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8)화 (8/246)

7화

03. 김세현의 남자

잘생겼다.

잘생겼다는 단어가 마치 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만 같다. 완벽, 그 자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남자를 보고 넋을 놓았다.

사람이 이렇게 반짝일 수 있나 싶을 지경이다. 멍하니 그를 살피다 익숙한 푸른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설마….

“…손, 님?”

머리를 만지던 중이었는지 양손으로 머리를 뒤로 넘기다 만 자세 그대로 이쪽을 바라본다. 눈동자에 어린 당혹감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말을 건네려 했지만….

“…….”

가벼운 옷차림일 때에도 수려했건만, 저렇게 슈트를 쫙 빼입으니 정말 연예인 저리 가라 할 만큼 외모에서 빛이 난다.

오뚝한 콧대, 짙은 눈썹, 살짝 도톰한 아랫입술까지.

어느 하나 빠짐없는 완벽한 외모였지만, 오늘따라 유독 저 외모가 빛을 발하는 건 곱슬곱슬하던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저 머리 스타일 때문인 듯했다. 살짝 가려져 있던 눈매와 이마가 시원하게 드러나니 이보다 더 멋질 수가 없다.

“…….”

살짝 올라간 눈매가 매력적이지만, 눈 주위가 불그스름한 것이 사람을 신비스럽게 만든다. 그뿐이랴, 푸른 눈동자와 대비되어 왠지 모르게 요염하면서도 자극적이기까지 했다.

가쁘게 심장이 뛰던 와중에 심장 박동 사이로 묘한 떨림이 틈을 벌리며 존재를 드러낸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나는 당황했다.

“…….”

사람이라면 응당 예쁘고 잘생긴 걸 보면 심장이 뛰기 마련이었다. 그래, 눈앞의 손님 또한 미형의 수준을 월등히 넘었기에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건 문제 될 것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설레는 건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았다.

첫 만남보다 확연해진 설렘과 더불어 약간의 쑥스러움과 알 수 없는 목마름까지 차오르는 것만 같다. 침을 꿀꺽 삼키다가 옆구리를 찌르는 무언가에 파드득 몸을 떨었다.

“하늘 씨, 우선 내리죠.”

“아, 네.”

아직 안 내렸지.

서 있는 곳이 엘리베이터 안이라는 것조차 깜박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동하고 싶건만, 왜 이리 몸이 삐걱대는지 모르겠다. 빳빳하기 짝이 없는 걸음걸이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손님과 일정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몸을 틀어 다시 손님을 바라보니 그의 자세가 바뀌어 있다.

“…….”

방금 그 모습도 멋졌는데, 몸을 바로 하니 이보다 더 멋질 수가 없다. 슬쩍 그의 몸을 훑은 나는 몸에 착 감긴 슈트 핏을 보며 감탄했다.

저 몸매라면 저렴한 슈트를 걸쳐도 고급 슈트로 보일 것만 같다.

저 외모에 저 비율이라면 당연히 애인이 있, 겠지?

“…….”

저렇게 잘난 사람인데, 주변에서 가만히 뒀을 리가 없다. 괜스레 손님의 곁에 이런저런 사람을 붙여 보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

차라리 지금이 이천 년 대 초반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랬다면 내 적수는 여성밖에 없었을 테니까. 아니지, 차라리 지금이 나은 것도 같다. 동성도 합법인 시대가 아니었다면 손님이 날 거들떠나 봤….

“손님. 보시다시피 오늘은 김세현 헌터 협조금 수령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외모에 홀린 나머지 전달 사항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부팀장 앞에서 바보 같은 모습을 보였단 사실이 이보다 더 부끄러울 수가 없다. 뜨끈한 볼을 애써 모른 척하며 가방을 든 손을 연신 꼼지락거렸다.

“어째서?”

손님이 고개를 기울이더니 이내 짝다리를 짚는다. 그뿐이랴, 부팀장을 바라보는 불순한 눈동자와 함께 입 밖으로 나온 말 역시 불순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눈을 끔벅였다.

“오늘은 헌터부 전원이 오전 근무를 하는 날입니다. 저와 연 주무관은 퇴근 중이고요.”

“손님이 왔는데도?”

