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0)화 (10/246)

9화

03. 김세현의 남자

툭.

떼구르르-

조용해진 사무실 위로 무언가가 굴러가고 떨어지는 소리만이 감돈다. 슬쩍 주변을 살핀 나는 모두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음에 놀랐다.

왜들 저런 표정을 짓는 건지 모르겠다.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한 듯 창백해진 모습이 의아하다. 뻣뻣하게 굳은 채 쉴 새 없이 나와 손님을 오가는 시선도 의문이었다. 혹여 손님이 뭘 가지고 오거나 실수를 했나 싶어 몸을 틀었다.

“하늘 형.”

몸을 돌리기 무섭게 눈이 마주친다. 사르르 접힌 눈매와 올라간 입매, 그리고 다정하기 짝이 없는 부름을 듣자니 마음 한구석이 간질거린다. 혹여 감정이 새어 나갈까 봐 작게 답했다.

“네.”

“나 커피 마시러 왔는데, 커피 주세요.”

“아!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러고 보니 어제 문자를 주고받으며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했었지. 냉큼 고개를 끄덕이곤 곧바로 정수기로 향했다.

“…후우.”

멋진 모습으로 웃는 건 반칙이었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킨 뒤 커피잔을 들고 원탁으로 이동하며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

조금 전 보았을 때와 달라진 게 없는 팀원들이다. 굳이 달라진 점을 뽑으라면 눈동자가 움직이는 폭이 커진 것밖에 없었다. 한 번 더 주변을 살피던 와중에 부팀장과 눈이 마주쳤다.

말없이 이쪽을 응시하던 부팀장이 몇 차례 빠른 속도로 눈을 깜박이는가 싶더니 파드득 몸을 떤다. 그 모습에 나 또한 몸이 들썩였다.

“헉!”

하필 발을 디딜 때 몸이 반응할 건 뭘까.

다급히 흐트러진 중심을 잡으며 커피를 쏟을 뻔한 상황을 모면하곤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여기서 커피를 쏟았다면 분명 손님에게까지 커피가 튀었을 거다. 완벽한 이의 차림새에 오점을 남길 뻔했다. 가슴을 쓸어내리곤 혹여 또 커피를 쏟을까 두 손으로 종이컵을 잡아 손님에게 건넸다.

“드세요.”

“체력이 많이 달리나 보네요, 형.”

“으음.”

발을 헛디딘 것과 체력은 관계가 없는 듯했지만, 굳이 그걸 지적할 생각은 없었다. 잔을 입가로 가져간 손님이 꺼낸 말에 끄덕였다.

“잘 마실게요, 형.”

믹스커피 맛이라고 해 봤자 거기서 거기인지라 인사차 하는 말일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노고가 없는 건 아니었다.

작은 것 하나에도 고맙단 말을 할 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인 것 같다. 그런 사람과 밤새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콧잔등을 만지는 척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입가를 가린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이가 만족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형, 서 있지 말고 여기 앉아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 이가 옆 의자를 뒤로 빼더니 의자 좌판을 팡팡 친다. 손님이 앉은 의자와 딱 붙은 의자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방금 일과를 시작해서요. 그, 협조금 문서도 드려야 하고요.”

좀 끌렸지만, 아니 많이 끌렸지만, 덥석 응하는 건 심장에 무리가 올 듯했다. 그에게 한 말처럼 일도 많았고 말이다. 거절하자마자 손님의 얼굴에 실망이 덧씌워지는 것을 보았다.

“…여긴 신입에게 일감 몰아 주나?”

“헉, 아니에요! 할 일만 딱 합니다!”

상황을 모면해 보고자 꺼낸 말이 이런 식으로 전달될 줄은 몰랐다.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오해성 다분한 말을 바로잡다, 어깨를 감싸는 손길에 옆을 바라보았다.

“우리보단 네 놈 때문에 병아리가 힘들어도 힘들겠지.”

“…팀장님?”

그 누구보다 경악 어린 시선을 보내던 팀장이었다. 토끼 눈을 뜨고 있다가 시선을 마주한 그가 멋쩍은 듯 헛기침하며 어깨를 토닥이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팀장이 조심스러웠던 적이 있었, 나?

한 번 팀장의 손길을 받을 때마다 허리가 접혔고, 무릎이 꺾였었다. 너무도 미약한 힘으로 어깨를 다독이는 팀장을 말없이 보다, 그의 귓가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음을 뒤늦게 발견했다.

