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04. 나 이런 사람입니다
“헉, 죄송합니다!”
그저 모기를 쫓아내려 했을 뿐이었다. 나는 황급히 사과했다.
“김세현 씨?”
“…….”
무언가 말을 할 법도 한데, 이번에도 역시나 조용하다. 손가락을 보며 몽롱해지는 그의 모습에 뭘까 싶던 것도 잠시였다. 사무실을 가득 채운 비상 전화벨 소리에 그쪽을 바라보았다.
“다들 준비해!”
“예!”
“알겠습니다!”
요즘 들어 왜 이리 던전이 자주 발생하는지 모르겠다. 이 주에 최소 한 번 생성된다는 말도 이젠 최소 두 번으로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생각지도 못한 던전의 등장 때문인지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나는 한 번 더 볼을 스치는 무언가에 절로 손이 움직였다.
“…아.”
방금 김세현의 손가락임을 확인했건만 재차 그의 손가락을 붙잡은 형국이다. 민망함에 황급히 손을 떼어 내다 도리어 손이 붙잡히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
“…….”
키 차이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내 손이 좀 작은 편이라 그런 걸까.
김세현의 손이 완벽하게 내 손을 감싼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손등 뒤로 느껴지는 체온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귓가에 울려 퍼지는 셔터음에 정신이 들었다.
차차차차차찰칵!
“형, 진짜 귀여운 거 알죠? 알고 지금 그러는 거죠?”
빠른 속도로 손을 조물거리며 그보다 빠르게 말을 뱉는다. 그뿐이랴, 말보다 빠른 셔터음이 고막을 강타하는 통에 도통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거기, 손 이제 놓고 그만 좀 하지?”
“형한테 조그맣게 변하는 능력이 있었음 얼마나 좋았을까요. 매일 데리고 다닐 텐데.”
“야, 김세현!”
팀장의 일갈에도 제 할 말만 하기 바쁘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정말 마이페이스였다. 나는 슬그머니 손을 빼려 팔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붙잡은 손에 힘을 준 이로 인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슬그머니 손을 빼려다 붙잡은 손에 힘을 주는 이에 결국 손을 빼는 데 실패했다.
“…그러고 보니 몸이 작아지면 입을 옷이 없겠네?”
“저 자식이 진짜! 너 그만하지 못해? 여기 출입 금지 한번 당해 보고 싶어?”
“형, 제가 앞으로 재봉 기술 열심히 배울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그, 김세현 씨.”
“네, 형.”
부르길 기다리기라도 한 듯 즉각 답이 돌아온다. 주물럭대던 손 역시 부름에 행동을 멈춘다.
이보다 더 반짝일 수 있나 싶을 만큼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난다. 나는 시선을 마주하며 침착한 척 입을 뗐다.
“전 그런 능력 없어요.”
“푸핫!”
“미치겠다, 진짜!”
이번에도 팀원들이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진지하게 사실을 전했을 뿐인데, 이렇게 웃을 줄은 몰랐다. 나는 남은 손으로 볼을 긁적이다 김세현의 어깨가 축 늘어지는 걸 발견했다.
“…….”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미안하다. 시선도 떨구고, 입꼬리마저 바닥으로 축 늘어진 모습이 말을 잘못한 듯싶었다. 눈치가 보여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음, 그래도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작아질 일은 없었지만, 작아졌을 때를 염두에 두고 손수 옷을 지어 주겠다며 선뜻 말해 준 건 고마운 일이긴 했다.
고맙다는 말에 축 늘어졌던 김세현이 슬쩍 고개를 들어 이쪽을 살핀다. 그와 함께 서서히 어깨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표정 또한 점차 밝아졌고 말이다.
“막내야, 다녀온다?”
아차.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잠시 던전을 깜박했다. 한 주무관이 건넨 인사에 황급히 자리서 일어났다.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김 주무관이랑 박 주무관도 다녀와. 여긴 나랑 부팀장, 그리고 막내가 맡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홈페이지 건 및 화환과 꽃바구니 사건의 주범이 드러나긴 했지만, 다른 던전에 비해 난이도와 규모가 낮은 터라 팀장까지 나설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한 주무관과 김 주무관, 그리고 박 주무관이 자리를 뜨자 팀장이 컨트롤 타워로 이동했다. 나는 곧바로 중계기 쪽으로 이동했다.
