 채 대신 답한다. 이리저리 CCTV를 돌리며 상황을 살피던 와중에 네트워크를 통해 연락을 취해 온 한 주무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귀 기울였다.

- 제가 좀 이상한 말을 들었는데요. 거기 잉여 없습니까?

“응. 잉여 거기 갔다.”

- …걔가 왜요?

아직 상황 전달이 되지 않은 걸까. 김 주무관과 박 주무관을 본 나는 한 주무관이 상황을 모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한 주무관님에게도 말하려 했는데, 네트워크 연결을 깜박한 모양이더라고.”

“혼자 앞서가니 말을 전할 수도 없고. 연락하기 직전에야 네트워크 꺼진 거 아셨을걸?”

“그렇군요.”

- 우리 막내 옆에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던 거 아닙니까?

“우리 막내가 부탁한다는 말에 부리나케 달려가던데?”

- …….

부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김세현이 부리나케 달려간 건 아니었다. 소원 이야기를 빼고 한 주무관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해 주는 팀장이 돌연 이쪽을 바라본다.

“김세현은 뭐 해.”

- 던전 클리어하자마자 바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때랑 다르게 이상한 말을 남겼다는데요?

“무슨 말인데 그래?”

- 최고 헌터가 어쩌고 하면서 영광으로 알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더랍니다. …뭐 잘못 먹였습니까?

“…이 미친놈이?”

“원래 낯짝 두꺼운 놈이긴 했습니다.”

- 뭐, 덕분에 오자마자 뒷정리하게 생겼네요. 정리 후 복귀하겠습니다.

“그래, 고생해. 상황 늦어지면 거기서 바로 퇴근하고.”

- 예. 혹 다른 상황 발생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아아.”

한 주무관과의 연결을 종료한 팀장이 크게 기지개를 켠다. 이어 중계기를 종료하란 말에 나는 바로 자리서 일어나 중계기를 종료했다.

지잉-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누가 보냈는지 알 것만 같다.

[(*Ü*)*.¸¸♪]

[던전 클리어! (˃ ᴗ˂)و]

[뭐, 어렵진 않았어요. 난 세계 최고 헌터니까 (。•̀ᴗ-)✧₊˚]

“…….”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니 역시나 김세현이다. 나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세현 씨.]

김세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일찍 던전이 소멸되진 않았을 거다. 그래, 김세현이 도움을 청하는 내 손길을 거절했다면 지금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몰랐다.

[=͟͟͞͞ʕ•̀=͟͟͞͞ʕ•̀▿•́=͟͟͞͞ʕ•̀▿•́ʔ=͟͟͞͞ʕ•̀▿•]

[저 지금 당ㅇ장 ㄱ =͟͟͞͞ʕ•̀=͟͟͞͞ʕ•̀▿•́=͟͟͞͞ʕ•̀▿•́ʔ=͟͟͞͞ʕ•̀▿•]

[ƪ(⸝⸝♥ʚ♥⸝⸝)ƪ́́]

뭔가 쓰다 만 터라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별 탈 없이 던전이 클리어되어 다행이었다. 나는 마지막 중계기를 종료했다.

“중계기 종료했….”

중계기 종료를 알리던 중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린다. 그쪽을 본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발견했다.

“김….”

생각해 보니 그와 약속한 게 있었다. 그를 부르다 말고 말을 흐렸다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세현, 씨?”

그저 오는 길이겠거니 했을 뿐이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김세현이 대뜸 손을 내밀자 시선을 내렸다.

“잡아 줘요.”

“…네?”

매번 사람을 의아하게 만들긴 했지만, 이번은 유독 심했다. 검지만 쭉 편 채 내민 이가 계속해서 잡아달라 채근한다. 나는 멀뚱히 그를 바라보았다.

“던전에서 계속 이 생각만 났단 말이에요.”

“…….”

“한 번만, 딱 한 번만 잡아 줘요.”

이게 뭐라고 그 위험한 장소에서 생각한 건지 모르겠다. 애절하기까지 한 김세현의 부탁이었지만, 손가락을 보니 쉬이 손이 가지 않는다. 망설이며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자 김세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하늘 형 부탁에 던전 가서 등급 B 몬스터 잡고 왔는데.”

“아.”

“그것도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터라 난이도 A 이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거 빠르게 클리어했는데.”

“…….”

“목숨 걸고 전선에서 싸우고 왔는데. 이런 사소한 것도 안 들어주는 거예요?”

마치 양심에 가책을 느끼라는 것처럼 계속해서 말로 공격한다.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점차 표정이 시무룩해질수록 나쁜 놈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손을 뻗었다.

“…….”

그래, 손가락 한 번 쥐었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아무것도 없었다. 김세현의 말마따나 난이도 A급 던전을 클리어한 걸 놓고 따지자면 소원도 그렇고 지금 이 부탁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민망함에 잠시 허공에서 손을 멈칫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내민 손가락을 쥔 채 가만히 있자, 머리 위로 거친 숨소리가 떨어진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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