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9)화 (9/246)

8화

03. 김세현의 남자

“음, 음.”

이른 퇴근, 그것도 정시 퇴근보다 세 시간 이른 퇴근은 사람을 붕 뜨게 만들기 충분했다.

깔끔하게 씻은 뒤 수건을 하체에 고정한 채 욕실을 나오니 깨끗해진 거실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에겐 좀 미안했지만, 이런 날이 자주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피식 웃음을 터뜨리곤 방으로 가 잠옷을 입곤 젖은 머리를 말렸다.

띠롱-

“누구지?”

슬프게도 이 시간에 연락할 사람은 딱히 없었다. 다른 날이었다면 스팸이 왔겠거니 치부했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혹여 던전이 생성된 게 아닐까 싶어 핸드폰을 찾다가 옷걸이에 걸어 둔 상의 안에서 들려온 문자음에 급히 손을 뻗었다.

스팸이라면 이렇게 연달아 메시지가 오진 않을 거다. 정말 큰일이 터진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다. 바로 메시지 함을 여니 낯선 번호로 도착한 메시지가 보인다. 나는 고민하다 메시지를 확인했다.

[하늘 씨 (✧˃ロ˂)੭♥] 75

[..하늘 씨?( •᷄⌓•᷅ )?] 76

[하늘 씨, 혹시 핸드폰 확인 잘 안 하세요?¸◕ˇ‸ˇ◕˛??] 77

“…누구지?”

이름이 없었다면, 피싱 문자인 줄 알았을 거다. 아니, 번호가 유출되었다면 핸드폰 주인의 이름도 함께 유출되었을 터.

의심 가득한 눈으로 메시지를 보고 있자니 어느새 알림이 80이 넘어간다. 나는 곧바로 내용을 확인했다.

[메시지 확인했다! 하늘 씨!_〆(゚▽゚*)!!!]

만약 스팸이나 피싱이었다면 확인할 때까지 기다리진 않았을 거다. 아직 저장되지 않은 지인인 걸까. 나는 조심스레 답장을 보냈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하늘 씨!!!! ٩(♥ ˘ ³˘)chu(*˘︶˘♥).。.:*♡]

[집에 잘 도착하셨나요? (๑ Ỡ ◡ Ỡ๑)ノ♡]

[˚‧º·(˚ ˃̣̣̥᷄⌓˂̣̣̥᷅ )‧º·˚ 혹시 집 가는 길에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했어요 ˃̣̣̣̣̣̣︿˂̣̣̣̣̣̣]

[(ꈍ⌓ꈍ✿) 사실, 오늘 헌터부 방문하려 했던 건 협조금 때문이 아니라 (。ì_í。)]

[하늘 씨랑 저녁 식사하려고 찾아간 거였어요 ( ´•̥̥̥ω•̥̥̥` )]

“아.”

협조금이란 단어에 오늘 퇴근길에 만난 손님이 떠오른다. 나는 빠르게 쏟아지는 메시지를 지켜보았다.

[•̀ㅅ•́ 듣자 하니 부서 내에 안 좋은 일이 있는 듯한데 (。•ˇ‸ˇ•。)]

[제가 도움 드릴 수 있어요 ᕙ( ︡'︡益'︠)ง ᕙ( ︡'︡益'︠)ง]

[저 부수는 거 잘해요 ᕙ(⇀‸↼‶)ᕗ]

[지난번 하늘 씨가 저 생각해서 챙겨 준 거 생각하면 ( ♥˘ ³˘(˘︶˘♥).。.:*]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드릴 수 있어요 (๑>ڡ<)☆]

“하하.”

아무리 그래도 하늘의 별을 따다 준다는 말은 좀 심했다.

그날 손님에게 손을 내민 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음식을 내다 버릴 바에야 나눠 먹는 편이 이득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물론 우렁차게 울던 배가 안쓰러워 권하긴 했지만 말이다.

“…….”

그나저나 도착한 메시지마다 이모티콘이 다 다를 수 있나 싶다. 혹 도착하는 이모티콘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니 이보다 더 웃음이 날 수가 없다.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움직였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헌터부에 들를 일 있으시면 언제든 오세요. 음식 대접은 어렵지만, 커피는 꼭 타 드릴게요.]

[하늘 씨가 직접 커피 타 주는 건가요? (灬ºωº灬)♡]

[네. 제가 담당해야죠.]

헌터 협회 협조금 관련 담당은 나였다. 그러니 김세현 헌터의 협조금을 수령하러 온 손님 또한 내가 담당함이 마땅했다.

[하늘 씨가 타 주는 커피라니 (。・‧̫・。).**♡]

[지금 당장 마시고 싶지만 =͟͟͞͞ =͟͟͞͞ ヘ( ´Д`)ノ (☍﹏⁰)。]

[찾아가면 부담스러울 테니까 내일까지 꾹 참을게요 ˚‧º·(˚ ˃̣̣̥᷄⌓˂̣̣̥᷅ )‧º·˚]

[내일 커피 마시러 가도 되죠? ((๑✧ꈊ✧๑))???]