중계기를 열고 자리로 돌아와 교통센터에 접속해 현장 상황을 살폈다.
“지금 상황은?”
“Z-2 구역 하서대학교를 중심으로 약 50m 반경의 CCTV가 모두 꺼졌습니다. CCTV 상황을 볼 때 아직 던전 크기가 변경된 거 같진 않습니다!”
“부팀장!”
“네.”
박 주무관 자리로 이동한 부팀장이 키보드를 두드린다. 잠시 뒤 도착한 재난 문자의 내용을 읽은 뒤 다시금 던전 주변 CCTV 상황을 살폈다.
“형.”
“네.”
“여긴 뭐 위성으로 보는 건 없어요?”
“…그러게요.”
나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위성을 활용하지 않는단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물론, 지금은 어째서 위성에 접속하지 못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사람을 구하는 일이 우선이건만, 어째서 사람들은 돈을 더 중시하는지 모르겠다. 협회의 로비로 인해 결국 헌터부가 위성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절로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이 실렸다.
“후우.”
협회만 생각하면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고개를 털며 다시 CCTV 확인에 몰두한 채 하서대학교 쪽을 찍는 영상을 보던 중이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손가락이 화면 어딘가를 가리킨다. 나는 그곳을 바라보았다.
“형, 여기.”
“네?”
“여기 키워 봐요.”
김세현이 뭘 발견했나 보다. 나는 곧바로 그것을 클릭해 창을 크게 띄웠다.
“헉!”
이게, 뭐지?
붉은색의 괴생명체가 도로를 가로지른다. 헛바람을 삼키다 이어진 김세현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건 변종 키메라라고 해요.”
“변종 키메라요?”
“변조옹?”
김세현의 중얼거림을 들은 건지, 내 말을 들은 건지 몰라도 팀장이 부리나케 이쪽으로 달려온다. 심각한 얼굴로 모니터를 살피는 팀장의 모습이 사뭇 낯설다.
“…김세현, 이 정도면 변종 키메라 몇 등급 정도 되는 거 같아?”
“못해도 B급이겠지.”
서로 다른 말을 하기 바빴던 두 사람이 이번엔 대화를 이어간다. B급이란 말에 놀라 나는 다시 CCTV를 바라보았다.
“젠장! 김 주무관이랑 박 주무관 다시 들어오라고 해! 협회에 협조문 보내고, 두 사람은 자릴 지킨다! 부팀장은 대학교 중심으로 반경 2Km까지 사람들 대피시키라고 정정 문자 보내!”
- 예,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습니까?
“던전에서 변종 키메라를 발견했다! 한 주무관 듣고 있나?”
- 예!
“다른 헌터들에게 연락해서 주변으로 키메라가 나가지 못하도록 방어만 하라고 해! 위험하다 싶으면 대피하고!”
- 알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서울시 헌터부입니다….”
팀장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부팀장 또한 경찰과 소방서 쪽에 중계기를 통해 연락을 넣는다. 나 역시 그저 방관할 수만은 없었다. 나는 크게 띄워 둔 화면에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낸 키메라들을 헤아렸다.
“열다섯.”
내가 뭘 하려는지 알기라도 한 듯 대번에 숫자를 말한다. 김세현을 본 나는 눈이 마주친 김세현이 해사하게 웃고 있음에도 쉬이 따라 웃을 수 없었다.
“열, 다섯이요?”
던전이 생성된 구역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서 열다섯의 몬스터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는 말과도 같았다.
B급 변종 키메라가 열다섯이라면 당장 난이도를 조정해야 했다.
“협회에 협조 넣을 때 A급을 많이 내어 달라고 하든가, 아니면 S급 붙여 달라고 하거나 해야겠는데요? 이거, 적어도 A급 던전인 듯한데.”