간혹 팀장의 귀가 달아오를 때가 있긴 했지만, 그건 화가 났을 때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

화가 났다면 지금쯤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고 있을 텐데, 말투도 그렇고 행동, 표정 모두가 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래, 지금 저 표정은 성이 났다 하는 것보단 민망해하고 있다 보는 게 맞는 듯했다.

왜 이러는 걸까 하는 생각도 잠시였다. 팀장의 손이 어깨를 감싸는 순간 들려온 강한 마찰음에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손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앉아 있던 손님이 일어나 있다. 앉아 있던 의자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손님과 의자를 번갈아 보곤 귓가에 들려온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몸을 꼿꼿이 세웠다.

“손 치우지?”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몸이 절로 반응한 건 바로 저 싸늘히 식은 표정 때문인 듯했다.

감정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팀장을 바라보는 손님의 모습이 사납기 그지없다. 마른침을 삼키다가 어깨를 다독여 주는 손길에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그래, 적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손님은 협회 소속이니 적인 걸까.

뭐가 되었건 간에 이렇게까지 긴장할 필욘 없었다. 나는 좀 더 긴장을 풀었다.

“돈벌레가 기물 파손죄로 경찰서 가면 되겠어?”

“턱수염 믿고 까부는 것도 여기까지야, 덩치.”

“기물 파손죄로 가면 꼴 좋겠다! 이야, S급이 조사받으면 이거 특종 아닌가?”

“A급이 나대는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넌 턱수염 없었으면 이미 저세상 간 지 오래였어.”

“오, 그래! 생각해 보니 이번에 홈페이지 터진 건 때문에 이 가는 어르신들 많은데 말이야. 쿡 찌르면 여기저기서 카메라 들고 경찰서 많이 오겠어!”

“말 나온 김에 턱수염이랑 같이 여행 보내 줄까? 저세상 여행은 돈도 들지 않고. 무료인데 즐거운 여행이 될 거야.”

“공작새처럼 한껏 꾸며 온 이유가 다 있었네! 경찰서 앞에서 포토라인 한 번 제대로 가져야지!”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으며 서로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리기 바쁘다. 사이에 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중이었다. 나는 이어진 팀장의 말에 멈칫했다.

“이번에 경찰서 가는 김에 지난번 서울시 홈페이지 터뜨린 것도 함께 조사받자! 그 말도 안 되는 협박성 천사 소리도 스토킹으로 조사받으면 볼만하겠어!”

“…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갑자기 홈페이지 다운 건이 왜 나오는 거며, 천사 이야기는 또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뱉었다가 팀장이 이쪽을 바라보자 재차 물었다.

“갑자기 홈페이지 이야기는 왜 나오는 겁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기서 홈페이지 이야기가 나오는 건 이상했다. 답을 구하며 팀장과 눈을 마주했다. 그러다 이어 들리는 손님의 부름에 그쪽을 바라보았다.

“하늘 형.”

“네, 손님.”

눈이 마주친 손님이 해사하게 웃는다. 그 어느 때보다 활짝 피어오른 미소가 예쁘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이렇게 심장이 뛸 수 있나 싶다. 손가락을 오므리며 감정을 다잡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꽃도 있어요.”

“네?”

“꽃바구니랑 화환이요.”

“…….”

홈페이지 건이야 TV와 뉴스로 알려졌기에 손님이 알 수도 있었지만, 꽃바구니와 화환은 팀원들만 아는 특급 시크릿이었다.

그런 내용을 손님이 알고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손님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게 놀랍다. 너무 놀란 나머지 좀처럼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입만 벙긋대다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옆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걸 본인 입으로 직접 말한다고?”

“괜히 김세현을 미친놈이라고 하겠어요?”

“그나저나 우리 막내, 아까 보니까 몸 안 좋아 보이던데 저 잉여 놈이 밤새 괴롭혀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래서 팀장님이 옆에서 받쳐 주는 거잖아! 우리 막내 허리 아플까 봐! 조금 전에 병든 병아리처럼 휘청거리는 거 못 봤어?”

“무지막지한 놈! 안 그래도 약한 막내를 밤새….”

“…….”

지금, 무슨 말들을 나누는 걸까.

앞에서는 손님이, 뒤에서는 팀원들이 나누는 대화로 인해 머릿속이 이보다 복잡할 수가 없다. 혼란에 빠진 채 최대한 신속히 상황을 이해해 보려 노력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복잡해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순간 뇌리를 스친 손님과의 첫 대화 내용과 더불어 팀원들이 나누는 대화를 곱씹다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음에 눈이 커졌다.

