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3)화 (13/246)

12화

04. 나 이런 사람입니다

“세현이라고 불러 줘요, 형.”

“…네?”

“성 빼고 세현아.”

“…….”

이런 소원을 빌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잔고를 지킬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막상 입에 담기엔 묘하게 낯간지러워 입에 담긴 쉽지 않을 듯했다.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뗐다.

“세현, 씨.”

“세현아. 하고 불러 줘요.”

“…세현ㅇ… 씨.”

그저 친구처럼, 동생처럼 부르면 되건만, 왜 이리 씨를 빼기 힘든지 모르겠다. 몇 번의 노력에도 좀처럼 호칭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눈가를 축 늘어뜨린 채 있다가 툭툭 볼을 건드리는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형, 지금 되게 귀여운 거 알아요?”

“…….”

“여태 누가 업어 가지 않은 것도 대단하네.”

왜 자꾸 다 큰 성인에게 귀엽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저 표정은 또 뭐고 말이다.

흐뭇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짓는 입과는 달리 뜨겁기 그지없는 시선이 내게 닿는다. 이어 별안간 그가 혀로 아랫입술을 핥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자극적이었다.

“…….”

잊을 만하면 사람을 긴장시킨다.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묘한 떨림과 함께 심장이 뛰는 소리가 점차 커진다. 입술을 달싹일 때마다 붉은 혀가 보였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모습에 제멋대로 손끝이 떨려 온다. 나는 황급히 주먹을 말아 쥐었다.

감정을 드러낸다는 게 나쁜 건 아니었다. 하지만 혀 좀 봤다고 이런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음을 들키고 싶진 않았다. 주먹 쥔 손에 힘을 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를 바라보았다.

“좀 아쉽지만, 우선 지금은 세현 씨로 합의 봐요. 좀 더 친해지면 그때 편하게 불러도 되니까.”

“그, 럴게요.”

계속해서 세현아, 라고 부르라고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다. 내 떨림도 전달되지 않아 다행이고 말이다.

혹 다른 떨림이 다시 시작될까 긴장한 채 한 번 더 인사말을 건넸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

“김세현 씨?”

인사를 건넸건만, 좀처럼 반응이 없다.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멍하니 나를 바라보기 바쁘다. 여기서 더 지체하게 된다면 던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진 아무도 몰랐다. 나는 한 번 더 그를 불렀다.

“손, 세현 씨?”

이름을 부르기로 해 놓곤 실수할 뻔했다. 황급히 말을 바꿔 이름을 부르고, 그와 눈을 마주했다.

“다녀오라는 말, 참 듣기 좋네요.”

“…….”

만약 내가 감정에 따라 녹아내리는 생명체였다면 지금, 이 순간 바로 녹아 버렸을 거다. 이보다 더 부드럽고 따스할 수가 있나 싶을 만큼의 미소를 머금는데, 사람이 어쩜 이럴 수 있나 싶다. 완벽하다는 단어보다 상위의 단어가 존재했으면 좋겠다. 멍하니 그를 보다가, 볼을 건드리는 감촉에 정신을 다잡았다.

“그럼 형, 다녀올게요.”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긴 김세현이 빠르게 복도를 걸어간다. 나는 시야에서 그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다시 사무실로 복귀할 수 있었다.

“갔어?”

“네.”

“…….”

말없이 날 보던 팀장이 출입문 문고리를 잡고 복도를 확인한다. 자리로 가 앉기 무섭게 컨트롤 타워 쪽이 아닌 이쪽으로 온 팀장을 올려다보았다.

“팀장님?”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짐짓 엄한 눈빛을 보내고 있어, 나도 모르게 눈치를 살폈다.

“…다음부턴 소원 같은 거 함부로 들어준다고 하지 마. 알았어? 그놈이 어떤 놈인 줄 알고 섣부른 행동을 해!”

“…조심하겠습니다.”

“조심한다는 말로 해결되는 거 아니야! 항상 긴장의 끈 늦추지 말고!”

“네!”

“다음부터는 절대, 그놈이 뭐라고 속살거려도 안 된다고 하고!”

“네!”

“이상한 상황 생기면 안 돼요! 하지 마세요! 부터 외치는 거야, 알았어?”

“네, 에?”

저 말,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다.

말끝을 올리며 기억을 되짚었지만,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팀장의 말을 듣곤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몰랐어!”

“알겠습니다!”

“하아.”

알겠다 답하자 깊은 한숨을 뱉은 팀장이 컨트롤 타워로 향한다. 나는 급히 그를 붙잡았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

“그게….”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뱉고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조금 전에는 죄송했습니다. 협회로 연락 넣으라고 하셨는데, 멋대로 끼어들었어요.”

방금 전 상황은 팀장의 지시를 무시한 것과도 다름없었다. 그래, 월권이었다. 꾸벅 허리를 숙인 채 답을 기다리다가 머리카락을 헤집는 손에 맥없이 허리를 더 수그릴 수밖에 없었다.

“알면 앞으로 조심해, 알았어?”

“네!”

가족이란 말을 들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팀원들과 거리가 생길 뻔했다. 더는 거론하지 않겠다는 팀장의 말에 기운차게 답하며 허리를 편 나는 씩 웃음을 터뜨린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우리 병아리가 박력이 넘쳐서 좀 놀랐다.”