“아.”
“뭐, 저라면 다른 S급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특출한 능력을 지니긴 했지만요.”
“…….”
조금 아니, 많이 뻔뻔해 보이긴 했지만, 그에 반박할 수 없는 건 그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 정도 던전은 이전처럼 너끈하게 클리어할 수 있을 거다.
나는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김세현 씨,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형이 부탁하니까 마음이 좀 흔들리는 거 같기도 한데.”
도움을 청할 줄은 몰랐는지 김세현의 눈이 커진다. 잠시 당황하는가 싶던 그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는 모습에서 희망이 보인다. 나는 한 번 더 부탁했다.
“부탁드려요.”
던전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것은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뿐이랴,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순식간에 규모 역시 커지는 터라 초장에 상황을 정리해야만 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김세현을 보았다. 이리저리 눈을 움직이던 이가 눈을 마주해 오자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 형. 제가 형 부탁을 들어주면 제 소원 하나 들어줄 수 있어요?”
소원?
소원이라고 함은 김세현이 나에게 바라는 게 있다는 말이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뇌리에 스친 무언가에 흠칫했다.
“…….”
설마, 아닐 거다.
돈벌레라는 단어와 함께 내 작고 소중한 통장 잔고가 0으로 변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굳게 마음먹은 뒤 답했다.
“네!”
“누가 그렇게 냉큼 답하래!”
팀장이 가슴을 팡팡 친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부터 정리해야 마땅했다. 나는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지금 시대에 수기로 협조문 적어서 가지고 오라는 곳은 협회밖에 없잖아요! 상황은 급박한데, 시간은 다른 곳에서 허비되고요! 게다가, 게다가 지금 여기에 우리나라 최고 헌터가 있는데 돌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이곳에 김세현이 없었다면 이런 생각 따윈 하지 않았을 거다. 명실공히 나라 최고의 헌터 김세현을 두고 협회에 협조를 구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김세현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통장 잔고는 아쉽기 거지가 없었지만, 그리 많은 돈도 아니기에 이 정도쯤은 다시 또 모으면 될 일이다. 어쩌면 내 작고 소중한 통장 잔고를 보고 김세현이 조금의 배려를 해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흠, 흠!”
갑자기 요란한 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옆을 보니 주먹 쥔 손으로 입가를 가린 김세현이 있었다.
“흐음, 흠!”
눈이 마주치자 한 번 더 헛기침하며 슬쩍 눈을 돌린다.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내 잔고가 너무 작고 소중해 끌리지 않는 걸까.
“뭐, 까짓것 얼른 다녀올게요.”
“감사해요, 김세현 씨!”
“하. 내가 좀 오죽 잘났어야지.”
“맞아요!”
“…뭐어.”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가 싶던 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핸드폰을 품에 갈무리한 김세현이 곧바로 사무실 출입문으로 향했다.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왜 따라와요?”
“배웅하려고요.”
“아.”
어려운 부탁을 들어줬는데,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복도까지 따라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S급 능력을 지녔다고 한들 방심하는 건 좋지 않았다. 그뿐이랴, 내 부탁에 위험한 장소로 가는데, 이런 인사 정도는 당연했다.
“…….”
“…김세현 씨?”
숨은 쉬고 있을까 싶을 만큼 움직임이 없었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는 이에 당황해, 나는 한 번 더 그를 불렀다. 아니, 부르려 했다.
“형.”
“네.”
“나, 지금 소원 쓰고 싶은데.”
“어….”
여기서 소원을 말할 줄은 몰랐다. 너무도 일찍 소원을 말하고 싶다는 이에 눈을 굴리다가 마음을 굳게 다졌다.
“말씀하세요.”
이러나저러나 사라질 잔고, 좀 더 일찍 사라진다고 문제 될 건 없었다. 그가 돌아오면 바로 잔고를 털기로 작정하고,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럼….”
이미 마음을 먹었건만, 왜 이리 긴장되는지 모르겠다. 입 안이 버석하게 마르는 느낌이다. 나는 괜히 침을 삼키며 뒷말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