그러니까, 지금 그 인사로 인해 팀원들이 오해했고, 그 오해를 하게 만든 사람이….

“형, 이젠 내 이름 불러 줄 수 있겠다. 그쵸?”

마치 내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치고 들어온 이다. 입을 벙긋거리며 손님 아니, 김세현을 보다,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점차 속도를 내며 뒤섞이는 걸 느꼈다.

“…….”

언젠가 김세현을 만나게 된다면 그에게 꼭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그래, 고맙다는 인사만큼은 꼭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간 겪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김세현이 벌인 일이라 생각하니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늘따라 입술만 달싹이는 일이 많다. 시선을 마주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눈동자에 묘한 빛이 서린다.

“하아.”

사람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 뜨거운 건 당연했지만, 김세현의 입에서 막 흘러나온 입김은 그 어떤 것보다도 뜨거워 보였다.

약간 붉어진 뺨과 습해 보이는 눈동자, 거칠어진 숨까지.

“…….”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시선을 돌리고 싶어진다. 왜인진 알 수 없었지만, 조금 전부터 계속해서 머릿속을 울려대는 경광등이 마음에 걸린다. 나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하늘 형은 놀란 모습도 예쁘네요. 음, 제가 형 더 놀라게 할 수 있는데, 잠깐 둘이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갈까요? 어디서 쉽게 볼 수 없는, 아주 기가 막히고 큰 거 보여 드릴게요.”

“아뇨, 괜찮습니다.”

뭔갈 보여 주겠다며 손짓하는데, 영 내키지 않는다. 절대 따라가서는 안 될 듯했다. 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흐음.”

턱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쓰러진 의자를 세우곤 다시 원탁으로 가 앉는다. 어디 가자고 할 때는 언제고, 거절하자마자 자리로 가 앉는 모습이 낯설다. 나는 말없이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하늘 형.”

“네.”

“커피가 다 식어서요. 한 잔만 더 부탁할게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커피를 달라 말한다. 조금 전 있었던 일이 현실이 맞나 싶을 만큼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팀장 또한 기막혀하고 있었다.

역시, 나만 이 상황을 이상하게 느낀 게 아닌 모양이다.

혹 잠이 부족해 생각이 짧은 게 아닐까 싶었는데.

“형?”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커피를 달라 재촉하는 소리에 나는 바로 발을 움직였다.

“하늘 형이 타 준 커피라 그런지 정말 맛있네요.”

재차 타온 커피를 마신 김세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커피 마시고 싶을 때마다 올게요.”

종이컵을 내밀어 흔들며 씩 웃는데, 정말 사람이 이렇게 잘생길 수가 있나 싶다. 잠시 머리가 멍해지던 와중이었다. 팀장의 외침에 정신을 차렸다.

“…여기가 카펜 줄 알아?”

“형 얼굴 보고 싶을 때도 와야지.”

“어후, 저놈이 S급만 아니어도!”

팀장의 새된 목소리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기 바쁘다.

계속되는 무시에 답답했는지 팀장이 주먹 쥔 손으로 가슴을 퍽퍽 친다. 혹 몸에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세기다. 걱정스레 그를 보다가 부르는 소리에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형,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다 마셔 버렸어요. 한 잔 더 부탁해도 되죠?”

“…네.”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많이 마시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아직 한 잔만 비운지라 문제 될 건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뒤 커피를 타 그것을 다시 건넸다.

“맛있다.”

후후 몇 번 부는가 싶더니 단번에 잔을 비운다. 이리저리 종이컵을 살피던 그가 한 번 더 부른다. 나는 반 박자 늦게 답했다.

“형, 한 잔만 더 마셔도 될까요?”

“…그러세요.”

첫 커피를 마시지 않았기에 한두 잔 더 마신다고 해서 몸에 이상이 생기진 않을 것이었다. 물론, 탕비실 재고 또한 전혀 문제없었고.

김세현의 요구에 한 번 더 커피를 건넸다. 김세현은 이번에도 후후 몇 번 부는가 싶더니 단번에 커피를 비웠다.

“형.”

왜 또 부르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답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형, 한 잔 더요.”

눈이 마주친 그가 환히 웃으며 한 잔 더를 외친다. 그 모습에 파르르 눈가가 떨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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