“저도 놀랐습니다.”

“아아. 어디 가서 밀리진 않겠어. 우리 잉여만 조심하자!”

“네!”

재차 김세현만 조심하자 말한다. 바로 알겠다 답하고 팀장과 부팀장의 대화에 귀 기울였다.

“…네가 뻔뻔한 놈이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한편으로는 그러지 않아서 더 걱정이다.”

“미친놈이 딱 눈 돌기 십상이죠.”

“잘 지켜봐야겠어.”

“예.”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며 자리에 앉은 뒤 띄워 두었던 CCTV를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변종 키메라라면 던전 등급 벌써 변경되었을 수 있으니까, 체크해!”

“네, 알겠습니다!”

던전이 생성되면 중간에 노가리 까는 시간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김세현이 나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느긋한 사무실의 분위기를 느끼며 현장 상황을 살피다 보던 CCTV가 꺼지자 황급히 전체 CCTV 상황을 살폈다.

“던전 규모가 바뀌었습니다! 현재 던전 동남쪽 방향으로 300m 거리의 CCTV가 모두 꺼졌습니다! 다른 곳 또한 200m 거리의 CCTV 신호가 끊겼습니다!”

헌터부로 발령받은 뒤 이렇게 빠른 속도로 던전 규모가 커지는 건 본 적 없었다. 당혹감에 팀장을 바라보았지만, 팔짱을 낀 채 침묵을 고수할 뿐이다. 나는 초조해졌다.

“…….”

무언가 말을 해 줬으면 하는데, 도통 말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다시 현장 상황을 모니터링했다. 귀는 팀장에게, 그리고 눈으로는 계속해서 추이를 살피다가 대피하는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가 던전 쪽으로 걸어가는 걸 발견했다. 바로 화면을 확대했더니 익숙한 옷차림의 사람이 보인다. 나는 절로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김, 세현?”

“도착했어?”

마치 김세현이 도착할 때를 가늠하고 있었던 것 같다. 팀장의 물음에 솔직하게 답했다.

“추정되는 인물이 보이기는 합니다.”

김세현이라 추정될 뿐, 아직 확신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추정되는 인물을 눈으로 좇다가 CCTV 화면에서 사라진 인물을 따라 그다음 CCTV 화면을 확대했다. 그렇게 계속 화면을 옮기길 몇 차례, 나는 이윽고 몬스터와 그 사람이 대치한 장면을 발견했다.

“헉.”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김세현으로 추정되는 이가 앞으로 손을 뻗자 몬스터가 두 동강이 나며 옆으로 쓰러지는 모습에 말을 잃었다.

“…….”

대개 헌터와 몬스터들의 싸움이라 함은 몸과 몸끼리 부딪치는 육탄전이 떠오르는 게 사실이었다. 물론, 능력에 따라 저렇게 거리를 둔 채 싸우는 이들도 있었지만, 화면 속 인물처럼 가볍게 처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한 차원 아니, 몇 차원은 높아 보이는 압도적인 능력을 보고 있자니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되질 않는다. 연신 감탄사를 뱉던 와중 삽시간에 CCTV 속 몬스터를 제거한 이가 돌연 이쪽, 그러니까 카메라 쪽으로 걸어오자 눈이 커졌다.

“기, 김세현 맞습니다!”

카메라와 가까워질수록 김세현의 얼굴이 확연하게 보인다. 빤히 카메라를 보는가 싶던 그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손을 들어 브이 자를 만든다. 나는 헛숨을 집어삼켰다.

“…….”

저런 위험천만한 장소에서 개구진 미소를 지으며 브이 자를 만들 수 있는 건 김세현밖에 없을 거다.

브이 자를 그렸던 손을 편 그가 CCTV 왼쪽을 가리키더니 그쪽으로 이동한다. 나는 곧바로 다음 CCTV를 클릭했다.

“…….”

이번 카메라에는 몬스터가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살피는가 싶던 김세현이 카메라 쪽으로 다가오더니 이번에는 검지와 엄지를 겹쳐 하트를 만들며 웃는다. 무슨 말을 함께 하는 것 같았지만, 여기선 소리를 들을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입 모양도 잘 보이지 않고 말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입 모양을 따라 해 봤지만, 내용을 파악하긴 힘들었다. 해석을 포기하고 다음 CCTV 자리로 옮긴 그가 몬스터를 가볍게 제압하더니 다시 왼쪽을 가리키자 자연스럽게 다음 화면을 켰다.

“…….”

B급 몬스터들이 우글대고 있음에도 느긋한 김세현을 보고 있자니 정말 저곳이 던전 경계 지역이 맞나 싶다. 이번에도 역시나 몬스터를 처리한 그가 카메라로 다가온다. 당연히 다음 카메라를 보라고 손짓할 줄 알았지만, 예상과는 다른 행동에 갸웃했다.

“…….”

어깨를 축 늘어뜨리기를 몇 차례 반복하며 조금 전까지 향하던 방향을 가리키는 김세현이다. 마치 무언가를 전하고자 하는 행동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던 것도 잠시, 이어진 상황에 김세현이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바로 팀장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김세현 헌터가 던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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