“협조금 관련 서버 접속을 종료했습니다. 관련 서버는 한 번 종료하면 당일 접속은 불가능합니다.”

상대의 하대에도 불구하고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안내한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답하는 능숙함이 역시 부팀장다웠다. 하지만 그 감탄도 잠시였다. 부팀장에게 하대 중임을 깨닫고는 여전히 삐딱한 자세를 취한 손님을 불렀다.

“손님?”

“예, 하늘 씨.”

“…….”

지금, 이 상황은 뭘까.

고압적인 태도로 부팀장을 대할 때완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몸을 바로 하며 유순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나는 좀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늘 씨, 지금 퇴근하신다고요?”

“…네.”

순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질문하는 모습을 보자니 앞선 대화가 정말 있었나 싶을 지경이다. 반 박자 늦게 답하자 얼굴 가득 미소가 피어오른다.

“조금만 늦게 클, 왔다면 하늘 씨 보지 못했겠네요.”

협조금을 수령하러 왔다기보다는 나를 보러 왔다는 듯한 말투다. 인사말임에도 상대를 너무 의식했나 싶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런 착각을 하진 않았을 테니까.

잠시의 착각이었을 뿐인데도 나대기 바쁜 심장이 점차 속력을 올린다. 나는 침착하려 애썼다.

“집이 가까우신가요?”

“아뇨, 거리가 좀 있습니다.”

“저는 C 구역에 삽니다.”

“…아, 네.”

물어보지 않았는데, C 구역에 산다는 말이 돌아오니 당혹스럽다. 아리송한 화법에 뭘까 싶던 것도 잠시였다.

“퇴근 후 따로 할 일 있습니까?”

“따로 할 일은 없습니다만.”

“그래요?”

아니겠지. 그래, 아닐 거다.

그저 인사말 중 하나일 뿐이었다.

퇴근 이후의 스케줄을 묻는 이에 한 번 더 심장이 요동친다. 가방 손잡이를 세게 쥐며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그렇다면 하늘 씨.”

나를 부른 손님이 헛기침하더니 힐끗 눈을 마주해 온다. 눈동자 가득 어린 기대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같이 저녁 먹으러 갈래요?”

“저, 녁이요?”

“지난번에 도움받기도 했고. 겸사겸사 대접하고 싶어서요.”

“아.”

지난번 도움이라 함은 아무래도 점심 식사를 말하는 듯했다. 그날 식사는 내가 산 것도 아닌지라 굳이 손님의 대접까지 받을 필요는 없었다. 물론, 공무원 신분에 누군가에게 얻어먹는 건 쉬운 일도 아니었고 말이다. 아쉬움을 꾹꾹 누르며 괜찮다 거절 의사를 밝히려다가 불쑥 나와 손님 사이에 끼어든 부팀장에 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죄송하지만 연 주무관은 한동안 바깥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난 지금 하늘 씨와 대화 중인데.”

“아시다시피 공무원은 무슨 무슨 법 때문에 외부 사람들과 한 끼 식사하는 것도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게다가 우리 연 주무관은 갓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터라 더욱 몸 사려야 하는 상황이고요. 어쩌겠습니까, 협회 측에서 푸시한 무슨 무슨 법이 그런걸요. 양해하셔야겠습니다.”

“…….”

“아, 따지고 싶다면 그대로 뒤돌아 협회로 가셔서 따지면 됩니다.”

이보다 부팀장이 날이 섰던 적이 있었던가. 아니, 없었다.

어깨 너머로 손님을 보니 번뜩이는 눈으로 부팀장을 응시하던 손님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여기, 눈치 있는 사람도 있었나 보네.”

“평소라면 또 모를까, 많은 정보가 들어오는데 알아볼 수밖에요.”

“그렇다면 굳이 막아설 이유는 없을 텐데.”

재미난 것을 발견한 것처럼 남자의 얼굴에 미소가 서린다. 부팀장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물러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

둘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손해인 건 우리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오르자 나는 부팀장의 등 뒤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저기, 손님.”

“예, 하늘 씨.”

부팀장님을 대하던 날 선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순하기 짝이 없는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다. 조금 전에도 봤지만, 적응하기 힘든 변화다. 잠시 말을 고른 뒤 나는 입을 뗐다.