[물론이죠.]

오늘 협조금을 수령하지 못했으니 내일 오는 건 당연했다. 바로 옆 건물이긴 해도 한 번 발길 하는 데는 품이 들었다. 손님도 시간을 내고 들렀을 텐데, 괜히 미안해진다. 나는 한 번 더 메시지를 보냈다.

[일찍 오셔도 돼요.]

[✧・゚: *✧・゚:*( ͡ꈍ ͜ʖ ͡ꈍ )*:・゚✧*:・゚✧]

“귀엽다.”

잘생겼긴 외모 때문일까, 갭이 너무도 컸다.

입가를 오물거려 봤지만, 간질거리는 감각이 도무지 떨어질 생각이 없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앞서 도착한 메시지들을 살폈다.

“…….”

이모티콘과 함께 보내는 메시지를 보고 있자니 손님이 나에게 잘 보이려 애쓰고 있단 생각이 든다.

착각일 뿐이건만 왜 이리 심장이 떨리는지 모르겠다. 손님을 향한 호감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또 뭐고 말이다.

간질간질한 기분을 만끽하다가 눈에 들어온 시간에 멈칫했다.

“이런.”

나야 일찍 퇴근했기에 메시지를 주고받을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손님은 지금 회사일 것이었다. 아직 여섯 시도 되지 않았을 줄은 미처 몰랐다.

어쩌면 협회서 일하는 중간중간 시간을 쪼개며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야기를 대충 마무리하며 내일 보잔 메시지를 남긴 뒤 핸드폰 화면을 껐다.

“…….”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었기 때문일까, 메시지가 멈추니 괜히 허전하다. 다시 핸드폰을 켜 손님의 번호를 연락처에 저장하려던 중 중요한 걸 깜박했음을 알아차렸다.

“…아직 이름도 안 물어봤네.”

생각해 보니 아직 제대로 된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 메시지로 이름을 물어볼까 싶었지만, 방해가 되고 싶진 않았다. 간단히 ‘손님’이라 저장 후 나는 마저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띠롱-

“음?”

머리를 거의 다 말릴 시점에 조용해진 핸드폰이 다시 울린다. 바로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나이를 묻는 질문이 와 있었다. 눈을 끔벅거리다가 순순히 답했다.

[스물여덟이에요.]

[∑( ◦д⊙)‼ 스물여덟이요? 나보다 어릴 줄 알았는데 ૮・ﻌ・ა]

[ღ˘◡˘ற♡.。oO 그래도 다행이에요. 궁합도 안 본다는 나이 차네 ❤︎⁄⁄꒰* ॢꈍ◡ꈍ ॢ꒱.*˚‧]

[앞으로 하늘이 형이라고 부를게요 ( つ’-’)╮—̳͟͞͞♡]

[어, 형은 좀….]

형이라 불리기엔 알고 지낸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뿐이랴, 손님과 내 위치를 생각해 보면 너무 가까워지는 것도 애매했다.

“…….”

하지만 그보다 더 문제인 건 따로 있었다.

형이라 불렸다고 이렇게 심장이 뛸 필요는 없었다. 이런 마음도 모르는지 인정사정없이 뛰기 바쁜 심장이다.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계속해서 도착하는 메시지에 침음을 삼켰다.

[(¬◡¬)✧ 그럼 형아라고 부를까요?]

[형보다 형아가 더 친근해서 좋네요 (•⚗৺⚗•)]

[(૭ ᐕ)૭✧ 하늘이 형아 (૭ ᐕ)૭ ♥♥♥]

형아는 너무했다. 나는 바로 그 말을 수정했다.

[그냥 형이라고 불러 주세요.]

[쑥스러운 거예요? 형아 (ˊo̴̶̷̤///ᴗ///o̴̶̷̤ˋ)]

[…형이 더 낫네요.]

이 이상은 무리였다.

다 큰 남자, 그것도 나보다 훨씬 키가 큰 사람에게 형아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거부감이 느껴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상태는 비정상인 듯했다.

심장이 이보다 빨리 뛸 수 있나 싶을 만큼 격동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러다 정말 기절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형을 어필한 뒤 한참 만에야 형아가 아닌 형이라 부르는 걸 보며 안도했다.

“하아.”

다른 건 몰라도 조금 전 형아 발언은 너무 위력적이었다. 연거푸 한숨을 내뱉다가 조용해진 메시지에 걱정이 앞섰다.

“…….”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김세현이 돈을 많이 밝힌다 들었다. 돈을 밝힌다는 것은 즉, 고용한 사람에게 주는 월급에 대비한 효율을 뽑아내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혹여 메시지를 주고받던 게 걸린 게 아닐까 싶어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제가 할 일이 있어서요. 메시지는 그만 주고받아야 할 것 같아요.]