“죄송합니다, 손님. 한동안 몸을 사려야 하는 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 있습니까?”

“부서 내 상황이기에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아직 그 범인을 잡지 못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 일은 헌터부 내의 일이기에 외부에 누설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했다. 일이 있을 때마다 헌터부를 찾는 이긴 했지만, 비록 잘생기긴 했지만, 손님은 어디까지나 오늘로 두 번째 만난 사람일 뿐이었다.

“…….”

생각지도 못한 말인 듯, 다소 얼이 나간 듯한 모습을 보니 괜히 미안하다. 어색하니 웃으며 나는 재차 그에게 상황을 안내했다.

“김세현 헌터의 협조금은 내일 오시면 바로 처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 일이 바쁘시면 다음에 오셔도 되고요.”

다음이란 말을 입에 올리긴 했지만, 기왕이면 빨리 수령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도 미리 맞는 게 나으니까.

말이 끝나자 부팀장이 등을 토닥인다. 옆을 바라봤다가 뿌듯함이 가득 묻어나는 눈길을 보내며 씩 웃는 부팀장을 발견했다.

“…….”

그저 할 말을 했을 뿐인데, 저런 시선을 보내는 건 민망했다. 대견하기 짝이 없단 시선을 감추지 않는 이에 점차 얼굴에 열이 오른다. 이 이상 뜨거워지면 얼굴에 불이 날지도 몰랐다. 헛기침을 하며 손을 입가로 가져간 나는 몇 번 더 등을 토닥인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평소보다 높은 톤의 목소리다. 역시, 뿌듯해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말을 전한 부팀장이 어서 가자며 눈짓한다. 나는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잠시만!”

“…네?”

갑자기 손목을 붙잡을 줄은 몰랐다. 가던 길을 멈추곤 고개를 들자 거칠게 머리를 헤집는 손님의 모습이 보인다.

“…길!”

“네, 손님.”

뭔가 말을 한 듯한데, 잘 들리지 않는다. 몸을 틀어 손님과 마주 서자 침묵하는가 싶던 그가 입을 연다. 나는 쫑긋 귀를 기울였다.

“번호 줘요.”

“어떤 번호를 말씀하시는지.”

“핸드폰 번호.”

“…제 번호요?”

“예.”

갑자기 핸드폰 번호를 달라는 저의가 궁금하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다가 한 번 더 번호를 달라 말하는 이에 시선을 빼앗겼다.

누가 지금 이곳을 본다면 미남 주변을 맴도는 오징어 두 마리가 있다 착각할 수도 있음 직한 상황이다. 잘생긴 삶은 어떤 삶일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던 것도 잠시였다.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이 떨어져 나가자 정신을 번쩍 차렸다.

대체 언제 내 핸드폰이 손님에게 전달된 건지 모르겠다. 번호를 찍어 확인 전화까지 돌린 그가 핸드폰을 내민다.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하며 나는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연락할게요, 하늘 씨.”

“그, 네.”

볼일이 끝났다는 듯 유유히 건물을 빠져나간다. 손님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부팀장과 시선이 마주쳤다.

“번호 바꾸는 건 어때요.”

“오래전부터 쓰던 번호라서요.”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하.”

과연 그런 상황이 올지 모르겠다. 혹여 꼭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굳이 바꿀 생각은 없었다. 생전에 부모님과 연락을 주고받았던 얼마 남지 않은 흔적 중 하나였으니까.

상의 안주머니에 넣은 핸드폰이 평소보다 무겁다. 옷매무새를 다듬는 척 핸드폰을 쓰다듬은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뱉으며 몸을 바로 세웠다.

부팀장을 세워 놓고 혼자 생각을 너무 깊게 한 듯하다. 나는 웃으며 부팀장에게 말을 건넸다.

“그럼 갈까요?”

“그럽시다. 집에 가면 푹 쉬어요.”

“네, 부팀장님.”

그러지 않아도 집안일을 정리 후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이었지만,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었다.

말없이 나를 보던 부팀장이 턱짓한다.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그와 함께 퇴근길에 올랐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기상천외한 일도 모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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