[도와드릴까요, 하늘이 형? ( ˘ ³˘(◡‿◡˶)]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내일 뵐게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하늘이 형 연락은 언제든지 받을 준비 되었으니까 (ง •̀ω•́)ง✧]

[저 진짜 일 잘해요! 하늘이 형 일이라면 더 잘할 수 있고 (ˊᵒ̴̶̷̤ ꇴ ᵒ̴̶̷̤ˋ)و]

[뭐든 맡겨만 줘요!٩(๑•̀o•́๑)و]

제 입김이 제법 세단 말을 하며 불편한 상황이 있다면 언질해도 좋다는 글을 보다가 핸드폰을 뒤집어 침대 한쪽에 내려놓았다.

여기서 알았단 답장을 보내면 메시지가 끝모르고 올 것만 같다. 그래, 차라리 내 쪽에서 더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손님도 남은 일과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될 거다.

“…….”

메시지를 주고받는 동안 즐거웠기 때문일까, 아쉬운 마음이 크다. 괜스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

지금이 아니라도 시간은 많았다. 그래, 번호 교환도 하고 메시지까지 주고받았으니 앞으로도 이런 기회는 다음에도 생길 거다.

꼬르륵.

“밥이나 먹을까?”

메시지는 그만하라는 듯 배가 신호를 보낸다. 배를 만지작거리며 자리서 일어나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

“연 주무관, 오늘 많이 피곤한 모양이네요.”

“…잠을 좀 설쳐서요. 부팀장님이 오지 않으셨으면 지각할 뻔했어요. 감사합니다.”

부팀장과 출퇴근을 함께하고 있기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지각을 해도 엄청난 지각을 면치 못했을 거다. 먼저 나와 기다리지 않는 게 이상했는지 초인종을 눌러 잠을 깨워 준 부팀장이었다. 나는 헌터부 사무실이 눈에 들어오자 크게 심호흡하며 몽롱한 정신을 일깨웠다.

“후우.”

밤 좀 지새웠다고 이렇게 티를 내면 안 됐다. 그래, 이미 부팀장에게 폐를 끼친 이상 남은 시간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마땅했다. 부팀장을 따라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먼저 출근해 있던 팀원들이 보인다. 나는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

“막내, 오늘 컨디션 별론가 보네?”

“아.”

티 내지 않으려 했는데, 벌써 들킬 줄은 몰랐다. 나는 볼을 만지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잠을 좀 설쳐서요.”

“그래 보이네.”

“하하.”

티가 나도 단단히 나는 모양이다. 자리로 가 짐을 풀고 앉자마자 찾아온 수마가 심상치 않다. 바로 자리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커피 드실 분?”

“막내 마셔.”

“난 패스.”

“패스.”

다른 때 같았다면 모닝커피를 부탁할 사람들이었다. 오늘따라 모두가 패스하는 상황에 팀원을 살피자, 눈이 마주친 이들마다 시선을 피한다. 나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

적어도 다섯 시간은 자야 머리가 돌아가는 편이었지만, 지금 상황은 밤을 새웠다고 해도 이상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주변을 살피는 것도 중요했지만, 지금은 잠을 깨는 것이 더 중요했다. 정수기 앞에서 커피 한 잔을 비운 후 한 잔을 더 준비해 자리로 돌아왔다.

이상하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는 서류를 괜히 뒤적이는 팀장,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바쁜 주무관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일과 준비를 하는 부팀장까지.

부팀장만 본다면 이상한 건 없었지만, 나머지 네 사람의 움직임은 부자연스러워도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서로 신호까지 주고받으며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이어 가는 네 사람의 모습이 이보다 의뭉스러울 수가 없다. 흐릿한 눈으로 네 사람을 주시하다 9시 정각을 알리는 알림음에 컴퓨터를 가동했다.

“…….”

왜들 저러는 건지 궁금했지만, 이제 갓 하루가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시간을 두고 알아보면 될 거다. 협조금 관련 서버 접속을 마친 뒤 팀장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조회 패스.”

“옙!”

“알겠습니다.”

“…….”

할 말이 없어도 무조건 조회를 진행했던 터라 이 역시 이상할 따름이다. 떨떠름함이 영 감춰지질 않는다. 괜스레 종이컵을 들어 입가를 가리니 코를 스치는 커피 향이 너무도 좋다.

커피 향을 맡으며 이대로 자고 싶….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커피 향에 취해 있던 것도 잠시였다. 미처 어제 작업한 내용을 눈으로 채 훑기도 전에 출입문이 열렸다. 고개를 들어 그쪽을 본 나는 회색 바탕의 글렌체크 슈트를 쫙 빼입은 인물을 발견하곤 휘둥그레 눈을 떴다.

“…….”

어제도 화려했지만, 오늘은 어제완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다. 회색 바탕의 글렌체크 슈트를 빼입은 것도 모자라 검정색의 하금테 안경까지 착용한 모습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손님은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어느새 바로 옆까지 손님이 다가왔다.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다가 이어진 말에 눈을 끔벅였다.

“하늘 형, 밤새 나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잤을 텐데 힘들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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